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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날 받아 놓으면 금방 오는 법이라고, 아쉽게도 오늘이 지나면 방학이 끝난다. 항상 그랬지만 정신없이 분주한데 남는 것은 별로 없어 보이는 방학이었다. 말 그대로 물을 손으로 쥐려고 했는데 모두 손틈 사이로 흘러가 버린 느낌이다. 생각해 보면 프랑스 학회 다녀와서 논문 revision 하고 또 가을에 미국에서 발표할 것 +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떡밥 던질 것 준비하고, 연구 거리 찾으면서 필요한 것 공부하고 뭔가 많이 한 것 같은데, 남는 건 별로 없어 보이고 충분히 생각할 여유는 부족한데 집중하기에는 몸이 많이 피곤해져서 하루 정도는 아무 생각 없이 자고 싶지만 정작 누우면 잠이 잘 안 오는 상태... 뭔가 어질어질하다.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뭐 하나 더 얹기만 해도 모든 게 휘청일 것 같아서 새로 부담 갈만한 것은 좀 안 생겼으면 좋겠다. 사람 사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고 내 일만 집중할 수 있는 게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되돌아 보면 재능 부족 탓인지 모르겠지만 하려고 했던 일들이 뭔가 순탄하게 일이 진행된 것은 매우 드물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만들어 온 것들 하나하나에 (집착은 아니지만) 애착이 가고 만들어가는 과정이 순탄하지는 않더라도 되도록 방해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아무 방해가 없는 상황이라도 잘 모르는 길을 헤매면서 가는 것이다 보니 계속 헛발질하고 불필요한 고생을 하는 편이라서.. (지금도 그러고 있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누군가가 내가 지나간 길을 본받으려고 한다면 진심으로 말리고 싶다. 그런데 또 한편으로 보면, 언뜻 고생처럼 보이는 것도 나중에 보면 지금 뭔가를 하는데 도움이 되는 부분도 있다. 물론 그 고생 대신 다른 것을 했을 때 더 큰 도움이 되거나 차원이 다른 더 괜찮은 상황으로 갈 수 있다는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왠지 자기 위안 같은 느낌도 없지 않지만..
연구를 할 때도 이것 저것 찾아보는데, 어떨 때는 나중에 그것도 당장 내일이 개강이라 충분히 볼 시간이 부족해지기 시작할 때 오래 집중하고 싶은 좋은 읽을거리를 발견하고는 그거 좀 더 일찍 발견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잘하면 지금 논문 쓰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런데 처음부터 모든 길을 알고 가는 일은 없으니 이것도 살아가는 모습의 한 부분이겠거니 한다. 그렇게 헤매고 나면, 학생 때 그렇게 실감하지 못했던, '이미 누군가가 해 놓은 것을 아는 것'과 '아직 아무도 이야기하지 못했던 것을 찾는 것'의 차이가 강하게 느껴지게 된다. 전자에 비해 후자는 '시간과 노력의 투자 대비 결과'를 따지자면, 그다지 효율이 좋지 않다. 불안해지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과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이 실망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그리고 후자의 경우 모든 것의 책임은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 개별적인 논문의 잘못된 이해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연구의 방향이나 관점 혹은 철학까지 내가 선택해야 하지만 아무것도 보장된 것도 없고 확실하지 않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는 부류와 같은 취급을 받는다면 더 억울할 것이고, 그래서 뭔가 구분 짓고 싶고 뭔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자신이 뭔가를 하지 않고 남이 이미 해 놓은 것 뒤에 숨기만 하는 것은 겉으로는 보장된 이야기만 하니 똑똑해 보이고 자신이 연구에 대해서는 별 일을 하지 않더라도 많이 알고 있어서 언젠가 좋은 일을 할 것이라고 기대를 받을 수도 있지만, 불행히 많은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그런 숨는 사람 앞에서 뭔가 물리 이야기하는 것도 상당히 껄끄러워진다. 내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는데 괜히 의미 없는 평가만 받거나 듣는 사람이 '나도 물리를 하고 있고 연구의 최전선을 듣고 있다'는 허영 섞인 만족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쇼 이상의 의미가 없다면 정말 시간 낭비 같이 느껴져서.. 안 그래도 시간을 많이 아껴야 하는데 말이다.
어쨌건 내일부터는 또 다른 일상이 한동안 이어진다. 특별한 이벤트도 있고, 사실 그쪽이 더 신경이 가기는 하지만, 의외로 그쪽도 별로 얻을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뭐든, 절대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 20년 가까이 배워온 것 같다.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씁쓸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