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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를 보다 보면 다른 맥락이지만 같은 수학적 구조를 가지는 것들을 흔히 볼 수 있다. 아주 잘 알려진 것이야 특정한 경계조건을 가지는 편미분방정식이 전자기 유체 파동 양자 할 것 없이 여기저기 나타나는 것이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수학적 구조의 유사성이 이론의 구조 자체를 건드리는 쪽에 관심이 갈 때가 있다.
학부 시절 양자역학을 배울 때, Dirac 선생이 양자역학의 구조를 정립하는 과정에서 operator들 사이의 commutator가 고전역학의 Hamiltonian mechanics의 Poisson bracket과 같은 구조를 가졌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는 점이 꽤 재미있게 들렸다. 처음 Poisson bracket이 만들어졌을 당시에는 양자역학 자체는 아예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뭔가 기묘한 느낌까지 들었다. 이걸 어떻게 이해하면 좋을지 나름 고민했었는데, 결국 canonical 변환이 가지는 구조가 중요하지 않았나 싶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보면, 동역학을 기술하는 canonical conjugate (q, p)를 변환해서 새로운 conjugate (q', p')을 만들더라도 원래의 (q, p)에 대해서 {q' p'}=1이 되는 변환이 canonical 변환이다. Hamiltonian 변환에서는 canonical 변환을 일반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generator G(q, p)를 도입해서, canonical 한 (연속적인) 미소변환은 일반적으로 q'=q+\epsilon {q, G}=q+\epsilon \partial G/\partial p, p'=p+\epsilon {p, G}=p-\epsilon \partial G/\partial q로 적을 수 있다고 하는데, G가 p라면 공간에 대한 병진변환 (spatial translation), 각운동량이라면 회전, Hamiltonian이라면 시간에 대한 병진변환의 generator에 해당하게 된다. 고전역학의 세계관에서는 1) 시간과 공간이 분리되어 있고, 2) 아무 물질이 없는 빈 공간은 (이건 일반상대론으로 가기 전까지는 별 문제 없이 가정할 수 있다.) 균일하고 등방적이기 때문에 공간의 어느 점을 원점으로 잡으나, 어떤 방향을 x 축으로 잡으나, 어느 시점을 원점으로 잡으나 물리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다. 정확히 그 이유 때문에 동등한 관성계 사이의 변환, 즉 공간/시간에 대한 병진'변환' 혹은 회전'변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고, 그 변환의 generator에 해당하는 물리량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사실 특수상대론으로 가면 공간과 시간의 균일성이 합쳐지는 것밖에 없기 때문에 여전히 시공간의 병진변환은 중요하다. 회전이 Lorentz 변환으로 확장될 뿐...) 특히나 canonical 변환에 대하여 Hamiltonian이 불변이라서 변환 전이나 변환 후나 dynamics가 같다면 그 변환에 대하여 Hamiltonian은 대칭성을 가진다고 하고, 이때 Noether의 정리 즉 generator의 보존을 이야기할 수 있다.
통상적인 고전역학 교과서에서 처음 운동량과 energy 등을 도입하는 과정은 귀납적인 면이 있다. 처음 운동량은 관성의 크기를 정량화하기 위해 나타났다. Energy는 일(=운동 energy의 변화량)에서 시작되어 potential로 나타낼 수 있는 특정 힘의 경우 보존된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다가 동역학의 대상이 입자 뿐만 아니라 장(field) 등으로 확장되어 열이나 빛 소리 등에도 energy와 운동량 개념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보존 법칙이라는 큰 틀에서 운동량, 에너지, 각운동량을 다루게 되었다. 그렇다면 가장 범용성 있는 운동량, 에너지, 각운동량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가? 즉 고전역학을 연역적인 관점에서, 즉 공리적인 체계로 정리한다면 무엇을 운동량, 에너지, 각운동량의 정의로 삼아야 하는가?라고 할 때, 결국 변환의 genetator로 정의하는 것이 가장 좋아 보인다. 시공간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여 존재할 수밖에 없는 변환에 관계되어 있고, Noether의 정리는 어떤 경우에 이 물리량들이 보존되는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다시 양자역학을 보면, 이건 고전역학과 다른 세계관을 가진다. 확률론적인 세계관이니까.. 그렇긴 한데, 시간에 따른 상태의 변화를 기술하려면 여전히 시공간을 의식해야 하고, 그 안에 있는 동등한 관찰자들 사이의 변환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공간/시간의 병진변환 및 회전의 generator들을 정의할 수 있다. 물론 양자역학으로 세상을 기술한다는 것은 미시세계부터 거시세계까지, 말 그대로 삼라만상을 모두 양자역학의 언어로 이야기해야 한다는 것이고, 고전역학의 존재를 신경 쓸 이유는 없다. 그래서 고전역학을 의식하지 않는 양자역학을 이야기한다면 일단 상태의 선형성과 확률적인 세계관에서 출발해서 시공간에 대한 인식의 결과 나타날 수밖에 없는 공간/시간의 병진변환 및 회전의 generator들이 어떻게 생겼는가를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고전역학에서의 운동량/각운동량, 에너지(좀 더 엄밀하게는 Hamiltonian)와 generator라는 '역할'이 같기 때문에 같은 이름으로 불리울 뿐이지, 고전역학에서 그걸 정의했든 안 했든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실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spin 각운동량의 존재일 것이다. 고전역학에서의 각운동량은 운동에 의해서만 생기는 orbital 각운동량뿐이지만, 양자역학 입장에서는 회전 group의 representaton을 이야기하다 보면 spin 각운동량 역시 엄연히 회전의 generator가 될 수 있고, 따라서 의미 있는 물리량이 된다. 보통 양자역학을 처음 배울 때 익숙한 고전역학에서 출발하고, 고전역학에서 관심을 가지는 위치와 운동량을 이야기하는 '파동함수'에만 신경 쓸 때 놓치기 쉬운 것이다. 그리고 같은 이름을 쓰기 때문에 고전역학을 더 의식해서 양자역학 자체의 세계관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잊기 쉽기도 하다. 그래도 같은 이름을 쓰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거시세계 즉 Planck 상수가 0에 가까울수록 양자역학에서 정의된 공간/시간의 병진변환 및 회전의 generator들은 고전역학에서의 운동량/각운동량, 에너지와 거의 같은 행동을 보인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고전역학의 Hamiltonian dynamics에 나오는 canonical 변환은 양자역학의 어떤 것에 '대응'되는가? 사실 generator를 제대로 이야기하려면 고전역학에서의 canonical 변환에 해당하는 어떤 변환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인데, 다름 아닌 unitary변환이다. 실제로 X와 P를 변환해서 U^\dagger X U, U^\dagger P U 로 나타내어도 여전히 이들의 commutator가 i \hbar가 되려면 U는 unitary라야 한다. 미소변환의 경우 U=I-i/\hbar G 이런 식으로 나타낼 때 G는 측정가능한 물리량과 관련된 (즉 실수 eigenvalue를 가지는) Hermitian이고, 변환이 공간/시간의 병진변환 및 회전으로 주어질 때 G는 다름 아닌 영자역학적인 운동량/각운동량, energy(Hamiltonian)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보통 불확정성 원리의 operator version에 해당하는 [X, P]=i\hbar는, x-basis에서 P가 x에 대한 미분으로 나타내어진다는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P는 X 병진변환의 generator라는 것을 이야기해 주는 것이고, 이걸 양자역학에서의 운동량의 '정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범용성 있는 관점에서 보면, 내가 dynamics를 알고 싶은 모종의 물리량이 있을 때, 이것의 병진 변환 generator에 해당하는 것을 해당 물리량의 운동량이라고 정의하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time-dependent Schrodinger 방정식 (time-independent Schrodinger 방정식이야 그냥 Hamiltonian의 eigenvalue 문제이고...) 은 Hamiltonian을 시간 병진 변환에 대한 generator로 정의한다는 이야기와 그냥 같은 것이다. 이게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를 가져야 하는지는 별개의 문제이고 (Newton역학에서 운동 법칙을 통해 힘을 이야기할 때 힘의 구체적인 형태를 정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고전역학에서 대응되는 energy를 끌어 쓸 수도 있지만, 그래야 하는 법은 또 없다. 모든 양자역학적 계가 고전역학과 같은 식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니고 spin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다른 항이 들어와도 전혀 이상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hbar가 0으로 가는 상황에서는 고전역학과 같은 행동을 보여야 하기 때문에 일단 이 구조를 끌어 쓰고 완벽한 양자역학적인 표현은 여기에 hbar 보정이 붙는다고 생각할 수는 있다. 이렇게 보면, unitarity는 양자역학의 꽤 중요한 원칙이라는 것이 새삼 느껴진다. 관찰자에 따라 같은 상태를 보더라도 물리량의 후보값들(eigenvalue들)에 대한 확률분표는 달라질 수도 있지만, 확률의 총합은 보존되는, 일종의 정보보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 관찰자가 상태를 1로 normalization 했다면 그건 다른 관찰자에게도 1로 보이지 0.9나 1.2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보면 왜 black hole 정보역설 같은 문제에서 unitarity를 사람들이 최대한 유지하려고 했는지, 이해가 될 것 같다.
웃기게도, 양자역학이 '재미있다'고 느끼게 된 것은 내가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면서였던 것 같다. 의외로 흔히 양자역학을 이야기할 때 나오는 Schrodinger 고양이 같은 것은, 아주 최근까지도 그다지 막 재미있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지 못했다. 연구하면서 우주론을 통해 entanglement를 좀 더 생각하게 되고, 이걸 density matrix의 언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양자장론에서 인과율을 설정하는 것이 상태가 아닌 operator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 등을 계속 접하다 보니 어느 정도 상황이 이해가 가게 되었고, 그다음부터 재미를 느끼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교양과학책에 대한 내 비판적인 시선과도 연결이 되는데, 책들을 보면 범접할 수 없는 천재들의 선문답인 듯이 이야기하면서 멋있지? 아름답지?라는 저자가 정해 놓은 답 ('물리는 '무조건' 아름답고 중요한 것이다'는 식의 맹목적인 믿음)을 강요한다는 느낌을 받는 경우가 있어서... 그것 보다 좀 더 논리적인 설명을 하면 좋겠는데, 그러면 쉽게 들어오지 않고 덜 자극적이라서 독자를 모으기에 문제가 있겠지만... 어떨 때는 듣는 사람이 원하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결국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모두에게 해가 되는 경우도 있다는 게 생각할 만한 점일 것이다. 물리 이야기를 하는 것이 단순히 고수들에 대한 환상에만 그친다면 고수가 아닌 나 같은 사람은 생각하거나 이야기할 자격이 없는 건가? 하는 반감도 들고. 내가 그 단편을 보고 기억해서 흉내 내고 읊은 들 잠깐은 똑똑해 보일 수는 있겠지만 그것들이 고수들만 다룰 수 있는 영역이라면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는 건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그리고 내 말에 정말 문제가 없는지 나도 자각을 못하는데도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결국 부족하더라도 내가 이해하고 생각한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떳떳하고, 틀리면 어디서 틀렸는지를 찾아서 고치면 그게 더 나에게 좋은 것일 것이다. 무엇보다 양자역학도 과학의 일부이기 때문에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그걸 설명해야 한다. 그리고 연구를 직업으로 삼은 이상, 나도 그걸 해야 하는 것이고. 막연한 동경이나 환상은 아직 모를 때 알려고 노력하게 만드는 괜찮은 동기가 된다. 그렇지만 그게 물리 자체는 아니고, 대단한 누군가가 그걸 했다는 것이 내가 물리를 하는 상황을 빛내주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내가 생각을 하고 내가 이야기를 할 때 의미가 있는 것이지. 물론 틀릴 수도 있고 부족할 수도 있지만 그건 내 실력이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고치고 채우려고 해야지 대가들의 화려함 뒤에 숨어서 그 사람과 같은 직업을 가졌다는 것만을 자랑스러워해서 되겠는가... 어떻게 보면 평가받는데 익숙해지고 틀리는 것이 (대학 입시부터 포닥 자리에 이르는) 생존 문제까지 이어지는 상황에 의해 학습된 효과겠지만, 표현을 하고 그걸 외부와의 접촉에 의해 수정하는 과정이 의미가 있다는 점이 쉽게 인정받지 못하고 전문가들 마저 한순간에 대박을 터뜨려 인정받거나 지위를 얻음으로써 인정받고 그것으로 자신의 모든 말과 행동을 정당화하려는 심리가 어느 정도 있다는 점은 많이 씁쓸하다.
좀 더 고급 물리를 하게 되면서 비슷하게 수학적인 구조의 유사성이 다른 두 이야기를 연결하는 경우를 가끔 접하게 된다. 꽤 재미있었던 것은 Clifford 변환. Spinor를 기술할 때 gamma matrix와 이들의 anti-commutator들을 가지고 다양한 bispinor들을 기술한다. Fierz identities라는 이름으로 익숙한 사람도 있을 것이고, 초끈 이론에서 type IIA와 IIB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다. 후자를 좀 더 들여다보면, gamma matrix는 chirality를 바꾸기 때문에 (사실 이것 때문에 gamma matrix를 해당 방향에 대한 reflection, 그러니까 부분적인 parity로 이해할 수 있다) 홀수개의 gamma matrix들의 곱(하고 antisymmetrized시킨 조합)은 chirality를 바꾸고, 짝수개의 곱은 chirality를 바꾸지 않는다. 10차원 closed string 이론을 생각해 보면, type IIA는 left와 right mover의 chirality는 반대라서, 두 spinor를 붙여놓은 것과 같은 구조를 가지는 것의 Fierz identity는 홀수개의 gamma matrices곱이 spinor 사이에 끼어 있는 것의 합과 같다. 이게 background field와 couple 한다고 생각하면 홀수 differential form들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Type IIB라면 left와 right의 chirality가 같은 것이니 Fierz identity 입장에서 보면 짝수 form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아무튼, 이 gamma matrix들의 곱들과 일대일 대응을 시킬 수 있는 것이 다름 아닌 differential form들이다. Antisymmetric 하고 vector index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짐작하겠지만. 그래서 complex geometry를 이야기할 때 나오는 Kahler form이나 holomorphic form들은 spinor사이에 gamma matrix들이 끼어 있는 것으로 나타낼 수 있다. Chirality matrix는 그냥 Hodge dual이고.. 요새는 이런 이야기가 좀 재미있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