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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40801
    카테고리 없음 2024. 8. 1. 04:33

     저번주에 논문이 끝났지만 이번주 말에 출국하다 보니 당장 뭔가 집중할 만한 것을 하기 애매해서 약간 여유가 생겼다. 그 와중에 사람들과 이야기할 일들이 좀 생겼는데,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특히 '연구'라는 것을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하는 의문이 떠올랐다. 물리를 어느 정도 배운 사람에게마저도 뭔가 아주 특별한 것, 혹은 손에 닿지 않을 정도로 먼 곳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 같기 때문이다. 이 이유 때문에 어떤 사람에게는 연구가 미지의 세계에 있는 환상종으로 보이기도 하고, 동경의 대상이 되기도 하는데, 또 어떤 사람에게는 (심지어 물리 관련 일을 하고 있음에도, 혹은 '연구'를 해야 할 상황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이 아니라 특별한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는 인식을 주게 된다. 생각해 보면 정작 나도 정말 제대로 연구를 하는지 걱정스러울 때가 종종 있기는 하지만, 적어도 물리 혹은 과학이 '지식'에만 머문다면 불완전하고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은 알 것 같다. 

     물리를 배울 때 다양한 실험적인 증거나 수식의 정교함에 계속 휘말리다보면 어떤 지식이든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쉽게 잊어버린다. 어떻게든 정신줄(...)을 잡고 이게 어떤 배경에서 등장했고 왜 있어야 하는지, 어떤 면에서 중요하고 또 어떤 한계가 있는지 등등을 생각해야 하는데, 그러다 보면 많은 물리 지식 체계들이 언뜻 보기에 아주 잘 짜여진 논리체계 같아 보여도 어느 지점에서 급발진을 한 결과라는 진실을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게 그 지식이 '틀린' 것이라고 단정 지을 이유도 아니라는 것까지... 애시당초 인간의 인식이나 논리 체계가 자연을 완벽하게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단 좀 엉성하더라도 그럭저럭 잘 설명하는 것을 만들어 놓은 다음에 계속 여기저기 적용해 보면서 익숙해질 수밖에 없기는 하다. 그렇게 익숙해지다 보면 또 다른 뭔가가 떠올리게 되고 기존에 있던 것과 계속 비교하면서 고치거나 아니면 기존의 것을 대체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물리 공부할 때 문제를 풀면서 익숙해지는 과정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 같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뭔가를 이해하고 문제를 푸는 과정 자체가 연구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을 상당히 반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연구'라는 것을 해야 한다면 내가 접하고 있는 것이 완벽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한 출발점인 것 같다.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버려야 하는 것은 아니고, 상당히 설득력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인식하면 내가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할 준비를 할 동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어떤 단어 하나 던져준 뒤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가지고 사람의 지성을 평가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면이 있다. 물론 계속 접하고 생각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식의 양은 늘어나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를 수집하는 것에 멈추는지, 아니면 그것을 가지고 뭔가를 더 생각하려고 하는지는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전자에서 멈춘다면 '연구'가 상당히 낯설게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뭔가 더 생각하는 것이 확실히 부담스럽기는 하다. 이미 있는 것을 익히는 것이라면 '답'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아는 순간 자신감 있게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을 이야기할 때 내가 아직 뭘 몰라서 그런지 아니면 진짜 중요한 것의 실마리를 잡았는지 어떻게 알까..? 그런 것들을 생각하다 보면 사람이 상당히 '멍청해' 보인다. 아무래도 단정적으로 예/아니오를 이야기 하거나 이런 것이 있고 누가 이런 말을 했는지 등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생각하면서 이것저것 따지고 아직 모르는 것에 대해 엉성하게 이야기하는 것보다 '똑똑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연구 경험이 있는 사람마저 생각하는 것을 멈추고 지식 수집에만 집중하고 싶어 하는 유혹을 아주 많이 받고, 쉽게 넘어간다. 특히 어느 정도 경험이 쌓였음에도 헛소리 할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문제는 그런 위험에 노출되지 않는다면 이미 (예전의 자신을 포함해서) 누군가가 한 것 안에서 돌 수밖에 없다는 것이고, 교과서에 이미 실린 것이라면 모를까 불완전해서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는 지식 쪽으로 가게 되면 한계를 만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런 위험에 노출되면서 계속 생각하는 것은 제대로 여과되지 않은 진짜 헛소리를 무책임하게 남발하기만 하는 것과 구분되기도 힘들다. 그게 더 사람을 심리적으로 위축되게 만드는 면이 있다. 아무래도 어느 정도 물리에 애정이 있고 관점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취급이기는 하다. 불행히도, 자신은 열심히 생각한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별 것 아니거나 헛소리일 위험이 있는 게 현실이다. 그럴 경우 안정된 다른 사람의 지식을 가지고 누군가를 '평가'하기만 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고 때로는 양심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말하자면 부주의한 주장은 하지 않는다는 도덕적인 정당성을 스스로에게 부여하고 그것을 가지고 다른 주장에 있는 비도덕성(?)을 공격하는 것을 자신의 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순간 공격 대상에 비해 자신이 매우 똑똑해 보이기도 하고.  사실 지식의 발전 과정에서 논의와 공격은 아주 필요한 과정이지만 그것 자체에만 매달리는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다.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에만 의미를 두고 답을 구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은 채 다른 사람에게서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답을 해주기만을 기다리거나 다른 사람의 아직 완성되지 않은 지식을 공격해서 스스로의 똑똑함을 과시하려는 행동이 좋지는 않으니까.. 수학자인 G. Hardy 선생도 이야기한, “수학자의 본분은 무언가 새로운 정리를 증명하면서 수학을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지, 자신이나 다른 수학자들이 이루어 놓은 것에 대하여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다.”  는 말은 물리에도 어느 정도 적용될 수 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면 학부에서 배우는 물리는 다 한계가 있는 것으로 밝혀진, 즉 지식 자체로만 보면 불완전하고 '틀린' 것들이다. 당장 중고등학교 때부터 배운 고전역학부터 자연을 보다 제대로 설명하려면 상대론이나 양자역학으로 갈아타야 한다. 그런데 고전물리에 너무 익숙해 지고 그 문제를 푸는 것에만 집중을 한 상태에서 이 점을 체감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힘든 것 같다. 문제를 풀어서 답을 맞히는 과정이 부지불식간에 그 결과를 절대적인 진실로 인식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반면, 한계가 있다고 해도 중구난방으로 아무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중요한데, 말하자면 신중하게 생각한 뒤 남이 모두 동의하지 않더라도 용기 있게 이야기하는 것과 무르익지 않은 생각을 너무 쉽게 남발하면서 그것을 고집하는 것이 소신이라고 착각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생각해 보면 초심자들에게 이런 점들을 인식하게 하는 것도 보통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이즈음 되면 이야기가 상당히 복잡해진다. 간단하게 A가 사실이 아니라면 버리고 B를 알아야 한다... 고 하는 것이 아니라, A가 사실은 아니지만 모두 버릴 것이 아니고 그 안에서 B로 갈 수 있는 실마리가 숨어 있다거나 아니면 완전히 다른 부분에서 자연을 아주 잘 설명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이야기도 해야 한다. 물리적 지식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설명하는 정답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이 상당히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고, 이게 답이다..라고 확실하게 이야기하지 않아 일일이 따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 꽤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면이 있지만, 과학의 역사에서 이런 일은 꽤 흔하다. 그리고 이게 단순히 전문직종의 사람이 아니면 굳이 관련된 훈련을 받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문제인 것이, 과학자만 다루는 특수한 문제뿐만 아니라 아니라 세상의 문제가 모두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구석이 있다. 어쩌면 과학을 단순히 참 거짓을 가르는 지식이 아니라 생각하고 뜯어볼 대상으로 보는 것 (그러니까 연구의 출발점을 경험해 보는 것) 이 중요한 것은 이 점 때문이 아닐까 싶다. 버리더라도 완전히 버리지 않고 취하더라도 무조건 신봉하지 않는 식으로 문제를 접근하고 그것을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과정은 과학 연구의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지만, 세상 문제를 보는 방식이기도 하고, 요새는 이 점이 부족해서 생기는 문제가 두드러진다는 면에서 많이 중요한 것 같다. 문제는 심지어 과학을 하는 사람마저도 그런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연구자, 교수, 교사들, 심지어 나에게서도 공통적인 한계점이 느껴져서... 그렇게 보면 연구라는 것이 손에 닿지 않는 곳에 있는 어떤 거창한 것은 아니다. 기존에 사람들이 인식하던 것의 한계를 잘 확장해서 완전히 체계를 뒤집는 것도 연구의 중요한 면이지만 그것이 연구의 유일한 요소는 아니기도 하고. 생각의 흐름을 읽고 체계를 이해하다 보면 그 안에서 아직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 나오는데, 대부분 그런 것은 사람에 따라서는 별 것 아닌 것으로 보이는 것들이다. 나에게는 중요해 보이고 신기하겠지만.. 그런데 판을 뒤집을 정도로 엄청난 일도 그런 '작은' 것들이 축적되지 않으면 일어나기 힘들기도 하다. 괜히 뉴턴이 거인의 어깨 이야기한 것이 아니다. 연구의 중요한 면 중 하나는 여기에도 있다. 당장은 나에게만 중요하고 다른 사람에게는 사소해 보이지만, 이게 사실 사소하지 않고 의미가 있다는 것을 어떤 식으로든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단순히 내 신념이나 관점을 밀어붙이면 스스로야 멋진 행동을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사이비 주장을 하고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주관적인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뒷받침하고 가치가 있다는 것을 설득하는 과정도 상당히 중요하다. 한편으로 보면 논리적으로 다른 사람을 납득시키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다른 면으로는 자신의 주장을 보강하거나 한계를 제대로 인식하게 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후자 역시 상당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냥 주장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도 계속 의심하고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연구에서 중요한 요소들은 그렇게 보면 세상 사는 지혜이기도 하다. 그렇게 보면 물리를 가르치는 과정에 지식을 전달하는 이상의 뭔가가 더 들어가야 할 것 같다. 어떻게 생각해야 하고 그걸 가지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해야 하는지 같은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점들이 간과되고 심지어 종사자들마저도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당장 뭔가 드러나는 것을 주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라면... 그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계속 축적되는 것이 뭐랄까.. 언젠가 문제를 크게 터뜨릴 것 같은 불안감을 준다는 것이겠지.. 만약 문제로 터진다면 과학에 종사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과학 자체에 대한 도를 넘는 신뢰도 하락을 부를 수 있는 일인지라... 그럴 듯해 보이는 것에만 의의를 두는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지위나 명성에 집착하고 그 근거를 자신이 하는 일의 내용과 가치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와 화제성에 의지하기 마련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가 아닌 지위와 명성이 권위를 만드는 것이 그런 경우들이다. 어떤 경우는 강한 자기주장에서 정당성을 찾으려고 하지만 충분한 생각과 지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가지는 신념이 얼마나 사람을 바보로 만들 수 있는지를 계속 보게 된다. 그리고 그럴듯한 말로 꾸미고 겉으로 예의를 차리거나 문서상의 규정에 어긋나지 않으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피해갈 수 있다는 심리를 보게 되면 뭐라고 해야 할까... 그런 사람이 물리를 이야기하는 것이 기괴하게 보이기까지 할 때가 있다. 

     

     그러고 보니까 예전에 학생들에게 비슷한 잔소리를 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고쳐서 적으면...

     

    교육을 하든 연구를 하든, 결국 물리학이라는 같은 대상을 보고 배우고 있습니다. 이미 있는 것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가르칠 것인가와 아직 없는 것을 어떻게 만들것인가의 차이는 있습니다만, 결국 물리를 배웠을 때 그 배운 사람은 단순히 관련된 지식을 갖추는 것 뿐만 아니라 어떤 식으로 생각하고 어떻게 모르는 문제에 접근해야 하는지에 대한 방법론 역시 갖추어야 하고, 이것이 사실 물리교사의 역할 중 생각보다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는 것을 계속 보게 됩니다. 이미 답이 있고 없고의 차이가 있더라도 근본적으로 수학/과학 교육은 연구와 같은 철학과 접근법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에 충분히 참고하고 알아둘 가치가 있습니다. 무엇보다 내가 가르치는 물리가 어떤 과정을 통해, 혹은 어떤 생각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졌는가를 보는 것은 무협지스러운 야사를 통해서만 배우는 것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여러분들이 해야 할 일에 가깝습니다. 그 천재들도 틀린 이야기를 하고, 모든 연구자가 천재일 필요는 없거든요. 어쩌면, 천부적인 재능은 떨어지더라도 충분히 교육을 받으면 어느 정도 수준의 이해와 연구를 할 수 있다는 점이 물리 교육의 중요한 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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