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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2월에 쓴 논문이 드디어(!) 학술지에 실리게 되었다. 거의 11개월 동안 끌다가 이제야 안착하게 된 것이다. 논문을 쓰고 arXiv에 올리면 그날이야 하나 끝났다는 기분이 들지만 항상 출판까지 쉽게 가는 것은 아니라서 계속 시간이 늘어지다 보면 뒤통수에 불안한 뭔가를 두고 온 기분이 계속 들게 된다. C. Vafa나 L. Susskind 선생 같은 분들이야 논문을 굳이 학술지에 출판하는 것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아서 상당히 주목을 받은 논문조차도 학술지에 싣지 않고 arXiv에만 올리는 경우가 많다. 당장 Vafa 선생이 de Sitter swampland conjecture에 대해 쓴 첫 논문이 그런 경우고 Susskind 선생 같은 경우는 arXiv를 블로그처럼 활용해서 논문을 arXiv에 올렸다가 수일 뒤에 "며칠 전에 내가 논문 쓴 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문제가 있더라..."는 논문을 다시 올린 일도 있었다. 어느 정도 급 이상의 학술지에 논문을 실으면 학과 홈페이지에서 광고해 주고 항상 '연구하는 교수'들을 이야기할 때 impact factor나 SCIE 순위에 민감한 주변 분위기와는 꽤 이질적인 면도 있는데, arXiv가 이론물리를 하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만든 것이라서 해당 업계 돌아가는 모습이 반영된 면이 있는지라...
일단 arXiv는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전통적'인 과정이 연구에 정말 도움이 되는지? 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감이 있다. 보통 논문을 쓰면 그 논문을 실을만한 학술지를 고르게 된다. 보통은 별생각 없이 전통적으로 유명한 학술지 (Physical Review D, Physics Letters B, JHEP, JCAP, Nuclear Physics B 같은 거... 더 욕심내면 Physical Review Letters )에 보내는데, 오랜 시간 동안 업계 논문을 다뤄왔기 때문에 editor 층이 두텁고 질이 좋은 편이기 때문이다. 일단 editor가 볼 때 큰 문제가 없어 보이면 같은 분야 사람들에게 '이 논문이 학술지에 실릴 가치가 있는지' 심사를 의뢰하게 된다. 즉 reviewer 혹은 referee역할을 하는 사람이 또 있는 것이다. 여기서 editor 혹은 학술지의 역할이 중요한데 아예 모르는 사람에게 심사를 맡겨도 문제고 반대로 특정 학설을 옹호 혹은 거부하는 사람들끼리 뭉치는 것도 문제가 있다. 아무튼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는지의 여부를 결정할 때 referee의 판정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reject 판정을 내리면 게재 거부판정이 뜨고... 보통은 이러저러한 점이 문제가 있거나 좀 더 설명이 필요해 보이니 수정하라는 요청을 받게 된다. 논문을 좀 많이 고칠 필요가 있거나 시간이 필요해 보이면 Major revision, 별거 아닌 거 조금만 고치면 된다 싶으면 minor revision 판정이 난다. 아주 드물기는 하지만 바로 accept 판정이 나는 경우가 있다. 이 경우는 별 수정 없이 제출본 그대로 학술지에 실리게 된다. 좀 '권위 있는' 학술지 (Physical Review Letters) 혹은 reject 판정이 나왔지만 저자가 이건 심사가 이상한 것 같다는 이의신청을 한 경우라면 referee가 2, 3명씩 붙기도 한다. 이러면 꽤나 골치 아파지기는 하지만.
Referee가 심사 대상에 대해서 아주 빠삭하지 않으면 시간이 꽤 걸린다. 물론 referee로 위촉된 사람이 이 논문을 판단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혹은 전문성이 없으니 부적절하다고 이야기하면 다른 사람에게 referee역할 의뢰가 가게 된다. 이리 저리해서 학술지에 제출해서 출판되기까지 (reject 판정을 받지 않는다면) 평균적으로 3-4달 정도 걸리고 referee와 저자 사이에 논쟁이 붙거나 적절한 referee를 못찾거나 하면 시간이 왕창 늘어지게 된다. 물론 reject 판정을 받으면 보완하거나 해서 다른 학술지에 제출하게 된다. 만약 연구의 발전 속도가 아주 빠르다면 이런 표준적인 학술지 출간 프로세스는 좀 불편한 일이 되기도 한다. 내가 논문을 보고 있을 때 다른 사람은 그 주제에 대해 이미 저 멀리 앞서나가고 있을 수도 있고 내 논문이 공개되지 못한 채 출판까지 지연되고 있는 동안 다른 사람이 같은 아이디어로 좀 더 호의적인 referee를 만나서 먼저 실어버릴 수도 있다. 내 논문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referee 때문에 부당하게 늘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아주 예전부터 학술지에 싣기 전 논문 초고를 preprint 형태로 공개해 왔는데, 필요할만한 사람에게 봐달라고 보내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소문을 듣고 혹은 학회 발표등을 통해 연구 사실을 인지한 사람이 저자에게 preprint를 달라고 부탁할 수도 있다. 큰 연구기관 같은 경우 preprint를 모으기도 해서, 지금도 종종 KEK 같은 곳에서 모아놓은 것들을 스캔한 것을 볼 수 있다. 인터넷이 발달하기 시작한 90년대 초에 아예 이런 prerpint를 웹사이트 하나를 정해서 같이 모아놓자는 생각을 하게 되어서, 저자가 논문 초고를 직접 올리도록 하는 웹사이트를 만들었는데, 이게 arXiv가 되겠다. 점점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 동참하기 시작했고, arXiv가 생긴 직후 초끈이론이 급성장 (2차 혁명이라고들 부른다) 하는 등 여러 일이 있는 와중에 arXiv를 활용한 연구가 정착된 면도 있는 것 같다.
사실, 학술지라는 것이 심사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본인이 내키는대로 논문을 올리는 arXiv보다야 안정감 내지는 신뢰감을 주는 면이 있다. 그런 안전장치가 없다면 머릿속에서 제대로 걸러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막 돌아다니는 통에 초심자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양으로만 자신의 실적을 내세우려는 사람이 생길 소지가 많기도 하다. 한편으로 보면 학술지의 심사 과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항상 잘못된 판정의 가능성도 존재한다. 논문의 오류가 잡히지 않은 채 통과되는 경우도 있고, (arXiv라면 수정본을 바로 올릴 수 있어서 업데이트가 가능하다. 그리고 철회한 논문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흔적이 남는다...) 아직 많은 것이 분명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괜찮은 혹은 나중에 맞다고 판명될 수 있는 아이디어가 묻힐 수 있다 (실제 그런 사례가 꽤 된다.. Nobel상 논문이라고 모두 환영받고 인정받으며 학술지에 바로 실린 것은 아니다...) 그리고 이건 좀 오만한 믿음일 수도 있는데, 틀린 이야기를 하거나 수로 실적을 밀어붙이는 경우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에 의해 평가절하되면서 결국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지기 마련이기도 하다. (물론 그 현혹의 시간 동안에 교수자리 잡고 단물 다 뺴먹는 사람은 분명 존재하고 그것에 밀려서 제대로 일한 사람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하니 너무 무심한 소리이기는 하다. 사실 학술지를 가지고도 그런 장난을 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논문의 가치와 권위는 학술지가 절대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인 비판과 논의의 결과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학술지에 실렸다고 무조건 다 믿으라는 것은 분명 아니기 때문에 학술지는 좀 더 믿음직스러운 면이 있는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arXiv도 완벽하지는 못하지만 학술지 체계를 보완하는 꽤 괜찮은 '수단'이기도 하고. 즉, 완벽한 하나를 바라는 것보다 불완전하지만 보완 관계에 있는 여럿을 두는 것이 보다 괜찮은 것이고 중요한 것은 그 체계 자체가 아니라 각각의 연구 결과가 가지는 가치라는 것이다. 그리고 arXiv는 몇 가지 부수적인 장점도 있다. 학술지라는 게 공짜가 아니기 때문에 내가 속한 기관이 구독권을 가지지 않고 있으면 출판본을 보기 힘들다. 구독료가 한두 푼도 아니고... 그럴 때 완전히 공짜로 열려있는 arXiv는 꽤 중요한 도서관 역할을 한다. 실제로 arXiv 웹사이트는 그리 많이 꾸미지 않고 단순한 편인데 덕분에 인터넷 속도가 빠르지 않거나 저사양 컴퓨터를 쓰는 경우라도 그럭저럭 이용할 수 있는 편이다. 그리고 논문뿐만 아니라 강의록 혹은 책의 일부 같은 것도 있기 때문에 공부하기도 좋고. 학술지에 싣더라도 이미 arXiv에 공개된 논문이라는 점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arXiv에 올렸다고 바로 학술지에 제출하는 것이 아니라 좀 기다리는 것이 보통인데, 그동안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수도 있다. 물론 보통은 '내가 쓴 논문이 당신 논문과 관련이 있으니 인용해 달라..'는 요청인 경우가 많은데, 대놓고 거절했다가 이 사람을 referee로 만나면 곤란한 면도 있고, 그걸 이용해서 자신의 인용수를 올리려는 사람도 꽤 많다. 사실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정당한 자신의 우선권 주장이라는 면도 있어서 비판만 하기 힘든 면도 있지만. 그리고 그런 식으로 알게 된 논문이 꽤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생각해 보면 학술지 referee 중에서도 자신의 논문을 인용하라는 것을 요구하는 식으로 반 협박(?) 하는 경우도 있긴 하니 arXiv만의 문제는 아니기는 하지만.. 어쩄건 이미 공개된 논문이기 때문에 만약 referee가 그 논문을 미리 읽었다면 좀 더 제대로 된 판정을 보다 짧은 시간 안에 받을 수도 있다.
내 입장에서 보면 학술지에 논문을 싣는 것은 실적 평가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학문 자체로 국한해 보면 좋은 공부 수단이기도 하다. 원칙적으로 논문을 쓴다고 해서 그 모든 내용을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편견과는 다르게 모든 것을 완벽히 한 다음에 그것을 평가받고 인정받는 것이 논문을 쓰는 모든 것이 아니라서, 어떨 때는 '이해하기 위해' 논문을 쓰기도 한다. 그럴 때 내가 아직 모르는 것을 아는 사람의 한마디가 꽤 중요하다. 실제로 referee의 의견을 보고 좀 더 생각했더니 그게 논문 거리가 된 일도 있다. 결국 한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 이상, 계속 가능한 방향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필요한데, 이럴 때에는 심지어 악의적일 수도 있는 비판마저 꽤 중요한 단서가 된다. 그런 식으로 방향 수정을 하는 것이 누적되어서 뭔가에 접근하는 것이 연구가 한번 시험 봐서 평가받는 방식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아닐까 싶다. 시험에서 맞고 틀리고를 신경 쓰면 완벽하지 않은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게 되지만 연구에서는 너무 헤프게 주장을 남발하지만 않으면 반대로 일단 내놓고 비판(말이 좋아서 비판이지 실제로는 말로 두들겨 맞는 느낌이 든다) 받는 것이 성장에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연구가 장기적인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지금은 논문이 통과되는지보다 (통과되면 좋지만) 심사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된 것 같다. 그도 그럴게, 이번에 학술지에 논문을 싣게 되면서 적어도 논문 실적이 부족해서 교수 못할 일은 없게 되었다. 정교수 승진 (+정년 보장)에 필요한 '점수'는 현재 학교 규정이 바뀐다면 모르겠지만 일단 다 채웠기 때문이다. 부교수로 승진한 게 4월이니 1년도 안 걸린 셈이긴 한데, 그렇다고 내가 연구 손 놓을 사람은 아니고 이제 실적에 대한 부담 없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더 좋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렇긴 한데, 학술지에 논문 싣는 것도 상성 문제가 있다. 학술지에서 referee의뢰하는 editor들의 성향 문제일 가능성이 크기는 하다. 내 연구와 비슷한 쪽을 하는 사람이 editor로 있는 경우 좀 더 호의적인 referee를 만날 가능성이 크기도 하니까. 그런데 항상 호의적인 사람을 만나는게 좋은 것도 아닌 게 어떨 때는 논문의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지 않은 채로 논문이 통과되는 일도 있다. 통과시킬 때는 시키더라도 좀 더 면밀하게 검토해 주면 서로 좋은 일인데 말이다. 그래서 너무 논문 심사 과정이 순조로우면 오히려 의심이 갈 때가 있다. 반면에 뭔가 내 논문이 많이 억울한 이유로 reject 당하는 일도 꽤 있는데, 모 학술지와 그런 일로 얽힌 일이 많아서... 예전에 논문 reject사유가 '요새 swampland 논문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가설 가지고 사람들이 논문 많이 쓰는 것은 줄어들어야 한다'였던 일이 있었다. 일단 그걸 왜 나에게 따지는지 잘 모르겠고, 무지성으로 유행 따라가는 거야 나도 싫지만 내가 그 주제를 싫어하더라도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이 하는 것이 아닌 만큼 어떤 속사정이 있는지를 알아야 비판을 해도 할 것이 아닌가... 어떤 주제가 싫다 혹은 꺼림칙하다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다. 그걸 개인적으로 느끼거나 자신의 연구 주제를 택하는 기준으로 삼는 것은 그 사람의 권리라고 해도 이유나 근거 안에서 이야기해야 할 학술적인 자리에서 함부로 단정적인 말로 내뱉을 것은 못 되는 것 같다. 생각해 보면 모 이론은 과학도 아니다 혹은 싫다고 하면서 그거 연구하는 '잘 알려진' 혹은 '좋은 자리를 가진' 사람 앞에서는 같이 웃고 공통적으로 합리성을 추구하는 사람임을 과시하려는 사람을 많이 보아서, 강경한 행위가 일견 자신을 소신을 강하게 이야기하는 멋진 행동으로 보이도록 하지만 실제로는 학문적인 위치에서 아직 자신보다 '낮은' 사람을 누르는 수단이 아닌가 싶을 때가 많았다. 정말 그렇게 싫으면 Vafa 선생 앞에서 공개적으로 이야기해 보든가...-_-
이번 논문은 그 정도는 아니지만 좀 답답하게 만든 감이 있었다. 여기 저기 reject당해서 옮겨다닌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 빼고 아무것도 없이' 시간이 훌렁 지나간 경우라서... 일단 학술지에 제출을 했는데 editor가 적절한 referee를 잘 못 구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논문에서 다루는 분야가 확실한 경우 쉽게 referee를 찾을 수 있는 반면 좀 다른 두 분야를 같이 다룰 때 이런 일이 잘 생기는 것 같다. 아무튼 referee로 지목된 사람들이 '나 못하겠다'라고 한 통에 한 네다섯 번은 돌고 돌아서 겨우 한 분이 심사를 했는데... 내용이 '너무 어렵게 썼으니 쉽게 쓸 것'이었다. 뭔가 판정도 reject도 아니고 major revision도 아닌 좀 애매한 것인 데다가 뭐가 틀렸다고 한 것도 아니라서 일단 최대한 설명 달고 (배경 설명이 너무 없는 것은 분명히 문제니까.. 반면 배경 설명 분량이 너무 자질구래 해도 문제인데, 내가 하려고 하는 주장이 가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참고 문헌을 좀 더 촘촘히 달았는데 이 분이 그냥 review를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래서 또 한참 돌고 돌아서 그것만 해도 반년 넘게 지난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심사를 한 사람도 '너무 어렵게 썼으니 쉽게 쓸 것'을 이야기했는데, 뭐랄까...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이 설명이 부족한지 이야기해 주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첫 번째보다 더 두리뭉실해서 뭘 어떻게 건들지가 좀 애매했다. 그리고 그쪽 계열 학술지에서 Witten 선생이 관련해서 쓴 글도 버젓이 실렸는데 뭔가 '왜 나만 가지고 그래'하는 심통도 났다. 뭔가 사람 골라가며 괴롭힌다는 느낌이 들었달까... 그때 외부 일로 좀 많이 심사가 꼬여 있던 있던 상태라서 그러긴 했는데, 더 친절하게 써도 본격적으로 심사 들어갈 때 더 소진될 시간이 정말 생산적 일지 + 논문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될지 의심스럽기도 해서 논문 제출을 철회하고 다른 학술지에 제출했다. 다행히 그곳에서는 좀 더 정상적 + 생산적인 referee report가 왔다. 사실 논문에서 다룬 것이 두 가지로 하나는 von Neumann algebra를 이용한 '재규격화된 entropy'를 정의하는 일이고 또 한 가지는 우주론에 어떻게 응용할지인데, referee는 전자 쪽은 잘 모르는지 별소리가 없었고 우주론 쪽에 집중했다. 어쨌건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싶은 부분이 있어서 나름 공부가 되었던 것 같다.
그렇게 논문 하나 처리가 끝나서 진짜 하나 끝났네 하는 기분이 들었다. 일상 생활에서 논문 작업하는 일로 신경이 곤두서 있을 때 좀 많이 예민한데, 여러 사람이 관심을 가지는 주제를 다루다 보면 내가 생각한 주제를 다른 사람도 생각할 확률이 높다. 덕분에 헛소리 안 하면서 다른 사람이 쓰기 전에 내놓는 것이 상당히 신경 쓰이는 작업이 된다. 요새처럼 논문 주제가 잡힐 듯 말 듯 하면 더 약 오르는 상태이고. 그럴 때 referee 심사 결과가 날아오면 예저녁에 쓴 논문 다시 검토해야 하고 그게 어떨 때는 꽤나 갑갑한 기분이 들게 만들 때가 있다. 어쨌건 다른 사람도 아닌 내가 해결해야 할 일이고 그것도 결국은 연구 과정이니까 받아들이고 같이 살아야 할 일이기는 하지만. 그래서인지 논문이 출판까지 끝나면 뭔가 묶고 있는 것이 풀린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