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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부터 뭔가 이건 좀? 이라고 생각했던 것 중 하나가 물리 심지어 이론물리 하는 사람들마저 철학의 가치를 (필요 이상으로) 그다지 높게 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박사가 괜히 'Philosophiæ' Doctor가 아님에도... 사실, 물리학자와 철학자들이 똑같이 물리 이야기 예를 들어 양자역학이나 상대론 같은 걸 이야기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이론의 기본적인 구조 혹은 관련된 쟁점들에 대해서는 주변 물리학자들의 이야기 혹은 책이나 강연 (이건 대중성을 감안하면 어쩔 수 없는 면이 있긴 한데...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뜻 드러나는 이건 가장 완벽하고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니까 한수 가르쳐줄게 같은 생각 같은 걸 보면)를 떠올려 볼 때 딱히 과학철학 하는 사람들보다 나은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질적으로 떨어지는 경우도 꽤 많다. 물리학자라고 하더라도 일단은 자신의 전공에 해당하는 세부 분야에 집중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문제에 무지한 경우가 아주 많고, 심지어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거나 아주 오래 전의 관점을 고수하기도 하니까.. 철학자들의 이야기들을 몇 가지 보면, Stanford에서 만든 철학 백과사전에 나오는 양자역학 항목은
https://plato.stanford.edu/entries/qm/
솔직히 좀 다듬어서 학부에서 양자 처음 배우는 학생들에게 보여줘도 괜찮은 것 같다. 이 홈페이지는 예전에 일반상대론의 gauge invariance에 해당하는 general coordinate transformation에 대해서 좀 뒤져보다가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pacetime-holearg/
https://plato.stanford.edu/entries/spacetime-holearg/gauge.html
이걸 통해 알게 된 건데 제법 설명이 괜찮고 잘 생각해 보지 않은 것도 짚어주는 면이 있어서 가끔 들려서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고 Pittsburgh 대학에 매우 큰 과학철학 그룹이 있는데, 이쪽에서 나오는 이야기도 꽤 볼만했다. 예를 들어
https://philsci-archive.pitt.edu/22650/
라거나... 보고 있자면 그냥 양자역학책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근데 이제 인식론을 곁들인....ㅋ
과학철학이 100년전 이야기만 다룬다고 생각하면 그것도 오산이다.
https://philsci-archive.pitt.edu/24402/ 이건 Hawking 복사 이야기
https://philsci-archive.pitt.edu/9061/ 이건 AdS/CFT 이야기...
철학 이야기를 한다고 하면 사변적인 이야기만 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엄연히 인식론이나 논리학 역시 철학의 영역인지라, 어떤 면에서는 물리학자가 같은 문제를 다루는 것에 비해 까다로운 면도 있다. 관심사나 연구 프로세스가 다르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라서 어느 쪽이 꼭 낫다 못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실질적인 계산을 배제한 채 사변적인 논쟁만 하는 것은 적어도 아니고... 주변을 보다 보면 물리 하는 사람들 중에 자신의 일에 대한 애정이 도가 지나쳐서 과학지상주의 혹은 과학 제일주의로 빠지는 경우도 있고, 자신이 하고 있는 것이나 자신이 하는 생각이 가장 좋은 것이고 그걸 고집하는 것만이 과학적인 신념이 있는 것이라서 그게 없는 사람보다 우월하다는 인식을 가지는 사람도 있는데, 과학의 본질이 회의와 이성적 사고, 자기 스스로에게도 비판을 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보면 오히려 과학을 하는 자세에서 벗어나는 감이 있다. 굳이 느낌을 이야기하면 어렸을 때 자신이 잘 하는 것으로 칭찬받고 귀히 여겨지곤 했을 때 가졌던 심리가 어른이 되어서 성숙하지 못한 채 이상한 우월감으로 남아있는 것 같은...? 같은 대상을 다른 관점에서 보는 존재가 있다는 것은 내가 어디에 있고 정말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과학철학의 여러 면들은 꽤 흥미 있어 보이는 면이 있다. 직접 들어가서 연구하지 않는 외부인이기에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다고 깊이가 없지는 않고 적어도 핵심 정도는 꽤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냉철하게 짚어주는 면이 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보고 있으면 최신 이슈들도 아주 잘 따라온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전문가집단이 가지는 한계를 물리학자 스스로도 어느 정도 인식한다는 느낌은 있다. 종종 자신이 단순히 한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라 세상의 이치를 이야기할 수 있고, 예를 들어 양자역학의 철학적 의미도 고찰할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그런데 대체적으로 보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연구능력이 떨어진 상황에서 자신이 가지는 신념을 포장하려는 수단으로 철학을 이용하는 느낌도 든다. 철학적으로 보이는 뭔가를 장식으로 쓰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철학 전공자와 이야기해 본 결과 얻은 결론은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는 대체로 깊이가 얕다는 것이다. 본질적인 질문보다는 자신의 시대에 한정된 정신을 계속 회의감 없이 고집하는 느낌이라서. 혹은 스스로를 '이치를 깨달은 사람'의 지위로 놓고 자신이 생각을 설득하려는 것이 아니라 지위를 이용한 권력 행사를 하려는 것 같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반대하면 제대로 뭔가 모르는거야..라는 식으로 나오니까 말이다. 실제로 그런 태도를 보인 유명한 분들을 겪고 나서 꽤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처음에는 반짝반짝 빛나보였는데 알고보니 모조품이 아닌가 하는 느낌? 철학자든 과학자든 학자집단과 대화를 하고 그 과정에서 고치고 다듬어야 하는데, 자신의 생각은 이미 완성된 뭔가라서 그저 고집하는 것이 신념이 있는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반면 진지하게 과학철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물리 연구하는 사람들의 생각이나 이해를 같이 따라가고 그것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일이 많다. 그쪽도 한계가 있고 이상한 사람은 존재하겠지만, 정도를 걸으면서 뭔가를 생각해 내려는 사람 역시 존재하겠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과학자' 다운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꽤 자주 든다. 어느 경우든, 자신이 제대로 생각해 보지 않은 영역마저 잘 이해하고 있고 책임감 없이 일방적인 주장을 할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만이고 비전문가적인 행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