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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Closing 2025 ; 중력은 왜 양자화되어야 할까...?
    카테고리 없음 2025. 12. 25. 16:35

    2025년도 저물어간다. 대학원생을 6년 반 했고, 포닥도 6년 반 했는데, 이제 교수가 7년 차이다. 세 기간이 거의 같은 것이다. 예전 일을 돌이켜 보면 사람 사는 게 다 그러하듯이 좋은 일도 있고 그렇지 않은 일도 있었는데, 뭔가 끝이 안 보이는 바닷속에 빠져서 익사하지 않으려고 허우적대는 느낌이었다. 어쩌다 판자라도 떠내려오면 잠시 올라가서 숨을 고르는데 그것도 곧 파도가 밀려와서 떠내려가 버리고 다시 헤엄치는 일이 반복된 것 같달까... 그래도 이전에는 나이도 젊었고 마음을 의지할만한 일이나 사람이 있었기 때문에 어떻게든 살아남은 것 같다. 지금은 무인도를 발견해서 일단 상륙했는데,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는 느낌이다. 다시 깊은 바다로 돌아가 헤엄치지 않아도 되지만 그 안에서 살아가야 하는 다른 문제를 만난 것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시 바닷속으로 들어가 헤엄쳐야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용기가 없어지는지 다시 들어가도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살아남을 수 있을지부터 의심스러워진다. 능력도 예전만 못해지지 않았나 의심스러워지고 심리적으로는 안정된 것을 바라는 욕구가 점점 커지는데, 그래도 계속 무인도에서 평생 사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도 고민스러워지는 느낌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목표를 공유하거나 심리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사람도 점점 사라져서 외로워지는 것은 덤이고. 그래서 다음 6년 반이 걱정된다. 왠지 심적으로 많이 힘들 것 같다. 특히나 연구를 계속하려고 하는 입장에서 중요한 시기이면서 그렇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들이 가장 많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아직까지는 체력이 있으니 바삐 움직이면 어떻게든 되었는데, 이제 그것도 점점 자신이 없어지니까..  그래서 시간이 좀 더 있으면 좋겠는데, 왠지 세상이 원하지 않는 것 같다..-_-ㅋ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6년 반 뒤에 '제대로 된 물리학자로' 살아남게 되면 좋겠다. 하기사.. 세상 돌아가는 게 어떻게 보면 죽으라는 법은 없겠다 싶어도, 또 어떻게 보면 원하는 것이나 할 수 있는 능력이 내가 있는 곳과 딱 맞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 아니면 매우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굳이 과욕을 부리지 않더라도 멀쩡히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자체도 그리 쉽지 않으니까.. 


     다시 물리 이야기로 돌아가는 것이 일단 속 편할 것 같은데....

     이야기 한토막. 현재 이론물리학자들은 양자중력 즉 거시적인 scale에서 일반상대론으로 기술될 모종의 양자역학 이론을 찾는 것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하는데, 사실 이 문제 자체도 역사적으로 보면 당연하게 여져진 것은 아니었다. https://dnrnf1.tistory.com/202 여기서도 언급했지만, 일반상대론과 입자물리는 각자 나름대로의 이해 체계를 가진 상태로 발전해 온, 다른 전통의 이론들이었다. 일반상대론 입장에서 보면, 시공간을 기하학적인 실체로 볼 때 굳이 양자화해야 할 대상인지가 불분명했던 것이다. 다른 상호작용은 양자역학으로 기술되어도 중력은 고전적인 기하학으로 기술되는 것이 가능할까? 재미있게도 50-60년대에는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오히려 많았다고 한다. 여기에 대해 중력도 양자화되어야 자연스럽다는 이야기를 한 분이 다름 아닌 R. P. Feynman 선생이시다. Lectures on Gravitation 초반부 (Sec. 1.4) 에 이야기되어 있는데, 주장이 그렇게 구체적이지 않고 지나가듯 이야기를 하고 있어서 금방 이해가지 않는다. 이런 상황을 불편해하는지 좋아하는지에 따라 연구자가 아닌지 맞는지가 갈린다.ㅋ  단순히 다른 사람의 설명을 보고 받아들이려는 사람이야 완벽하지 못한 설명에 실망하거나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파악을 못한 채 잊어버리겠지만 연구자라면 좀 더 제대로 이해해서 모호함을 벗어나는 과정을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로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좀 더 제대로 된 사고 실험을 제시할 수도 있고, 반대로 그 주장에 흠이 있다면 그것을 지적할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이 좀 더 놀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상황이다. 그럴듯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이미 대가로 인정받은 사람들 만의 전유물은 아니지 않은가? 말하자면 그런 이야기들은 알아야 하느냐 혹은 따라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좀 더 중력의 본질에 대하여 지금까지 익숙했던 시선에서 벗어나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소재인 것이다. 맞고 안 맞고/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이런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하는 뭔가..라는 것. 

     Feynman 선생이 제시한 사고 실험은 이중 slit 실험에 중력의 크기를 잴 수 있는 detector를 다는 것이다. Detector의 역할은 명확하다. 두 개의 slit 중 어느 것을 통과하는지를 보기 위한 것. 어느 slit을 통과하는지에 따라 중력파의 source 위치가 달라지니 geometry 좀 더 Newton 역학식으로 이야기하면 potential의 형태가 달라지게 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밑밥을 깔아놓고 Feynman 선생은 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단지 중력파 역시 중첩을 하는 파동의 성질을 가지기 때문에 (책에서는 고전적인 파동의 성질, 즉 중첩이 된 결과를 제곱해서 확률을 얻는 것을 'amplitude'라고 이야기하고, 고전적인 입자의 성질, 즉 확률을 그저 합치면 되는 것을 'probability'라고 표현한다) 양자역학적 성질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급하게 마무리 짓는다. (아무리 봐도 이 강의는 Feynman 선생이 이야기를 한번 시작한 다음 관계 있는 내용을 하나씩 끄집어내서 연결 짓는 것을 스스로 즐기는 모양새이다.) 바로 거시적인 세계에서는 양자적 성질이 잘 안 드러나니까 지금 이야기가 틀릴 수도 있는데 (그러면서 자신의 기준에서 open mind는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고 열심히 강조하신다..ㅋ) 거시적인 상황의 중첩의 예로 Schr\"odinger 고양이를 이야기해 보자..라고 하시더니 그것도 급하게 마무리 짓고 Copenhagen 해석의 특징 혹은 아픈 손가락 즉 측정의 주체가 고전역학적이라는 점을 지적하신다. (갇혀 있는 고양이를 측정의 관찰의 주체로 본다면 이야기는 어떻게 복잡해 질까...ㅋ 그렇게 이야기는 다중 우주론까지 뻗어나간다..) 이 즈음되면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결 고리가 생길 때마다 확 털어놓고 다음 이야기로 옮기는 모습이 생각난다. ( 사실 나도 대학원생 강의를 그런 식으로 할 때가 종종 있다.. 생각보다 (학생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재미있고, 생각보다 이야기가 막 몰려와서 준비한 것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하게 된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정해진 연극 대본 같은 강의를 하는 것보다 대상에 따라서는 -특히 기본에 충실할 필요가 있는 학부생이 아닌 실제 연구를 접해야 하는 대학원생에게는 - 좀 더 교육적인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Feynman 선생의 이야기를 어떻게 마무리 지으면 깔끔할까? 기본적으로, 양자역학적으로 어느 slit을 통과하는지를 측정하는 장치는 모두 양자 얽힘(entanglement)을 도입하는 것과 같다. 예를 들어, 전자를 가지고 이중 slit 실험을 한다면 slit A 앞에 spin up만 걸러내는 아주 작은 Stern-Gerlach 장치를 달 수 있다. (빛이라면 편광판을 달 수 있고...) 같은 식으로 slit B 앞에는 spin-down만 걸러내는 Stern-Gerlach 장치를 단다면, 전자의 상태는 |slit A>+|slit B>라는 단순한 중첩(superposition)이 아니라, |slit A>|spin up>+|slit B>|spin down>이라는 entangled state가 된다는 것인데, 그 결과 spin의 측정이 자동적으로 전자가 slit을 통과하는 상태를 collapse시켜서 간섭무늬를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Feynman 선생의 이야기는 이 '어느 slit을 통과하는지를 측정하는 장치'를 중력을 특정하는 장치로 삼은 것이다. 예를 들어 아주 작은 test mass를 살짝 굴렸을 때, slit A 쪽으로 기울지 아니면 slit B 쪽으로 기울지에 따라 어느 slit을 통과하는지를 보겠다는 것이다. 이 장치가 양자역학적으로 움직이는 것이라면, 마찬가지로 entanglement가 생겨서 간섭무늬는 사라져야 한다. 반대로 고전역학적으로 움직인다면, 간섭무늬 즉 위치에 대한 확률 분포를 유지한 채로 어느 slit을 통과하는지를 잴 수 있다. 이건 불확정성 원리 입장에서 보면 이상한 것이다. 무슨 소리냐면, 이중 slit 실험에서 screen에 특정 지점에만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지 않고 간섭무늬로 퍼져서 나타나는 것은 전자의 위치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것은 당연히 어떤 slit을 통과할지 측정 전에는 알 수 없다는 점이다. 이건 불확정성 관점에서 이야기하면 운동량은 꽤 확정적이라는 소리이다. 그런데 이 상황 (간섭무늬가 나타나서 운동량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어느 slit을 통과하는지까지 동시에 알 수 있다면 위치까지 제대로 잴 수 있다는 이야기인지라, 불확정성 원리를 깰 수 있는 것이다. Feynman 선생이 이중 slit에서 중력 potential의 분포를 재는 순간 간섭무늬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하신 것은, 결국 '양자역학적 법칙이 중력 이외의 상호작용에서만 성립한다' 정도가 아니라 '중력이 고전적으로 행동하는 순간 불확정성 원리와 같은 양자역학의 법칙이 무력화된다'는 것을 문제로 여기셨기 때문인 것이고, 그래서 중력도 양자역학적인 법칙을 따를 것이라고 주장하신 것이다. 


    이게 단순히 60년대에 오간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 2010년대에 상당히 관심을 받은 주제이기도 하다. 옛 이야기라고 무심히 넘길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에 담긴 속사정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고,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제대로 분석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속에 뭔가 생각하고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 무겁게 다가온다.

     일단 Reference들을 적어 보면...

    우선 2003년에 다온 Y. Aharonov and D. Rohrlich, 두 분의 Quantum Paradoxes: Quantum Theory for the Perplexed 책 ( https://onlinelibrary.wiley.com/doi/book/10.1002/9783527619115 )에 관련 논의가 이야기되었고, 

     G. Baym, T. Ozawa
     Two-slit diffraction with highly charged particles: Niels Bohr's consistency argument that the electromagnetic field must be quantized
     Proc.Nat.Acad.Sci. 106 (2009) 3035 0902.2615 [quant-p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813440

      A. Mari, G. De Palma and V. Giovannetti, 
      Experiments testing macroscopic quantum superpositions must be slow
       Sci.Rep. 6 (2016) 22777 1509.02408 [quant-p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1392446

     이 논문들이 본격적인 시동을 건 것 같다. (G. Baym 선생은 유명한 양자역학 교과서 저자이기도 하다. 나도 예전에 들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이 분이 수업 하실 때 그 유명한 자신의 책을 꼭 따르지 않고 업데이트된 새로운 이야기를 하시려고 노력하셨다는 점이 꽤 인상 깊었다) 같은 논리를 전자기장이 양자화되어야 한다는 것에 적용할 수 있기 때문에 (Baym-Ozawa 논문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사실 Bohr 선생이 이 이야기의 원조이다) 전자기와 중력 두 상황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지를 재검토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게 R. Wald 선생을 비롯한 중력 연구자들의 관심을 끌어서,   

     
    A. Belenchia, R. M. Wald, F. Giacomini, E. Castro–Ruiz, C. Brukner, M. Aspelmeyer,
    Quantum Superposition of Massive Objects and the Quantization of Gravity
    Phys.Rev.D 98 (2018) 12, 126009 1807.07015 [quant-p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1683021

    같은 이야기도 나와 있다.

     이야기의 역사와 관련된 정리로 읽을만한 것은

     M. Di Mauro, S. Esposito, A. Naddeo,
     A glimpse to Feynman’s contributions to the debate on the foundations of quantum mechanics
     (in The Sixteenth Marcel Grossmann Meeting)
    2111.00337 [physics.hist-p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1957152


    J. Oppenheim,
    Is it time to rethink quantum gravity?
    Int.J.Mod.Phys.D 32 (2023) 14, 2342024 2310.12221 [gr-qc]
    https://inspirehep.net/literature/2712714

    정말 오래 전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불과 최근 몇 년 사이에 집중적인 재검토가 이루어졌다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따지고 보면 Feynman 선생도 전자기가 왜 양자화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Bohr 선생의 논리를 중력에 적용해서 이야기한 셈이기도 하니까.. 진짜 (지금 시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면 오래전 모든 것이 자명하지 않았을 때 나왔던 온갖 아이디어들을 다시 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잊혀진 뭔가에 지금 고민 중인 문제의 돌파구가 숨어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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