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15
일단 종강은 했는데 행정적인 마무리들이 줄줄이 있어서 다음 주까지는 다소 정신 사나울 것 같다. 사실 방학이 좋은 건 연구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인데 이번 방학은 그것도 좀 힘들 것 같아서... 어떻게든 아쉬운 대로 시간 내서 하는 중이다. 일단 지금은 공부 모드라서 보충해야겠다 싶은 거 다시 보고 예전에 논문 썼지만 좀 설 이해한 것 같은 쪽 리뷰 논문 하나 챙겨보고 그동안 봐야겠다 하고 찜해 놓은 논문 하나 정도 보면 6월 다 가지 않을까 싶다. 7월에 욕심 내서 학회 두 개를 가는데 좀 배우는 것이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뭘 해야 할지 생각도 해 봐야겠고... 좀 구미 끌리는 이야기들은 있는데 항상 그게 괜찮으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
학생 때 이것 저것 다양한 것을 최대한 접하려고 신경을 꽤 썼는데, 그러다 보니 지금 그때 공부해 놓은 것을 보면 이게 분명 내 글씨 맞긴 하는데 내가 정말 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것도 있다. 세월이 지나면서 머리도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나 싶은데, 그래도 그 당시 발이라도 걸쳐 놓아서 지금 다소 편하다고 위안 삼아야 할지, 아니면 그때 좀 더 체계적으로 했거나 적절한 조언을 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 상황이 더 낫지 않을까 하고 아쉬워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업계도 내가 학생일 당시와 지금 상황이 꽤 다른데, 어떤 면에서는 예측할 수 있었던 것인지라... 그래서 배운 교훈 중 하나는 연구의 호흡을 좀 더 길게 잡을 필요가 있다는 것 정도? 당장 살아남기 위해 논문 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할 수는 있지만 이게 기약 없이 지속되면 그만큼 동기 부여가 안되어서 오히려 헤매는 감도 있는데, 장기적인 목표가 있는 것이 그래도 심리적으로나마(...) 나쁘지 않은 버팀목이 되는 것 같다. 그리고 자리 잡은 다음에도 지속적으로 방향성 있는 연구를 할 수 있는지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것 같고. 이게 잘 안되면 교수가 되어서도 연구 주제를 스스로 선택하지 못해서 예전에 같이 일했던 사람의 '아랫사람'으로 계속 남거나 연구 이외의 다른 곳에 더 신경을 쓰게 되는데, 이게 절대 좋은 것은 아니기는 하다.
그나저나 이론물리를 하다 보면 '수학'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가지고 약간 혼선이 생기고는 한다. 간단히 말하면 어디까지 들어갈까의 문제인데, 말이 좋아서 이론물리라고 묶어놓고 있지만 그 안에서도 얼마나 수학적으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천차만별인지라... 물리라는 것 자체가 딱 경계가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래서 연구하다가 여기서부터는 수학이니까 이제 안할래.. 라고 하는 순간 많은 가능성을 날려버리는 면도 있다. 너무 추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자연에 대한 아주 구체적인 이야기를 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이 물리의 역사에서 한두 번도 아니고.. 예전에 학부 때 과학사 수업 들으면서 듣게 된 것이기는 하지만, '물리'의 경계라는 것도 시간에 때라 계속 변했던 것도 사실이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태초에 물리가 정의되고 그 안에 이미 역학 전자기 같은 것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계속 자연을 이해하려고 시도하고 혹은 공학적인 발전이 이루어지다가 모르는 영역을 건드는 과정에서 덧붙여지고 다듬어지면서 '물리'라는 카테고리가 나오게 된 것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어렴풋이나마 이게 물리의 영역이다.. 고 느끼는 범주가 확정된 것은 19세기말에 와서의 일이라고 할 수 있는데, 기존에 '고전역학'의 범주에서 이해하려고 했던 영역이 대체적으로 천체현상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전자기학은 고전역학의 일부라기보다는 공학적인 영역으로 오랜 세월 동안 인식되어 왔더라는 것이다. 그러다가 전자기 기술의 발전에 전자기 상호작용의 이론적인 이해가 따라오면서 고전역학 채계와 통합이 되는데, 그 과정에서 발견된 '모순'이 특수상대론으로 이어진 것이고 그런 식으로 현대 물리의 영역으로 넘어온 것이라나. 어쨌건 물리를 하는 입장에서 수학을 보면 사실 직접 관련된 뭔가가 떠오르지 않으면 흥미를 느끼기 쉽지 않다. 증명이야 따라가면 되고 그게 주는 정리나 따름정리들은 말하자면 흐름 같은 것인데, 그 결과에서 물리적으로 심상치 않은 것을 바로 떠올리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미분기하학 한 학기 배웠다고 바로 일반상대론이 떠오르는 것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인데, 관성계나 general covariance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다면 수학만을 가지고 일반상대론의 이야기를 모두 구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찬가지로 대수에서 quarternion을 배웠다고 금방 spin을 떠올리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수학은 마지못해 끌어와 쓰는 사람도 꽤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기는 해도 그 안에 아직 모르지만 알고 싶어 하는 뭔가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 사람을 감질나게 만드는 면도 있는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