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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이 되면서 꽤 많은 것이 바뀌게 되었다. 실질적으로 연구하고 학생 가르치는 것에는 큰 변화가 없기는 하지만 시간 관리에 있어서 자유도가 더 생긴 것은 나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지금은 논문 쓰는 중이라서 정신없기는 하지만.
진행중인 논문은 저번달에 쓴 논문의 뒷이야기에 해당하는 것이라서 오래 끌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금방 마무리 지으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더 할 거리가 늘어났다. 그렇다고 해도 깔끔하게 뭔가를 보여준다기보다는 경우를 나누어서 하나씩 따지는 방식인지라 보기에 따라서는 좀 지저분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다. 어떻게 보면 소재는 초끈 업계에서 이야기하는 swampland conjecture지만 하는 짓은 다소 현상론스러운 면이 있다. 원래 내가 하고 있는 것이 여러 분야의 교차점 같은 곳이라서, 각 분야 입장에서 보면 뭔가 성이 안 차 보이는 미묘함이 존재한다. 초끈현상론(string phenomenology)으로 뭉뚱그려 불리는 연구 분야들의 특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누군가는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도 사실이고.
이렇게 말하는 나도 뭔가 찜찜한 면이 많아서, 지금 초끈 이론을 조금씩 다시 보고 있다. 예전에 보았을 떄 크게 쓸모 있지 않다고 생각해서 넘어간 곳도 이제는 예사롭지 않아 보이는 것 같아서, 한번 정리해 줄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편으로 누군가가 나보고 초끈이론을 '믿는가?'라고 물으면 일단 내 입장은 이렇다. 믿는 것과는 상관없이 우리가 모르는 영역에 대한 힌트가 존재한다면 그것에 대해 진지할 필요가 있고, 그 내용 중에 실제 양자 중력의 본질이 반영된 것이 어떤 것인지, 혹은 그 본질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든 학문적인 내용이든 아무리 과거에 좋은 뭔가를 했다고 하더라도 모두 완벽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그것들이 던져주는 문제가 있고, 그것을 해결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버릴 것과 취할 것을 구분하는 것이 현재 사는 사람이 해야 하는 일이다. 초끈 이론이 양자 중력을 제대로 설명한다면 지금 그것이 주고 있는 문제들 (특히 내가 관심 있는 현재 우주를 어떻게 구현할지의 문제)에 대한 답은 존재할 것이니 찾으면 되는 것이고,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면 어떤 대안을 만들어야 할지를 생각하면 될 일이 아닐까...
말하자면 초끈 이론은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때 꽤 괜찮은 '계기'가 되어 주는 면이 있다. 단순히 끈이 있고 그것을 양자화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논리를 구축하고 현상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동원되는 다양한 물리적인 아이디어들이 있다. 어떤 것은 기본적인 물리에 관한 것일 수도 있고, 양자역학 혹은 양자장론의 내용일 수도 있다. 일반상대론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직 익숙지는 않지만 뭔가 고급스러운(...) 대수기하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언뜻 보면 이런 것들을 예를 들어 양자역학 혹은 양자장론을 통해 다 익힐 수 있지 않느냐고 할 수 있지만, 그 테두리 안에서 그게 가능하려면 상당히 많은 시간의 경험과 시행 착오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양자역학책 혹은 양자장론책 안에 양자역학 혹은 양자장론의 모든 것이 담길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이나 논문은 한편으로 객관적이지만 한편으로 주관적인 면이 있어서, 업계의 동향 혹은 저자의 관점에 의해 취사선택된 내용이 취사선택된 논리와 방법론, 예제들로 다루어져 있다. 그래서 책을 보다 보면 당연해 보이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뭔가 이상하다 싶은 것, 혹은 설명이 부족하다 싶은 것이 있고, 이런 것들을 좀 더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이해가 깊어지기 힘들다. 그리고 그 분명히 인식하는 아주 좋은 방법은 상황이 다른 예제를 담은 다른 이론 체계를 통해 접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통 양자장론책은 입자물리의 영향이 강하게 녹아 있지만, 당연히 고체물리 혹은 우주론에도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고, 이때 시공간에 대한 인식, 혹은 계가 가지고 있는 대칭성이 다르기 때문에 입자물리의 예제에만 익숙해질 때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뭔가가 꼭 존재한다. 예를 들어 Goldstone theorem에서는 Goldstone boson 개수와 자발적으로 깨지는 대칭성의 수가 같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고체물리 혹은 de Sitter 공간에서의 양자장론으로 가면 성립하지 않는다. 문제는 특수한 상황에서 본 'Goldstone boson 개수와 자발적으로 깨지는 대칭성의 수가 같다'는 것의 증명을 보통은 아주 일반적인 것으로 인식하기 마련인지라 반례에 해당하는 상황을 접하지 않으면 그 증명이 가지고 있는 loophole를 눈치채기 꽤 어려운 면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양자중력을 알고 싶을 때 양자역학책과 일반상대론책을 보는 것 못지않게 이것들이 합쳐지는 것을 다루는 후보 이론들의 특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된다. 그래서 사실 초끈 이론 자체의 이야기 못지않게 그 속에 들어있는 양자장론, 군론 등등의 이야기들이 좀 더 주의를 끄는 면도 있다.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제대로 이해해 보겠나.. 하는 느낌이다.
그렇게 보다보면 어떤 이론을 이야기할 때 필요한 논리적인 단계가 꼭 교과서를 따를 필요가 없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게 된다. 이게 자연의 본질을 완벽히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담고 있다면 그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출발점이 역사적인 순서 혹은 표준적인 설명 방식을 따르지는 못하더라도 내가 납득할 수 있는 설명 방식으로 할 수도 있고, 그게 그 자체로 논리가 모순 없이 잘 전개된다면 존재할 가치가 있는 접근법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장은 어디 쓸지 모르고 기존의 것보다 더 괜찮지 않아 보여도 미래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당장 path integral도 gauge invariance를 제대로 양자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을 깨닫게 전에는 많이들 쓰기 꺼린 면도 있다. 복잡하면서 수학적으로 아주 잘 정의된 것 같지도 않으니.. 사실 나는 기존의 설명 방식을 완전히 벗어난 설명방식을 만들 정도의 내공은 없긴 한데, 그래도 비슷한 경험을 수업할 때 하기는 한다. 교과서를 보다 보면 모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면이 있다. 양자역학을 가르칠 때 Shankar 책을 보면 선형대수에 입각한 양자역학의 구조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긴 한데, 뭔가 실전 경험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있다. 단순히 양자역학의 구조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양자역학을 통해 접하게 되는 물리현상도 같이 배워서 그 뒤에 있는 물리를 이해하고 그걸 양자역학의 언어로 어떻게 나타내야 하는지도 고민해야 한다는 면을 생각하면 너무 깔끔하게만 배우는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다. 그런데 또 Griffiths 책은 완전히 반대 느낌이라서.. 결국은 내가 책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설명 방식을 만들고 책을 끼워 맞추는 느낌이 되어 버리는 것 같다. 어쨌든 계속 가르치다 보니 내가 양자역학을 설명할 때 적어도 내 마음이 최소로 불편한 방식을 계속 생각하게 되는데.. 그러다 보면 내가 연구하는 분야도 그런 식으로 되풀이해서 가르칠 기회 같은 것이 있으면 좋겠다.. 는 느낌이 든다. 또 어디선가 양자장론으로 랩을 불러야 하나... 누가 원해서 불러줄지는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