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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 연구에서 '감'을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연구를 하거나 물리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제대로 논리적인 설명을 하기는 힘들지만 뭔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나중에 보면 어떤 것은 실제로 문제가 있을 때도 있고, 또 어떤 것은 내가 너무 편견을 가졌기 때문에 잘못 본 것도 있는데, 다행히도 전자가 좀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논문 쓸 때 뭔가 불안하면 그게 나중에 문제로 터지더라... 사실 논리적으로 문제가 없다고 해도 이걸 논문으로 쓰거나 내가 정말 기억해야 할 것으로 생각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떤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고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자연스럽지 못하다고들 하는 것들이 있는데, 실제 자연에서 일어날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편견의 결과일 수 있고, 실제 과학의 역사에서 사람들이 심미적인 이유만으로 거부했던 것이 나중에 알고 보니 여러 현상을 아주 잘 설명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결국 '아름다운 것'이나 '자연스러운 것'의 기준이 그걸로 바뀌게 되는 일도 꽤 많다. 여하간 기계적인 계산을 하고 난 다음 틀린 것 없으니 맞는 게 아닌가요? 하고 빤히 쳐다보는 것만으로 논문이 되는 일은 거의 없다. 해석을 해야 하고, 여기서 무엇을 이해해야 할지, 다음 단계가 어떤 것인지를 이야기해야 하는데, 결과가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면 혹은 결과 자체의 설득력은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것이 다르다. 그러다 보니 물리에서 나오는 많은 결과는 그것을 발견한 사람의 것이 아닌 일이 일반적이다. 발견한 사람이 미처 잡아내지 못한 해석이 있고, 이게 오히려 더 간단해서 본질적으로 보이거나 쓸모 있게 되는 경우는 양반이고, 발견한 사람이 싫어하는 이야기가 아이러니하게 그 일로부터 나오는 경우도 많다. Einstein 선생이 처음에 우주 팽창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black hole의 존재에 대해 회의적이었던 것은 유명하지만, Einstein 선생을 위시해서 de Broglie와 Schr\"odinger 등 양자역학 1세대 분 들이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결국 양자역학의 발전에서 손을 떼게 된 것도 비슷한 맥락인 것 같다. 이론물리학자들 같은 경우는 특유의 '고집'이 있는데, 그게 때로는 다른 사람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뚝심 있게 밀어붙여서 중요한 발견을 하도록 하지만 또 어떨 때는 완전히 뒤처지고 고립되도록 만들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것이 맞는 것인지를 그 당시에 판단할 절대적 기준이 없는 것일 게다. 그런 게 있으면 물리의 역사에서 일어난 다양한 드라마는 없었을 거라서... 어떤 물리학자가 A는 강하게 주장하고 B는 싫어했지만, 결국 A와 B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 경우를 생각해 보면... (Galilei 선생이 지동설은 믿었지만 타원 궤도는 안 믿은 것처럼...) 이게 좀 환장하는(?) 상황인데, A가 맞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야 먼 훗날 이야기이고, 그 당시에는 어떤 식으로든 A가 설득력이 있는 것을 보여야 했지만, B라는 필수 요소를 거부한 탓에 제대로 된 설명을 못해서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거나 불행한 삶을 사는 일도 있다.
결국, 특정 지식, 혹은 특정 사람이 한 모든 이야기에 대한 무조건적인 믿음이나 숭배보다 이게 무엇을 가정하고 있는지, 혹은 어디서부터 나왔는지를 파악하고 여기서 어떤 논리가 나왔는지를 스스로 납득하는 것이 과학에서 중요하다..는 어찌 보면 낡은 교훈을 다시 보게 된다. 낡았지만 어느 시대건 어느 순간 쉽게 간과되는 것이다. 상식적인 것이 가장 현실화하기 어렵기는 한데... 특히 가정 같은 경우는 논리 너머의 주관적인 문제인지라 그걸 이야기하는 사람의 '감'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은 경우가 꽤 많다. 그래서 열린 자세를 많이들 강조하는 것이겠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 열린 자세라는 말 이면에는 다른 사람의 주장을 잘 듣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만 하는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들어줘' 혹은 '가치 있다고 인정해 줘'라고 떼쓰는 심리가 담겨있기는 하다. 그래도 그 주장 중에는 어쩌다 맞는 이야기가 있기도 하니 지금까지 생명력이 있는 것이긴 하지만, 그게 모든 그런 주장이 맞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은 또 아닌지라... 어떻게 보면, 그런 미묘함이 근대 이후 과학 지상주의... 그러니까 과학이 가장 이성적인 학문이라는 인식, 그리고 백마 탄 초인을 바라는 심리... 그러니까 모든 것을 깨달은 신과 같은 존재가 신탁을 내리듯 뭇사람들이 못 푼 문제를 단순한 한두 마디로 정리하는 드라마에 끌리는 인식과 결합해서 과학에 대한 미묘한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리고 과학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사람들도 그런 인식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너무 쉽게 단정 짓고, 자신의 경험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생각해서 모든 것에 적용하려고 하기도 한다. 권위에 약하고 집단의 의견에 올라타려고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뒤에 누가 있는지에 따라 엄격함과 너그러움의 기준이 바뀌는 면도 많다. 그러면서 연구의 대세에 과하게 적대적이거나 반대로 과하게 순응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행동은 정반대지만 심리는 꽤 비슷해 보인다.
그런 거창한(?) 이야기와는 별개로, 논문을 쓰다보면 무엇을 계산해야 할지, 혹은 계산 결과를 어떻게 풀어내서 다음 이야기로 넘길지 고민할 때 '감'이 생각보다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계산만 별생각 없이 따라가다 보면 말도 안 되는 결론을 얻기도 해서.. isometry만 깨지고 diffeomorphism invariance는 멀쩡한데 graviton이 질량을 가질 수는 없지 않은가? 등가원리는 어쩌고....-_- 그런데 isometry를 깨서 metric fluctuation과 vector, scalar fluctuation들이 합쳐져서 gauge invariant operator를 만들 수 있는 것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당연히 그거 가지고 graviton 질량 이야기할 수 있어요..라고 쓰면 안 되는데, 가끔 그런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논문도 있다. 실제 diffeomorphism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어떤 것이 문제인지 알 수 있기는 하다. 그리고 아는 사람은 다 아는 것이라서, 나도 처음에 논문을 읽기만 했을 때는 이게 뭐지 싶었는데, 알고 보니까 Misner-Thorne-Wheeler의 Gravitation책에 모든 단서가 다 들어있었다.
어떨 때는 그런 '감'이 편견이 되어서 필요 이상으로 돌아가게 만드는데, 또 어떨 때는 맞는 방향이라서 그렇게 헤매도 결국 그 결론으로 가는 일도 있다. 그리고 두 가지 면이 충돌하는 일도 있다. 두 개의 '감'들이 있는데 하나는 맞고 하나는 틀릴 때... 그러니까 여러 사람들이 역사속에서 헤매는 그 복마전에서 나도 예외는 아닌 것이다. 내가 계속 무엇인가를 알고 싶어 하는 한 계속 겪게 될 것이고. 그런데 그게 한편으로는 불편하지만 (틀린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계속 가지고 있다는 게 막 기분 좋지는 않은지라...) 또 한편으로는 뭔가 안 죽고 살아있다는 느낌,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아직 물리학자로서 '고갈'되지는 않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역설적으로 안도감을 주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