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713
계속 논문 쓰는 중. 사실 이번 논문은 아이디어가 괜찮다기보다는 (중간 단계라서 느끼는 감정일 수는 있지만 뭔가 이야기 전개가 만족스러울 정도로 매끄럽게 느껴지지 않아서 조금 껄적지근해하는 중이기도 하다) 초끈이론에서 axion이 구현되는 것을 나름대로 정리하면서 주제와 관련된 이런저런 생각을 이야기하는 쪽에 더 의의가 있기는 한데, 어쨌건 같은 이야기라도 조금 더 좋게 만드는 것은 중요하다. 단순히 결과를 나열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왜 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가정을 써야 이런 결론이 나오는지 등등은 일단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과 관련된 것이긴 하지만, 논문을 쓰다 보면 계속 어떤 표현을 쓰는 것이 좋은지가 상당히 신경 쓰이게 된다. 특히 단어 선택. 주절주절 길게 이야기하는 것은 당연히 좋은 방법이 아니고, 문장이 아주 세련되지는 않더라도 적어도 간결하고 파악하기 쉽게 쓰는 것이 중요한데, 여기에 '적절한 단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수학이나 물리 교육에서 가장 간과되는 것이 글을 쓰고 이야기하는 능력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보통 수학/물리를 잘 한다고 할 때 떠올리는 것이 문제를 잘 푼다는 것인데, 여기에 상당히 많은 함정이 숨어 있다. 일단 근본적으로 물리 연구는 문제 풀이이다. 아주 단순히 연구 과정을 요약한다면, 어떤 조건이 있을 때 무엇을 이용할지, 혹은 어떤 가정을 해야 할지를 판단해서 내가 생각하는 답을 적어내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그냥 책에 나오는 연습 문제를 푸는 것과 그리 다르지 않아 보이지만.. 문제는 누군가가 꼭 문제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한 가지는 이미 존재하는 문제라고 하더라도 '출제자의 의도'가 절대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연구를 하다 보면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문제들이 존재한다. 아주 추상적으로 양자중력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혹은 hierarcy problem이 진짜 물리적으로 의미 있는 문제인가? 같은 다소 철학적인 것부터 시작해서 어떤 이론에서 예측하는 어떤 결과가 이번에 가속기에서 보고된 특정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지?라는 구체적인 것까지 단계별로 있다. 그런데 같은 문제라도 어떤 사람들은 아주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그건 문제 거리가 아니다고 이야기한다. 게다가 양쪽 사람들 모두 나름대로 경험에서 나온 근거가 있고, 또 나름대로 자신의 분야에서 중요한 일을 한 사람들이라서, 어느 쪽에 특별히 신뢰를 주기도 애매하다. 그러다 보니 구체적인 문제를 발견하기 전, 연구 분야를 정하는 단계에서부터 풀 문제의 범위가 정해진다. 예를 들어 hierarchy problem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supersymmetry 같은 쪽에 관심이 가는 것은 이상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면 옆에서 아무리 사람들이 이야기해도 구미가 끌리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단 여기에는 상당히 많은 요소가 작용한다. 자신이 물리를 보는 관점부터 시작해서 현실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지? 의 문제까지.. 그리고 이것들은 서로 뒤섞여서 구분하기 힘들다.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이 진짜 뭔가를 알아서 그것이 반영되어 만들어진 것인지, 아니면 짧은 경험에 몇몇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선택한, 혹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고 쉬운 쪽으로 기울어서 '이것만 알아도 사람들이 알아주는 일을 할 수 있는데 저런 어려운 것을 하는 것은 현학적인,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려고 하는 것일 뿐이고 진짜 물리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자기변호를 한 결과인지 어떻게 구분할까? 그리고 설혹 그런 불경한(?) 심리로 선택한 주제라고 하더라도 그게 자연이 실제로 움직이는 방식일 수 있다. 실제 자연은 복잡한 뭔가를 필요로 할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그래서 반대로 '나는 자연이 이런 세련된 언어로 쓰여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니 여기에 평생을 바치겠다'는 아주 진지한 마음으로 덤볐지만 불행히 자연이 선택하지 않은 길일 수도 있다. 그런데 여기서 밀려났다고 영원히 내가 선택한 것이 오답이냐.. 고 물으면 또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 함정. 다른 동기가 생겼든, 아니면 새로 밝혀진 뭔가에 의해서든 묻혔던 것이 부활할 수도 있다. 물론 정확히 그 형태는 아닐 가능성이 크지만. 요는, 무엇을 선택하건 연구가 아직 '아무도 모르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본질인 이상, 정도는 다르더라도 결국 한정적인 지식과 관점에 근거한 것일 수밖에 없고, 그 뒤에는 엄청나게 많은 불확실성이 숨어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사람의 시야라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혹은 알고 싶어 하는 지식의 범위에 근거하는 면이 강하다. 아마 입자물리 지식에 너무 갇혀있으면 중력에 대해 많은 것을 놓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또 가끔 (실은 생각보다 자주) 너무 많은 것을 아는 것이 병인 경우도 있어서...
이런 불확실함이 사람을 많이 답답하게 할 수도 있지만 이게 물리 혹은 연구의 재미있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답은 있겠지만 완전히 이해하기는 거의 불가능하고, 아주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에 발견하기도 하지만 또 똑똑한 사람이 놓친 것을 덜 똑똑한 (이제 그 즈음 되면 똑똑하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애매해진다) 사람이 마치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답으로 접근할 수도 있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문제가 실제로 자연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답으로 갈 수 있는 경로가 내가 생각한 방향 혹은 뭇사람들이 생각한 방향과 일치할 수도 있지만 또 아닐 수도 있다. 어떤 이론이 있고 그 바탕에 특정한 의도가 있었는데, 하다 보니 그 이론 자체는 중요한 것이 맞지만 처음 의도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거나 다른 중요성이 발견될 수도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주제는 같아도 문제의 성격이 변해서, 처음 문제가 나올 당시의 생각만 가지고 있으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나오는 것이다. Inflation을 예로 들면 우주의 초기 조건이 가지는 부자연스러운 면을 풀기 위해 제안되었지만, 현재 연구에서 강조되는 것은 초기 양자요동이 양자역학 특유의 coherence를 잃어버려 structure formation과 관계되는 고전적인 요동으로 진화하는 과정이 inflation에서 자연스럽게 설명된다는 점이다. 사실, 80년대에 표준모형이 어느 정도 이론 실험 모든 면에서 받아들여지면서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는 많은 문제들이 나왔고, 이것들은 많은 경우 grand unification과 깊은 관련을 맺고 탄생했지만 현재 관점에서 보면 grand unification은 필수 요소가 아닌 것도 꽤 된다. 문제를 낸 사람의 의도를 지금 그 문제를 푸는 사람이 무시해서는 안되더라도 꼭 따를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래서 같은 문제라고 하더라도 정해진 답을 누군가가 가지고 있어서 그 사람의 뜻에 맞는 말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그 문제를 푸는 방법론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 혹은 문제 안에 조건이 모두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머리 회전 능력과는 별도로 물리에서 연구를 하는 과정이 불편하고 심지어 불합리하게 보일 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아주 잘 정제된 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고, 필요한 것을 (체계적인 교육 과정 같은 것이 있어서) 누가 다 갖춰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해야 하며, 심지어 그걸 갖추는 것 자체가 중요한 업적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도 세상 일은 아무도 몰라서 내가 생각한 대로 잘 풀릴 수도 있지만 그건 말 그대로 내가 전생에 나라를 구한 경우가 아니면 만나기 힘들고.. 보통은 뭔가에 닿기도 전에 연구하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기고 자신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아니면 계속 자신의 생각에 미련이 남아서 매달리다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가 되거나. 진짜 좋지 않은 경우는 계속 물리 연구를 하는 것 같지만 사실 자신이 직접 무엇을 하기보다는 그때그때 유행과 대세에 자연스럽게 편승하거나 대가의 의견에 맹목적인 경우다. 사실 이것도 쉽지 않고 하기에 따라서는 좋은 업적을 낼 수도 있는데, 그게 문제가 되는 경우는 그걸 연구를 하는 유일한 길이고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거나 아무것도 고민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행위에 취해서 스스로를 좋은 연구 하는 사람이라고 착각하는 경우이다.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것에는 다른 사람의 명성에 편승하기만 하는 것, 실질적으로 자신이 하는 것이 없지만 업계의 일을 자신의 일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자신은 문제에 대해 고민하거나 하는 것에 관심이 없으면서 잘 알거나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을 이용하고 그것을 자신의 능력으로 착각하는 것 등 꽤 많은 경우가 있다.
그렇게 보면 연구의 중요한 점은 '불확실성'이 아닐까 싶다. 여러 좋지 않은 경우가 있고 사실 나도 그런 상태가 되지 말라는 보장도 없다. 당장 Einstein도 자신의 관점을 바꾸지 않는 성정이 중요한 일을 하게 만들기도 했지만 중요한 일을 못하게도 했으니... 그러다보니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더라도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참 힘들다.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별로 티가 나지 않지만, 완전히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접하다 보면, 옆에서 다들 이야기하니까 당연한 사실이라고 생각하거나 내가 잘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상당히 약한 가정에 기반하고 있거나, 아주 특별한 경우에 불과하다는 것을 느끼기 쉽다. 물론 저 사람들은 잘 모르니까..라고 무시하고 다시 자신에게 익숙한 세상으로 돌아갈 수도 있지만 그게 넓은 바다인지 말라가는 우물인지를 판단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작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현실적 혹은 단기적으로는 괜찮은 전략일지는 몰라도 자신이 좋은 물리학자로 성장하는 것에는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잘 갖추어진 문제를 푸는 것에 자신을 한정하면 금방 한계를 만날 수밖에 없다. 물론 그전에 내가 교수 같은 안정된 직장을 가지게 되고, 그다음에 연구는 신경 쓰지 않거나 아니면 그렇게 고민 안 해도 주변 사람들이나 학생들에게 잘 묻어가면 좋은 물리학자 소리를 들으니 상관없다..라고 하면 할 말이 없긴 한데, 이게 무슨 결과를 주는지를 아주 잘 보아온 입장에서는 절대 좋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그런 경우는 일단 제외. 계속 물리에 충실하려고 하는 경우라면, 내가 알고 있는 것, 혹은 내가 특정 문제를 만났을 때 가지는 관점이 어떤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이 문제가 왜 풀 가치가 있고 어떤 한계가 있는지를 분명하게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런 경우라면 내가 택한 접근법, 그리고 큰 문제를 풀기 위해 내가 풀기로 선택한 작은 문제가 차지하는 위치 혹은 당위성 같은 것들을 생각해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연구에 필요한 논리적인 사고방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장 구체적이고 좁은 의미에서 정의된 문제를 풀기 위한 기술적인/전술적인 과정도 논리적인 사고방식이고 중요한 것은 맞지만, 더 성장하고 싶다면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하고, 그걸 제대로 할 수 있는지가 궁극적으로는 통찰력으로 이어져서 '얼마나 좋은 물리학자가 될 수 있는가'에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되는 것이 아닐까..라고 일단 경험에 근거해서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을 적절하게 풀어가는 과정이 다른 것이 아니라 글쓰기/말하기이고. 그래서 글쓰기는 단순하게 형식에 맞춰서 내용을 적절히 채워나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관점과 생각의 흐름을 가장 일관성 있게 보여주는 것이고, 그게 가능하려면 자신이 얼마나 깊이 있게 들어가는지, 그리고 그 안에서 길을 잃지 않고 논리적인 응집력을 유지하는지가 상당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그렇게 보면 글쓰기가 부족하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가 명확해지는데, 글을 논리적으로 쓰지 못하고 단순히 내가 한 것만 중요도 구분 없이 단조롭게 나열하는 것은 기본적인 논리력이 없는 결과이고, 내가 한 것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잘 정리하지만 왜 그것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중요한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지 못하고 사람들이 이러저러한 것 하니까 나는 이거 한다.. 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통찰력이 없는 결과더라.. 는 것.
그런데 솔직히 나도 글 아주 잘 쓰는 편은 아니라서... 일단 나름대로 원칙을 가지고 있으니 계속 맞춰가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그래도 어떻게 좋은 뭔가를 만들 수 있으면 좋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