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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reen-Schwarz-Witten Ch.1
    카테고리 없음 2023. 10. 7. 09:01

     책이나 논문에서 Introduction 부분은 꽤 중요하다. 개인적으로 물리학자가 '자신의 논문'을 쓸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논문을 쓸 때 Introduction 부분을 쓸 수 있는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다루려고 하는 주제가 왜 설명할 가치가 있는지를 최대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논문이나 책이 학술적인 글이고 심사 과정을 거쳐 출판된 것이라는 점이 초심자에게 많은 편견을 주는데, 그중 하나는 그곳에 실린 글이 확정된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이다. 말하자면 TV를 볼 때 드라마라면 설령 그것이 사극이나 재연극이라 할지라도 실제와 다른 면이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사람이 많은 반면 다큐멘터리에서 다루는 내용은 일단 모두 사실이라고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논문이나 책의 많은 내용이 완벽하게 확정적이지 않은 '연구의 과정'인 것은 우리가 세상의 모든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한 어느 정도 필연적이다. 그리고 저자의 관점에 의해 '선택'된 주제를 저자가 선호하는 시각과 방법론으로, 저자의 유한한 지식(지식량이 많을 수도 있고 적을 수도 있지만 어쨌건 유한하니까...)을 토대로 쓰인 글들이라는 점을 잊으면 안 된다. 그런 면에서 보면 책이나 논문은 어느 정도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단지 그것이 일방적인 주장을 하는 식으로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특정 상황에서는 완전히 틀리지 않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그 특정 상황이라는 전제가 맞는지는 또 다른 문제다...) 것을 뒷받침하기 위해 선행 연구들을 인용하거나 구체적인 계산 내지는 적절한 논리로 풀어가는 것이다. 학부 때 천문학 강의를 하셨던 홍승수 교수님(코스모스 번역하셨던 그분 맞습니다...)께서 수업 시간에 하셨던 말씀을 그대로 빌리면, "사람은 활자화된 것을 보면 일단 믿는 경향이 있는데, 그러면 책에 '읽히는' 것이다. 책은 읽는 것이지 읽히는 것이 아니다. 저자의 의도를 염두에 두고 계속 질문을 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Introduction이 중요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내가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고, 왜 이 주제를 선택했으며, 내 연구가 왜, 혹은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전체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혹은 자세히 논문에서 다루는 내용을 따라갈 사람을 위해서 review나 책을 포함한 참고문헌을 제시하고 생각의 흐름이 비슷한 연구들을 인용해서 내 생각이 어떤 맥락인지를 설명한다. 그리고 간략히 본문에서 다룰 아이디어의 요체를 함축적이면서 쉬운 언어로 이야기하면 더 좋다. 이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다.

     사실 비슷한 성격을 가지는 학술행사가 다름 아닌 콜로퀴움이다. 세미나는 좀 더 세부적인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 듣는 것이라면, 콜로퀴움은 대중강연 정도로 아주 쉽지는 않지만 적어도 학부 수준의 물리를 배운(혹은 배우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내가 강조하고 싶은 주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이것도 쉽지 않은데, 전체적인 이야기와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연결하는 과정이 정확하게 논문의 Introduction을 쓰는 것과 같아보인다. 잘못하면 뻔하고 대중과학책에서 볼만한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수준을 높이는, 급발진을 하기 십상이고, 그것마저 포기하면 수박 겉핥기식의 혹은 대중강연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그럴듯한 그림이나 유머로 가리는 홍보 행사로 전락하기 쉽다. 물론 적절한 유머나 그림 (단순히 물리와 관련된 것뿐만 아니라 풍자용 그림도 포함)이라는 것이 직관적인 인상을 주고 딱딱한 분위기를 풀어주는 아주 좋은 수단인 것은 맞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내용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을 때 이야기이고, 내용은 공허한데 장식만 가득하다면 이건 정작 신경 써야 할 곳에는 무심하고 내용 자체에는 본인도 관심 없으면서 하는 일은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싶은 심리를 반영한 것일 수밖에 없다.

     
     추석연휴때부터 천천히 Green-Schwarz-Witten(GSW)의 옛날 초끈 교과서 Introduction 부분을 읽어보았는데, 여러 가지 면에서 독특했다. 사실 초심자 입장에서 보면 교과서라고 하더라도 Introduction내용을 제대로 즐기고 혹은 뭔가 배우기는 좀 힘들다. 그래서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는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는 경우가 많은데, 복잡한 계산과 바로 들어오지 않는 논리 안에서 헤매다 보면 내가 어떤 방향으로 가는지, 혹은 왜 이것을 하는지를 몰라서 시간은 많이 쏟지만 내가 정말 무엇을 했는지는 기억에 남지 않게 되는 일이 허다하다. 결국 이런 일을 몇 번 반복하면서 어렴풋이 깨닫다가 실제 연구를 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교수가 되어서 수업 준비하다가...) 재발견하고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는 쪽으로 가게 된다. 사실 Introduction은 초심자가 볼 때 꽤 사람을 답답하게 하는 구석이 있다. 저자가 분명히 뭔가를 알고 있어서 중요해 보이는 내용을 짧은 문장으로 딱 요약을 해 놓았는데 와닿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답은 책이나 논문 본문에 있지만 이리저리 긴 내용을 헤매다 보면 앞서 본 것을 잊어버리거나 막 배워서 얼떨떨한 상태다 보니 더 연결이 안 되는 일도 생긴다. 이런 일은 생각 밖으로 흔하다. 학생 입장에서 막 배운 상태일 때 책의 문장을 그대로 적용하거나 계산을 하는 것이라면 어느 정도 하더라도 이게 무슨 뜻인지 생각하기 시작하면 이미 알고 있는 것도 모순이 느껴지고 혼란스러운 것과 같은 이치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익숙해질수록 뭔가 바보 같아진다고/바보처럼 보인다고 느끼게 되는데 생각해 보면 이게 오히려 정상적인 공부 과정인 것 같다. 여기서 멈추면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말하자면 한단지보 같은 처지가 되겠지만 계속 같은 일을 여러 해 반복하면 처음에 바보 같아 보인다고 시도를 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나은 상태가 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책 저자들도 잘 알기 때문에 보통은 Introduction을 아주 짧게 끝낸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overview 정도로 하고 혹시 책을 다 본 사람이 다시 Introduction으로 돌아왔을 때 어느 정도 끄덕일 수 있을 정도로 적기 마련이다. 그런데 GSW책의 Introduction은 꽤 의미심장한 물리 이야기를 나름 논리를 갖추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물론 아주 세부적인 것은 나중에 어느 지점에서 배울 것이다고 언급하고 넘어가기는 하지만 직관적인 예시나 간단히 할 수 있는 계산을 같이 넣어서 기본적인 아이디어를 최대한 분명히 전달하려고 하는 의지가 느껴진달까... 저자분들이 가지고 있는 내공이 그런 시도를 할 자신감을 주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아주 잘 짜여진 콜로퀴움을 들은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책이 쓰여질 당시에는 초끈 이론이 새롭게 등장해서 낯설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던 시점이라서 양자장론/일반상대론 혹은 입자물리 관점에서 받아들일 수 있는 이야기들과 대비해서 이야기하려는 점도 보이는데, 이게 역으로 '양자장론/일반상대론 혹은 입자물리'의 여러 내용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면도 있는 것 같다. 학생 시절 양자장론을 전공했던 모 교수님이 초끈이론이 죽더라도 GSW책은 계속 읽힐 거라는 이야기를 하신 것이 그런 점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 생각해 보면, 처음 초끈이론은 강한 상호작용을 이해하기 위해 시작했던 것이지만 양자중력적인 면에서 크게 성장하면서 이후 초끈 교과서에서는 강한 상호작용 이야기를 잘 내세우지 않는 편인데 GSW는 오히려 매우 일찍 쓰여진 덕에 양자장론이나 입자물리적인 이야기를 보다 직접적으로 인지하도록 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찬찬히 읽어보다가 눈에 띄는 점 몇가지.

     일단 요새 개인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부분이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 전통적인 설명 방법을 계속 답습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라는 점이다. 물론 그 전통적인 설명 방법이 '전통적'이 된 것도 나름 합당한 배경이 있기는 한데, 어떨 때는 그것이 역사적인 것이라서 현대적으로는 별 의미가 없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는 Dirac 방정식 설명하는 부분이 그런 예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설령 지금도 아주 괜찮은 설명 방법이라고 하더라도 시선이 한 것에 너무 고정되어 있으면 그 뒤에 있는 중요할 수도 있는 물리를 간과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애당초 연구는 정해진 루트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맞는 결론을 이야기한다면 어떤 루트를 택하든 (설령 나중에 정리되더라도) 일단 OK인 것이고, 복잡해서 잘 쓰지 않는 설명이라도 건질만한 물리가 있을 수도 있다. 하다못해 다른 곳에 적용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해 줄 수도 있기도 하다. 당장 초끈 이론이 강한 상호작용 이론으로는 폐기가 되었지만 massless spin-2 입자가 나오고, 집단적으로 string excitation을 다루었을 때 gauge theory에서보다 더 좋은 UV behavior를 보인다는 사실이 (이 점을 이야기하려고 학부 수리물리에 나오는 Gamma 함수를 상당히 적극적으로 활용한 것이 인상 깊었다.) 양자 중력에 쓰일 가능성을 주었다. 그래서 강한 상호작용 이론으로는 잘못된 루트였지만 양자중력 이론으로 계속 살아남게 된 것이다. 그래서 많은 이론물리학자들이, 물론 현실적으로 기존의 많은 양을 다 소화하다가는 평생 논문 하나 못쓴다는 면도 있지만, 기존 연구들을 모두 공부하는 방법을 반드시 택하지는 않는다. 기존 설명이나 논리 전개와 무관하게 적절한 설명이 뒷받침되는 출발점을 어디선가 잡고 논리적으로 재구축해서 자신의 이론을 따로 만든다는 느낌이랄까... 초끈의 scattering을 설명하면서 2차원 worldseet 언어로 26(혹은 10차원) scattering amplitude를 적은 다음 이것을 초끈이론의 '정의'로 생각하고 초끈 이론을 만들어가도 된다는 이야기를 한다. (36쪽 : '정의' definition이란 단어를 itelic체로 강조한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지금 현재로는 어떤 초끈이론의 수식체계가 보다 '근본적인'지는 모르니까 괜찮다는 부연설명도 한다. 초끈 이론을 낳았던 'S-matrix의 여러 성질들 - unitarity, analyticity... 을 통해 강한 상호작용을 이해하자'는 주장을 연상시키는 면도 있는데, 이런 방법으로 초끈 이론의 재구축에 대한 예제를 보여주는 게 생각보다 재미있다. 초끈 이론의 spectrum을 완전히 다른 식으로 구해 버리는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Sec. 1.4.5) 2차원 worldsheet의 general covariance 중 gauge fixing을 하더라도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는데, 이게 conformal invariance와 겹치는 holomrphic변환 SL(2,C)에 해당한다. 이걸 fixing하는 과정에서 외부 상태를 기술하는 vertex operator가 들어오는 점을 3개까지 고정시킬 수 있다. 물론 gauge invariance 덕분에 많은 외부 상태에 해당하는 점 중 어떤 점을 고정하는지는 물리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이건 scattering 관점에서 보면 crossing symmetry에 해당한다. 따라서 scattering amplitude의 crossing symmetry를 요구한다면 SL(2,C)에 해당하는 gauge invariance는 양자역학적으로도 깨지지 않아야, 즉 anomaly가 없어야 한다. 이걸 가지고 vertex operator의 차원을 따지면 scattering amplitude에 나오는 propagator의 승수와 비교할 수 있는데 이게 momentum 조합의 크기로 주어져서 질량에 대한 정보를 준다. 전통적인 방법 그러니까 mode expansion을 하고 level matching을 통해서 질량을 구하는 것과 다른 접근 방식인데, 강조되는 언어가 따로 있다 보니 깨닫게 되는 것이 다른 면이 있다. 이게 내가 가지고 있는 인식 내지는 지성의 한계일 수도 있다. 하나를 볼 때 그 뒤에 있는 모든 것을 한 번에 모두 파악하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계속 다른 접근 방법에 노출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책이 80년대에 쓰여져서 지금 알고 있는 내용을 모두 담지 못하고 있기는 하지만 이게 다른 이유로 재미있는 면이 있는데, 알고 보면 뭔가 예언 같은 이야기를 한다고 느껴지는 것이 있다. 아무리 신박해 보이는 것이라 하더라도 웬만한 것은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문제의식이 있던 것이나 조금씩 비슷한 이야기가 되어 왔던 것이 시간이 지나면서 적절히 성숙해서 정리된 것들이 많은 것도 사실이고. S. Weinberg의 일반상대론 교과서도 그런 면에서 재미있었다. 70년대에 쓰여서 dark energy이야기는 아주 없고 우주가 matter domination인 것처럼 쓰여진 것도 있지만, 책이 쓰여질 당시 나오지 않았던 inflation의 동기 중 하나인 지평선 문제 등에 대한 언급도 있다. GSW에도 비슷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부분이 있다. 초끈이론과 QCD의 관계를 이야기하면서 QCD의 large n expansion이 초끈이론 관점에서 조명받을 것이라는 희망사항을 이야기했는데 (41쪽 Sec. 1.5.5 마지막 부분) 책이 쓰여진 지 10년 뒤에 나왔던 AdS/CFT를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좀 신경 쓰인다 싶은 것들이 꽤 있다. d차원에서 상대론적으로 움직이는 입자의 propagator를 이야기하면서 (Wick rotation된) d+1차원의 비상대론적 입자의 운동과 기술이 같다고 이야기한 부분이 대표적 (28쪽 식 1.4.2, 1.4.3). General covariance를 unitarity와 연결 지어서 이야기하려고 한 것 (53쪽 그림 1.20)도 뭔가 간단한 이야기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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