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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여름 방학 때 여러 일이 있었지만, 가장 시간과 정신을 많이 소비한 일은 3월달에 쓴 논문 출판이었다. 오늘에서야 accept 통보가 와서 마무리가 되었는데, 이게 사람 기 빨리게 만든 건 referee가 무려 세분이나 붙었기 때문이었다. 혼자 쓴 논문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1:3 맞짱이(...) 되어 버린 것이다. 1:2까지야 몇번 겪어봤지만 1:3은 난생 처음인지라... 사실 이게 학술지 (Classical and Quantum Gravity) 쪽에서 나름 배려해 준 건데, 상황을 보니까 원래 두 분에게 심사를 맡겼는데 한쪽은 부정적이었는데 이유가 다소 진부했고 (이전 논문과 차이가 별로 없어 보인다는...) 다른 쪽은 긍정적이었는데 논문 내용에 아주 정통하지 않은 것 같아서 한분 다시 초빙해서 꼼꼼하게 따져보라고 주문한 것 같았다. 여기서 세 번째 심사하신 분이 여러 가지 지적하기는 했지만 출판에 긍정적이었기 때문에 수정 권고를 준 것인데, 이때 이 분이 정말 꼼꼼하게 심사하신지라 내용을 많이 갈아엎거나 채워 넣어야 했다. 그래서 프랑스 다녀와서 7월 중순 이후는 꼬박 여기에 매달렸다. 논문 내용은 quasi-dS space에 나오는 local gauge invariant operator인 curvature perturbation이 dressed operator 형태라는 것을 이용해서 von Neumann algebra가 perfect de Sitter와 아주 다르다는 기존 이야기 (사실 이거 세상에서 맨 처음 이야기한 사람이 다름 아닌 나다...)를 좀 더 체계적으로 보이는 것이었는데, 후반부인 von Neumann algebra 부분은 처음부터 다시 쓰다시피 했다. (지금 보니 첫 버전은 좀 많이 부족해 보이긴 하다. 다소 불명확한 이야기도 섞여 있고..) 그리고 세 분에게 모두 대답할 것도 같이 써야 했기 때문에 실제 생각하고 쓴 것이 논문을 새로 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도 세 번째 referee 분이 내가 미처 생각지 못한 것을 아주 잘 이야기해 주셔서 (그리고 출판에 부정적이지 않으셔서) 새로 배운 것이 많았고, 논문도 잘 마무리되었다. 내용도 훨씬 좋아졌고, 나도 새로 공부한 것이 있었고, accept도 되었으니 나름 happy ending. 그리고 몇몇 내용은 11월에 미국 가서 발표할 내용에도 좀 집어넣었다. 관심사가 꼭 같지 않아 기술적인 이야기까지는 힘들어도 swampland와 관련된 이야깃거리도 있긴 하고, 혹시 (요새 그런 분위기가 많이 사라져서 아쉬운데...) 다른 연구실 사람들이 들어오게 되면, 그쪽에도 von Neumann algebra나 local gauge operator 쪽 논문을 쓴 분도 계시기 때문에 괜찮은 이야기를 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많이 기대하는 바는 아니지만...
확실히, inflation을 기술할 때 de Sitter background라고들 많이 이야기들 하다 보니 실제 background는 완벽한 de Sitter가 아니라는 점을 많이 잊는 것 같다. 그래서 de Sitter 위에 시간에 의존하는 inflaton을 끼워넣곤 하는데, 거친 gauge fixing과 Goldstone equivalence theorem의 합작 때문에 epsilon parameter가 아주 작다면 꽤 괜찮은 근사이고, 실용적인 계산 면에서 (FAPP in the sense of John Bell...) 우주배경복사 등과 비교할 때 별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개념적으로는 잘못된 이야기를 할 소지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입자물리에서 완전히 질량이 없는 gauge boson과 아주 작지만 질량이 있는 spin-1 입자의 관계를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Goldstone equivalence theorem 덕에 질량이 없는 gauge boson과 axion 사이의 상호작용으로 기술할 수 있긴 하지만 vacuum 구조부터 상당히 다르니까... 이번 논문은 그 점을 지적해서 중력의 gauge invariance부터 고려해서 제대로 다루어보자.. 는 취지로 쓴 것이었다. 사실, 이전 논문들은 de Sitter의 그림자에서 제대로 벗어나지 못한 느낌이었다. 내 첫 논문은 de Sitter에서 도입된 관찰자의 존재를 (껄끄럽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완전히 배제하지 못했고, 다른 논문들도 de Sitter를 가정하거나 하는 식으로 de Sitter의 timelike isometry가 깨지는 것이 어떤 결과를 주는지에 대해 근사 이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아마 첫 번째 referee가 별 새로움을 느끼지 못한 이유도 결국 de Sitter의 timelike isometry가 깨지는 효과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이쪽에 대해서는 논문 revision과 더불어 따로 보낸 답변에 엄청 자세히 설명해야 했는데, 그렇게 이야기했는데도 이 논문 perfect de Sitter위에 slope이 있는 potential을 가지는 scalar 놓은 거죠?라는 말을 한 거 보면 뭔가 덜 이해한 상태에서 내가 상당한 분량 (답변서 분량이 대략 논문 절반 이상 되려나? -_- 대충 13페이지 정도 나왔으니... 진짜 따로 논문 하나 더 쓴 기분이다)으로 이야기하니까 마지못해 ok 한 느낌도 든다... 아니 솔직히 slope 있는 potential이 있는 순간 background는 이미 de Sitter가 아니지 않나... 그렇긴 한데 다른 논문들 보면 가끔 이런 표현을 쓰니까.. 말하자면 근사..라는 거지만, 논문 자체의 목적이 근사가 아닌 제대로 다루자는 것이었고 이건 정말 논문 첫 버전부터 강조한 것이라서 제대로 안 읽으신듯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매한가지다...
어쨌건 1:3 (그것도 한쪽은 부정적이고 다른 한쪽은 엄청 많은 내용을 지적하고 있는...) 에서 이겨 나온 것은 별거 아니라면 별거 아닌 일이지만 (논문 한두편 써 본 것도 아니고...) 좀 대견한(?) 일이기는 하다. 생각해 보면 그 어렵다는 Physical review letters도 보통 둘이 심사하니까.. 사실 프랑스 방문기간 말미에 첫 referee report를 받았는데, 프랑스 더위 탓인지 아니면 부정적인 이야기가 섞인 1:3이라는 부담감 때문인지 좀 어질어질 하긴 했다. 그래도 항상 그렇지만, 논문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이 분명하면 아주 버릴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적절히 보완하면 되고 (덕택에 말 그대로 논문 하나 새로 쓴 셈이 되었지만...) 그럴 때는 하나씩 차근차근 풀어가는 것이 최선인 것 같다.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사람이 시간이나 마음의 여유가 항상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제대로 잘 빠져나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기도 하다. 특히나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스스로 처리해야 할 일이 갑자기 많아지면 모든 것을 온전히 감당하기 부담스러워지는 것은 사실이고, 머리도 몸도 마음도 계속 예전같지 않다보니 조금씩 지쳐가는 면도 있다. 그래도 지금까지 쓴 논문들을 어떻게든 잘 마무리되어서 모두 출판까지 잘 간 건 다행이다. 출판 자체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그 과정에서 뭔가 배우거나 다음 일의 힌트를 얻고, 그래서 어떻게든 계속 가 온 것이 더 가치가 있는 일이기도 하고. 그런데 좀 지쳐가는 건 어떻게 할 수 없을까... 요새 점점 집중해서 생각할 수 있는 여유가 아쉬워지는 느낌이 상당히 강해지는 중이다. 이번 일도 진짜 기 빨려서 진이 빠지기는 하는데, 다음 논문도 잘 나오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아직 연구는 탐색 단계라서 (요새 axion의 string model 쪽에 관심이 생겨서 보는 중이다.) 논문까지 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