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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을 하다 보면 '전통적인 교과서들'에서 아쉬운 점을 느낄 때가 많다. 어떻게 보면 원칙적으로는 분리될 수 없는 '공부'와 '연구' 사이의 단절이 여기서 생기는 것이 아닌가 싶을 때가 있기도 한데, 각 교과서에서 다루는, 예를 들어 고전역학, 전자기학, 통계역학, 양자역학의 '지식'은 그다지 문제가 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이들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필요 이상으로 설명이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특히 실제 물리 연구를 통해서 뭔가를 생각해 내거나 만드는 사람들이 보통 가지는 기본적인 시각이나 방법론 같은 것들이 제대로 반영되는 것 같지는 않다. 물론 물리의 전공이라는 것이 워낙 다양하니 특정 전공의 시각만을 반영할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것까지 감안하더라도 충분한 동기 부여 없는 지식과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 꼬아놓은 문제들만이 단조롭게 배열되어 처음 보는 사람을 지루하게 만들거나 왜 하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면도 있다. 처음에는 거기 있으니 일단 간다...고 할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지칠 수밖에 없고, 그렇지 않다고 해도 방대한 내용 속에서 무엇부터 잡아야 할지가 점점 애매해지니 방향잡기도 쉽지 않다. 내용의 현대성 유무와는 상관없이 사고방식은 20세기 초중반에 멈추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수업할 때 가끔 그 점을 인지하는 학생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이런 해석을 할 수 있다 혹은 요새는 이런 식으로 본다...는 이야기를 해주면 더 이해하기 쉬워지거나 동기 부여가 될 텐데 왜 교과서에 나오지 않은지?라는 질문을 받을 때도 있다. 수업에서 책에서 보기 힘든 현장의 지혜를 이야기해 주는 것이 교수의 역할이기는 하지만, 사실 나도 꽤 아쉽다. 그게 특히 아쉬운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나도 현재진행형으로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_-). 수준 높은 책을 보거나 논문을 본다고 해도 모든 것이 잘 설명되고 있지는 않다. 논문 쓰는 사람이 특별히 관심이 있지 않는 한, 오히려 이것저것 챙겨주는 듯한 논문은 그다지 일반적인 것이 아닌 것 같다. 심지어 리뷰 논문이나 강의 노트마저도. 다소 약이 오르는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은 이미 다 알고 있고, 그 결과가 논문이나 책 한구석에 한두 마디로 짤막하게 등장하기 때문에, 그런 문구를 볼 때마다 내가 뭔가 중요한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게 되어 뭔가 불안해진다. 나중에라도 깨닫게 될 때가 있는데, 이게 꼭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게, 알고 보면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도출된 결과들이다. 그걸 보다 보면 내가 직접 해야 할 것을 안 하고 누군가가 가르쳐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들기도 한다.
양자역학 같은 경우 오래 가르치다보니 책에서 드러내놓고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몇 가지 눈에 밟히는데,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조화진동자에서 creation/annihilation (혹은 raising/lowering) operator를 가르치지만, 사실 이 연산자를 조화진동자에서만 정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보면 질량이나 진동수 같은 것은 차원을 맞추기 위한 보조수단이라서 commutator 안에서 모두 상쇄되는 것을 볼 수 있다. 결국 기본적인 양자화 조건 [x, p]=i에서 온 것이라서, canonical 한 기본 물리량들의 짝이 있다면 항상 정의할 수 있다. 이것이 energy level 혹은 excited 된 입자의 수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진공의 존재, 즉, 최소 energy를 가지는 상태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교과서에 나오는 전형적인 내용만 생각하면 이 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애매할 수 있는데, 좀 더 공부하다 보면 당연해 보이는 이 이야기들이 뭔가 심상치 않게 들릴 때가 있다. 예를 들어, 양자장론에서도 섭동이론에 집중하다 보면 조화진동자의 형태를 가지는 free field만을 떠올리지만, interacting field theory에서의 field를 가지고도 (즉 섭동이론이라는 근사를 빌리지 않더라도) creation/annihilation operator를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최소 energy 상태의 존재는 일반상대론에서 time-like Killing vector의 존재와 관련이 있다. 이런 점들을 보다보면 단순히 일상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무의식적으로 당연히 받아들이는 것도 실은 아주 일반적인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우리에게 익숙한 세상이 사실은 (적어도 자신이 이해하고 있는 이론틀에서 볼 때) 그다지 사소하지 않을 때,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에게는 단순히 수식으로 설명되어 논리적으로 전개된다는 이유만으로 당연해 보이는 부분이 그렇게 당연해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 아래에 있는 가정을 자꾸 신경 쓰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이론을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단순하게 다룰 수 있는 특수한 상황을 생각하고,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큰 의심을 품지 않은 채로 논리를 전개하지만, 그 시점으로부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설명 방법이 꼭 맞는 것도 아니고, 맞다고 해도 본질적이거나 효율적인 설명도 아닌 것이다. 고전 역학에서 연성진동을 설명할 때 normal mode를 만드는 진동자의 진폭 비율을 이야기하면서 일단 숫자를 집어넣어 보자는 식으로 설명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데, 처음 찾아낼 때는 그렇게 해서라도 풀이를 찾아야겠지만, 지금 관점에서는 discrete translation symmetry라는 물리가 숨어있기 때문에 나오는 결과라는 것을 이야기라도 해 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이게 나중에 고체물리에서 나오는 energy band를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서... 생각해 보니까 양자역학에서 각운동량 더하기를 이야기할 때 그 과정이 tensor product라는 점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별로 보지 않은 것 같다.
이론물리학자 입장에서 무미건조한 수식이나 사실의 나열로부터 뭔가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는 것은 중요한 작업이다. 왜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는 것을 공공연하게 이야기하지 않느냐고 불만을 이야기 했지만, 아까 언급했듯이 결국 모두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도출할 수 있는 결과라서 모르는 사람의 책임이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 냉정한 현실이다. 그런 불만이 적극적으로 읽고 확인하려 들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려고 하는 이기심의 결과가 아니냐고 하면 뭐라고 해야 할까.. 무엇보다도, 연구 단계가 되면 사람마다 촉이 다르고 강조하려는 부분도 조금씩 달라서 이게 정석적인 해석이다..라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아무 특별한 점이 없어보이는 것 같은 식이나 실험 결과로부터 각자 자신의 관점을 투영해서 뭔가 특별한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게임이 되는 것이고, 최대한 많은 혹은 특별한 것을 알아내서 잘 엮어낸 다음에 그걸 가지고 아직 사람들이 모르는 뭔가를 이야기할 수 있으면 대성공인 것이다. 세상의 새로운 것이 반드시 무로부터 창조한 것은 아닌 게, 중요한 논문도 아주 생소한 수학이나 논리를 동원하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다. 아마 노벨상 수상 논문이지만 학부생도 읽을 수 있는 수준인 경우도 많이 보았을 것이다. 단지 누군가는 그냥 지나가고 잊어버렸을 것을 다른 누군가는 그 속에 숨어있는 특이한, 그리고 당대 사람들이 이해하고 싶어 하는 것의 실마리가 될 수 있는 것을 찾아낸 것이다. 그걸 인식하고 다시 고전역학책을 보면 의외로 양자역학이나 상대론 등 현대 물리의 여러 이야기가 여기저기 숨어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 학생 때보다 고전역학 문제를 푸는 능력은 떨어졌겠지만, 대신 학생 때는 누군가가 이야기해주지 않으면 몰랐을 것들을 아는 능력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알고 나서 보면 다르게 보이고 그만큼 더 많은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수학적인 문장, 그러니까 Lorentz group이 complex인 것은 차원이 4의 배수 혹은 4의 배수+2 개일 때이다.. 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학생 때 Georgi 책에서 볼 때는 별 느낌 없이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다가 잊어버렸지만, 지금 입장에서 보면 그래도 좀 더 읽어낼 수 있게 되었다. 우선 complex라는 것은 주어진 representation과 그 complex conjugate는 equivalent 하지 않다는 것이다. 즉, unitary 변환으로 연결되지 않은 남남이라는 소리. 이야기하고 있는 차원이 짝수개라는 것에서 chirality가 관련되어 있다는 점을 눈치채고 좀 더 생각해 보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만약 Lorentz 변환의 representation과 그 complex conjugate가 equivalent 하다면, (real이거나 pseudoreal : 사실 이건 complex conjugation 즉 charge conjugation의 형태에 따라 구분되는 것이다) 이 둘은 사실상 같은 representation에 속하기 때문에 같은 chirality끼리의 변환이라야 한다. 그래서 complex conjugate를 취했더니 Loretnz 변환 대상이 되는 chirality가 바뀐다면 즉 left끼리의 변환이 right끼리의 변환로 바뀐다면 둘은 완전 다른 irreducible representation에 속하니까 equivalent 할 수 없는 것이다. 당연히 chirality의 구분이 존재할 수 없는 홀수차원이라면 representation과 그 complex conjugate가 equivalent 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 (같은 차원임에도 서로 다른 representation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그런 식으로 물리적으로 어떤 상황인지 파악하면, 책이나 논문에서 4차원이나 10차원 (끈이론에서 다루는 차원이다)에서 chiral 하면 생길 수밖에 없는 anomaly를 이야기할 때 chirality가 뒤집히고.. 하는 이야기가 좀 더 잘 들어오게 된다. 이런 감이 좀 더 있으면 어떤 지식을 책에서 이야기하는 것과 다른 방식으로 미리 눈치챌 수 있기도 하다. 다시 예를 들어 SO(2n)의 maximal subgroup이 SU(n) XU(1)이라는 사실을 보면... 어떤 사람은 U(1)을 잘 날려서 Calabi-Yau manifold를 만드는 이야기를 생각할 수도 있다. 입자물리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다른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는데, 표준모형의 gauge group인 SU(3)XSU(2)XU(1)을 보고 여기에 U(1)가 더 있다면 SO(6)과 SO(4)가 혹시 더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상상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둘을 합칠 수 있는 SO(10)의 존재를 눈치챌 수 있다. 표준모형 안에는 anomaly가 없어서 gauge 상호작용의 후보가 될 수 있는 B-L U(1)이 있기 때문에 이게 gauge화된 U(1)을 붙이는 것은 그다지 어색한 것도 아니다. 이런 식으로 grand unification을 이야기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서로 교류가 많지 않은 두 집단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실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었더라.. 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 홍승수 교수님께서 책은 읽어야지 읽히면 안된다..고 하셨던 것 같다. 활자화된 것에 너무 신뢰를 주지 말고 무슨 뜻인지를 계속 물어봐야 한다는 것인데... 책은 머릿속에 뭔가를 집어넣고 시야가 넓어지기 위한 수단이지 책 읽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가벼운 말이 아니다. 이건 책이나 전문가의 말이라도 같은 사안에 대해 완전 반대의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라면 누구의 말을 '신뢰'해야 하는지?라는 문제와도 연결되기도 하다. 결국 최종적인 판단은 각자가 하는 것이고, 최대한 책임질 수 있는 판단을 스스로 하려면 그전에 믿는 것보다는 두루 듣는 것이 필요한 것이니... 여하간 넓게 볼수록 책이나 논문의 내용은 지식 자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필연성에 의해 이어지는 논리의 흐름으로 보게 되는 것 같다. 발견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다양한 삽질이나 시행착오 혹은 돌아가기가 제거되고 마지막에 남는 구조가 무엇인지를 묻게 되는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야 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은 눈에 띄는 정답을 바로 보여주는 것보다 어렵게 보이지만, 사실 듣는 사람에게 판단의 여지를 주기 위해 자신의 논리를 소개하는, 상당히 배려있는 행위인 면도 있다. 생각해 보면 결과들이 꼭 불변의 진리라는 법이 없으니 무엇을 가정하고 있는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일단 파악할 필요도 있고.. 결과들만을 일일이 기억하는 것은 그런 신뢰의 문제가 있을 뿐만 아니라 피로한 작업이기도 하다. 왜 그런 결론이 나오는지를 다시 생각해 낼 수 있는 논리의 흐름이 없으면 당시에 뚜렷이 기억했던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완전히 잊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런 논리적인 근거도 그저 받아들이기보다는 천천히 생각하고 음미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럴듯하다는 느낌에 남이 제공하는 논리를 따라 빠르게 훑어내려가기만 하면 놓치는 것이 생길 수밖에 없고, 결국 잊어버리게 되어 정작 필요할 때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현실적으로 보면 빠른 시간 안에 기본적인 것을 배워야 하는 '공부하는 시기'에 모든 것을 제대로 하기 힘들기는 하고, 그걸 보충할 수 있는 기회가 사실 '연구'이다. 책에서는 당연히 넘어갔지만 실제 뭔가를 이야기하려다 보면 걸리는 것이 나올 수밖에 없고, 그런 것들을 해결하는 과정이 쌓이면 책에서는 얻기 힘든 직관 같은 감각이 조금씩 생기게 되는 것 같다. 말하자면 그저 지나가는 문장에서도 심상치 않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작게는 이게 무슨 소리인지를 이해할 수 있고, 크게는 여기서 생각이 시작될 수 있다. 그런 경험이 없으면 4-5년 사이에 많은 것을 익혀야 하는 초심자 학생의 입장에서 같은 식이나 문장을 봐도 무엇을 읽어내야 할지, 이 이야기가 왜 중요한지를 눈치채는 것이 매우 힘들기도 하다. 물론 그렇게 연구하다 보면 또 모르는 것이 쌓이고 같은 상황이 계속 반복되기는 하지만.. 그리고 별 생각 없이 단순히 알려진 사실을 받아들이고 적용하기만 하면 아무리 오랜 세월동안 잡고 연구한다고 해도 눈치 못채는 중요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때로는 신경 써서 한다고 해도 내공 부족 내지는 편향된 시각 때문에 제대로 중요한 의미를 눈치 못채는 일도 많고. (왜 티코 브라헤가 당대 초정밀 관측 결과를 쥐고 있었으면서 케플러의 법칙에 도달하지 못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런 경우 이미 해 본 사람의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가 아주 감사할 때가 많다. 결국 A라는 한정된 지식을 제대로 알려면 A 안에서만 계속 파는 것이 아니라 그 밖으로 나가서 다시 되돌아볼 필요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그렇게 보면 좋은 학자는 뭔가를 이해하려고 하는 목마름이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사람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워야지... 끊임없이 스스로 의심하고 직접 해보려고 하는 것이 맡기고 믿기만 하는 것보다 쉽게 피로해지지만, 그래도 적어도 지금 느낌으로는, 안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