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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0년대의 중력?
    카테고리 없음 2025. 12. 17. 13:40

    1962년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 International Conference on General Relativity and Gravitation"이라는 학회가 열린 적이 있었다. 나와 인연도 없는 이 학회를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R. P. Feynman 선생이 참석했고, 나름대로 기록을 남겼기 때문이다. 냉전이 격화되는 와중에 서방과 소련 측 일반상대론 전문가들이 만나서 의견 교환을 했다는 상징적인 의미도 있기도 하고, Feynman 선생이 P. A. M. Dirac 선생과 찍은 유명한 사진

     

    https://ysfine.com/dirac/feydirac.jpg

     

    의 배경이기도 하지만, Feynman 이 양반은 학회가 딱히 생산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셨던 것 같다. 밥 먹으면서 부인에게 썼던 편지가 남아있는데, (유명해지면 그런 사적인 편지도 남겨야 하나보다.. 이탈리아 ICTP 도서관에 A. Salam 선생 방이 있는데 그곳에 이 분이 주고받았던 e-mail이 모두 인쇄되어 두툼하게 갈무리되어 있는 걸 본 게 생각난다..-_-) 나름 신랄하다. 그 학회에서 들었던 발표는

     

    1)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

    2) 불분명하고 애매모호한 것

    3) 맞는 말인데, 뻔하고 자명한 것을 길고 어렵게 분석한 뒤 중요한 발견인 양 이야기한 것

    4) 저자가 바보라서 뻔하고 맞는 말인데다가 수년에 걸쳐 검증된 것을 틀리다고 주장한 것 (이게 최악이다.. 무슨 말 해도 이 바보를 납득시키지 못한다.. 는.. 독설은 덤.. 누군가를 쪼다가 짜증 나셨남...)

    5) 아마도 불가능한 + 확실히 쓸모없는 것을 시도했고 결과를 보니 결국 실패로 끝난 것

    6) 순전히 틀린 것

     

    이라서, 다음에 중력 학회 간다고 하면 말려달라는 말까지 덧붙인다. 그런데 사실 여느 학회나 논문들이 거의 그렇지 않나...-_- 이 여섯 가지 기준을 적용했을 때 살아남는 논문은 정말 얼마 없을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마찬가지로 학회에 참석하셨던 B. de Witt 선생은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해서 Feynman 선생이 이해가 가기는 한데 (실제로 Feynman 선생은 소련의 D. Ivanenko 선생을 미친 듯이 쪼셨다고...-_- ) 그렇다고 그 학회가 허접인 것은 아니고 ( https://inspirehep.net/conferences/978268 발표 명단을 보면 알겠지만 바보 취급받을 분들은 절대로 아니다. ) Feynman 선생 자신도 토론을 꽤나 즐겼다는 평을 한다. 아마도 그때 뭔가 울컥한 것이 있었거나 특유의 과장이 들어가긴 했을 것이다. 그리고 de Witt 선생 입장에서는 발표 내용들은 어땠는지 몰라도 결과적으로는 생산적인 학회였다. 사실, Feynman 선생은 그 당시 중력의 양자화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loop 계산을 하다가 unitarity를 위해서는 ghost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으셨고, de Witt 선생은 Feynman 선생에게 조르다시피 해서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분이 Faddeev-Popov와 더불어 ghost를 포함한 non-Abelian gauge theory의 양자화를 이끈 초기 연구를 하셨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월척을 낚으신 것이다.

     

    아무래도 Feynman 선생이 그런 반응을 보인 것은 일반상대론에 대한 근본적인 시각 차이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보통 (심지어 물리학과 학부생마저도) 자연의 근본 원리를 추구한다는 목적이 같기 때문에 입자물리와 일반상대론을 같은 카테고리로 묶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역사적으로도 꽤나 다른 길을 걸어왔고, 둘 다 겪어본 내 경험으로도 시각 차이도 제법 크다. 초끈 이론 같은 경우도 중력과 입자물리의 융합을 시도하기는 하고, 또 입자물리 현상론에 비해 전통적인 중력과 상당히 교류가 있지만, 세부 연구 분야에 따라서는 접근 방식 같은 곳에서 이물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둘은 하나로 묶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입자물리의 발전은 gauge invariance의 이해를 토대로 정립되었고, 중력도 diffeomorphism invariancegauge invariance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기하학적인 언어로 해석된다. 입자물리의 경우 gauge theory의 양자화가 마무리되면서 기하학/위상수학적인 접근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초끈 이론은 대수기하학까지 건드리는 경지까지 왔는데, 한편으로 처음부터 미분기하학적인 언어로 접근했던 일반상대론의 전통 (R. Penrose 선생의 책들에 반영된 것 같은..)과는 다소 다른 느낌이 들기도 한다. 강조하는 점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철학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아이러니하게도, Feynman 선생이 중력에 대한 불만을 표했던 그 시점을 기점으로 일반상대론 연구는 호황기에 접어들기 시작한다. R. Penrose 선생의 horizon에 대한 접근법이 발전하고, 뒤이어 열역학적인 면이 다루어지다가 S. Hawking 선생이 양자장론적인 방법론을 도입, (거꾸로 말하면 그 이전 일반상대론 연구에서 양자장론적인 접근방식은 매우 드문 것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자기의 양자화가 성공한 지 20여 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Hawking 복사를 발견하시게 되면서 열역학적인 기술이 어느 정도 안정화되는 단계까지 가게 되니까.. 반면, 60년대 초반은 입자물리가 다소 답답한 상황이었던 것 같다. 50년대 후반 약한상호작용이 chiral하다는 것이 C. N. YangT. D. Lee 두 분 + C. Wu 선생의 실험에 의해 밝혀진 뒤, Feynman-Gell-Mann, Marshack-Sudarshan에 의해 약한상호작용을 매개하는 입자가 spin-1이라는 이야기까지 나오기는 했다. (V-A theory라고 한다. vector-axial vectorvector boson이 매개하는 chiral theory임을 이름부터 보여준다 : 사실 Feynman 선생이 이걸 생각해 낸 걸 여동생의 격려를 받아 본인만 한 것처럼 적었다가 공저자인 Gell-Mann선생이 엄청 화낸 일화가 있다...-_-) 그 후로 그걸 구체화하는 Weinberg-Salam-Glashow의 모형 (현재 표준모형의 원형이 된 것이다..)이 나올 때까지 무려 10여 년이라는 공백이 있었다. 사실, 그 기간 동안 입자물리의 주류는 S-matrix 이론으로 강한상호작용을 이해하는 것이었다. 이게 상당히 지지부진해지고, L. D. Landau 선생 같은 경우 양자장론이 정말 맞는 방향인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셨다. (그게 반영된 것인지 몰라도 Landau series 4권은 원래 상대론적 양자역학이라는 제목으로 약한상호작용과 강한상호작용에 해당하는 4-Fermi interactionGell-Mann 선생의 8정도까지 나왔는데, 2판에서 다 사라지고 당시 비교적 명확했던 전자기만 남았다..) 생각해 보면 60년대 초반 Feynman의 물리학 강의가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당시 이 분의 입자물리학 쪽 연구 역시 마찬가지로 잘 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른다..

     

    당시 Feynman 선생은 양자장론의 틀에 섭동 이론을 적용해서 전자기의 양자화에 성공했던 경험이 있으신지라, 중력도 같은 방식으로 접근하려고 하셨던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중력에서 나오는 기하학은 처음부터 배워야 할 것이 아니라 중력자의 행동을 이해하다 보면 equivalence principlediffeomorphism invariance로부터 유도되어야 할 일종의 하위 개념으로 생각했던 것 같고, 실제로 일반상대론에서 미분기하학을 강조하는 것에 대해 불필요한 장식을 과시하는 것 정도로 여기셨던 것 같다. 60년대 초반 (Feynman 물리학 강의가 만들어진 때와 겹친다..) 강의하신 것을 갈무리한 Feynman lectures on gravitation에는 그런 관점이 진하게 들어가 있다. (바르샤바 학회에 대한 위 이야기도 이 책에 나온다..) 정확하게 같은 관점을 취한 분 중 유명한 분이 '입자'물리학자인 S. Weinberg 선생이다. 이 분의 Gravitation and Cosmology 책은 다른 표준적인 일반상대론책(R. Wald 선생 책이라거나..)과 접근 방식이 많이 다르다. 기하학을 근본적인 원리로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Feynman 선생 처럼 (+ 처음 A. Einstein 선생이 일반상대론을 구축하셨던 순서대로) 물리적인 개념인 equivalence principle과 diffeomorphism invariance을 이야기하고, 그걸 적용할 때 Riemann 기하학이 필연적으로 따라 나오는 구조로 이야기하신다. (여담으로... 60년대 때 Weinberg 선생이 Berkerley에 계셨던 적이 있었고, Feynman/Gell-Mann 콤비가 계셨던 Caltech과 비교적 가까웠기에 1년에 한번 정도는 세미나를 가셨는데, 그때를 상당히 힘든 시간이었다고 회고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나마 Gell-Mann 선생은 괜찮은 정보를 이야기하면 대체로 만족하셨는데, Feynman 선생은 재미를 추구하시는 통에=자신이 똑똑함을 드러내는 것에도 관심을 가지셨기에 많이 곤란하셨던 것 같다..

     

    https://www.preskill.caltech.edu/talks/APS-April-2018-Feynman-4-3.pdf

     

    ) 그런 입장에는 Platon스러운 혹은 간결한 수학적 구조보다 현상 특히 실험을 통해 이론을 구축하는 것을 우선시했던 귀납적인 관점이 상당히 많이 녹아 있는데, Feynman 선생은 명백하게 그런 부류셨고, Weinberg 선생은 비교적 이론적인 구조에 호의적이셨지만 그렇다고 현상에서 출발한다는 관점을 떠나시지는 않으셨기에 그런 시각을 보인 것 같다. 그렇게 보면 Weinberg 선생 책에서 black hole을 어물쩡 넘어간 것도 이해가 가는데, 당시 black hole이 물리적 실체라기보다는 수학적인 관념에 가깝게 여겨진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건 Einstein 선생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이 분은 black hole이 존재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해 논문을 쓰신 적도 있으시다. 이건 분명히 당시 일반상대론을 연구하셨던 많은 분들 -D. Finkelstein, R. Penrose, J. A. Wheeler.. 등등이 black holesingularity에 대해 심각했던 것과 비교된다. 아예 '수학적인 방법으로' 접근해서 horizon에서 geodesic이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면 전체적인 공간의 대칭성과 상관없이 singularity가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식으로, singularity의 존재에 대해 상당히 심각했다. 아마도 Big-bang 우주론을 통해서 singularity의 가능성을 이미 보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론 양자요동이 있으니 이게 정말 singular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양자역학은 아직 제대로 개입하지 않는다. 고전적인 상황을 기하학의 언어로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이러한 흐름은 70년대에 이르기까지 전성기를 맞이해서, Weinberg 선생 회고에 '입자물리는 혼란스럽지만 일반상대론 연구는 잘 정립되었기에 후자를 전공하려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였다. Weinberg 선생 입장에서는 혼란스럽다는 것은 내가 뭔가를 할 때 대박이 날 수 있는(좀 더 곱게 창조적인 일을 할 수 있는..이라고.. 표현하셨지만) 좋은 기회인데 가지 않은 것이 좋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취지였지만. 여하간 70년대 중반이 되면서 gauge invariance의 양자화가 정립되게 되고, 입자물리는 전성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전공을 정하는 대학원생 입장에서 그 당시야 나름 합리적인 결정과정이겠지만, 유망함을 우선적인 기준으로 하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박사 졸업하기까지 최소 5-6년이 지나고, 또 교수될 때까지 비슷한 시간이 걸리는데 지금 유망한 것이 10여 년 뒤에까지 그러리라는 보장이 없고, 지금 별것 아닌 것 같은 게 계속 그러리라는 보장 역시 없다. 유망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없어지지만 않는다면 유망해 보이지 않더라도 차라리 본인의 취향과 능력에 맞는 것을 하는 것이 오히려 생존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만큼 집중할 수 있고 재미있는 생각도 할 수 있기에 어느 정도의 질적 수준을 이루기에는 마음에 없는 것을 무리해서 하는 것보다 오히려 (상대적으로) 쉬울 수 있다.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냐만... 사실, 유망함이라는 것은 많은 함정을 가지고 있다. 물리학자의 일은 자연의 원리를 탐색하는 것이지만, 연구하다 보면 실제 자연의 모습을 궁금해하기보다는 당장 살아갈 수 있는 혹은 스스로의 자존감을 드러낼 수 있는 연구의 방향에 기울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신의 신념 혹은 반대로 사람들의 인정이나 유행이 실제 자연이 생긴 것과 맞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더 신경 쓰게 되는 것은 그런 쪽이다. 그런 아이러니는 꽤 많고 오히려 일상적이기까지 하긴 하다. 누군가를 존경한다고 할 때, 그 사람의 인간적인 면이나 업적을 이해해서가 아니라 지위나 유명세가 이유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60년대에 black hole은 귀납적인 접근 방법을 취했던 분들에게는 물리적 실체가 아니라고 여겨질 법했지만, 실제로는 (그 분들의 결론과는 별개로) 엄연히 존재한다. 그게 분명해질 때 black hole을 연구하려고 한다면 이전부터 (black hole의 인기와는 상관없이)  계속 연구해 왔던 분들의 성취가 이미 많이 쌓였기에 상당히 어려워진다. Feynman 선생이 당시 일반상대론의 연구에 대해 불편해하셨지만, 그것을 가지고 당시 일반상대론 업계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없는 것이다. 특히 그 직후 발전상을 보면 더욱 그러하다. 다만 물리를 보는 관점과 취향이 달랐을 뿐이었다 어느 대가나 유명한 사람이 어떤 판단을 내렸을 때 보아야 할 것은 판단 자체가 아니라 그 뒤의 속사정과 논리다. 그건 단순하지 않고, 때로는 많은 생각과 공부를 요구하기 때문에 따라가기 불편하고, 대신 시원해 보이는 단정적인 문장을 따르는 것이 속 편해 보인다. 공격받으면 그 유명한 분도 그렇게 이야기했다.. 고 뒤에 숨을 수도 있다. 자신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그런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책에 적혀 있으니까 그대로 적으면, 혹은 어떤 유명한 사람이 말했으니까 받아들이면 된다고 하면 부담이 적게 느껴지면서 스스로가 똑똑해 보이는 것이려나.. 내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도 대화 상대가 그러면 가져다줄 수 있는 게 그런 종류의 것들인 것도 문제고... 자신이 설명할 수 없는 단어나 문장을 쓰거나 말한 다음, 책에 적혀 있으니까 나는 맞는 말을 하고 있고 내가 해야 할 것은 그걸 말하는 것뿐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내용이 비록 맞고 과학적이라고 해도 그 사람의 생각과 태도는 전혀 과학과 거리가 멀다. 많은 경우 그건 누군가의 기분에 맞추어 인정받을 수 있는, 혹은 적어도 수긍할 수 있는 키워드가 있겠지..라는 기대에서 온 것이다. 그런데 제대로 된 물리학자라면 자신의 입맛에 맞는 주장이나 취향에 맞는 단어들을 듣는 것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왜 이런 생각을 했는지, 그리고 그것에서 내가 놓친 부분이 있어 배울 것은 없는지를 생각한다.

     

    식이나 문장을 이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뒤의 원리를 이해하고, 그것들이 어디까지나 잠정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과학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목표라는 생각이 드는데, 과학을 하는 사람마저도 그렇게 행동하는 것이 쉽지 않기는 하다. 계속 노력해야 할 문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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