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시작..
한 열흘 정도 공부하면서 생각하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 정도면 논문 쓰기 괜찮다 싶어서 쓰고 있는 중이다. 논문에 들어가는 많은 아이디어들이 기존에 있던 것이라서 아주 신선한 것은 아니지만. 일단 이미 있는 논문의 내용들은 내가 쉽게 납득할 수 있는 형태라기에는 다소 불만족스러운 형태로 나와 있어서 다른 식으로 정리해 두면 좋겠다 싶기도 했고, 다른 두세 가지 이야기를 한데 묶어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일단 주제는 초끈이론에 나오는 axion들에 관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내가 대학원생 시절을 보냈던 연구실이 원래 axion 연구로 유명해진 곳이었건만 정작 나는 axion 다룰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교과서적인 지식 이외에는 그다지 많이 아는 것은 없다. 특히 실제 연구를 해 보지 않으면 제대로 잡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다름없기는 한데, 연구 생활을 해 오면서 이쪽 다룰 일이 그다지 많지 않기도 해서... 사실 axion과 관련해서 할 일이 여전히 많긴 하지만, 어떤 면에서 보면 주변에서 많이 하는 것을 피하려는 심리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포닥 때 axion과 관련된 일을 하려고 했지만 현실적인 일이 워낙 무거워서 시기를 놓친 주제가 있는데, superradiance와 관련된 것이었다. 마침 중력파도 발견되면서 black hole 관련된 관측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때인지라 관심을 가졌던 것이었고, 지금도 가끔 논문이 나와서 그 때 잘 안 해둔 것이 조금 쓰리기는 하다. 지금이야 압박감은 없지만 그때는 어느 정도 충분했던 물리적인 시간이 지금은 부족해서 이런 식으로 쌓인 주제들이 꽤 있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박사 졸업 직후에 BICEP2 관측결과 (trans-Planckian inflation이 선호된다는 것이었지만 나중에 실험 분석에 문제가 발견되어서 찻잔 속의 폭풍으로 그쳤다)로 trans-Planckian inflation에 대한 검토가 있어서 나도 논문 한편 쓰는데 참여한 적이 있다. 이게 weak gravity conjecture를 부활시킨 계기가 되었고... 비슷한 시기 WMAP 마지막 data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dark radiation이 주목을 받는 와중에 axion이 많이 다루어진 것도 있었다. Weak gravity conjecture 같은 경우는 관심이 꽤 많았지만 논문 거리가 확 떠오르지 않아서 봉인하고 있었는데, 이후에 swampland conjecture들에 관심을 가지고 논문을 쓰게 되면서 간간히 다룰 수 있었다. 그리고 지금 쓰고 있는 논문과도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다. 그러니까 관심 가진 지 대략 10여 년 만에 제대로 쓰게 된 논문이다.. -_-ㅋ 그러고 보니까 포닥 때 같이 연구한 분들 중 weak gravity conjecture를 많이 다루신 분도 있었는데 정작 그거 가지고 같이 논문 쓴 적은 또 없다... 사실 하나 쓰려고 했는데 잘 안되어서 엎어졌다.
이렇게 보면 논문 쓰는 것이 물리학자가 하는 일이고 해야 하는 일이기는 하지만, 이런 주제가 요새 관심을 많이 끈다..고 해서 그것에 대해 항상 그럴듯한 생각을 떠올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건 감의 문제이기도 하고 경험의 문제이기도 하다. 감이라고 해도 모든 주제에 비슷한 민감성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서 어떤 주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잘 떠오르지만 또 다른 주제에 대해서는 논문을 여러 편 뒤져봐도 그다지 좋은 이야깃거리를 떠올리지 못하기도 한다. 취향이나 능력치의 방향에 따라 다른 법인지라.. 원래 다루던 주제 혹은 관련된 논문을 썼던 주제가 다시 도마에 오른다면 비교적 쉽게 무슨 이야기를 할지 생각해 낼 수도 있고.. 어느 경우든, 부자연스럽게 억지로 논문을 쓰는 것은 매우 힘들다. 어찌어찌 나온다고 해도 좋은 논문이 되기 힘들기도 하다.
아무튼 하는 김에 이것 저것 정리하게 된 것 같다. 그전에는 막연하게 알던 것도 제대로 이야기하려다 보면 분명해지기 마련이고, 이게 논문을 쓰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