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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봄꽃들이 다 져 버렸다. 계속 초끈 공부하는 쪽에 집중하다 보니 느껴지는 것 중 하나는 계산에는 뭔가 모를 중독성이 있다는 점. 뭔가 확인을 직접 안 해보면 껄적지근하기도 하고 실제로 나중에 보면 계산 안 하고 넘어간 곳에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놓친 경우를 많이 보아 와서 전부는 아니더라도 납득 가능한 수준의 계산 정도는 하고 지나가는 중인데, 답이 쉽게 안 나오면 온갖 생각이 다 들게 된다. 조금 뜸을 들이고 다시 보면 결국 앞부분에서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계산을 하는 과정이 그 내용을 이해하는 방법이 되는 경우도 많다. 계속 같은 계산을 접하지 않는 한 또 잊게 되겠지만, 최대한 다시 봤을 때 지금 느낀 것들을 전달할 수 있도록 책에 메모도 하고 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왠지 대학원생 때로 돌아간 기분이다. 그리고 그때 한 권이라도 더 이렇게 봐 둘걸 하는 생각도 든다. 7년 전에 봤을 때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을 오늘 다 보게 되었는데, 지금 보니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들어와서 신기했다. 그게 엄밀하게 이야기하면 초끈이론의 문제라기보다는 장론과 군론의 문제인지라, 실제 7년이라는 시간 동안 초끈이론책을 보지 않았지만 필요한 것은 계속 채워나간 것이나 다름없었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던 것 같다. 그리고 언뜻 보면 시간 낭비 같지만 당장 이해가 안 가는 내용도 한번 정도는 읽어 내려간 것도 나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때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는 많이 아쉽지만.
물론 나도 순진한 학생은 더 이상 아니기 때문에 책 한 권 다 봤다고 초끈을 이해했다는 생각을 하거나 모든 논문이 다 들어올 것이라는 기대는 하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읽을 수 있는 논문이 확실히 늘 것이고, 안 보고 계속 아쉬운 상태로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더 낫다. 그게 지금 모르는 어떤 것을 이해하게 될 '계기'가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도 그저 운이 좋기를 바랄 뿐이고. 계속 강조해 오지만, 책이라는 것은 중요하면서 한계도 같이 가지고 있다. 그리고 수학이나 과학책 혹은 논문은 객관적으로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아주 주관적이기도 하다. 장론이든 초끈이론이든, 아주 많은 시간 동안 아주 많은 논문들이 있어 왔는데, 그중 왜 특정한 내용이 선택되어 특정한 논리로 이야기하고 있는가? 를 생각하면, 결국 저자의 관점과 전문 영역이 반영될 수밖에 없다는 답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에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지만 모든 것을 배울 수 없고, 한편으로는 저자의 관점을 받아들이면서 그것에 묶이지 않아야 하는 문제가 있다. 지금 보고 있는 초끈책 같은 경우 compactification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건 저자들이 초끈 현상론에 상당히 많은 시간을 할애해서 연구했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쪽에 관심이 있어서 그 책을 선택한 것이기도 하지만... 다른 책을 본다면 여기서 강조된 내용은 간략히 넘어간 대신 다른 내용이 자세하기 마련이다. 물론 이 책에서 없는 내용이 저 책에서도 나오기도 한다. 궁극적으로 책을 본다는 것은 모든 것을 알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알 준비를 하기 위한 것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내용이 항상 균일하게 잘 쓰일 수 없기 때문에 많이 알게 될수록 아쉬운 부분도 눈에 띄게 된다. 내가 쓰면 더 잘 쓸 수 있을 텐데.. 하는 생각 같은 것인데, 역설적으로 저자들이 잘 아는 부분에서 (예를 들어 직접 논문을 써 본 내용에서) 논리적인 빈틈이 많은 경우가 꽤 있다. 부지불식간에 당연하게 여겨서 앞에서 설명해야 할 것이나 논리를 전개할 때 이야기하면 더 자연스럽게 여겨질 뭔가를 빼먹는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사실 그걸 채워 나가느라 이번주에 좀 바빴던 것 같다. 책에 이런 결론이 나와요.. 했던 것을 예전에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이번에는 확인을 해 보는 바람에 그렇게 된 것인데.. 다행히 조금만 생각하고 찾아보면 얼추 이야기가 연결되어서 그런대로 잘 나갈 수 있었다. 덕분에 좀 더 구체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것들이 좀 더 생겼는데, 논문이나 리뷰 같은 것을 볼 때마다 아쉬운 것들이라서 다행이라고 여기고 있다.
그리고 왜 90년대 중후반에 초끈이론에 사람들이 그렇게 열광했는지 알 것 같다. 뭔가 그럴듯한 것들이 자꾸 튀어나오고 이게 정말 조금만 더 하면 뭔가 중요한 것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아서. 물론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가정하고 넘어가거나 제대로 설명을 하지 않지만 (대표적인 예로 왜 noncompact dimension이 4개라야 하는지는 이야기를 일단 하지 않는다) 사실 이건 고전역학부터 시작해서 어느 이론이나 마찬가지였다. Newton은 가장 기반이 되는 요소 중 하나인 관성계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은 채 역학을 만들었고, least action principle은 당시의 목적론적 세계관이 반영된 결과인지라 지금은 그렇게 납득하기 자연스럽지 않은데, 왜 action이 특별한지에 대해서는 양자역학에서 path integral이 나오기 전까지 제대로 몰랐다. 양자역학은 측정부터 시작해서 얼렁뚱땅 전개한 것이 한둘이 아니다. 그런 문제들이 있더라도 당장 답이 들어오지 않으면 일단 할 수 있는 방향을 잡아 계속 나가는 것이 안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 수 있고, 그런 전개 과정이 없다면 오히려 그 궁금한 답은 얻기 더 힘들어질 수 있다. 결국 그렇게 넘어간 부분이 나중에 다시 문제가 되거나 다시 생각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추어지는 경우가 심심치 않게 벌어지는데, 그때 다시 보면 된다. 그래서 사실, 한 이론이 가지는 난점이나 안 풀리는 문제가 있다는 '사실'과 그 이론을 대하는 사람들의 심리는 아주 큰 상관관계가 있지는 않다. 어떤 사람은 그 어려움 때문에 해당 이론을 틀리다고 생각하고 거들떠보지 않지만 어떤 사람은 그런 어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그 어려움을 풀고 싶어서 이론을 더 파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의 마음은 꽤나 간사스러운 구석이 있어서, 제대로 접하지 않으면서 무턱대로 비난하는 사람과 반대로 그 이론을 지지하는 사람 수 혹은 대가의 존재를 등에 업고 무턱대고 찬양하거나 그 이론만이 우월하다고 생각해서 무관심한 사람을 무턱대고 비난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기회주의자라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관심 없어 보이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다가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거나 자신의 생각과 맞는 부분이 나오면 이전의 태도가 무색할 정도로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경우도 꽤 있고.
더불어 수학자들이 재미있어할 만한 구석이 상당히 많다는 것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같은 것을 다루더라도 관점이 다르면, 그러니까 고전적인 기하학 관점에서 볼 때와 초대칭 대수적 구조에서 볼 때 얻을 수 있는 정보가 꽤 풍부해져서, 한 관점에서 잘 풀리지 않는 것을 다른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꽤 열어주는 것 같다.
사람들이 과학을 연구해 온 과정을 보면 역사의 아이러니를 많이 느끼게 된다. 어떤 특수한 사상이나 관점 때문에 아주 중요한 발견을 하다가도 그 성공에 매몰되어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하지 않고 고집하다가 결국 완전히 반대의 생각 혹은 관점이 만들어내는 다른 성공 사례로 인해 쇠퇴하고, 그러다가 또다시 다른 성공 사례를 들고 부활하는 일이 많다.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바가 있어도 그 생각을 추구하는 사람 혹은 집단에서는 닿지 못하고 정작 완전 다른 것을 원하는 사람이 닿는 일도 있다. 그래서 물리를 할 때도 naturalness에 대한 태도 같은 특정 이슈에 대한 생각부터 시작해서 연역이냐 귀납이냐, 추상적인 원리냐 구체적인 사실에서 발견되는 규칙성이냐 등 대립되는 시각이 인간이 학문이라는 것을 하기 시작할 때부터 계속 존재해 왔던 것이 아닐까... 한쪽이 일방적으로 성공했다면 반대쪽은 사라졌겠지만, 그렇지 않은 것은 둘 다 만만치 않은 성공 사례 내지는 매력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