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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생각 없이 괜히 아무 책이나 들춰보다가 Landau 양자역학책을 집게 되었다. 그러다가 번역자로 참여한+ Bell 부등식으로 유명한 J. S. Bell 선생 성함이 눈에 확 들어왔다. 서문을 보면 Bell 선생께서 단순히 번역만 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채게 된다. 번역을 Landau 책을 제대로 공부할 기회라고 생각했는지, 번역자였던 J. B. Sykes와 J. S. Bell 두 분이 저자인 Landau와 Lifshitz 두 분에게 많은 유용한 코멘트들을 오타 발견한 것과 함께 보내셨다고 한다. 사실, 번역과 관련된 이야기는 Bell 선생이 쓰신 'Against 'measurement''라는 글에 나온다. (이 분 글 모음집인 Speackable and unspeakable in quantum mechanicsdml 23번째 글이다.) 여기 보면 Landau 양자역학책을 측정에 대한 기존 양자역학책의 관점을 보여주는 첫 번째 예로 들고 있는데, 그 이유인즉슨, 1) 당연히 좋은 책이고, 2) 족보 있는(good pedigree) 책이라는 것 : Bohr 선생은 자신의 이론에 대해 체계적인 설명을 하는 글을 쓰지 않았는데 Landau 선생은 Bohr 선생 근처에서 일했으니 그 생각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거라는 것이다. 3) 본인이 직접 번역하면서 하나하나 다 본 책 (그래놓고 내가 이 책을 추천하는 건 번역자인 내가 돈 받는 것과는 아무 관계없다고 농을 던지신다..ㅋ)이라서..라는 이야기를 하신다. 예로 든 또 다른 양자역학 교과서 중 지금도 유명한 것은 K. Gottfried 선생의 책이다. 그 당시 초판이 나왔을 때는 1. Fundamentals라는 부제가 붙어있었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2판이 나와 이 부제가 지워진 지금 교보에서 이 초판을 팔고 있다...) 2권을 쓰려다 말았는지 아니면 편집상의 실수였는지 뭔가 이야기가 엇갈리는데, 아무튼 지금은 Drell-Yan process로 유명한 T.-M. Yan 선생과 같이 2판을 내셨고, 석사 시절에 Sakurai와 더불어 교재였다. 여담으로, 포닥 때 세미나차 Cornell에 갔었는데, 그때 머무르라고 내 준 방이 Yan 선생 연구실이었다. (연로하셔서 더 이상 출근은 안 하시지만 정년이 없어서 방은 그대로 있는 상황...) 그곳에서 증보판을 어떻게 쓸지에 대해 Gottfried 선생과 의논한 e-mail을 프린트한 것들이 책상에 놓여 있는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여하간 이 책이 좋은 이유라고 든 것이, CERN 도서관에 4권을 들여놓았는데 2권을 도둑맞았다는 사실이었다..ㅋ 그리고 이 책을 한번 이상 읽어보셨다는데, 뒤에 쓰신 이야기를 보니 내용이 꽤 꿀떡꿀떡 잘 들어오셨던 것 같다.
Bell 선생이 'Against 'measurement''에서 이야기하시려고 했던 것은 양자역학에 대한 Bohr 선생의 관점, 그러니까 여기도 여러 번 언급했지만, 우리가 기술하는 양자역학은 고전적인 관찰자가 기술하는 양자역학적으로 움직이는 물질이다..는 것이, 코펜하겐 해석의 불완전함을 암시한다는 것이었다.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 'For All Practical Purposes (FAPP)'라는 말을 꽤 비판적으로 바라보시는 것 같다. 그리고 Ordinary quantum mechanics is just fine FAPP.라는 코멘트는 덤이고. 말하자면, 양자역학적인 관찰 대상과 고전역학적인 측정 도구를 분리하곤 하는데, 측정 도구마저도 원자로 이루어져 있는 상황에서 그걸 그렇게 칼같이 자르는 게 말이 되냐는 것. 충분한 정확도로..라고 단서를 달기는 하고, 실험에 대한 예측 및 확인을 하는 것에는 지장이 없지만, 이론의 완결성 입장에서는 많이 부족하다는 것이겠지 싶다. 어떻게 보면 Shut up and calculate 정신이 충만한 실용주의의 극치였던 미국 학계에서 다소 벗어난 영국 물리학자가 할 수 있었던 진지한 문제의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Shut up and calculate라는 말을 누가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꽤 재미있다. 보통 Feynman 선생으로 알려져 있는데, 일단 이미지 상 그런 말을 할만한 유력한 분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남은 기록으로는 비슷한 뉘앙스의 말은 했어도 정확히 이 말을 한 적은 없다고 한다. 공식적으로 이 말을 처음 쓴 분은 사실 N. W. Ashcroft 선생과 함께 유명한 고체물리 교과서를 쓰셨고, 상대성이론의 교육에 대해서도 굵직한 업적을 남기신 N. D. Mermin 선생이시다. 고체물리와 상대론의 조합이 좀 생경스러울 수 있는데, 1911년 V. Ignatowski 선생이 이야기한, '공간이 균일하고 등방적일 때 관성계 사이의 가장 일반적인 변환은 Lorentz 변환이라서, 광속 불변의 법칙을 공리로 쓸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우리가 현재 이해하는 쌈박한 버전으로 정리하신 분이기도 하다 :
N. D. Mermin,
Relativity without light
Am. J. Phys., 52, (1984) 119
https://doi.org/10.1119/1.13917
Shut up and calculate에 대한 이야기는 이 분이 직접 쓰신 Physics Today 기고문 ( https://physicstoday.aip.org/opinion/could-feynman-have-said-this ) 참조.
여하간, 호기심이 생겨서 Landau 양자역학책 앞부분을 좀 보았다. 일단, 미국의 실용주의와는 결이 다르지만 (유물론의 영향일 것이다...) 철학적인 면을 배제하고 철저하게 실험적인 사실들 : 안정된 원자, 물질까지 적용되는 입자와 파동의 이중성, 간섭 무늬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사실 그래도 Landau 선생은 중요한 철학적인 원칙을 하나 가지고 계셨다. 다름 아닌 대칭성.. 유명한 고전역학책을 보면 이 분도 effective theory 개념을 어느 정도 가지고 있으신 듯 보인다. 사실 Feyman 물리학 강의를 보다가 비슷한 뉘앙스를 느낀 적도 있긴 하니 그 당시 대가들의 공통된 생각이었을지도...) 그리고 바로 나오는 단정적인 문장 "원칙적으로, 기본적인 양자역학의 개념은 Newton 역학을 배제하고는 만들어질 수 없다" (It is in principle impossible, howerver, to formulate the basic concepts of quantum mechanics without using classical mechanics)이 눈에 들어온다. (의식하고 보니 당연한 걸지도..-_-) 뒤이어 나오는 이야기를 요약해 보자면, 양자현상을 정량적으로 기술하는 것은 고전적인 언어로 가능하고, 측정(measurement)은 양자역학적으로 행동하는 물질이 충분한 정밀도 (이런 단서가 Bell 선생이 언급한 FAPP일 것이다)를 가진 고전역학적 장치(appratus)와 상호작용을 할 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결과를 내놓을 것이라는 것.
어떻게 보면 지금은 그 관점을 벗어나려는 Bell 선생께서 뿌리신 씨앗이 상당히 자라 있는 상태이다. Decoherence에 대한 연구들이 이어진 것도 그렇고, 요새 연구 하다 종종 보는, '우주론의 양자중력=열역학적 기술을 위해 관찰자의 존재를 넣어야 한다'는 이야기들도 그렇고.. 생각해 보면, 그렇게 눈길을 끈 일이 없다 뿐이지, H. Everett III의 다중 우주도 고전역학을 뺸, 관찰 과정까지 포함한 보다 완전한 양자역학적 기술을 위한 시도였다. 지금 사람들이 생각하는 공상과학적인 망상이 아니라, 나올 수밖에 없는 이론적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당대부터 많은 비판을 받아서, 관련된 뒷이야기도 있다. Everett 선생의 지도 교수는 다름 아닌 J. A. Wheeler였다. 학생의 의견이나 개성을 최대한 존중해 주는 이 분이 지도교수였기에 나올 수 있었던 아이디어인 면도 있는데, 사실 Wheeler 선생이 중간에 끼어서 고생 좀 하셨다고... 다중우주에 아주 적대적었던 Bohr 선생에게 그래도 좀 더 호의적인 반응을 얻기 위해 코펜하겐을 방문했지만 별 소득이 없었고, 결국 학계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나름 절충안을 에버렛 선생에게 제안하기도 했는데, 에버렛 선생은 그 과정에서 물리학계로부터 마음이 떠났는지 무기개발 쪽으로 진로를 바꾸셨다고 한다.
지금은 양자역학의 근본을 묻는 것이 Bell 선생 때보다 훨씬 관대해졌고 (오죽 하면 Bell 부등식으로 노벨상을 받은 A. Aspect 선생이 처음 Bell 선생에게 그 분의 연구에 관심 있다고 접근했을 때 Bell 선생 반응이 당신 안정된 직장 있으신지? 였으니...), 그게 가능한 것은 사변적인 논챙이나 주장 이상의, 실험적인 논의가 가능해진 상황과, 양자중력을 통해 양자역학의 기본적인 면을 좀 더 이해하려는 시도가 맞물렸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의 관점은 계속 달라지니 나중에는 어떤 이야기로 발전할지, 상황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내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