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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ale separation

dnrnf1 2025. 6. 11. 15:52

연구를 하면서 재미있게 느꼈던 점 중 하나가, 같은 것을 다루더라도 관심사가 다르면 완전히 다른 생각을 가지고, 때로는 서로 이해하기 힘든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당장 지금 관심이 있는, 현재 우주를 잘 설명하는 양자중력 모형도 그러한데.. 현상론에 치우쳐 있을 때에는 supergravity로 근사한 action을 다루는 것에 별 저항감이 없었다. 적절히 large volume, weak string coupling limit에서 낮은 energy degrees of freedom (질량이 cutoff보다 낮은 것들)에 대한 effective action을 쓴 것이고, 그 안에서 어느 정도 일관된 이야기를 하고 있겠거니 한 것인데... 그러다 보니 KKLT 같은 모형에 대해 시비가 붙은 것이야 학생 때부터 알고 있었지만, 왜 그렇게 싸우는지, 혹은 어쩌다가 그런 형태로 태클이 걸린 것인지가 와닿지 않은 면이 있었다. 그런데 모형을 통해 현실을 예측한다.. 는 관점에서 그 모형 자체가 어떤 특성을 가지는지, 혹은 모형 너머의 구조가 어떤 것인지에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옮겨가니까 여러 문제점이 숨어 있다는 것이 계속 걸리게 되고, 결국 특정한 근사에 잡히지 않는 양자 중력 자체의 성질을 고민하게 되는 계기가 된 것 같다. 물론 두 관점 사이에 우열이 있다는 이야기는 아니고.. 각자 우선적인 관심사가 있고, 할 수 있는 영역을 다루고 있는 것뿐이니까.. 문제는 나 자신일 것이다. 연구를 하다 보니 혹은 물리에 대한 취향에 따라 관심사가 옮겨 간 것이고, 처음에는 같은 것을 다루니까 별 문제없겠지 싶었던 것이 사실 짧은 생각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그래서, 때로는 꼭 완전히 옮기지는 않더라도, 자신이 익숙한 영역 바깥을 겪어라도 보는 것이 내 연구의 질을 높이는 것에 꽤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Supergravity effective aciton을 적으면서, high energy degrees of freedom을 지워 버리는 것을 truncation이라고 부른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dimensional reduction일 것이다. 여분 차원에 의존하는 field들을 0으로 놓아서 KK excitation들을 고려하지 않는 것으로, 결국 가장 가벼운 것들의 dynamics만을 다루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정말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항상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Effective aciton을 얻는 가장 정석적인 과정은 내가 볼 수 없는, 즉 무겁거나 내가 관심 있는 입자들과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는 (coupling이 매우 약한) degrees of freedom을 path integral에서 적분해 버리는 것이다. 이때 유효이론에 남는 degrees of freedom과 적분해 버린 degrees of freedom이 아예 상호작용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면, 적분 된 것들의 효과는 유효이론에 남게 되고, 이게 다른 게 아니라 irrelevant operator 들이다. 이들이 cutoff scale로 suppressed 되기에 낮은 energy에서 무시할 수 있다고 여겨지게 되고, 이 생각이 맞는 영역에서만 적분 된 것들을 0으로 놓는 것과 실제 low energy dynamics가 근사적으로 맞게 된다. (그냥 생각 없이 적분 된 field들을 0으로 놓으면 이들과 유효이론 field사이의 상호작용을 꺼버리는 샘이 되어 irrelevant operator가 없는 것과 같은데, 결국 irrelevant operator들이 무시할 정도로 작은 상황을 근사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사실, chaotic inflation이나 natural inflation같이 trans-Planckian field value들이 나오는 이론들이 의심받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통 energy density만 작다면 field value들이 크더라도 background를 크게 변형시키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들 이야기하지만, cutoff 보다 큰 값을 가지는 field가 있을 때 irrelevant operator들은 일반적으로 무시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irrelevant operator가 무시된다고 계속 가정하고 전개하는 이야기를 계속하고 싶다면,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모종의 물리적인 이유를 찾아야 한다. 대칭성에 의해 irrelevant operator들을 쓰지 못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특히 중력이 개입되면 global symmetry는 깨지는 것이 자연스럽기 때문에 global 대칭성을 무턱대고 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초끈 이론의 effective theory를 다루는 것'이 'supergravity effective action'을 다루는 것과 꼭 일치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적어도 supergravity effective action를 안심하고 쓸 수 있다는 (이런 경우를 consistent truncation이라고 부른다)  보장이 있어야 한다. 그런 고민 없이 무턱대고 supergravity 안에서만 논다거나, 10차원 dynamics가 정말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4차원 이론에서 나오는 항을 그냥 쓰면 엄밀히 말해서 초끈 이론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supergravity를 다루는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양자중력과 어긋난 뭔가를 무심코 쓰고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인데... KKLT와 같은 metastable de Sitter 모형들이 공격받는 지점 중 많은 수가 바로 이런 것들이다. 내가 택한 truncation 그러니까 내 딴에는 무한히 많은 field들의 공간에서 가벼운 것만 선택적으로 다룬다고 (혹은 같은 말로 potential이 비교적 크게 변하지 않는 면만 딱 slice해서 본다고) 했지만 이게 진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지가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조금만 flux 같은 parameter를 바꾸어도 무겁다고 생각하고 적분해버린 field들이 가벼워져서 유효이론에서 더 이상 무시할 수 없게 될 수도 있고, 심지어 metastable 한 지점을 찾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내가 생각하지 않은 field 방향으로 potential이 불안정할 (즉 실은 saddle point일) 수도 있는 것이다. Kaluza-Klein (KK) mode들이 무겁다고 생각했는데 사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영역에서 가볍다면, 내가 다루는 4차원 유효이론은 허상일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한 논의는 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꽤나 오래된 문제이다. 다시 말해서 초끈 이론을 가지고 현재 우리 우주를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를 생각하기 시작할 무렵부터 계속 따라다녀온 이야기라는 것. 

 그런 면에서 부각되는 중요한 문제가 scale separation이다. 관련된 이슈들에 대한 최근 정리는

 T. Coudarchet,
Hiding the extra dimensions: A review on scale separation in string theory
Phys.Rept. 1064 (2024) 1 , 2311.12105 [hep-t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2724900

 Scale separation을 정의한다면, 4차원 공간의 곡률과 6차원 compactified된 공간의 곡률이 차이가 많이 나서, 우주상수 scale보다 KK mass scale이 훨씬 큰 경우를 이야기한다. 문제는 이게 현실 우주에서 일어난다고 생각되지만, 초끈 이론에서 구현하는 게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더라는 것이고. 사실, 초끈 이론과 실제 관측 가능한 1+3차원을 맞추기 위해 compactification을 하지만, 6차원 공간을 compact 한 공간으로 만든다는 것과 그 6차원 공간이 관측할 수 없을 정도로 작다는 것은 아주 다른 이야기이다. 물론 brane world scenario 같은 것을 생각해서 우리가 특정 brane 위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면 여분 차원이 크더라도 많은 KK mode들이 생기지는 않지만, 적어도 gravity는 여분 차원에서도 작용하기 때문에 여분 차원의 크기가 클수록 잘량이 낮은 KK graviton은 볼 수 있어야 한다. 특히 swampland program에서 주장하는 바로는,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를 기술하는 parameter들은 landscape(=초끈 혹은 양자중력으로 구현할 수 있는 영역)과 swampland(=뭔가 초끈 혹은 양자중력과 어긋나는 것이 있어서 구현이 안 되는 영역)의 경계 부분에 있고, 여기서는 KK tower나 string excitation과 같은 tower of states들이 매우 가벼워야 하기 때문에 여분 차원이 관찰 가능할 정도로 크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C. Vafa 선생은 여분차원 한두 개가 꽤 커서 keV scale의 KK graviton이 있고 이게 사실 암흑물질이라는 주장을 하기도 하셨는데.... 

E. Gonzalo, M. Montero, G. Obied, C. Vafa,
Dark dimension gravitons as dark matter
JHEP 11 (2023) 109, 2209.09249 [hep-p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2154234

역사적으로 보면, 큰 여분차원은 다른 동기 즉 gauge hierarchy problem을 풀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로 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폭발적인 관심을 받아 왔고, LHC의 주요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적어도 LHC에서 보는 KK graviton 질량은 TeV 밖으로 밀려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단순히 astrophysical bound만으로 그렇게 가벼운 KK graviton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뭔가 걸리는 느낌이 들기도 하고... 


 일단 de Sitter는 초끈이론에서 구현하기 쉽지 않기에 우주상수가 있는 우주로 주로 다루는 것은 anti-de Sitter (AdS)이다. 사실 KKLT든 large volume scenario든, 우선 AdS를 얻고 여기에 추가적인 potential 올리기 작업을 하는 구조이고, 이 추가적인 potential은 보통 아주 작은 섭동 (사실 이것도 정말 그런지 슬슬 의심이 가는데...) 으로 여겨지는지라, 일단 AdS부터 다루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이기는 하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꽤 많은 문제가 튀어나온다. 일단 10차원에서 4차원으로 어떻게 떨어지는지 근원부터 따진다면, KKLT나 large volume scenario의 기반이 되는 type IIB의 경우 이거 확실히 scale separation이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싶은 것은 없다시피 한다. (왜 그럴까...??) 몇 시도가 있지만 이것도 상당히 태클이 걸린 상황이다. 그래서 scale separation 자체를 진지하게 다루는 논문의 경우 보통 type IIA를 생각하고, 이걸 구현한다고 생각되는 유명한 모형으로 DGKT 모형이 있다. 

O. DeWolfe, A. Giryavets, S. Kachru, W. Taylor,
Type IIA moduli stabilization
JHEP 07 (2005) 066, hep-th/0505160 [hep-t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682869

문제는 이것도 꽤나 수상한 점이 많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이 모형에서 초대칭이 어떻게 나오는지 분석해 보면, O6-plane이 있긴 한데, 이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orientifold할 때 동반되는 involution (제곱해서 1이 나오는 discrete 변환)의 fixed point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분 공간 위에 연속적으로 분포되는 것으로 (smeared) 보인다.. D-brane도 아니고 아무 곳에나 놓을 수 없을 것 같은 O6 plane이 smeared되어 있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가 일단 생각할 거리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상당히 특별한 방식, 예를 들어 tree level superpotential이 non-perturbative correction과 비슷할 정도로 작은 경우를 이용해서 scale separation을 구현하는 KKLT 모형이 의심스러워 보이는 것은  사실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말 여기서 일어나는 scale separation이 문제가 없는 것인지, 문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실제 우주를 기술하는 것인지, 반대로 문제가 없다면 지금 무엇을 놓치고 있는 것인지...???

 초끈에서  (현실 우주가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AdS 공간이 잘 쓰이는 이유 중 하나는, 이 공간에는 한차원 낮은 boundary가 있고, 양자중력에서 중요한 성질로 생각되는 holography가 AdS 공간과 그 boundary에서 각각 정의된 물리의 대응관계로 구현될 수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특히 AdS의 isometry는 다른데 아니라 conformal group과도 연동되기 때문에, AdS/CFT라고들 부르고 이게 엄청 유명하긴 한데... 여기서도 미묘한 점이 또 나오는 것이, 대응관계가 분명한 AdS/CFT의 경우, AdS의 우주상수 scale은 사실 compact 공간의 scale과 같다. 다시 말해서 KK mass들이 적어도 우주상수 scale 정도라서, AdS 공간 입장에서는 여분 공간의 존재가 아주 확실하다는 것이다. 물론 scale separation이 일어나는 경우에 대한 AdS/CFT 대응에 대한 논의도 많이 있어왔고, KKLT나 large volume scenario의 경우 어떤 CFT에 대응될지에 대한 논의도 있어왔지만, 아직 그 지위가 확고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도 좀 아이러니인 게... 사실 KKLT의 기반이 되는 여분차원의 구조는 (warped) Calabi-Yau공간 중에서도 Klebanov-Strassler throat이라는 뿔이 달려 있는 경우이고, 이때 이 throat에 대응되는 gauge theory는 충분히 논의되었다. 문제는 이 throat이 만드는 AdS가 아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brane 위에 형성된 AdS로, 후자에 해당하는 CFT로 무엇이 마땅한지가 애매한 것이다.

 이 즈음 되면 몇 가지 선택지가 생긴다. 초끈 이론이 혹시 우리 우주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양자중력이 아니라 다른 형태의 양자중력인지 의심할 수도 있고, Vafa 선생처럼 오히려 이러한 초끈 이론의 성질이 아주 가벼운 KK mode의 존재를 '예측'하니까 실험/관측으로 볼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면, 우리에게 익숙할 scale separated universe는 여기에 대응되는 3차원 이론이 CFT가 아닌 뭔가 다른 형태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그런데 이거 주장하려면 AdS isometry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해결해야 한다.. ) 어느 쪽이 맞는지 잘 모르겠다 보니 어느 쪽으로 더 파고드는 것이 좋은 지도 애매하기는 하다. 여하간 분명한 것은 처음 생각했던 것보다 이야기가 단순하지 않다는 것일 게다. 때로는 모르는게 약이라고, 이런 이슈들에 대한 고민 없이 탁 던진게 어떻게 어떻게 돌고돌아 실은 정답이었다...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지도..-_- 그러고 보면 UV completion에 대한 고려가 훨씬 덜한 상태로 당면한 현상론적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 Randall-Sundrum model이 나온 뒤 이걸 초끈에서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하다가 Giddings-Kachru-Polchiski가 나오고 moduli stabilization에 대한 논의가 중요한 진전을 이루었다는 옛적 이야기가 떠오른다. 이건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