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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원, 떠오름...
    카테고리 없음 2024. 4. 21. 10:38

      60년대에 입자물리 하는 사람들이 '맞는 이론'을 찾는 중요한 원칙 혹은 guiding principle로 여겼던 것 중 하나가 재규격화 가능성 (renormalizability)이었다. 그 당시 언어로 이야기하면 loop 계산 즉 양자역학적인 보정을 계산할 때 나오는 무한대를 유한한 개수의 parameter의 초기 조건 (즉 아주 높은 energy scale에서의 값)으로 밀어 넣어 모두 없앨 수 있기를 원했던 것이다. Gauge invariance의 양자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로 생각했던 것이 이것이었고, Abelain의 경우 40년대, non-Abelian의 경우 70년대에 원하는 대로 되어서 gauge invariance가 기본 상호작용을 기술하는 원칙이라는 것을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중력의 general covariance 역시 gauge invariance와 같은 구조를 가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gauge invariance는 뭔가 중요한 자연의 원리 같이 보이기도 했을 것이다. 물론 전통적인 양자장론의 틀 안에서 중력은 재규격화가 되지는 않지만.

     재규격화를 단순히 '무한대를 없애는 과정'으로 보는 것은 계산 과정에서 나온 조작적 정의에 가까운데, 이게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람들이 그럴듯한 답을 얻지 못했다. 재규격화에서 문제시하는 무한대는 UV divergence,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다루고 있는 이론이 아주 미시적인 scale에서도 통하는 이론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등장하는 것이다. 아주 쉽게 이야기해서 Coulomb 법칙이 아주 짧은 거리에서도 성립하는 법칙이라고 여긴다면, 거리가 0인 전하 사이 (대표적인 예로 전하가 자기 자신과 상호작용하는 경우)의 전자기력은 그대로 무한대가 되어 버린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아서 충분히 미시적인 scale에서는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게 된다. 물론 무한대는 여전히 나타나지만. 그 당시에도 그러한 예는 이미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약한 상호작용에 등장하는 4-Fermi interaction은 재규격화가 되지 않는 이론이지만 표준모형으로 가면 재규격화가 가능하다. 물론 두 이론은 같은 양자장론의 framework 안에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했던 재규격화 가능성은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특수상대론적 양자역학을 기술하는 양자장론의 틀 안에 있는 이론 중 재규격화가 가능한 이론을 찾자는 것이었다. 그리고 암묵적인 동의일지는 모르겠지만, 재규격화가 가능한 이론은 그 이론이 어느 scale에서도 특히 아주 미시적인 scale에서도 성립하는 이론 즉 UV completion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이러한 재규격화의 의미에 대해 상당히 중요한 해석을 한 것이 Kenneth Wilson 등의 연구 결과일 것이다. 이게 사람들에게 준 인상은 여러 가지였겠지만, 분명하게 일깨워 준 것 중 하나는, 지금 내가 실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scale에서 이론을 기술하기 위해 쓰고 있는 framework이 더 미시적인 세상에서도 유효하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일 것이다. 어떻게 보면 그전부터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서 싱겁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제 연구할 때의 세계관에서 은근히 밀린 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서. 예를 들어, 지금 우리는 시공간을 연속적인 물리량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다. 그렇게 불연속적이라고 하더라도, 그 간격이 지금 실험으로 접근할 수 있는 가장 작은 거리 scale보다 훨씬 작다면 연속체로 근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불연속적인 시공간 간격과 연속적인 시공간 간격에서 기술되는 이론은 아주 다르지만, 거시적인 세상으로 가면 불연속적인 시공간 특유의 성질은 매우 약해지고 연속적인 시공간에서의 이론으로 근사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다르게 말하면 나름 극적일 수 있는데, 불연속적인 시공간에서 통하는 이론을 가지고 거시적인 scale에서의 물리 현상을 기술하려고 한다면, 연속적인 시공간에서 쓰는 이론이 '떠오른다'(emergent)는 것이다. 즉 연속적인 시공간에서 기술할 수 없는 효과는 거시적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게 된다는 것이고, 사실 전통적인 관점에서 재규격화를 방해하는, 즉 유한한 parameter로는 다 흡수시킬 수 없는 무한대와 관련된 parameter들은 이러한 '거시적으로 갈수록 점점 작아지는 효과'에 해당하게 된다. 결과적으로 극단적으로 거시적인 scale에서의 이론은 재규격화가 가능한 parameter들로만 구성되게 되고, 이러한 parameter들은 얼마 없기 때문에 미시적인 형태 (예를 들어 시공간 간격의 크기나 모양)와는 상관없이 거시적인 scale에서는 같은 형태의 이론을 다루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실험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scale에서 쓴 이론이 재규격화가 되지 않는다고 문제 될 것은 없다. 미시적으로 가면 어떤 이상한 이론으로 대체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재규격화가 가능한지의 여부를 가지고 옳은 이론인지를 판단했던 시절에는 사람들이 너무 낙관적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 볼 수 있는 scale에서 보는 이론은 혹은 적어도 이론틀은 아무리 미시적으로 가도 성립한다는 생각이 깔려있었으니...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것도 어떻게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는데, 나중에 불완전한 믿음으로 판단된 것이라 할지라도 그것에 대한 믿음 내지는 집착이 진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하게 한 것은 또 하나의 진실이다. Gauge invariance의 역할과 양자역학적인 성질은 재규격화에 대한 믿음의 진위와는 상관없이 중요한 교훈으로 남게 되었다.

     그런데 이 gauge invariance는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혹은 아주 미시적인 세계에서도 여전히 중요한 원칙일까? 혹은 어떤 또 다른 중요한 원칙으로 대체될 것인가?라고 물어볼 수 있다. 거시적인 세상에서 보는 이론이 미시적인 세상에서는 통하지 않아서 다른 이론으로 대체되고, 사실 거시적인 이론은 미시적인 이론에서 '떠오른 결과'라고 한다면, gauge invariance가 미시적인 세상에서 다른 언어로 대체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사실 이론물리의 역사에서 꽤 많은 형태의 대칭성이 그런 운명을 겪었다. 특히 global symmetry가 그런데.. Gell-Mann 선생등이 했듯이 quark의 발견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는 했지만, 동시에 찜찜한 면도 가지고 있었다. Global symmetry는 정확하지 않은 대칭성이다. 즉 대칭성을 깨는 항들이 작지만 엄연히 존재했던 것이다. 그리고 사실 이 대칭성은 중력을 생각하는 순간 깨질 수밖에 없는 효과이기도 하다. 결국 사람들이 나중에 깨달은 것은 globa symmetry 역시 '떠오른' 효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연한 대칭성(accidental symmetry)라고도 불리는 것인데, 특정 scale에서의 이론이 가지는 구조 때문에 다른 sale의 세상에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quark의 발견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flavor symmetry는 confinement scale에 비하여 가장 가벼운 u quark과 d quark의 질량을 무시할 수 있기 때문에 즉 가벼운 quark들이 모두 질량 0인 것처럼 행동하는 것으로 근사할 수 있기 때문에 나오는 것이다. 평평한 시공간이 가지는 Lorentz 대칭성 역시 일반상대론의 framework에서 보면 기하학의 특별한 성질에 의해서 equivalence principle이 떠오르면서 나타나는 성질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gauge invariance는? 일단 중력에 의해서 와해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미시적인 세상에서도 어떤 형태로든 남아있을 수 있지만, 그게 지금 생각하는 것과 같은 형태라는 것을 보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초끈이론을 보면 꽤 재미있는데, 모든 것이 2차원 conformal field theory의 언어로 '환원'된다. 초끈이론을 믿는다면, 미시적인 세상에서 중요한 원칙은 2차원 super(초대칭이 있는) conformal field theory (SCFT)이고, 이게 끈의 길이를 무시할 수 있는 거시적인 scale에서는 supergravity이론이 '떠오르게'되면서 local supersymmetry나 gauge invariance 같은 성질들 역시 '떠오르는' 효과라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4차원 compactified 된 세상에서 초대칭이 1개일 수 있다. 2개면 왜 안되냐고 물을 수 있는데, 현재 거시적인 세상을 잘 기술하는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에서는 입자들이 약한상호작용에 대하여 chiral 하게 행동해서, 이걸 구현하려면 초대칭이 클 수 없다. 한 supermultiplet 안에 여러 입자가 있으면 이들은 같은 양자수를 가지게 되고 이들끼리 묶어서 chiral 하지 않은 이론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이건 2차원 SCFT 언어로 하면 2차원 초대칭은 원래 1개지만 global 초대칭이 하나 더 '우연히' 있는 결과이다. 2차원에서 초대칭이 2개인 것이 4차원 세상에서는 초대칭 1개인 것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Gauge invariance도 conformal field theory 구조에서 보면 conformal descendant 상태가 correlation function에서 decouple 되는 효과로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초끈이론은 환원론적인 관점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거시적인 세계에 등장하는 각종 효과들이 미시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나타나야 할지에 대해서 완전히 다른 언어로 다시 쓰려고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당연할 수도 있지만, Wilson 선생의 재규격화에 대한 해석이 각각의 물리학자들에게 다른 행동 지침을 주는 것 같다. 어쨌건 표준모형이 아주 미시적인 scale까지 통하는 이론이 아니라면, 뭔가로 대체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기존의 양자장론의 틀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초끈이론처럼 완전히 다른 언어로 재구성되어야 하는지의 문제가 있다. 그러면 미시적인 이론의 잔재라고 할 수 있는 '재규격화를 안되게 만드는 항들'이 미시적인 이론에 대해 얼마나 많은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것일까? 다시 말해서 이들 항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미시적인 이론에 대한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만약 기존 양자장론의 틀 안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뭔가가 있다면 적어도 한동안은 비교적 쉽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렇더라도 결국 완전히 다른 framework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고, 그런 경우라면 지금 아주 중요한 물리의 원칙이라고 생각해 왔던 것이 사실은 더 근본적인 원칙의 특수한 결과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걸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지도 불명확하지만, 적어도 분명한 것은 그런 가능성이 있다면 그걸 생각하는 사람이 생겨나는 것은 아주 필연적이기는 하다. 그렇기는 한데 조금 더 들여다보면, 거시적인 세상에서 '떠오른' 현상의 여러 가지 면을 거시적인 세상에서의 물리 자체로 다루어야 할지, 아니면 계속 미시적인 언어로 환원시켜야 할지의 문제도 있다. 예를 들어, 생명현상 역시 양자역학의 결과이지만, 그걸 이해하자고 양자역학부터 공부하지는 않는다. 생명 현상이 중요한 scale에서 존재하는 특유의 뭔가가 있고, 여기에 집중하면 되기 때문이다. 이걸 환원론적인 관점에서 양자역학의 어떤 원칙에 대응되는지를 찾는 것이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는데, 이걸 현재 입자물리와 중력까지 포괄하는 UV completion의 관계에 대입해 보면 생각할 여지가 꽤 많다. 극단적으로 '떠오른' 현상은 사실 미시적인 관점에서 제대로 드러나지 않는 것일지도 모른다. 마치 time reveral symmetric 한 이론으로부터도 entropy라는 시간의 방향성을 만들 수 있듯이. 그래서 계속 '환원'을 하는 것이 정말 자연을 탐구하는 좋은 방향인지에 대한 회의 역시 존재한다. 초끈 이론의 경우 환원론적인 관점이 강해서, 어떤 식으로든 거시세계의 여러 대칭성을 2차원 언어로 다시 쓰고, 이게 거시적으로 갈 때 어떤 식으로 '떠오르는지'를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고 나면 초끈 이론도 혹시 더 근본적인 무엇인가가 '떠오른' 효과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게 보면 '환원'과 '떠오름'이라는 반대 방향의 관계라는 것이 꽤 재미있기는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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