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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iggs...
    카테고리 없음 2024. 4. 13. 18:16

    이번주 초에 Peter Higgs 선생께서 돌아가셨다는 뉴스를 접했다. 이 분 성함이 표준모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입자에 붙여졌기 때문에 입자 물리하는 사람이 이 분 모른다고 하면 진짜 이상한 것이다. 

     Higgs 한 분의 이름만 붙은 것과는 다르게, 'Higgs mechanism'은 거의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발견했다. 굳이 따지자면 초전도체에서 Cooper pair의 행동이기도 하니, 이를 지적한 P. W. Anderson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고 보니 이 분도 2020년까지 살아계셨다.. 물리학자가 의외로 장수직종일지도...?) Higgs 선생께서 논문을 쓰셨을 무렵 R. Brout와 F. Englert의 논문이 거의 동시에 나왔고, G. Guralnik, C. R. Hagen, T. W. B. Kibble의 논문이 뒤를 이었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이 모든 사람의 이름을 모두 붙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것이 Kibble 선생이 작성한 scholarpedia 항목 :

     http://www.scholarpedia.org/article/Englert-Brout-Higgs-Guralnik-Hagen-Kibble_mechanism
     
     Higgs 선생의 논문이 다른 논문과 다른 점이라면 Higgs mechanisim 뿐만 아니라 Higgs 입자의 존재까지 이야기했다는 것이고, 그것만으로도 우선권을 가질 자격이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이건 떠도는 이야기이긴 한데, 이 Higgs 입자 이야기는 referee의 권고에 의한 것이었다고 하고, 그 referee는 다름 아닌 Y. Nambu 선생이었다고도 한다. 어쨌건 Higgs라는 이름이 널리 퍼진 것에 대해서는 Higgs 선생 본인에 의하면 이휘소 선생의 역할이 컸다고 한다. (출처 : 회고록인 My life as a boson ( https://inspirehep.net/literature/1288273 ) ) 그리고 아마 이게 굳어진 것에는 S. Weinberg 선생의 영향이 컸을 것이다. 실제로 S. Weinberg 선생이 비슷한 시기에 쓰여진 논문의 존재를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어디서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_-ㅋ

     이런 이름 논쟁이 있는 이면에는 아마 그 Higgs mechanism 논문 이외의 의미 있는 논문이 거의 없으신 Higgs 선생과는 달리 같은 이야기를 했던 R. Brout와 F. Englert 혹은 T. W. B. Kibble 선생들은 계속 의미 있는 연구를 했던 것도 있을 것이다. 2017년에 브뤼셀에 갔을 때 Englert 선생 강연을 들을 일이 있었는데, 사람들의 인정에 대한 아쉬움이 강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Englert 선생에 의하면... 그 당시 Higgs mechanism의 재규격화 가능성에 대해 지금 시점에서 보았을 때 정답에 가까운 스케치를 하기도 했고, 급팽창(inflation)에 관한 초기 논문을 쓰기도 했다. 이 일 모두 Brout 선생과의 공동작업이었는데, 이 분은 Englert 선생과 같이 논문을 썼음에도 Nobel 상 수상 직전에 돌아가셔서 못 받으셨기 때문에 아쉬움이 더 크지 않았을까 싶다.  

      Higgs 선생께서 논문을 쓰셨을 무렵은 처음 제출했던 학술지에서의 referee의 부정적인 의견으로 학술지를 바꾸는 등 매우 신경 쓰이셨을 무렵이기도 하다. 중요한 논문이라고 처음 나올 때 모두의 인정과 축복을 받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이기도 한데, 사실 논문 쓰는 당사자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소화한 다음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비슷한 가치와 한계를 가지는 여러 제안들이 공존하기도 한다. 그리고 당시 사람들의 한계, 심리 내지는 학계 내부의 정치(?)도 무시하지 못한다. 거기다가 이후 논문을 썼던 분들의 활동이나 사람들의 '인정' 이라는 면을 생각하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연구라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남의 일'이 아니라 현실이고,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여러 사건이나 사람들의 행동, 심리 같은 것들을 보면 지금도 비슷한 일들이 많이 일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새 지금 여기서 물리 연구를 하는 나는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지에 대해 자꾸 생각하게 되는데, 그럴 때마다 '개인'이라는 존재가 여간 대단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운이 잘 따라주지 않고서는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에 상당히 나약한 존재라는 것을 느끼곤 한다. 내가 '물리학자'로서 가지는 가치는 정말 무엇일까... 물리학자가 하는 활동의 의미는 정말 당연히 생각하듯이 호기심에 의한 탐구'만'은 아니고, 어떤 면에서 본질에 가깝지만 잘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단순한 명분으로만 쓰이는 것에 대한 실망과 두려움이 요새 들어 강하게 느껴진다. 학문적인 입장과 정치적인 행위가 구분되지 않는 일도 많고, 논리와 이성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에만 이용되는데, 그것을 받아들인다면 내가 이론물리학자라는 의미는 사라지게 되고 누군가의 도구로만 남으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고. 그렇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이 적어도 새드엔딩은 피할 수 있을까? 가 궁금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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