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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테고리 없음 2026. 8. 12. 09:13

    날씨가 엄청 찌더니 이제 점점 식어가서, 적어도 열대야는 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맞겠지? 설마 9월에 열대야를 곁들인 늦폭염 오는 일은...) 그만큼 시간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는 거겠지 싶다. 어제 있었던 일 같은데 벌써 한 달이 지났네.. 싶은 일들이 많으니까.. 11월 하버드 방문건도, 초청 측에서 숙소 예약까지 갈무리해 줘서 이제 내가 준비하고 갈 일만 남았다. 세미나 발표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같이 이야기할만한 것들을 갖추는 것인데, 한번 날 잡아서 지난 1년 동안 생각해 오던 것들을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논문으로 발전하지 못한 망상들도 많은데, 다듬을 수 있는 것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 사이에 논문 거리가 생각나면 그거 가지고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고. 사실 일 진행되는 동안 나도 '정말 가는 건가? 혹시 그쪽에서 다른 사람으로 착각했으니 초청 취소하겠다는 연락 오는 건 아니겠지?' 하는 생각을 은연중에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군가는 imposter 증후군이라고 할지 모르겠지만 왠지 내가 아는 것은 그쪽에서 이미 알거나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과 더 가까이 있을 것 같고, 내가 봐도 내 논문이 아주 독창적인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러다 보니 정말 그쪽에서 초청한 게 진짠가 싶기도 하고, 혹은 가서 그닥 소득 없이 좋지 않은 인상을 주는 게 아닌가 걱정스럽기도 하고 그런 것이다. 그런데 또 생각해 보면, 모자란 점이 있을 때 어거지로 꾸민다고 덮어질 것도 아니고 실제보다 더 좋게 보이는 것이 나에게 정말 좋은 것도 아닌 것 같다. 문제는 그 모자라는 지점을 어떻게 보완할 것인가가 아닐지. 어차피 내가 그쪽에 가겠다고 한 것도 아니고 (정말 논문 쓴 것 빼고는 아무것도 안 했다..) 그쪽에서 먼저 초청한 것이니, 그쪽 입장에서 듣고 싶은 내 이야기가 있겠거니 하는 것이 속 편한 일이기는 하다.

     방문을 논의할 때, 그쪽에서 지도 학생이 있다면 한명 데리고 와도 좋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이론물리로 박사 과정을 하는 학생은 없으니 의미 없는 이야기이고. 있었다면 그 학생 입장에서는 좋은 기회였겠지만, 내 전공으로 박사과정 학생을 길렀을 때 그 학생의 미래를 (학문적이든 인맥적이든) 보장해 줄 수 있는 처지가 아닌데 무책임하게 받을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현실적으로 보더라도 대부분 대학원생들이 선생님들이라서, 수업할 때 잘 쓰지 않는 양자역학이나 상대론의 이론적인 면은 잊어버릴 수밖에 없으니 2년이라는 짧은 휴직 기간 동안 양자장론이나 일반상대론 혹은 그 너머의 초대칭 혹은 초끈까지 압축적으로 가르치는 것이 불가능에 가깝다. 혼자 모든 것을 가르치는 것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도 하지만 바람직하지도 않고. 한 가지 가능성이라면 스스로가 직장 생활의 고단함을 견디면서 혼자 어느 정도 공부하는 것이다. 처음 문제를 만나는 상황에서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서울대나 여기나 아주 다르지 않아서 제대로 체계적으로 가르치면 괜찮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은 교원대에도 상당히 많다고 생각한다. 다만 충분히 훈련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한 것이 문제일 것이다. 특히 남들이 한 것을 착실하게 공부하는 것을 스스로 뭔가 생각해 내는 것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서, 학생의 능력이나 의지뿐만 아니라 교수의 세심함도 같이 필요한 것 같다. 

     사실, 그것과 관련해서 스스로를 실험해 보고 있는 중이다. 교육대학원이라고, 교사 일을 병행하면서 방학 때 와서 수업을 듣는 식으로 운영하는 대학원이 있다. 그곳에 들어온 학생 중 학부 시절 내가 처음 교수 되었을 때 강의했던 역학을 들었던 학생이 있었는데 (그리고 그 이듬해에 양자역학도 들었고),  이론물리 쪽에 관심이 있어서 (설마 내가 영향을 미쳤나...-_-) 교사가 된 다음에도 조금씩 공부를 한 것 같았다. 그 정도 되면 어느 정도 공부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직장 생활이 쉬운 것도 아니고 시간이 많이 나는 것도 아닌데 시키지도 않고 꼭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계속 관심가지고 들여다본 것만으로도 기본적인 능력과 연구에 필요한 끈기는 어느 정도 있다는 뜻이니까.. 부족한 것은 따로 공부를 시키거나 연구를 하면서 메꿀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마침 양자장론을 처음 배울 때 같이 해 볼만한 문제가 하나 있어서 (교수되기 전에 해 보려고 했던 것인데 swampland 쪽으로 신경 쓰면서 미처 직접 해 보지 못한 것이다) 단계별로 과제를 주는 식으로 풀어보게 하는 중인데, 기대 이상으로 잘해주고 있다. 그래서 석사 논문을 그걸로 쓰는 것은 문제가 없는 것 같고, 어떻게 결론이 나올지는 잘 모르겠지만 잘 하면 학술지에 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중이다. 사람은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각자에게 가르치는 방식이 같으면 안 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만.. 지금 같은 경우는 책임감이 강하고 진지하기 때문에 굳이 기한을 강하게 정해 준다거나 끌고 가는 식으로 지도하는 것은 오히려 좋지 않은 결과를 줄 것 같다. 시야가 좁아지지 않도록 관련된 여러 이야기를 해 주면서 동기 부여를 해 주면 스스로 잘 관리해서 해 나가는 타입이니까.. 남은 것은 스스로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것을 찾아서 하는 재미를 느끼게 하는 것인데, 그건 본인이 계속 연구에 관심이 있으면 언젠가 스스로 성장통을 겪어가며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여하간 교육대학원이라는 특성상 계속 옆에 두면서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운데, 적어도 지금까지는 학생 쪽에서는 스스로 잘 시간 관리를 해 주는 것 같다. 그래서 문제는 내가 잘 유도해 주는 것이고... 그러다 보니 상당히 장문의 메일을 보내게 되는 것 같다..-_-ㅋ

     그런 일들과 별개로 나도 내 논문 쓸 거리를 잘 찾아야 하는데 이런 저런 일들이 겹치다 보니 쉽지 않다. 그래도 조금씩 알아보고 있는 중이고, 해 보면 괜찮지 않을까 싶은 것도 있는데, 항상 그렇지만 기대가 꼭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서, 해 보다 보면 별 것 아닌 것일 가능성이 높기는 하다.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낫다. 지금 당장 논문으로 안 나와도 언제 어떤 식으로 좋은 이야깃거리로 이어질지 모르기도 하고. 연구라는 것이 다 그런 게 아닐까 싶다. 지금 위대한 논문이라고 알려진 것도 항상 처음부터 주목받고 박수받은 것은 아니다. 표준모형이 대표적일 것이다. Gauge invariance의 양자화에 대한 이해가 70년대에 이루어지지 않았더라면 얼마나 주목받을지 확실하지 않았을 거라서.. 관련된 글을 예전에 본 적이 있는데, 작년에 

    The Rise of Particle Physics
    HiHEP 1 (2025) 2507.14275 [hep-p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2952268

    라고 여러 대가 분들이 입자물리의 역사를 회고한 글 모음집이 나온 적이 있다. 그 중 Alvaro De Rújula 선생의 When the Standard Model Was Ignored라는 글을 보면, S. Coleman 선생이 이 상황을 'Gerard’s kiss transmogrified Steve’s frog into an enchanted prince'라고 표현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까 't Hooft 선생이 gauge invariance가 있는 양자장론을 어떻게 재규격화 가능하도록 양자화할 수 있는지를 보임으로써 표준모형의 지위를 높여 준 일을 개구리에게 공주가 키스해서 왕자로 변하게 하는 동화 속의 한 장면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Coleman 선생 글들이나 이야기한 것을 들어보면 정말 뭐라고 해야 하나... 중립적으로 개그 날리는데 소질이 있다고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여담. 표준모형을 발견한 것으로 인정되는 분은 당연히 Weinberg-Salam-Glashow 세 분이다. 그중 A. Salam 선생은 관련 논문이 있는 것이 아니라 Nobel 심포지엄에서 발표하신 것이 인정받은 것인데, 옛날에 Salam 선생과 가까이 지내던 분이 그걸 비판하는 글을 써서 논란이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를 살아보지 않은 나는 어떻게 평가할 처지는 아니고...

    N. Dombey
    Abdus Salam: A Reappraisal. PART I. How to Win the Nobel Prize
    1109.1972 [physics.hist-p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926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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