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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관과 엄밀성..

dnrnf1 2024. 2. 11. 16:22

요 며칠 '직관'이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할 일들이 좀 있었다. 이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것이기는 했지만, 어떤 물리적인 이야기를 할 때, 전달하고 싶은 것을 명확하면서 간단하게 보여줄 수 있는 문장 혹은 예제 같은 것을 좀 더 찾게 된 것 같다. 반대되는 경우로, 계산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는 것이 확실한 안정감을 주기는 하지만, 그 계산을 다 따라간 뒤에 그래서 무엇 때문에 이 결과가 나왔는지 혹은 어떤 물리적인 이유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한두 마디 정도로 이야기할 수 없다면 사실 기억에 잘 남지 않는다. 내가 관심이 있어서 다시 따로 신경 써서 보지 않는다면 그냥 잊게 되는 것이다. 그게 그렇게 이상하지 않은 게, 학생 때 책에 나온 모든 내용을 모두 일일이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그렇게 다르지 않다. 책을 읽을 때야 처음부터 이어지는 이야기의 맥락이 있고 계산이야 어떻게든 할 수 있으니까 그 당시에는 술술 읽힌다고 생각하지만 특정 주제만 딱 떼어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좀 더 다른 문제다. 비슷한 맥락에서 내가 생각하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 생각보다 쉬운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 아예 관심도 없다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관심 있지만 아주 막연하게 이런 게 있더라 정도로만 아는 사람에게 이건 중요하고 할 만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듣는 사람이 모든 것을 안다고 가정하고 이야기하면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을 것이다. 이건 다른 의미로 사기를 칠 수 있는 상황이긴 한데, 아주 모르는 소리만 늘어놓고 이건 다 알지 않나요?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예를 들어 내가 명색이 교수인데 모른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하는 식으로 생각하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끔 엉성한 학회에서 초보자가 발표할 때 그런 식의 상황을 자주 보게 되는데 이건 사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모두 바보라서 짝짝쿵이 맞는 것이고... 이것도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 둘 중 적어도 하나가 무성의하면 그다지 보기 좋지 않은 모습이 연출되는 것 같다. 반대로 말하는 사람은 진지한데 듣는 사람은 지식적으로든 태도로든 그다지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기도 한데, 어떨 때는 학술 행사나 수업임에도 물리 이야기하는 것이 마치 나는 이런 지적인 이야기도 듣는다는 식의 과시 내지는 여흥을 즐기려는 사람 앞에서 광대 노릇 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정말 말하는 사람이 전달하고 싶은 것이 있거나 듣는 사람이 뭔가를 건지고 싶다면 그런 상황이 벌어지면 안 되겠지만.... 이건 사실 가르치는 사람과 배우는 사람 둘의 자세 문제인데, 가르치는 사람 중에는 겉으로는 무엇이든지 물어보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질문을 바라는 경우가 꽤 있다. 문제는 사람마다 뭔가를 받아들이는 촉이 다르기 때문에 언뜻 보면 이상하거나 별 것 아닌 질문이라고 하더라도 질문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뭔가를 이해하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반대로 질문하는 사람이 질문한 내용을 정말 알고 싶어 해서 답을 들은 다음 스스로 생각하든, 직접 계산해 보든, 더 찾아보든 하는 식으로 소화를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듣는 것으로 만족하는 경우도 있다. 물리는 질문이 중요하고 물어보는 용기가 중요하지만 질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뭔가를 이해한다는 더 중요한 목적의 수단 중 하나라는 것도 또 하나의 진실인 것 같다. 단순히 질문하니까 멋지게 물리를 하고 있다는 생각만 하고 그것을 이해하려는 다른 노력이 없다면 그런 질문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데... 그런 경우를 학생부터 교수까지 너무 골고루 보아 와서 업계 고질병이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어쩌면 틀린 이야기를 해서 창피를 당하거나 앞길에 문제가 생가는 위험이 생기는 게 무서워서 감추고 많이 아는 것 같은 사람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생겨버린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무책임하게 자기주장만 하는 것도 문제지만. 


 단순하고 직관적인 설명은 각각의 현상에 대해 명확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해 주기도 하면서, 세부적인 곳에 매몰될 때 전체적인 흐름을 분명하게 해 주는 역할도 한다. 그래서 연구할 때 이게 정말 무엇을 이야기하고 싶은지를 묻는 것이 다음 과정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묻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직관들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모순이 생기면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제대로 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에도 상당히 괜찮은 역할을 한다. 그러다보니까 기술적인 쪽으로 연구가 갈수록 오히려 단순하고 직관적인 관점이 더 필요한 것 같다. 어떤 면에서 초심자들이 직관적인 설명에 의존하는 것이 더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기도 하고.. 그래서 경험이 적을수록 직관적인 설명과 그것을 확인하는 세부적인 계산이 병행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제에 대해서 강한 인상을 가지고 물리적인 이해를 하는 것에는 직관이 중요하지만, 이게 계산의 뒷받침이 없다면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겉돌기 마련이라서.. 오히려 오해를 가지게 되거나 명확하지 않은 정성적인 설명이 잘 이해가지 않는 면도 있다. 수식이 괜히 물리의 언어인 것이 아니다. 그런데 식을 잘 읽으려고 하지 않는다면, 그러니까 본질적으로 식이 무엇을 말해주는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직관적인 설명의 도움마저 받지 않는다면, 단순히 식을 계산할 뿐이라서 얻는 것이 없게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식은 어떻게 다 따라가지고 계산은 되는데 헛바퀴 돌고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자동차처럼 뭔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러다 시간이 지나서 보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내가 정말 무엇을 배운 것인지조차 모르게 된다. 이게 어떤 면에서 연구를 하면서 공부를 어느 정도 병행해 줘야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사실, 양자장론이나 일반상대론 교과서들을 보면 실제 어느 정도 연구 경험이 없으면 이해하지 못하는 이야기도 있다. 그런 것을 다시 보면서 기존에 알고 있는 것과 연결해 주는 작업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예를 들어, 내가 특별히 신경 쓰지 않는다면 metric을 가지고 일반상대론의 복잡한 계산을 한다고 그 뒤에 있는 등가원리나 general covariance를 항상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계산을 할 뿐이고 이게 틀리지 않는다면 논문은 나오겠지만, 여기서 그치면 계산으로 할 수 있는 것 이상을 하지 못한다. 어려운 것을 하고 전문성이 있더라도 시야가 매우 좁게 되는 것이다. 물리의 역사에서 자신의 전문성에 매몰되어서 조금만 더 거시적으로 다시 자신이 한 일을 들여다보면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데 그것을 못하는 경우가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더 복잡한 문제, 즉 세계관 자체를 바꿔야 하는 어려움이 더 큰 면이 있지만. 생각해 보면 티코 브라헤가 당대 가장 정확한 천문관측 결과를 가지고 있었지만 중력 법칙을 발견하지는 못했고, 필립 레나르트는 광전효과 연구의 선두주자로 노벨상까지 받았지만 양자역학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마 나도 비슷한 짓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물리가 가지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CERN에서 LHC data를 실시간으로 보면서 연구하는 사람이나 대화의 중심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변방에서 한 걸음 벗어나서 이게 뭘 의미하는지를 고민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얼마전 쓴 논문에서 가장 불안했던 점이 누군가 분명히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 같다는 것이었는데, 정말 그랬다. 같은 결론을 얻었지만 접근 방식이 꽤 달라서 논문에 문제가 생길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그 연구를 내가 아예 모른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내 기억에서 한동안 사라졌던 것은 일단 내가 게으른 탓이기는 한데, 선행 논문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물리적인 상황이 잘 들어오지 않았던 것이 큰 이유였다. 수학적인 이야기가 나오고 미분방정식의 구조상 이런 결론이 나온다는 것은 좋은데 그 구조가 물리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것인가가 잘 들어오지 않다 보니 기억에서 너무 쉽게 사라졌던 것이다. 아직 내가 수학 머리가 부족한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보면 내가 논문을 쓰면서 같은 결론을 좀 더 물리친화적(?)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수학에 좀 덜 익숙한 사람도 양자장론 정도 배우면 와닿을 수 있게 이야기한 면이 있기도 하다. 사실 그걸 위해서 내 논문은 엄밀성을 많이 희생한 셈이기도 하다. 단순함은 특수한 상황에서 좀 더 두드러지는 법이고, 엄밀함의 눈으로 보면 분명히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떤 접근 방법이든 한계가 있고 그렇기 때문에 같은 이야기라도 다양한 접근법이 공존하는 것이 매우 좋은 것이다. 같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무엇부터 머리에 그릴지는 사람마다 다 다르고 쉽게 받아들이는 촉은 누구나 달라서. 선행 연구 저자 중 한 분과 이메일로 이야기하면서 직관적이고 단순하지만 특수하고 엄밀성이 떨어지는 이야기와 엄밀하지만 물리적인 상황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 이야기의 차이 (사실 이것도 주관적인 게 누군가에게는 엄밀함 쪽에서 물리적인 상황을 더 잘 떠올릴 수도 있다)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사실 욕심 내서 쓴 논문이라기보다는 나라면 이런 이야기를 할 텐데.. 하고 다소 가볍게 쓴 면이 있기도 하고... (그러니까 한 달 만에 논문이 완성되었지...) 그래서 논문 쓸 때 이걸 정말 쓸까 하고 망설인 감도 있지만. 이게 헤프게 쓰면 문제가 되지만 어느 정도의 가벼움은 필요한 것 같다. 꼭 '인정받으려고' 논문 쓴다기보다는 내가 공부하려고 쓰는 것도 아주 나쁘지는 않아서.. 사실 내가 노벨상 타려고 연구하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내 분야는 아마 절대 노벨상 안 줄 것 같은데.. 노벨상 안주는 분야라고 중요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히 아닌지라. 이제 교수까지 되어서 하고 싶은 연구를 할 수 있는 자유가 생겼는데 굳이 눈치를 볼 것이 있다면 내가 헛소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정도가 아닐까... 더 욕심내는 것도 내 취향은 아닌 것 같다. 이것 저것 남 눈치 보고 재기만 하다가 내가 아는 범위를 넓히지 못하면 그것은 더 아쉬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