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를 좋아한다는 것....?
물리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물리를 좋아한다'는 것이 가끔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 질 때가 있다. 당장 나는 물리를 좋아하는 사람일까? 부터 생각하게 된단 말이지... 아무 생각 없이 보면 물리학자라는 직업이 있고 물리와 관련된 교육직/연구직에 있으면 물리를 좋아하거나 잘 알 것이라고 '일단' 여겨지게 된다. 그런 직업 유무와 상관 없이 요새는 쓰는 물건을 가지고 취향을 보여줄 수 있는 경우가 많다. CERN에서 표준모형 식이 적혀진 옷이나 컵을 파는 거야 워낙 유명한데 사실 그런 곳에서는 아예 CERN shop 같은 것이 있다. 말하자면 대학 등에서 학교 로고가 새겨진 여러 물건을 파는 것과 같다. 아니면 물리 관련 학과에서 단체로 옷 같은 것을 맞출 때 슈뢰딩거 고양이 같은 것을 집어 넣거나.. 어떻게 보면 오덕(...) 같은 느낌인데, 드라마 같은 곳에서 짧은 시간 안에 등장 인물에 대한 설정을 소개하는 방식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게 진짜 '물리를 좋아한다'라거나 '물리를 하는' 증거가 되냐고 물으면 확실히 이야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은 사람의 '행동'이 중요할 텐데, 사람들이 가지는 이미지를 구현하는 것 그러니까 물리 관련 굿즈 들을 쓰고 느긋이 커피를 마시면서 다큐멘터리에 나올 법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 것이 아니라 실제로 물리를 하는 행동, 그러니까 뭔가를 이해하려고 혹은 논문 좀 쓰자고 생각을 하거나 계산을 하거나 책을 보거나 논문을 보고 있거나 하면서 스스로 괴로워 하고 있는 쪽이 진짜 물리를 하고 있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물론 멋으로 깊이도 없는 생각을 하거나 와~ 싶은 책을 들고 다니는 (그런데 이해는 하나도 할 생각도 없는) 경우도 많은데 그건 제외. 그러면 일단 사회 생활 부터 쉽지 않겠지만, 생각해 보면 사회 생활 제쳐 놓고 물리 할 생각부터 하는 것이 진짜 좋아하는 것에 더 가깝기는 할 것이다. 사실 '내가 이런 사람이다'고 '보여주는' 것부터 사회 생활의 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물리를 하는 사람으로 보이는 것'이 '물리를 하는 것'에 우선하는 일종의 본말 전도가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정말 냉정하게 말하면 누가 거저 주지 않는 한 물리 생각하고 생활에 쫒기면 그거 찾으러 다닐 시간이 많이 나기 좀 힘들다. 아니 그 전에 그냥 귀찮아져서 하고 있는 것 이상을 하는 것에 일단 기분 부터 나빠지지 않을까.. 내가 머리가 나빠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그럴 거 같다. 그리고 그렇게 좋아하면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 그렇게 물리가 좋아 죽는다고 해도 사람의 재능이나 활용할 수 있는 시간의 한계는 존재할 수밖에 없으니까. 생각해 보면 충분히 배운 사람들 마저도 물리학자가 연구하는 것은 알려진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 알고 그것을 가지고 이리 저리 노는 상상들을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환상이다. 어떻게 보면 아기가 부모님을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같은 것인데, Steven Weinberg 같은 대가도 연구 들어갈 때 그런 생각 하지 말라고 할 정도니까..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써먹는 것만으로 긴 시간을 연구하는 것은 쉽지 않고 모르던 것을 알기 위해 연구하는 것도 흔하다.
물론 그렇게 일일이 따지는 것은 귀찮고 모든 사람에게 그것을 바랄 수 없기 때문에 어쨌건 그럴 듯한 것을 '보여주거나' 그래 보이는 '자리'에 있으면 일단 '하고 있고' '완벽할 것'이라고 '여겨지게' 된다. 어떻게 보면 백지 수표 위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진짜 물리 하는 사람과 가짜가 섞이더라도 일단 세상은 굴러가기 때문에 + 그거 칼 같이 걸러낸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되는 일이라서 + 자기 일 하다 보면 남 신경 쓰는 건 꽤 귀찮아서 어떻게 잘 넘어간다. 어떤 일이 계기가 되어서 한쪽이 폭주하면 그 때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과학에 대한 홍보 수요가 많아져서 그럴 듯 하게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필요하다거나 반대로 모종의 부조리가 사회 문제가 되어서 순혈 주의 운동 같은 것들이 벌어진다거나 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타당한 이유가 있고 그것을 뒷받침해 줄 충격적인 사건 같은 것이 있다면 더 탄력을 받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은 피로해지고 계속 폭주하다가 원래 목표는 어디론가 표류하고 세력 싸움의 일부가 되어서 명분을 잃기도 한다. 그 즈음 되면 너무 얽힌 것들이 크고 복잡해져서 여기에 휘말린 사람들도 통제가 힘들어서 멈추고 싶어도 멈추지 못하는 지경이 된다. 되돌아 보면 연구 집단도 사회 집단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정점이 곧 하락의 시작이 되는 일을 꽤 많이 보아 왔다. 그리고 그러거나 말거나 물리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게 나에게 유리하든 불리하든 신경 쓰는 것 자체가 일단 귀찮아서 끼고 싶지도 않다...
사실 연구를 하는 입장에서 그 정도 일이 커지는 경우는 흔치 않은데 살다보면 한두번 정도 보게 된다. 연구라는 것도 세상과 완전히 단절되어서 면벽수도하는 것이 아닌게, 일단 관련 직업이 존재하면 경쟁과 이해 관계가 생길 수밖에 없고 세금 등으로 연구비를 대는 만큼 사회와 접점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비전문가와의 관계성 내지는 신뢰가 의외로 중요하다. 대형 학회에서 대중 강연을 하는 것도 단순히 연구하는 사람들이 하는 것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세금을 통해 연구한 것이 어떤 상황이고 어떤 가치가 있는지를 보고하는 면이 있다. 그래서 '과학은 '일단' 미래를 위해 아주 중요하고 그래서 전문가들을 위해 '일단' 투자해야 한다'라는 것 보다는 지금 이러 이러한 현황이고 어떤 문제가 있다는 것을 어느 정도 솔직하게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렇지 않다고 한들 전문가의 일을 일일이 이해할 수 없으니 어떻게든 넘어갈 수도 있지만 이게 문제가 되면 어느 순간 신뢰를 잃어버리게 되고 연구 활동 자체가 과도한 외부 간섭으로 자유도가 축소되는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래서 당장의 대중 수요에만 영합해서 실제 연구 상황과는 다른 그럴 듯한 이야기만 들려준다거나 무조건적인 지원을 당연시하는 시각을 보여주는 것은 많이 위험해 보인다. 그런 경향이 생길 수록 연구 보다는 홍보 쪽에 전념하는 사람들도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당연히 전문성도 티날 정도는 아니라도 점점 떨어질 뿐만 아니라 왜곡된 인식을 낳는다는 위험도 있다. 실제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데도 연구의 대세라고 착각하거나 해당 분야에 연구 경험이나 관심이 없는 사람마저 그쪽의 전문가라고 잘못 인식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는데, 이게 장기적으로는 업계 자체의 신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주말에 그런 쪽으로 이야기 들을 일이 있어서 문득 든 생각들이다. 어떻게 보면 이 사람이 정말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보다 어떻게 보이는지라거나 부수적이지만 미담이 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 더 광고 효과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티도 안나고 당연히 해야 하기에 칭찬 받기도 힘든 진짜 중요한 일을 안 하고 부수적인 것만으로 원래의 가치를 인정받으려는 경향이 자꾸 눈에 띄다 보니 그 반작용에 대한 우려도 생기는 상황이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