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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51009
    카테고리 없음 2025. 10. 9. 04:54

     연휴 초반부터 한동안 비가 계속 조금씩 오다가 어제부터 맑아졌다. 오랜만에 서울 나들이를 했는데 사람들이 정말 많아서 기 빨리는 느낌이었다. 조용한 교원대에 너무 적응한 것이려나....-_-  추석 연휴 동안 국립현대미술관을 무료로 들어갈 수 있어서 한참 둘러보았는데 여기도 사람이 꽤 많았다.

      교보문고를 가 보니까 예전보다 양자장론 책이 많아졌고, 한국에도 많이 들어와 있는 것이 실감 났다. 책들을 비교 좀 해 보면 좋은데 요새는 다 포장해 놓아서리... 여하간 확실히 내가 학생 때보다 지금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많은 기회가 생긴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양자장론만 해도 저자의 전공이나 관점에 따라서 서술 방식이나 강조하는 것이 꽤 차이가 나는 편이라서, 뭔가 촉이 안 맞으면 잘 들어오지 않는다. (사실 정도가 덜 심해서 그렇지 학부 교재들도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다. 교과서란 원래 스스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도록 훈련하는데 중요한 보조 수단이지 모든 것을 담고 있어서 그것만 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마술상자가 아니다.) 한때 양자장론 교재로 가장 인기가 많았던 Peskin & Schroeder가 하필 나와 상성이 맞지 않아서 고생 좀 했던 기억이 난다. 정확히는 내가 머리가 안 좋은 탓인 것 같긴 하지만... 어떤 개념이 등장했을 때 이런 것이 있구나.. 하고 즉각 받아들이고 그거 가지고 뭔가 계산해 가면서 이해하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나는 이게 왜 나왔는지에 대해 잘 납득이 가지 않으면 쉽게 잊어버리고 계산을 해도 손이 잘 안 나가는 쪽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Dirac 방정식은 모두들 배웠으니까.. 하고 식이 뚝 나와버리니까 꽤 난감했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봐도, Dirac 방정식을 얻는 과정이 그렇게 생략될 것은 아닌데 싶기도 하다. 처음 Dirac 선생이 (무덤까지 가지고 간) 그 방정식을 만들었을 때 가지고 있던 문제의식이 지금 양자장론을 보는 방향과 같지 않기 때문이다. Klein-Gordon 방정식에서 음의 energy가 나오니까 그 원인이 Klein-Gordon 방정식이 energy의 제곱을 담고 있어서가 아닐까 해서 1차 미분방정식을 만들어 본 것이고, 그래도 여전히 음의 energy가 나와서 Dirac 바다 같은 개념을 생각해 내고 등등을 한 것이긴 하지만, 사실 Lorentz group의 representation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정리된 지금 입장에서 보면 굳이 그 과정을 일일이 겪지 않아도 충분히 설득력 있게 Dirac 방정식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그게 더 좋은 것이, Dirac 방정식이 처음 나왔을 때 몰랐던, 약한 상호작용의 chirality의 경우 Lorentz group의 representation을 통해 Weyl spinor를 이야기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것이 보다 자연스럽다. 약한 상호작용의 chirality가 표준모형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그쪽이 더 의미심장하기도 하고. 애당초 초끈이론이나 고체물리를 하다 보면 4차원이 아닌 환경에서 fermion이 어떻게 기술되어야 하는지를 다루어야 하는데, Lorentz group의 algebra를 Clifford algebra에서 얻을 수 있고, 이 점이 Lorentz group representation의 기본 단위가 spinor라야 하는 것과 연결됨을 이해했을 때 좀 더 잘 접근할 수 있다. 실제로 내가 그런 방향에서 본 접근법을 제대로 배우게 된 것은 초대칭 공부할 때였다. Generator가 spinor다 보니 모르고 넘어갈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charge conjugation 같은 경우는 역사적인 맥락으로 전자기전하에 주목하기 쉽지만, 사실 전하가 없는 것들 역시 반입자를 정의할 수 있는데, (심지어 중성 meson인 Kaon은 반입자가 따로 있다.) 이건 charge conjugation 개념 자체가 특정 상호작용과 무관한 Lorentz group 자체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이런 점들이 4차원 특수상대론적 양자장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좀 더 명확하게 드러나는 면이 있다. 결국 초기 양자전기역학에서 풀던 것과 지금 표준모형 더 나아가서 고체물리나 초끈이론에서 푸는 것이 다를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당시에는 간과했거나 제대로 깨닫지 못한 것들이 지금은 명확해진 경우가 많다. 단순히 Dirac 방정식이 뭐다... 는 것을 아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걸 바탕으로 생각하고, 지금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한 목표인 이상, 현재의 관점에서 이걸 할 수밖에 없는 충분한 동기 부여를 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아닌지, 요새 나오는 양자장론 책들을 보면 확실히 그런 면들이 점점 강조되고 있기는 하다.  

     돌이켜 보면, 내가 학생 시절에는 LHC가 돌아가기 직전이었고, 그래서 대학원생을 교육할 때 되도록이면 빠르게 실제 논문에 들어갈 수 있는 뭔가를 당장 계산하게 하는 것에 방점이 찍혀 있었기에 책들도 그런 필요를 반영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LHC가 중요하다고 해서 영원히 그런 것이 아니고, 단순히 대학원생 때 배운 것을 적용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좀 더 다른 것을 생각해서 이후 물리가 어떻게 나가야 할지를 고민하고 대비해야 하는 것이 물리학자의 중요한 역할이라는 점에서 보면, 개념적인 것이 너무 약한 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개념이라는 것이 책에 적어놓은 대로 줄 치고 외운다고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실제 문제를 풀어보고 손에 익었을 때 겨우 하나씩 건져지는 것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이라면 굳이 드러내지 않을 이유는 없을 것 같다. 안 그래도 업계에 암묵적으로 통하는 지식 같은 것들이 있고, 그것에 접근할 수 있는 정도에 따라서 격차가 생기는 상황인데 말이다. 어쨌든 존재하는 지식인 이상, 원칙적으로는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부터 스스로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한다... 고 하면 정말 할 말이 없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단 받아들이고 남들이 안 한 계산을 해야 한다. 이해하고 있는지 고민하는 것은 낭비다. 논문이 나오면 그게 바로 이해한 것이다'라는 말은 학생 때부터 숱하게 들었지만, 그렇게 하면 같이 논문을 쓰는 사람이 없거나 제대로 생각하고 있지 않는 경우 (그러니까 혼자 논문을 써야 하는 혹은 그것에 가까운 상황에서) 무엇을 계산할지, 내가 제대로 된 계산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연구 분야가 호황기라거나 경험이 많고 학계에 권위가 있는 사람 혹은 집단과 가깝다면 어떻게든 그렇게 논문이 나오지만, 연구 인생이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그리고 교수가 되면 많은 경우 학문의 중심지와 거리가 생겨서 정보 격차를 감수할 수밖에 없고, 교수까지 되어서 남의 포닥 노릇을 하는 것도 문제라서,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연구 방향을 결정해야 하는데 그 상황에서 연구 분야가 호황기가 아니기까지 한다면, 그때 그 사람의 밑천이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 같다. 그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방향을 잡고 연구를 하려는 사람과 그렇지 않고 손을 놓거나 계속 어딘가에 종속되려는 사람의 차이가 분명해지는지라... 그럴 때 스스로 연구를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만들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 혹은 평가만 하려는 사람들이 본받을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럴 시간이 있다면 책이나 논문 하나 더 읽는 것이 생산적이지 않을까.

     예전에 William Broad와 Nicholas Wade의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 (Betrayers of the Truth)이라는 책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런 구절이 있다. 

     "누군가와 공동으로 과학연구를 하려고 하면 어느 정도 상대방을 신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일을 혼자서 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이것은 누구나 도처에서 직면하는 문제이다. 누구를 막론하고 남의 일로 괴로움을 당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자신의 일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학이라는 자리에는 이와 같은 태도가 허용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학은 교육의 장이고, 박사 과정은 적절하게 연구를 하는 방법을 배우는 장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곳에 적절한 지도라는 것이 결여되어 있다면 연구 업계 전체에 무엇인가 잘못이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한 일이 정당한 평가를 받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업적이 늘어나면 그것으로 만족해했고, 업적밖에 추구하지 않았다. 그들은 업적을 늘리는 동시에 박사학위를 얻기 위해 필사적으로 일하는 인간이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이 책이 내가 태어날 무렵 나왔는데, 지금 나온 책이라고 해도 어색함이 없다. 그리고 점점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는 점이 다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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