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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1024
    카테고리 없음 2026. 10. 24. 17:23

    살다 보면 당장 닥치는 일들이 바쁘고 미래의 일이 걱정되기 때문에 과거를 돌아보기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가끔 복기라는 것이 필요할 때가 있는 것 같다. 예전 일을 되돌아보면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을 텐데, 사실 그런 것에 얽매이는 것은 좋지 않은 것 같다. 예전의 좋은 일을 성공이라고 생각하고 모든 것의 판단 기준을 좋은 일에 다다르는 길에 끼워 맞추고 싶은 유혹도 많고, 좋지 않은 일에 스스로 위축되어 올라갈 수 있는 것도 이유를 만들면서까지 피하려는 유혹도 많다. 그런 얽매임이 아니라 내가 했던 일이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놓쳤는지 생각해 보고 있으면 어떨 때는 앞으로 어떻게 가야 할지에 대해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는 일도 있다. 항상 그런 것은 아닐 것이고, 비슷한 상황에 비슷한 대응을 한다고 해서 결과가 같은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생각할 수 있는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로 열어놓아서 나쁠 것은 없는 것 같다. 연구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보면 하나의 흐름을 만들어가는 느낌이 든다. 그게 꼭 좋은 결과로 갈지 알 수 없지만, 단기적인 시야 혹은 외적인 이유 (뭔가가 유행하더라거나 누군가가 한다거나..)로 문제를 택하는 것으로 연명하거나 하던 것만 하는 것보다 적어도 어느 정도 동기 부여를 줄 수 있는 큰 문제가 있을 때 괜찮은 진전이 이루어지는 것도 사실이라서..  고집하는 대신 잠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하고 수정할 수 있는 여지를 준다면 괜찮지 않을까 싶다. 결국 어떤 것을 한다는 것만으로 좋고 나쁘고를 판단하는 것은 짧은 소견인 것 같고, 어떤 목표를 가지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끌고 가는지가 중요한 것이니까..

     이런 말이 좀 뜬구름 잡는 소리 같지만, 지금 연구와 관련해서 꽤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이쪽으로 수렴하는 것 같다. 좀 큰 규모로 세미나를 할 기회가 생기다보니 지난 1년간 한 일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하필 그 1년간의 일이 지금까지 우주론을 통해 양자중력의 여러 가지 면을 이해하자는 흐름을 정리하는 것들이라서, 복기의 의미에 대해 좀 더 생각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한편으로 보면 중력의 열역학적인 특징과 양자장론에서 배운 것들이 중력을 고려하는 순간 어떻게 바뀌는지에 관심을 보인 것이 한 갈래였고, swampland와 관련해서 좀 더 초끈이론이 암시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이 또 다른 갈래였는데, 마침 4월 그리고 이번 달에 한 일과, 1월에 한 일이 각각 그것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한 것이 종합적으로 들어간 편이긴 하다. 물론 당연하지만 그게 완벽한 것은 아니라서 복기하다 보니 모자란 것이 눈에 띄고, 그중에서 우선적으로 살펴보고 싶은 것이나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듣고 싶은 것들도 추릴 수 있었다. 이것들 중 어떤 것들이 계속 연구로 이어질지, 또 내 생각을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 것보다는 낫긴 하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어떤 연구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 는 생각이 든다. 계속 연구를 해 가다 보니, 점점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뭔가를 하려는 욕구가 커지는 것 같은데.. 욕구에 비례해서 실력이 늘어야 하는 것이 문제일 것이다.

     생각해 보면, 당장 논문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기본적인 것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채워나갔던 것이, 처음에는 꽤나 힘든 일이었고, 만약 그 '공부' 그러니까 남이 해 놓은 것을 흡수하는 것이 연구로 이어지지 않는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위험한 일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지금 지속적으로 연구를 할 수 있는 것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남이 해 놓은 것에 마무르려고 하지만 않는다면 그런 공부는 그대로 기초체력이 되는 것이라서.. 반면에, 남의 일을 보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다소 기만적인 면이 있다. 무책임하다고 할 수도 있고. 스스로에게는 공부를 하고 있다거나 호기심을 충족시킨다는 이유로 만족감을 주지만, 실제로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뭔가 할 수 있는 것도 없다면, 사실 제대로 이해한 것이 아니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잊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이미 남들이 해 놓은 방대한 양의 극히 일부만 잡고, 예전에 이해하고 있는 범위나 더 나아가지 못해서 좁은 생각의 범위 안에서 '좋이 하는 것을 한다'는 핑계로 알 수 있는 것을 확장하는 것을 거부한 채, 시간이 지나도 제자리일 뿐인 쳇바퀴  돌리기에 멈추고 있다면, 스스로 보람을 느끼고 남들 보기에 좋아 보여도 실제로 남는 것이 없게 된다. 그리고 뭔가를 알고 그것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제대로 이해하려는 수고를 들여야 하고 틀렸다면 수긍하고 고쳐야 하는 책임을 짊어지는 것과 같은데, (그만큼 편하지 않은 일을 해 줄 필요가 있기도 하고...) 그걸 내가 공부한 책을 쓴 사람 혹은 그걸 만든 하지만 지금 무엇이 문제인지 알리 없는 옛사람에게 넘기는 것이 좋은 자세도 아니고.. 명색이 물리를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낀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것은 학생 때 배웠던 것 혹은 어떤 대가와 연구를 했던 것에 멈추고 더 나가지 못한 채 실은 논문 편수만 채우고 있거나 실제 자신이 참여한 논문의 의미조차 생각하지 않는 일도 꽤 많긴 하다. 단지 그렇게 생존에 요구되는 것 혹은 그럴 듯하게 보이는 것만 채운 채, 실은 다른 사람의 수고 위에 타서 최대한 편의를 누리려고 하고, 뭔가 남들을 평가할 수 있는 원리를 얻는다고 생각하면 많이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 생각하고 조직하는 것에 의미가 있지, 사이비 종교처럼 뭔가를 신봉하는 것은 아니니까.. 초끈이론이든, 다른 양자 중력의 여러 이야기이든, 적어도 지금 알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잠정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것이고, 궁극적으로는 양자중력이라는 정말 이해해야 하는 것을 향하는 길이기 때문에 궁극적인 목표는 제쳐 놓고 중간 단계인 것들에 대해 덮어놓고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것은 적어도 내 취향은 아니다. 간혹, 예전에도 보았고 지금도 보이지만, 이 질문 아니면 그쪽에는 관심이 없다는 사람이 있다. 그런데, 그 질문을 풀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많고, 심지어 재미없다고 넘긴 것 안에 그 힌트가 있는지 누가 알까? 그저 제대로 아는 것도 없고 호기심조차 바닥나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하는 것처럼 혹은 많이 깨달은 것 처럼 보이려고 할 때 쓸 수 있는 핑계에 불과한 것이다.

     교수가 되어서 여러 사람들 특히 학생들을 접하다 보니, 이게 일종의 거울이 되어서, 내가 하는 생각이나 행동 혹은 내가 보아왔던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행동이 어떤 생각에서 오고 어떤 행동으로 이어지는지 조금씩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면에서는 꽤 좋은 인생 공부가 되는 면이 있다. 다른 사람의 삶이라 해서 무심하기에는 꽤 배울 것이 많고, 내 일을 하는데 여러가지 참고가 되다 보니..  귀찮으니 굳이 시비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지만 그 다른 사람의 삶이 내가 내 일을 하는데 영향을 주는 일이 생기기 때문에 필요하다면 무조건 신경 끄는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대응할 필요도 있다.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는다면 경우에 따라서는 내 인생에 불필요한 낭비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 있는데, 되도록이면 그건 막을 필요가 있긴 하다. 솔직히 지금은 좀 조용하게 연구에 집중할 수 없는지 슬슬 궁금해지기는 하지만.. 그게 가능한 곳이 있을지, 있다고 해도 나와 인연이 있을지 알 수 없네.. 

     한가지 재미있는 건, 학생 중에 내가 학생 때와 상당히 비슷한 면을 보이는 사람도 있다는 점이다. 완전히 닮을 수야 없지만, 물리 문제 푸는 스타일이 진짜 내가 학부 때와 상당해 비슷해서 채점하다가 이거 재미있네.. 싶었던 일이 있어서... 그렇게 보면 왜 사람들이 성격을 유형화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갈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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