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nf1 2025. 7. 1. 10:18

 대학처럼 오래된 곳은 이사할 때마다 유물들이 나온다. 사진 같은 것이 나오면 이 사진의 주인은 그 당시의 추억을 어떻게 기억할지 왠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예전에는 소중하게 여겨진 것들이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고 기억에서조차 지워지기도 한다는 것이 새삼 실감이 난다. 생각해 보면 학생 때 CD를 '굽는다'는 개념이 꽤 일상적이었지만, (윤오영 선생의 방망이 깎던 노인을 패러디한 CD 굽던 노인도 있다 ㅋ)  USB를 비롯한 다양한 저장 매체가 나오고 휴대폰과 컴퓨터들이 동기화까지 되는 지금은 생소한 이야기가 되고 있다. 일단 부피 대비 용량을 생각해 보면 지금 같은 일상은 당시에 상상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고.. 디스켓은 더 말할 것도 없는데, 소싯적에는 5.25인치 디스켓에서 3.5인치로 바뀐 것도 꽤 신세계였다. 크기가 줄어들기도 했고, 이전에는 노출되어 손으로 만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했던 자기 디스크 부분에 보호용 캡이 씌워진 것도 꽤 발전으로 보였으니까... 컴퓨터 드라이브에 집어넣으면 자동으로 젖혀지도록 한 것인데, 어렸을 때는 상당히 신박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었다. 물론 지금은 디스켓 드라이브가 있는 컴퓨터 찾기가 힘든 세상이다. 그래서 디스켓 뭉치를 지금 어떻게 쓸지 떠올리는 것이 쉽지 않지만.. 플라스틱 케이스는 상당히 좋은 연필꽂이(...-_-)가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마 당시 디스켓 산 사람은 30여 년 뒤에 디스켓보다 케이스가 더 쓸모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5.25인치 디스켓이 3.5인치 디스켓으로 바뀌는 과정 (그리고 그 이전에는 사실 더 큰 8인치 짜리도 있었다. 내가 국민학생 때 이미 흐릿한 존재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과 디스켓이 CD로 대체되고, 다시 USB 같은 것으로 대체되는 과정의 간극은 상당히 크다. 디스켓이라는 범주 안에서 큰 개선을 이루는 것과 저장매체가 아예 바뀌는, 판 자체가 달라져 버리는 것의 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직업상 연구에 대입하게 된다. 결국 지금 논문 쓰고 고민하는 것은 대체로 전자의 일이다. 그런데 Steven Weinberg 선생도 강조하셨지만, 이미 있는 식 안에서 노는 것에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래서 자꾸 궁금해진다.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분명히 처음에는 낯설지 몰라도 그걸 처음부터 접한 세대에게는 아주 자연스러울 것 같은데.. 콜럼버스의 달걀이 괜히 유명한 게 아니다.

 보통 이미 알려지고 사람들이 훈련받는 범주 안에서 찾기 힘든 경우라면, 외부에 해답이 있을 수 있다. 단적으로 지금까지 물리의 범주에서 다루어져 오고 배워온 것 안에서 답이 없을 수 있고, 결국 다른 영역에서 힌트를 얻어 새로운 물리의 범주를 만들어야 할 수도 있는 것인데.. 20세기 초반에는 수학이 좋은 역할을 해 주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직관으로 알 수 없는 영역을 다루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대론과 양자역학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자부심이 아주 높아진 분이 D. Hilbert 선생이다. 본인이 일반상대론의 Einstein 방정식을 직접 (그것도 Einstein 선생보다 먼저) 발견하기도 했고, 양자역학의 수학적 구조가 다름 아닌 Hilbert space니까.. 그래서 Hilbert 선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수학으로 물리를 보다 완벽하게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셔서 물리 쪽을 기웃거리기도 했고, Einstein 선생이 그거 가지고 빈정댄 것을 본 기억이 난다. 아무튼 이후 양자역학 발전 과정에서 (spin의 발견이라거나...) 실제 일어나지 않는다고 여겨졌지만 수학적으로 가능한 것들이 나중에 실험을 통해 확인되면서 수학의 역할에 대해 점점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게 된 면이 있었는데, 한편으로 수학만으로 발견하는 것 역시 나름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고, 기존 방식으로 교육받으면서도 중요한 발견을 했던 물리학자들도 ('이론' 물리학자마저도 : 그 당시야 지금만큼 이론과 실험이 구분되지는 않았지만... 사실 추상적인 면이 들어오는 현대물리의 특성 때문에 이론과 실험의 구분이 커진 면이 있다.) 수학이 물리학에 과하게 들어오는 것을 경계하기도 했던 것 같다. F. Bloch 선생의 회고에 의하면, 이 분이 H. Weyl의 space, time, and matter 책을 보고 공간은 선형대수라고 열심히 떠드셨더니 옆에 있던 W. Heisenberg 선생이 '무슨 소리니... 공간이 이렇게 파랗고 새가 날아다니는데..'라고 핀잔을 준 적이 있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이런 것들이 학생 때 옆에서 보곤 했던 풍경인지라 재미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나도 비슷한 일화가 있는데, (전문연구요원이라서 4주밖에 되지 않지만) 논산 훈련소에 있을 때 내가 물리 전공한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이 그러면 세상이 양자화되어 점으로 보이냐고 물어본 기억이 난다. 그때 내 대답이 그렇게 보이는 건 하수고 진짜 물리를 아는 사람은 왜 세상이 이렇게 연속적으로 보이는지를 이해하기 때문에 그냥 똑같이 보인다는 것이었다.ㅋ

 여하간 지금 이론 물리 안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가 그 영역 안에서 해결되지 않을 가능성은 아주 많은 것 같다. 연구해 오면서, 그리고 과학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강하게 느끼게 된 것은 무엇이 물리인지라는 아주 분명한 정의는 없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계속 진행되어 가면서 범주가 넓어지기도 하고, 화학이든 공학이든 수학이든, 다른 영역으로 넘어가기도 하는 것이 워낙 흔하다 보니... 지금 누구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수학 혹은 다른 분야에 지금 중요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열쇠가 있을 수 있고, 그게 맞다면 그 내용들은 물리학자가 이해하는 방식으로 정리되어 다음 세대가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고전역학 시대부터 암시되어 있는 것처럼) 배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리된 다음 뒤돌아보다 보면, 알고 보니 이미 힌트가 여기 저기 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될 수도 있다. 사실 그런 경우는 꽤 흔하다. Spin을 예로 들어보면, 이미 자기 현상이 orbital 각운동량으로 설명되기 힘들기 때문에 각운동량에는 orbital 각운동량 이외의 뭔가가 있다는 상상을 해도 이상하지 않다. Lorentz 변환도 공간의 등방성과 균일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가장 일반적인 관성계 사이의 변환인지라, 기존의 지식만을 가지고 이끌어낼 가능성이 0은 아닌 것 같다. 그렇긴 한데, 어떤 이론틀 안에서 배우게 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뿐만 아니라 관점까지 포함되는 것이라서,  때로는 사람들의 시각이 한쪽에만 몰리다 보니 사각이 생기는 것이 의외로 쉽다. (책이나 review를 본다고 바로 연구 주제가 떠오르지 않는 것에는 이것도 큰 지분을 차지할 것이다. 따로 문제 의식을 가지거나 이것들에 나오지 않지만 연결될만한 뭔가를 알고 있지 않는 한, 논리적으로 그럴싸하게 기술된 것에서 헛점을 발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잘 정리된게 오히려 논리적으로 납득하게 만들어서 문제를 만들기 어렵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외부의 지식은 단순히 문제를 푸는 도구를 제공해 줄 뿐 아니라 관점을 다르게 할 계기 혹은 다른 관점을 가지고 있을 때 구체적으로 할 수 있는 벙법을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도 상당히 의미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는 방식이 아예 바뀌면, 이미 존재하는 것 안에서도 더 두드러지게 눈에 띄는 것이 생기는 것 같다. 기존의 지식을 가지고도 볼 수 있고, 그래서 발견할 수도 있지만 (사실 Heisenberg 선생이 행렬 모르고 행렬역학 발견한 것이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그것을 보다 제대로 된 형태로 정리하고 그것을 토대로 새로운 관점을 만들고, 뒷세대들이 혼란에서 빠르게 벗어나 새로운 뭔가를 발견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그 이상의 뭔가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라서.. 또 한편으로 보면, 수학만 가지고 모든 것을 하는 것도 한계가 있는 법인지라 (그러니까 Hilbert 선생의 야망이 현실화되지 않았던 것이다. 심지어 수학 안에서도 그 당시 그렇게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이 나중에 중요하게 부각된 것도 있으니까...) 결국 다 맞는 역할이 있고 또 동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 정답일 것이다.

 사실 지금 연구하면서 이 점이 강하게 느껴지는 것 같다. 코로나 이전에는 어떻게 보면 현상적인 것에서 벗어나는 것에 여러 심리적인 거부감이 있었던 느낌이 든다. 지금도 없지는 않은데.. 일단 갈릴레이 때부터 물리하는 사람들이 배운 교훈, 그러니까 현실에서 잠시 한걸음 떨어져서 볼 때 오히려 더 현실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원리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도 있지만... (추상화나 단순화, 혹은 특정한 물리적인 성질을 강조하는 toy model 같은 것을 생각해 보면, 그게 오히려 현실에만 집착하는 것보다 더 제대로된 이해를 주는 경우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현실적으로는 논문 보거나 공부할 때 이러면 어떨까 해서 보다 보면 그게 불과 2-3년 사이에 논문화된 것이 종종 눈에 띄어서, 조금만 더 일찍 관심을 가졌더라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그게 더 아쉬운 것이, 지금까지의 방법대로 하면 연구를 진행하는 것이 결국 한계를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쨌든 지금까지 익숙하지 않았던 것을 가지고 뭔가 하지 않으면 더 깊이 들어가지 못하고, 누군가가 뭔가를 제시한 다음에야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왠지 '끌려다니는' 느낌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 같아서.. 그렇다면 지금 내가 관심 있는 여러 문제들을 '이끌어가고 있는' 사람들마저 보지 못하는 것을 보려면 무엇이 필요할지가 궁금해진다. 내가 가지고 있는 면들, 그러니까 처음부터 이론적으로 교육받지 못한 것이 다른 시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줄지, 아니면 더 공부하지 않으면 계속 뒤에 머물게 할 한계가 될지도 궁금해지고.. 그래서 일단 계속 책을 보고 논문을 보면서 어떻게든 방향을 잡으려고 하는 중이다. 이게 모쪼록 조만간 나름 결과를 주면 좋을 것 같은데, 사실 그것조차 명확하지 않아서, 계속 헤매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리고 그렇게 헤맬 수 있는 시간이 언제까지 주어질지도 명확하지 않아서, 계속 불안한 느낌이 남아있다.

 그런 궁금증이 좀 다른 형태로 나타나는데, 나에게 수업 듣는 학생들은 좀 괴로울지 모르겠지만, 수업할 때 가르지는 내용을 자꾸 비틀어보(고 그걸 시험 문제로 내)곤 한다. 예를 들어... 특수상대론 보면 기차에서 수직으로 빛을 쏘았다가 반사되어 돌아오는 예제는 아주 많이 다룬다. 요새는 고등학교에서도 상대론 가르치니까 꽤나 익숙한 예제인데.. 여기에 쌍둥이 역설이 숨어 있다. 이야기는 간단하다. 빛이 방향을 바꾸지 않는다면 proper time은 그냥 0이다. 그런데 방향을 바꿨기 때문에 (그러니까 관성계를 갈아탔기 때문에) 거울에서 반사되어 제자리로 돌아온 빛의 proper time은 0이 아니라 좀 길어진다. (사실 이걸 예전에 수업할 때 한 대학원생이 궁금해한 적이 있었다. 쌍둥이 역설로 연결 짓는 부분까지는 가지 못했어도, 꽤 괜찮은 착상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빛 입장에서는 거울에 반사되는 순간 순식간에 관성계를 갈아탔다고 하더라도, 그걸 보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빛이 관성계를 갈아타는 동안 시간이 훅 흘러간다. (빛을 우주선이라고 생각하고 그게 반사되는 것을 보는 관찰자는 지구라고 생각하면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