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nf1 2024. 5. 26. 15:33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발견한 짧은 논문.

 B. Ram, The Mass Quantum and Black Hole Entropy,
 Phys.Lett.A 265 (2000) 1, gr-qc/9908036
 https://inspirehep.net/literature/505319

  여러 가지 의미로 재미있는 계산이라고 생각이 되는데, 일단 N차원 조화진동자와 N' 차원 수소 원자 가 N=2N'-2라는 관계를 만족하면 수학적으로 동등하다는 것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3차원 수소 원자와 4차원 조화진동자가 연결된다는 이야기이다. 이걸 가지고 black hole을 (조화진동자와 같은 구조를 가지는) free boson으로 대체해서 기술하는 것도 나름 인상 깊었고. 현상론에 뿌리를 두고 있다 보니 실제 세상이 아닌 것 (차원이 다르다거나)을 다루는 것이 다소 어색하긴 한데, 항상은 아니더라도 현실에서 떠나 수학적 구조를 보는 것이 오히려 현실의 여러 조건에 얽매이는 것보다 더 현실을 잘 이해하게 만들 수 있는 면이 있다.

 사실 이 계산은 G. Dvali 선생이 한 일들을 연상하게 한다. 이것도 UV/IR mixing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일단 매우 긴 + 비슷한 파장을 가지는 soft mode들이 superposition을 통해 아주 좁은 구간에 localized 되는 상황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면 localization이 일어나는 범위의 역수가 그 영역 안에 집중된 energy라고 할 수 있는데, soft mode들의 파장 범위가 집중된 energy에 해당하는 Schwarzschild radius보다 큰 경우라면 중력자들은 상호작용이 강해져서 더 이상 free wave로 근사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Scattering을 생각해 보면 상호 작용이 일어나는 길이 scale은 target 입자의 '크기'보다 커야 하기 때문에 Schwarzschild radius는 중력 상호작용에 의하여 정의되는 '입자' (energy가 한곳에 집중되어 있는 파동의 중첩)의 크기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입자'는 black hole이 된다. Black hole은 질량이 클수록 그 크기가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커지는 성질을 가진다. 만약 trans-Planckian 질량의 black hole을 단순하게 매우 큰 UV 영역에서 일어나는 단일 mode의 excitation으로 이해한다면 질량이 클수록 크기가 작아지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다. 그래서 Dvali 선생은 black hole을 Schwarzschild 반경 정도의 파동이 엄청나게 많이 (안 그러면 localization이 충분하지 않아 trans-Planckian 질량이 안 나온다) 중첩된 결과로 이해하려고 한 것 같다. '많은' 파동(=입자)들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black hole이 양자역학적인 process로부터 나왔더라도 거시적인, 즉 고전적인 물체로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G. Dvali, C. Gomez, A. Kehagias, Classicalization of Gravitons and Goldstones
JHEP 11 (2011) 070, 1103.5963 
https://inspirehep.net/literature/894460


 많은 종류의 입자가 한 번에 scattering 하는 경우, large N expansion에서 보는 것과 같이 상호작용의 크기를 입자의 갯수에 반비례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n 종류의 입자가 scattering을 한다면, n! 개의 경우의 수가 나오면서 n개의 입자가 1/n정도의 크기로 상호작용하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cross section은 n! n^{-n}에 비례하게 되는데, Stirling formular를 쓰면 이건 다름 아닌 e^{-n}으로 근사할 수 있다. Black hole의 생성을 n 종류만큼의 입자가 한꺼번에 생기고 이들 사이의 중첩을 통해 형성되었다고 이해한다면, 이 black hole이 생길 확률은 e^{-n}인 샘이다. 앞에서 보았지만 black hole을 만드는 입자가 soft 하기 때문에 즉 중력의 세기가 약한(그래야 free particle로 입자를 근사하는 근사를 취할 수 있을 테니까..) 낮은 energy에서의 유효이론(low energy effective theory)에 나타나는 입자들이기 때문에 n 종류의 입자들이 낮은 energy scale에 존재한다면 black hole은 e^{n}만큼의 경우의 수를 가진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n은 낮은 energy에서의 입자의 종류 수라고 할 수도 있지만 black hole entropy라고도 볼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Schwarzschild radius R_s를 작은 입자에 해당하는 파장(정확히는 Compton파장)으로 본다면 이건 해당 입자 질량의 역수일 것이라서, 질량 M 안에 들어있는 입자의 갯수는 M*R_s이고 이건 면적 그러니까 black hole entropy에 비례하게 된다. 

G. Dvali, Entropy Bound and Unitarity of Scattering Amplitudes,
JHEP 03 (2021) 126, 2003.05546
https://inspirehep.net/literature/1785383


 그런 식으로, black hole이라는 trans-Planckian 즉 극단적인 UV 물리를 낮은 energy에서의 상태, 즉 IR 물리로 이해하는 것이 요새 자꾸 관심이 간다. 사실 이 점이 요새 중력이 약한 유효이론에서의 입자 종류수, 즉 species scale을 중력의 열역학적인 성질과 연결 지으려는 시도로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처음에는 입자 종류 수를 그대로 logarithm으로 정의되는 entropy로 해석하는 것이 다소 의아해서 받아들이기 꺼려지는 면이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그 입자 종류 수가 아니라 이것들이 만들 수 있는 black hole의 경우의 수이다. 사실 논문들이 이 점을 명시하지 않다 보니 사람을 좀 헷갈리게 만드는 면이 있다. 이게 제대로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않은 논문의 문제인지, 보고도 깨닫지 못한 독자의 문제인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분야든 오랜 시간 동안 연구가 이어지고 연구하는 사람들끼리 의견 교환을 하다 보면 어떤 '합의'된 이해 방식이나 관점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논문을 쓴다면 내가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것이고, 교과서도 아닌 이상 논문을 보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극단적으로 내가 논문 쓸 때 인수분해를 어떻게 했는지까지 적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이다. 문제는 처음 이야기를 접하는 사람 입장에서 이런 것들이 항상 자연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논문에서는 당연하다는 듯이 이야기하거나 가정하고 넘어가는 것이지만 왜 그렇게 되지?를 이해하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들이다. 바로 안 떠오르면 찾아봐야 하는데 논문을 찾으면 또 그 논문을 이해하기 위해 다른 논문을 찾고 하다가 시간은 훅 가고 봐야 할 논문은 산더미 같이 쌓이는 경우도 쉽게 생긴다. 어느 선에서는 잘 끊고 '받아들이거나' 그게 불만족스러우면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논리를 생각해 내야 한다. 결국 목마른 사람(=알고 싶은 사람)이 우물을 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실 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 그 논문들을 모두 완벽하게 소화할 필요가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할 수 있으면 내가 생각해 내고 내 이해 방식을 만드는 것이 최선이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궁극적으로 그래야 한다. 그리고 뭔가를 이해하는데 기존의 논리 방식을 꼭 따라야 하는 법도 없다. 오히려 다른 이해 방식을 떠올렸는데 그게 더 간단하거나 본질에 가까울 수도 있고, 그렇게 보다 보니 '합의된' 이해가 사실은 잘못된 이해라는 것이 드러날 수도 있다. 초심자가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모두가 익숙해져서 한 방향만 보고 있을 때 그것이 정말 그런지 검토하는 과정에서도 생긴다. 다만 항상 그게 가능한 것은 아니고, 계속 넘어가는 것이 많아지는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우선시하는 것이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만' 하는 것으로 변질된다면 논문을 쓴들 내가 새로 얻게 되는 것은 그리 많지 않게 된다. 높은 확률로 본질적인 것 혹은 흐름을 바꾸는 것을 하는 것보다 지엽적이거나 최악의 경우 틀린 이야기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를 접했을 때 내가 정말 이것을 가지고 논문을 쓰면서 뭔가를 배우고 나름대로의 관점을 가지고 생산적이고 중요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가가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이다. 내가 사람들의 이야기를 계속 받아들이지 못할 때 가지는 위험성은 대체로 그런 것들이다. 한 번에 모든 것을 가지지 못하더라도 당장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논문 쓰는데 신경 쓰느라 정작 알아야 하는 것을 건드리지 않거나 선입관 때문에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하는 것을 최소화하고 싶기도 하고.

 

 사실 review나 강의록 정도를 읽었다고 초심자가 바로 논문을 쓸 수 없는 것엔에는 대체로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왜 이걸 연구하는가라는 '동기'의 문제에 대해서는 시간이 지날수록 생동감 (혹은 정말 중요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과정 설명)이 휘발된 정형화된 문장으로 정리되게 되고 다소 와닿지 않는 추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다루고 있는 내용에 닿기 위한 논리적인 혹은 자세한 설명이 생략 되다보니 내용을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어떤 제한점이 있는지를 파악하가 쉽지 않고, 단순 계산 이상의 것을 하려면 내가 무엇을 놓치고 있고 어떤 것을 할 필요가 있는지 판단하기 힘들어지게 된다. 뭔가 너머의 것을 하고자 해도 정말 이게 문제가 없는지 혹시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지나친 것 (이게 중요한지 인지하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가거나, 이해하지 못하는데 그것까지 이해하기에는 너무 많은 뭔가가 있어서 이런게 있구나 하고 일단 받아들인 것) 에 뭔가가 더 있는 것은 아닌지 망설여지는 것이다.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심해지게 된다.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가 이미 해 놓았고, 관련된 일만 해도 산더미 같은데 이걸 가지고 사람들이 여전히 무엇인가를 계속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기존에 알려진 것을 알고 받아들이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무엇인가 하려는 사람에게 이런 것들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면 그 상황에서 어떻게 움직이는 것이 보다 좋은 물리 연구를 할 수 있는가? 가 지금도 계속 고민인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