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712
보통 논문을 쓴 다음에는 한 달 정도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를 몇 가지를 잡아서 공부를 하게 된다. 평소에도 적당한 책이나 논문 잡아서 준비운동 하듯이 보기는 하는데 그건 보통 아침에만 하지만 논문 쓴 다음에 하는 공부는 연구는 잠시 접어두고 낮 일과까지 당장 하는 연구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것을 보는 것에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이럴 때 흔히 하게 되는 것은 논문 하나를 잡아서 계산을 하나하나 뜯어보는 것이다. 관심을 끄는 주제에 관한 논문이 나올 때 시작하면 상당히 늦기 때문인데, 지엽적인 것에 매달리다가 길을 잃거나 흥미가 떨어질 수도 있고,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가질만한 주제라면 내가 생각하고 있는 동안 이미 논문이 나와버리기 십상이다. 내가 점쟁이가 아닌 이상 어떤 주제가 튀어나올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지금까지의 경험이나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과 관련해서 좀 자세히 봐야겠지 싶은 논문 혹은 책은 있기 마련이고, 그런 것들을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보는 것이 당장 쓸 논문 주제만 찾느라 나무만 보고 숲은 못 보는 함정에 빠지는 것보다 오히려 효율적인 면도 있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그냥 흥미 있어 보이는 논문을 보는 것도 어떻게 보면 재미로 책이나 TV 혹은 인터넷 저작물을 보는 것 같은 유흥거리가 되기도 한다. 아주 억세게 운이 좋으면 (나도 살면서 딱 한번 겪어보았지만) 어쩌다 본 논문이 몇 달 뒤에 정말 생각지도 않게 쓰일 일이 생기기도 한다. 그게 아주 우연은 아닌 게, 흥미를 끄는 논문들은 대체로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과 관련이 있거나 요새 논문을 보다가 발견한 것들이 많은데, 그 내용이 그냥 지나가는 유행 같은 것이 아니라면 언젠가는 또 이야기될 여지가 상당히 있다. 그리고 사실 당장 유행하는 것을 따라가지는 않더라도 처음부터 아주 좋은 논문을 쓰겠다는 욕심은 잠시 접어두고 (그렇다고 아무거나 대충 쓰면 당연히 안되지만) 적당한 (오랜 시간에 걸쳐서 지속적으로 이야기가 되거나 한번 제대로 파보면 공부가 많이 될 것으로 파악되는 것들이다) 주제를 잡아서 충분히 생각하고 연습 삼아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맞춰서 재구성해 보는 것도 좋은 연습이 된다. 이게 당장은 아니더라도 길게 보면 나름대로 자산이 되는 것 같다. 사실 준비가 부족한 상황에서 아주 빠른 시간 안에 뭔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 너무 강하면 별 내용이 없는 논문을 쓰거나 아주 좋지 않은 경우에는 틀린 이야기를 할 수 있다. 적어도 미리 조금씩 해 둔다면 (그리고 할 수 있는 실수를 미리 해 둬서 고친다면) 그럴 가능성은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보통 주제 자체가 너무 생소하면 '시간 들이면 이해할 수 있겠지만 당장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시간도 오래 걸리니 미뤄두자'는 판단으로 갈 수밖에 없는데, 좀 더 냉정히 보면 우연히 나에게 그 주제를 친절히 설명해 줄 누군가를 만나기 전 까지는 평생 못하게 된다. 그래서 미루는 것보다 구미가 끌릴 때 조금이라도 봐 두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좀 더 뜯어보고 싶은 논문이 있기는 한데, 그건 좀 준비가 필요한 것 같아서 일단 조금씩 준비해 두다가 다음 논문 끝난 뒤에 볼 계획이다.
이번에는 하나를 잡아서 집중적으로 보지는 않고, 리뷰 논문이나 강의록 몇 편을 한번 죽 홅어보면서 앞으로 좀 더 파 볼 것들은 정하고 필요한 것은 이야기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기본적인 그림을 파악하는 것에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 보니 이건 좀 더 공부해 두면 좋겠다 라거나 한번 연구주제로 생각해 봄직하다 싶은 것들이 몇 가지 눈에 띄기는 하는데, 아마 그것들 중에 실제로 논문까지 가는 것은 거의 없겠지만 이해해 볼 가치는 있는 것 같다. 보통 뭔가를 이해하려면 직접 계산을 해 봐서 통상적으로 사람들이 간단하게 이야기하는 것 뒷면에 있는 여러 애매한 면을 보고 어떻게 풀어나갈지에 대해 감을 잡을 필요가 있는데, 반대로 계산을 하는 것에 집중하느라 이게 정말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도 꽤 있다. 이럴 때는 간단하게 이것이 무엇을 말해주는 것이다..라고 정리한 경험자의 한두 마디가 상당히 좋은 힌트가 된다. 사실, 많은 경우 '아는 사람만 아는' 것들이 있어서, 책이나 논문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지는 않지만 관련된 일을 해 본 사람이면 아는 '뭔가'가 있는 경우가 꽤 있는데, 이게 생각보다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들이 꽤 있다. 논문에서 식을 딱 보여주고는 바로 그런 간단한 결론으로 바로 이야기가 옮겨가서 이게 어떻게 되는 건지 중간 단계를 읽지 못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학부 때 처음 전공을 공부할 때 느꼈던 어려움을 그대로 느끼는 것에 가깝기는 하다. 내 입장에서 보면 계속 계산하고 해서 아주 간단한 상황 파악은 되지만 이게 진짜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해하는 단계까지 아직 닿지 않고 있거나 혹은 여러 질문이 쌓여서 다소 답답한 상태에서 길을 열어줄 뭔가가 필요한 셈인데, 그냥 중간 단계에서 끊기다 보면 가뜩이나 머리 좋지 않다 보니 그대로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가뜩이나 시간이 아쉬울 일이 많다 보니 시간을 부어도 건지는 게 없으면 전진은 못한 채 계속 헛바퀴 돌리는 느낌이 들어 많이 불편하다. 그래서 그런 상황은 되도록 줄이고 싶고, 그런 면에서 보면 overview가 잘 되어 있는 것이나 사람들의 말이 많이 아쉽다.
학회를 많이 가거나 책 혹은 논문을 많이 보더라도 제대로 된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하는 것은 이해하는 방법을 아직 잘 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많은 내용을 접하고 무슨 소리를 하는지를 알더라도 무엇이 특별한지를 잡지 못하고 잔잔한 평면파를 보는 느낌만 가지는 것인데, 나중에 알고 보면 그때 그냥 지나친 것이 내가 정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것과 연결되어 있고 사실은 중요한 떡밥이었다는 것을 눈치채는 일이 은근히 많다. 일단 내가 눈치가 그다지 빠르지 않은 (그래서 그다지 똑똑하게 보이지 않는) 것과도 관련이 있기는 할텐데, 당장 눈치채지 못해도 돌아가서라도 볼 것들은 챙겨야 하니까... 보통은 대가가 이야기하거나 사람들의 유행이 있는 것들을 고르는 것이 편하기는 하지만, 그게 절대적인 기준이 되는 것도 아니고, 적어도 내가 스스로 어느 정도 제대로 판단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남들은 잘 눈치채지 못해도 가치 있을만한 것을 보는 것이 중요하기도 하고, 현실적으로도 보통 사람들이 유행이라고 할 정도로 몰려들어 관심을 가지게 된 시점이 되면 가치 있는 것들은 대부분 이야기되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게 된다. 아무리 못해도 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좋으니까... 살다 보면 스스로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괜찮은 이야기를 잘 잡아서 그 사람을 적절히 '이용하고' 자신은 그것을 고른 안목 자체에 만족하는 경우를 보기는 하지만, 그 괜찮은 이야기를 하는 '다른 사람'은 단순히 '출중해서' 좋은 이야깃거리를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계속 생각을 하고 직접 보고 실수도 해 가면서 하나씩 쌓은 결과일 것이다. 이건 단순히 자신에게 익숙하거나 쉬워 보이는 것에 기대어 원래 가지고 있는 것을 소비하기만 하거나, 질문을 하는 것에만 만족하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을 포기한 채 누군가가 친절하게 설명해 주기만을 바라는 것만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고, 그래서 어떻게 보면 평범하게 만족하면서 사는 것과는 거리가 있게 살아야 할 수도 있다. 아마 시간이 많거나 머리가 좋거나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만 둘 중 하나도 잡지 못한 것 같아서.... 그런데 생각해 보면 실용성 같은 것은 저 멀리 던져 놓고 '자연의 근본 원리를 탐구한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 고민도 안 하는 것이 정말 괜찮은 것인가... 내지는 그게 정말 처음 이론 물리에 관심을 가졌을 때 되고 싶었던 물리학자의 모습인가...라는 회의감이 가끔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