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 계획/ 논문 감상 (UV/IR correspondence and Higgs mass)
1. 8월에 스토니브룩 Simons center for geometry and physics에서 열리는 workshop 참석하는 일로 미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21st Simons Physics Summer Workshop
https://scgp.stonybrook.edu/archives/41264
원래 3주 동안 하는 행사인데 나는 마지막 두 주 동안 방문하게 된다.
매년 여름에 어떤 학회를 갈지 고민하게 되는데, 다른 건 다 제쳐두고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특히 논문 쓸만한 생각 거리를 많이 가져올 수 있는 곳에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내가 지금 있는 곳이 연구와 관련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다니기 쉬운 곳이 아니다 보니 그런 기회가 소중한 처지이기도 하고. 그래서 가급적 여름에는 어딘가 나가는 것을 원칙으로 했고, 전체적인 흐름을 잘 살펴볼 수 있거나 내가 지금 연구하는 부분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계속 찾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는 내 연구와 관련이 있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초끈이론이라는 상대적으로 익숙지 않은 분야 쪽이라서 다소 걱정이 되기는 하는데 아무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연구소 이름에 등장하는 James Simons 선생은 Chern-Simons 이론으로 잘 알려진 분이시다. 그리고 연구 분야와는 영 다른 해지펀드 회사를 차려서 엄청난 수익을 올린 퀀트의 로망-_- 이시기도 하고... 그 수익으로 물리나 수학 업계 여기저기 지원하시기도 하셔서 뭔가 흥미로운 느낌을 주는 분이시다. 당장 arXiv 홈페이지 들어가 봐도 Simons 재단 지원을 받았다는 문구가 나오니까.. (그리고 이 글 쓴 날 돌아가셨습니다.. RIP)
그나저나 요새 arXiv가 많이 둔중해지지 않았나.. 싶다. 논문 나타나는 시각도 늦어지고 타이틀은 만들어졌는데 pdf file이 아직 생성 안된 상태가 몇십분 동안 이어지는 일들이 자꾸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 arXiv는 촌스러워 보여도 간결하고 가벼운 스타일을 유지했으면 하는 생각이 드는데, 비싼 신형 컴퓨터를 가지지 않거나 인터넷이 느린 곳에 있는 사람도 90년대 이후 거의 모든 고에너지 물리 논문을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다.
2. 연구 방향을 고민하다가 재미있게 읽은 논문이 있다.
S. Abel, K. R. Dienes, Calculating the Higgs mass in string theory
Phys.Rev.D 104 (2021) 12, 126032 2106.04622 [hep-t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1867849
재목이 다소 도발적(?)일 수도 있는 것은 보통 초끈이론이 현상 세계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재한적이라는 통념 때문일 것이다. 사실 현실도 그렇게 아주 다르지는 않다. Large volume scenario로 알려진 J. Conlon 선생이 Why string theory?라는 책을 쓰신 것을 보면 Direct Experimental Evidence for String Theory라는 단원은 딱 한 문장 밖에 없다. There is no direct experimental evidence for string theory. 물론 책 내용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끈이론은 왜 가치가 있는지를 이야기하는 부분으로 넘어간다. 본격적으로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강하게 임팩트를 주기 위한 나름의 위트.. 인 것이 저자의 의도일 것이다. (이 책 번역되면 참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든 게 이런 부분 때문이다) 말하자면 직접적인 증거를 현실적으로 찾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만 양자중력을 설명하는 이론의 한 형태로 중력 효과와 관련된 물리/수학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예전에 그러니까 수학이 물리의 언어로 자리 잡기 이전에 기하학적으로 우주를 설명하려고 시도하던 사람들이 완벽한 원궤도 등에 집착하면서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하자 '이건 실제를 설명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철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관념적인 모형이다'라고 주장했던 것을 떠올린다고 하지만...
아무튼 입자물리 입장에서 현재 표준모형의 모든 요소들이 발견된 이상,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Higgs의 potential이 왜 그렇게 생길 수밖에 없는지, 즉, 왜 potential이 electroweak vacuum을 spontaneously 깨는 형태가 되어야 하고 왜 하필 100GeV scale이라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에 언젠가 어떤 식으로든 대답을 해야 하는 상황이기는 하다. 그리고 특히 후자 질문에 대해서 사람들이 고민했던 것은 내가 어떻게든 높은 energy scale에서 100 GeV scale을 만들어냈다고 하더라도 (사실 이게 아주 초반부 사람들이 했던 일들이다) 낮은 energy로 내려오는 동안 더해지는 양자역학적인 보정을 생각해 보면 100 GeV보다 훨씬 높은 scale이 (보통은 effective theory cutoff만큼) 더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는 점이 (gauge) hierarchy problem으로 정리되었다. 당시 등장했던 우주상수문제와 강한상호작용에서의 CP 대칭성 깨짐 역시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들이 'naturalness problem'이라는 하나의 카테고리로 정리되기도 했다.
그런데 논문을 보면, 초반부에 있었던 시도, 즉 양자역학적 보정을 고려하지 않고 높은 energy scale에서 100GeV를 만들어낸 것이 양자중력까지 고려된 상황에서는 생각보다 무가치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이건 초끈이론이 가지고 있는 UV/IR correspondence 때문인데, 초끈 이론에서 1-loop 보정이 가지는 중요한 성질인 modular invariance가 이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초끈에서 1-loop 보정은 torus형태를 가진다. closed string의 시간 양 끝을 동일시해서 trace를 표현하는 것을 상상하면 된다. 그러면 서로 다른 1-loop diagram들을 중첩시키는 과정은 완전히 다른 형태의 torus들을 모두 더하는 것과 같은데, torus 두 개를 가지고 '같은 torus'인지를 판단하는 것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일단 torus는 평행사변형에서 마주 보는 변의 쌍을 동일시하면 만들 수 있으니 밑변과 높이의 비율이 torus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이지만, 이게 다르게 주어졌다고 하더라도 같은 사실은 torus일 수 있다. 이 같은 torus 사이의 변환이 SL(2, Z)로 주어지는 modular 변환이고, 둘은 같은 torus이기 때문에 따로 헤아리면 안 된다. 중요한 것은 SL(2, Z) 중에서 UV와 IR을 연결하는 것이 있다는 것. 밑변과 높이의 비율을 t라고 하면 (여기서 t는 복소수 : 2차원 평행사변형을 복소평면 위에서 정의하는 것이다) -1/t 인 것도 결국 같은 torus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UV와 IR 중 하나만 고려하면 되고, (꼭 그럴 필요는 없지만 편의상) 보통은 IR만 고려하도록 설정한 다음 UV 쪽은 modular invariance가 요구하는 대로 tachyon이 물리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조건을 주면 날릴 수 있다. (tachyon이 partition function에 기여하는 부분은 IR에서 발산한다.)
논문이 다소 길긴 하지만 결국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간결해 보인다. 우리가 양자중력을 고려하지 않고 string scale이나 Planck scale 이하에서의 양자역학적 보정만 생각하면 naturalness 문제가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string scale 너머의 물리를 모두 생각하면 다양한 효과가 들어온다. String excitation들이 만드는 tower들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tower들이 modular invariance에 의해 모종의 규칙성을 가진다. 사실 초끈이론에서 physical tachyon을 없애고 10차원에서 초대칭을 가지도록 하는 GSO projection 역시 modular invariance로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인데, 초대칭이 깨진다고 하더라도 modular invariance는 여전히 존재하고, tower들의 배열에 여전히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modular invariance에 의해 나타나는 UV/IR mixing 때문에 극단적인 UV와 극단적인 IR에서는 같은 질량을 가진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렇게 보면 사람들이 고민했던 hierarchy problem이라는 것도 결국 양자중력 효과를 완전히 고려하지 못해서 UV/IR correspondence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중간 단계에서 임시로 나타나는 것을 고민해 온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주 높은 scale에서 어떻게든 100 GeV를 만든다면 중간에 강한 양자역학적인 보정이 들어올 수는 있지만 결국 아주 낮은 scale에서는 다시 100 GeV를 볼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글쎄.. 실제는 어떨까... 여러 가지로 많은 생각을 들게 하는 논문인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