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SY 2023
SUSY 학회의 정식 명칭은 International Conference on Supersymmetry and Unification of Fundamental Interactions 이다. 일단 약자만 보면 '초대칭 학회'지만 뒤에 통일장 이야기가 더 붙는데, SUSY 학회 자체가 grand unification 학회의 후계 성격이 강한 것과 관련이 있다. 원래 grand unification theory (GUT)가 70년대 이후 흥하면서 관련된 큰 학회가 있었지만, 기대했던 양성자 붕괴가 발견되지 않으면서 그러니까 10^{15} GeV에서 electroweak과 strong interaction이 통합된다는 가장 기본적인 모형은 자연에서 구현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면서 동력을 많이 잃게 되었다. 이후 지리하게 양성자 수명의 bound만 연장되는 것만 보는 수밖에 없게 되었는데, 그래도 quark와 lepton들의 전하를 자연스럽게 설명하는 등 모형 관점에서 보면 매력적인 면이 많았기 때문에 계륵 같은 존재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초대칭이 중요한 화두로 대두되었던 것. GUT 관점에서 보면 초대칭의 존재로 인해서 GUT scale이 아직 실험적으로 접근하지 못한 10^{16}GeV 정도로 밀려난데다가(=지금까지 양성자 붕괴가 보이지 않아도 GUT을 살릴 수 있는데다가) gauge coupling들의 focusing이 더 잘 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에 상당히 매력적인 파트너로 보였을 것이다. 덧붙여서 hierarchy problem (+ top Yukawa와 renormalization group running을 가지고 electroweak breaking의 근원을 꽤 깔끔하게 설명한다는 점) 이나 dark matter와 관련된 이야기도 해 줬고, string theory의 필수 요소기도 했기 때문에, 그리고 gauging을 했을 때 중력까지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에 보다 포괄적인 unification을 이야기하는데 초대칭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GUT학회가 없어진 직후인 93년에 SUSY 첫 학회가 시작된 것은 나름 자연스러운 흐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이러니 하게도, 지금 초대칭의 운명은 GUT과 비슷하게 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의심들이 점점 커지는 중이다. 내가 석사 처음 들어왔을 때 그러니까 LHC가 본격적으로 돌아가기 직전에는 오히려 초대칭이 있다면 Higgs보다 먼저 발견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다. 어차피 그 시점이면 Higgs의 존재는 거의 확실했고 어느 정도 질량을 가질지까지도 상당히 좁혀진 상태였기 때문에, 'Higgs 발견을 통한 표준모형 검증의 완결'이라는 기본적인 목표 너머의 것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LHC가 작동하기 직전인 2008년 서울에서 열린 SUSY 학회는 내가 지금까지 참석했던 학회 중에 역대급 규모를 자랑했던 것 같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초대칭 같은 '표준모형 너머의 새로운 물리'는 발견되지도 않았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초대칭을 '현상론적으로' 계속 생각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회의감이 많이 커진 상황이다. 또 한편으로는 마무리 발표를 하신 S. Martin 선생이 강조했듯이 compressed supersymmetry 같은 좀 특이하지만 없으리라는 법도 없는 경우는 아직도 가능성이 충분히 남아있고, fine-tuning의 의미를 좀 더 면밀히 생각해 보면 10TeV 정도에서 초대칭이 있다고 해도 그다지 부자연스럽지 않으니 좀 더 기다려 보자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번 SUSY 학회에 모인 분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관점이기도 하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학생 때 많이 이야기되었던 것들을 다시 들을 수 있었던 학회이기도 했다. Pran Nath 선생이 2010년 독일 Bonn에서 열렸던 SUSY 학회 단체 사진을 보여주면서, "지금 여기 있는 분들 중 당시 여기 없었던 분들도 이렇게 많은데, 이토록 젋은 세대들이 보충되고 있다면 아직 초대칭이 죽었다고 하기에는 이르지 않느냐"는 뉘앙스의 말씀을 하신 것도 그런 심리의 반영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지금까지 참석한 학회 중 가장 많이 가 본 학회가 이 SUSY학회다. 이번이 세번째인데, 첫번째는 2008년 서울에서 열린 것이었고, 두번째가 다름 아닌 P. Nath 선생께서 사진으로 보여줬던 독일 Bonn에서 열린 것이었다. 내가 속했던 연구실이 Bonn의 입자이론학자들과 깊은 관계가 있었기 때문이었지만. 여하간 그 사진 속에서 13년 전 내 모습을 찾을 수 있어서 나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사실 그 SUSY 학회가 내가 연구한 것을 발표했던 첫 학회였다. 첫 논문이 나온 2010년 5월 직후였으니까... 그 논문에 초대칭은 하나도 안들어간 것이 좀 거시기하긴 했는데, 아무튼 입자 물리 업계에서 열리는 학회 중 대형 학회에 속했기 때문에 굳이 초대칭이 아니라고 해도 입자물리 관련된 이야기도 같이 하니까 문제는 없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코로나 때문에 대형 학회 갈 일이 없어서 이번 SUSY가 교수 된 다음 처음 발표하는 대형 학회다. 이래 저래 인연이 많은 학회인 것 같다.
SUSY 학회의 좋은 점 중 하나는 학회 직전에 preSUSY라고 해서 학생이나 초심자를 위한 강의 시리즈도 같이 진행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번에 preSUSY까지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일단 학회 발표 자체는 어느 정도 경험이 없으면 왜 이걸 하는지조차 모르는 일이 많기 때문에 이런 school의 존재는 참여하는 학생들에게 꽤 괜찮은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곳에서 일일이 가르쳐주는 것은 아니지만 애시당초 한두주 안에 모든 것을 소화하는 것은 불가능해서, 어떤 것이 중요하고 이런 일을 하니까 혹시 건드릴 일이 있으면 이것부터 생각해 보고 찾아보는 것이 좋겠구나 정도만 알아도 꽤 괜찮은 수입이다. 그리고, 학생 입장에서는 학회에서 발표해 보는 것이 상당히 좋은 경험인데, 연구실의 분위기, 혹은 연구실과 협업 관계에 있는 외부와의 접촉에만 젖어 있다가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의 매우 적대적일 수도 있는 비판을 들어보거나 익숙하지 않은 생각을 접해 보는 것은 정말 중요한 자산이다. 물론 그 비판이 항상 옳은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내 주변에서 이야기되는 것이 옳다는 보장도 없기 때문에,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겼던 것이 진짜 당연한 것인지를 물어보고 생각해 보는 것이 성장을 위해서 좋은 일이다.
좀 더 들여다 보면, 학회라는 것이 아주 객관적인 그러니까 입자물리의 모든 면을 공평하게(?) 보여주는 것이 아니기는 하다. 학회에서 주로 다루고 싶은 주제나 흐름이 분명히 존재하고 더 나아가서는 주최즉의 성향이나 친분 관계에 많이 의존하는데, 그 덕분에 학회가 학파 차원에서 세력 과시를 하는 장이 되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꽤 자주 주최측에서 초청하는 planary talk 발표자 중 학회 주제와는 그다지 큰 관련이 없는 사람이 나오거나 주최측의 관심사가 과도하게 반영되는 경우가 있다. 이번 같은 경우도 flavor discrete symmetry를 modular invariance와 연결짓는 것에 대한 이야기가 좀 심하다싶을 정도로 비중이 있었던 것 같다. 주최측인 Southampton 대학의 S. King 선생 관심사를 반영한 것을텐데, 어떤 것은 parallel session으로 돌려도 되지 않을까 싶은 것도 있었다. 그리고 그쪽 이야기를 처음 꺼낸 F. Feruglio 선생 이야기도 들으면 좋을 것 같은데 King 선생과 같이 일했던 사람만 계속 나와서 이걸 다른 각도에서 보면 어떨지 궁금하기도 하다. 그래도 이야기 자체는 의미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당장 관련 없어보이는 주제들도 결국은 연결될 여지가 있으니 과민하게 탓할 일은 아니기는 하지만 planary talk보다 더 좋은+학회 목적에 충실한 parallel talk이 있는 경우도 있으니... 원래 planary talk은 큰 주제에 대해 전체적으로 정리해서 보여주는 의미가 있다. 그래서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고 주최측에서 보통 이런 주제로 해 주세요.. 하고 섭외를 하기 마련이다. 큰 주제에 딸린 세부 주제들은 분과별로 나누어서 발표하게 하고, 그게 parallel session인데, 이 경우는 보통 신청을 받아서 주최측에서 일단 검토 후 승인을 해야 발표할 수 있다. 내가 화요일에 발표한 것도 그런 경우이다. 이번 planary session에서 조금 신경 쓰였던 것은 초끈 같은 이론 전용 학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실험 관련 발표 비중이 확 줄었다는 것이다. 일단 planary talk으로 초청된 실험단은 LHC의 세 group (ATLAS, CMS, LHCb) 밖에 없었다. 암흑물질 실험 하는 곳도 초청할만 한데... 다른 실험 관련 parallel session talk들도 실험 전용 session이 마련된 것이 아니라 현상론적인 이론 분석과 같이 묶어버렸는데, 이게 초대칭을 하는 분들의 실험에 대한 다소 지친 시각의 반영인지, 아니면 주최즉의 성향 탓인지 조금 애매하다. 일단 분위기 상으로는 그전에는 나름 관심을 가졌을법한 3sigma 정도의 anomaly에도 그다지 큰 반응이 없다는 점도 좀 걸렸다. 그러고 보니 저번 string phenomenology 학회 때도 그랬는데, planary talk 발표 하나당 주어진 시간이 30 분으로 꽤 짧아진 것도 낯설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최소 45분이라서 planary session 발표들을 여러 개 연속적으로 집중하면서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카페인 오르는 것 + 이뇨작용을 싫어하는 나도 각성제 용으로(...) 커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는데, 짧게 가서 지치지 않는 것은 좋지만 뭐랄까.. 전체적으로 죽 훑어준다는 장엄한(?) 느낌은 없었다. 요새 학회 경향인가 싶기도 하고... 사실 parallel session 발표 시간은 여전히 20분이라서 planary talk 중 어떤 것은 parallel session talk과 막 다른 느낌을 주지 않는 것도 있었다.
연구 주제와 관련해서는 이번에도 나름 소득이 있었다. String phenomenology학회에서 첫날 강조되었던 moduli potential의 asymptotic region 관련된 이야기를 J. Conlon 선생이 하셨는데, 우주론 관련해서 좀 더 생각할 거리가 있어 읽어 볼 가치가 있는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이분 연극하듯이 발표하시는 스타일은 여전하신 것 같다. Parallel session에서 발표하는 것은 저번에 같은 주제로 세미나 한 적이 있어서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는데, E. Palti 선생이 꽤 재미있는 질문을 하셔서 그것도 좀 생각 중. 이게 논문 내용에 대한 직접적인 질문은 아니기는 한데, 말하자면 너무 단순한 것만 생각하는 와중에 뭔가 놓치고 있는게 있는게 아닐지? 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라서.
코로나 이후 첫 해외 방문 + 학회 참석이었는데, 연구 기관이 아니라 대학에서 열리는 행사여서 그런지 학회 진행이 그다지 매끄럽지는 않았다. 그래도 막 불편하거나 그렇지는 않았는데 딱 한가지, 6시 되면 건물 문들이 자동으로 잠기는게 좀... 밖에서야 그렇다고 쳐도 안에서도 안열려서 갇혀 버리곤 했던 것이 좀 곤란했다. 대형 강의실 계단이 너무 경사가 심하다 싶었는데 아니나다를까 구르는 사람도 나오기는 했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주최측이 참석자에게 무심한 느낌도 들지만 (이즈음 되면 아쉬운건 여기 오는 당신들이야 하는 식의 오만함이 느껴지기도...) 다른 한편으로는 학회라는게 결국 연구에 대한 정보수집+의견교환인데 그런 목적이 손님 접대에 밀리는 것도 막 좋지는 않아보인다. 가끔 국내 학회가 과잉친절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서 그렇게 느끼는 것일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