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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결과를 얻긴 얻었는데 너무 허심심해 보여서 일단 정리를 해 보니 그래도 좀 더 할 이야기가 있는 것 같다. 계산 조금만 더 해 보고 논문으로 마무리할 생각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떨 때는 내가 쓴 논문인데 나도 파악하지 못한 뭔가가 있나 싶을 때가 있다. 상당히 자신감 있게 썼는데 학술지 싣는 과정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거나, 마지못해 쓴 듯한 논문인데 이상하게 반응이 좋다거나 하는 식이다. 가끔 내 논문이 인용될 때 이러이러한 의미..라고 부연설명이 붙는 것을 보면 응? 싶을 때가 있다. 굳이 비유하자면 한국의 역사에 대해 영국이나 미국에서 다큐멘터리를 만든 것을 볼 때 분명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은데 묘하게 어긋나 보이는 감정을 느끼는 것과 비슷하달까... 처음에는 어색한데 또 시간이 지나면 그런 해석을 할 수도 있겠구나 싶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게 삶의 모습이 아닌가 하는 다소 과장된 생각까지 든다. 그러다가 문득 학부 때 교양 생물학 들었던 것이 떠오르는데, 지금은 잘 알려진 이야기지만 '진화'라는 것이 우생학과 명백히 다른 이유가 자연이 허용하는 '적응 가능한 형질'의 형태가 아주 다양하기 때문이라는 것.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하다... 는 것을 좀 더 그럴듯하게 이야기한 것 같기는 하지만. 생각해 보면 학계에서 살아남는 것도 같은 과정을 겪는다는 생각이 든다. 뭔가 체계적인 지식이 없는 상황에서 '우연히' 괜찮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건 돌연변이와 같은 현상인 것 같고, 흔히 생각하는 '똑똑하고 기민한' 능력이 큰 자산이면서 무조건적인 보장을 해 주지 않는다거나.. 뭔가 이상하고 모순되어 보이는데 어떻게든 굴러가는 건 그것 때문인가...-_-
그렇긴 해도 사는 것을 너무 우연에 맡기는 것도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것 같다. 교수가 되면 고민이 많이 사라질 것 같고 실제로 많이 사라졌지만, 뭔가 다른 방향의 고민들이 생기는데, 요새는 '앞으로 어떻게 사는 것이 좋을까'에 대해 생각을 계속하게 되는 것 같다. 지금과 같은 삶이 20여 년 뒤까지 이어지게 될지 아니면 어느 순간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될지 (혹은 일어날 수 있을지)라는 것인데 생각할수록 복잡하지만 별생각 없이 '질러버린' 것이 의외로 간단한 해답을 줄지도 모르겠고... 조금 사치스러운 고민으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어떤 물리학자 혹은 어떤 교수가 되어야 할 것이냐..'는 꽤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한 사람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가야 하느냐는 질문이라고 보면 사치스럽기만 한 것은 아닐지도. 예전에 한번 적었던 것이, '학자'의 길을 걷고 싶은 사람에게 처음에는 안정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잘 생각해 보라.. 는 이야기를 했지만 요새는 그렇게 해서 '살아남았을 때' 처음 생각했던 혹은 하고 싶었던 그 모습이 될 수 있는지를 추가로 묻게 되는 게 그것 때문인데... 제대로 할 일을 못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한다면 그걸 '살아남았다'라고 할 수 있을까? 빈 껍질만 남고 예전의 고생에 대한 보상만 생각하고 있는 것보다 세상에는 보다 자신에게나 타인에게나 생산적인 일이 분명히 많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꿈을 꾼다고 한다면 그 꿈이 반드시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대로 이루어질 수 없지만 어떻게 보면 그런 이상적인 면이 꿈이 매력일 것이다. 따지기 시작하면 그 꿈이 정말 가치가 있는지부터 끝도 없는데... 그리고 이것도 어떤 면에서는 '생존' 문제 이긴 한데... 그래도 저렇게 살려고 굳이 이런 길을? 싶은 장면도 꽤 많이 보는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