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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거리가 생각 날듯 말듯한 답답한 상태가 한 달 정도 계속되어서 조금 다른 주제를 볼까 하고 다른 논문을 보고 있었는데, 기존에 생각하던 방향과 어떻게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조금 더 파보기로 했다. 요새 자주 느끼는 것이지만, 한우물을 파면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 와중에 자신의 시선을 너무 고정시키는 것은 그다지 좋지 않은 것 같다. 실제 능력 내지는 할 수 있는지의 여부와는 별개로 내가 할 엄두를 못 내거나 하고 싶지 않아 한다면 그냥 못하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적어도 연구에서는 성공할지 실패할지 몰라도 일단 해보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게 연구의 본질일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좋은 연구를 하는 것이나 최소한의 질을 보장하는 연구를 지속하는 것은 어느 정도 자신이 우물안 개구리가 '덜' 되는지의 문제인 것 같다.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의 시간이 멈춘 순간인 아주 예전의 기준을 강요하거나 그것을 가지고 사람을 경솔히 판단하는 것은 배울 만큼 배운 사람에게서 오히려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라서 이제는 당혹스럽지도 않다. 그저 짜증이 날 뿐이지... 넓은 세상 돌아다니고 경험을 쌓으면 그런 면이 덜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도 아니라는 것이 예전 경험에서 배운 중요한 교훈이었다. 자신과 맞는 사람과만 만나거나 한순간의 놀라움에 압도당해서 그 바깥의 것을 보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밀어내고 다른 것을 경험하는 일을 거부하는 것은 사실 아주 흔하다. 생각해 보면 칸트는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일생 벗어나지 않았지만 후세에 남을 중요한 일을 많이 했다. 그 당시 그랜드 투어라고 해서 방방곡곡 돌아다니는 것이 유럽 사회에 유행했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실제 견문이 넓어지고 세상을 읽는 눈을 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지는 않았겠지...
두루 보는 것은 중요한 경험이지만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내가 뭔가 가치있는 일을 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자연의 법칙을 알고 싶은 입장에서 보면, 어차피 존재하는 자연법칙은 하나인지라... 예전에 누가 무엇을 했는지를 아는 것이 필요하긴 하지만 꼭 일일이 모든 지난 일을 아는 것이 최상의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굳이 그것을 위해 자신이 스스로 생각해 볼 시간을 없애는 것은 절대 좋은 일이 아니다. 자신이 스스로 생각할 경우보다 남이 무엇을 했는지를 더 잘 아는 것이 시행착오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똑똑해' 보이기는 하지만 진짜 그런 것은 아니다.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을 찾아내는 게임이 연구고, 그게 가능하다면 수단이나 배경은 사실 가릴 필요가 없다. 아주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어떤 성격을 가졌건, 물리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졌건, 중요한 것을 발견하는 것을 100% 보장해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것들은 '선택'의 문제이다. 자신이 선택한 것이니 그것에 충실한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거나 자신마저 그것에 집착하거나, 내가 이런 옳은 가치관을 가졌는데 왜 아무것도 중요한 일을 하지 못했는가..라고 한탄하는 것이 좋은 자세는 아닌 것 같다. 그게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진짜 더 중요한 것들을 희생할 정도의 가치가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신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는 그저 우물 안 개구리의 좁은 소견일지도 모르기도 하고.. 소신이나 철학이 멋져 보인다고 연구를 제쳐놓고 그것만 주장하는 것이 진짜 물리를 연구하는 사람의 자세는 아니니까.. 오히려 연구 문화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도 많이 보아 왔다.
어쨌건 생각할 거리 하나는 가지고 있으니 무슨 이야기를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파봐야겠다. 논문 쓰는 과정에서 가장 신경 쓰이는 단계인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