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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240507카테고리 없음 2024. 5. 7. 18:03
사람의 성격이 좋은지 나쁜지를 쉽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잘 모르겠다. 애당초 절대적인 기준이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보통 누군가의 성격이 '나쁘다'는 말을 들으면 그 말을 한 사람의 인격도 같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자신의 판단 기준에 대해 지나친 확신을 가지거나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해야 만족을 느끼는 타입의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은 걸러 들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는 누구에게나 친절한 사람에 대해서도 의심이 간다. 진짜 어떤 기준을 가지고 있는지도 불확실하고, 내 앞에서 내 뜻에 맞게 이야기하더라도 다른 사람 앞에서는 그 사람의 뜻에 맞게 이야기하느라 나를 비방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장 내 뜻에 맞는 말을 들었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반기거나 믿음을 주는 것이 위험하다는 생각이 든다. 일단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나는 성격 안 좋고 꽤나 이기적으로 보일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학생들에게 물리를 가르치는 일이나 물리학자로 꾸준히 연구하는 것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더 원만한 방법이 있을 수도 있지만 불행하게도 그걸 고민할 시간도 많지 않고 금방 생각할 정도로 그 방면으로 머리 회전이 빠른 사람이 아닌지라.
생각해 보면 물리학자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이 다소 엉성하달까.. 얼떨결인 구석도 있지만, 나름 내 성미에는 맞는 일인 것 같다. 꼭 능력과 비례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것을 계속 배울 수 있고 나도 딱히 거창한 것이 아니더라도 뭔가 생각해 내는 것이 은근히 재미를 느끼는 구석이 있기도 하다. 굳이 이론물리라야 하는 법은 없지만 반대로 이야기하면 굳이 하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기는 하다. 이미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아직 알아야 할 것들은 더 많고, 아무리 똑똑한 사람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점이 나름 매력적인 면이 있다. 내가 원하면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고 확률이 높지 않더라도 나도 아주 좋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뜻이니까..
생각해 보면 나도 기질이 그다지 차분한 편은 아니다. 일단 한 곳에 계속 머물러서 반복적인 일을 하는 것을 상당히 권태롭게 느끼고 계속 신선한 것을 보고 싶어하는 것 같다. 그리고 시간이 주어지면 그 시간을 방해하는 요인이 들어오기 전에 그 시간을 충분히 활용하려는 습관이 들어서 좀 서두는 감도 있다. 그게 어떨 때는 좀 차분히 읽으면 뭔가 얻을 수 있는 것을 그냥 지나친다거나 하는 식으로 손해를 주기도 하지만 또 반대로 괜찮은 방향으로 가게 만들기도 한다. 기질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좋게 작용하기도 하고 나쁘게 작용하기도 했다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계속 뭔가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이 물리학자라는 직업과 어느 정도 상성이 맞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물리학자를 직업으로 여기는 것은 정체성이지, 경제적인 소득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직업은 교수이고, 그 안에는 물리학자 이외의 다른 일들도 포함되어 있다. 학생을 가르친다거나.. 중요한 일이고 하기에 따라서는 물리학자가 하는 일인 연구와 상당히 좋은 관계로 공존할 수 있는 것이지만, 한편으로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는 것이 좀 버거울 때가 있다.
그래도 학생들을 보면 인간과 세상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우는 면이 있다. 학생들이라고 일률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개개인마다 다양한 인간 군상이 존재하고, 그렇게 어린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중장년의 소위 사회생활하는 사람들이 보이는 다양한 면들을 이미 보여주는 면도 있다. 헌신적이고 진지한 사람부터 필요한 것만 하고 나머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도 부담은 피하고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통해서 자꾸 비껴나려는 사람도 있고... 그런 다양한 면들은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접해 온 사람들에게도 많이 보아오던 것들이기도 하다. 그렇게 다양한 성향과 개성들이 교수 혹은 교사라는 직업으로 묶이는 것도 참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런 다양함 근저에 있는 각자의 가치관 내지는 신념이 계속 현실과 관계를 충돌하거나 매끄럽게 굴러가는 과정을 보다 보면 많은 것을 배우기도 한다. 그렇긴 해도 결국 물리 연구를 계속하고 싶다.. 는 생각으로 돌아오기는 하지만.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관찰은 궁극적으로는 내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문제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대학이라는 곳 자체가 본격적인 사회 생활을 하기 직전 단계인 만큼, 많은 사람들이 계속 고민하기도 하고 뭔가 고생을 하는 것을 계속 보게 된다. 그런 고생 아래에는 그 끝에 내가 생각하는 '좋은 결과'가 있다는 생각이 깔려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과연 그게 정말 좋은 결과인지는 사실 아무도 모른다. 단지 고생 끝에 성공하면 보상감이 아주 강하게 밀려오기 때문에 일단 그렇게 받아들이고, 더 좋은 것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이어질지 모를 또 다른 고생을 하기에는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힘들 수밖에 없기에 더더욱 수용한다는 선택지밖에 남지 않게 된다. 그렇게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그다음에 무엇을 할까... 예를 들어 오랜 시간 동안 포닥을 해서 결국 교수가 되었다면 그다음에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그 고생에 대한 보상이기에 정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는지?를 물으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리고 내가 교수가 되기 위해 했던 행동이나 사고방식이 항상 최선의 것이고 다른 사람도 가져야만 하는 것이냐고 물으면 또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같은 생각 혹은 같은 행동을 하더라도 상황에 따라 최선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고 최악의 선택지가 될 수도 있는 경우를 꽤 많이 보아 왔다. 그리고 내가 피한 것이 단순히 최선의 선택을 하느라 밀려난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하지 말아야 할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불안한 상황일 수록 좋은 방향 혹은 나쁜 방향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돌지만 생각보다 그렇게 근거가 있는 것 같지는 않고, 오히려 흔히들 이래야만 한다..는 방향과 반대로만 가도 잘만 풀리는 사람도 있으니까.. 사실 나는 이렇게 해서 '성공'했기 때문에 그것과 배치되는 가치관은 다른 사람이 가져서는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꽤 보아 왔지만, 스스로 성공했다고 여기는 두 사람 골라놓고 그 가치관을 비교해 보면 완전 충돌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그렇게 보면 '당연한' 것들이 생각보다 그리 많지 않다. 교수가 되면 으레 이렇게 해야지..라는 것 중 정말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많지 않고, 그게 단순히 부담이 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교수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교육이나 연구에 오히려 방해가 되는 것들도 많다. 어떨 때 보면, 그런 근거 없는 것들이 유혹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굳이 잘 가르치려고 신경 쓰거나 연구에 집중한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이 좋은 결과를 주지는 않는다. 학생들이 내 생각이나 의도를 항상 이해해 주는 것도 아니고, 연구를 한다고 해도 아주 좋은 논문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항상 불확실함을 지니고 살게 된다. 고생 고생해서 교수가 되었는데 여전히 그런 불안감을 안고 사는 것은 지혜롭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꽤 많다. 어차피 제대로 하려고 해도 성과가 나는 것도 아니라면 그런 것들을 피해 가면서도 누군가가 원하는 것을 맞춰주는 것이 낫지 않겠냐는 것이다. 오히려 그런 쪽이 더 좋은 물리학자 혹은 더 도움이 되는 교수로 평가받는 면도 있으니까.. 당연히 해야 할 일들은 정말 그걸 제대로 해 내는 것이 힘들지만, 사람들은 교수라는 혹은 물리학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해 내고 있다고 무심히 간주해 버린다. 그래서 실제 어떤 것을 알고 있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보다는 이름이 주는 권위에 자신의 판단을 맡긴 채 그 권위를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이야기를 해 주기를 바라기 바란다. 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사와 맞는 이야기를 해 주기를 바란다거나, 내가 이걸 알고 있으면 교양 있어 보이는 것을 이야기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왜 그래야 하는지, 어떤 한계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은 지루하고 어렵다고 피하게 된다. 그래서 어떨 때는 그런 사람들의 만족감을 주기 위한 광대로 살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런 것들이 현실이고 여기에 맞추는 것이 의무라고 한다면, 목표를 달성하기만 한다면 (시험에 합격한다거나...) 모종의 권리를 가지는 것이라는 생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무엇을 알고 있든 그건 중요하지 않고 이미 교수가 되면 그건 따질 필요가 없지만 대신 내가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모두 챙기고 싶어하는 생각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다. 물리 문제를 풀 때 내가 이런 개념은 모르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지만 풀이를 외워서라도 틀리지 않게 썼으니 문제없는 것이 아니냐, 아는 것으로 판정된 게 아니냐... 문제를 푸는 것이 법적으로 인정받는 것이니까 문제 풀어낸 것 이상의 이해를 묻는 것은 평가와 관계없는 것이고 할 필요도 없는 것이 아니냐.. 그런 생각들이 고생 끝에 교수가 되었으니 이제 편해져야겠고, 나는 이쪽 전문가니까 대학원생 때 배웠던 그것만 신경 쓰면 되지 그 이상을 묻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심리인 것 같다. 물리학자라는 전문성은 보장받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을 때 내가 뭔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계속 생각하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이미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저마다 아이디어를 내는 상황에서 뭔가를 인정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럴 때 경제적인 방법은 내가 고생하는 것보다 알법한 다른 사람을 이용하고 자신은 그것을 잘 포장 해서 내 공으로 만드는 것일 것이고, 혹은 내가 실제 이해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 썼으니 이미 전문가가 아니냐고 내세우는 것일 터인데, 그게 건전한 물리학자의 길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는다. 학생 때 경험을 보면 '유명한' 사람에게서 오히려 배울 것이 없는 경우를 많이 보아 오기도 했고. 아는 것보다 아는 것처럼 보이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도 많이 있었던 것 같다. 예전에는 제대로 했을지는 몰라도 그 향수만 남아서 관성으로 하는 행동을 하면서 제대로 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고, 자신의 내면을 채우는 것에는 놀랍도록 관심이 없으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에 능란한 사람도 꽤 있었다.
그런 것들이 불쾌하게 느껴지는 것은 내가 그런 심리와 얽힐 일이 많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야 내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지 않았으니 고스란히 감당할 수밖에 없었지만 그걸 평생 계속 할 생각은 일단 없다. 여기까지는 좋지만 나도 나에게 묻고 싶은 것은.. 나도 지금 내가 싫어하는 짓을 평생 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가? 예전에 고생한 것을 핑계로 계속 내가 하는 일에 대해 변명 혹은 정당화만 하지 않을 수 있는가?이다. 현실을 살다 보면 생각보다 자신 있게 답하기 힘든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더라도 학생 때 혹은 포닥 때 그렇게 부단히 연구한 것들이 단순히 교수가 된 다음 편하게 권리를 누리기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면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가졌던 호기심이나 남의 인정은 상관없이 하나라도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싶다는 욕구를 언제까지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 그래서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일지는 모르겠지만 대학원생들이나 포닥과 이야기할 일이 있다면 무엇을 위해서 지금 고민을 하는지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룬 다음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묻고 싶은 생각이 종종 든다. 왜냐면.. 나도 잘 모르겠어서....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