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nf1 2025. 5. 23. 14:45

 수업을 맡고 있는 강의 중 현대물리가 있다. 2학년 2학기에서 3학년 1학기에 걸쳐서 수강하게 되어 있는 과목이라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할 수는 없고, 종종 관련된 ( 사람들에게 들은 것부터 책에서 본 것까지 다양한) 뒷 이야기를 끼워 넣게 되는데, 썰 풀다 보면 천재들도 사람 맞긴 맞구나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기억 능력이나 연산 능력이 월등히 뛰어난 사람은 많고 내가 평생 따라잡지 못할 것 같지만, 그 사람들이 모두 중요한 업적을 남기지 못하기도 한 이유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은데, 다른게 아니라 그렇게 똑똑한 사람들도 편견에서 자유롭기 힘들고, 그게 중요한 발견 바로 앞에서 (그걸 실제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와는 별개로) 멈추게 만들기도 한다는 점 때문이다. 이게 계속 인상 깊게 다가왔다. 

 사실 비슷한 생각은 옛날부터 가져왔었다. 처음 학부에 입학할 당시 나보다 똑똑한 사람들은 넘쳐났고, 그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가 심각한 문제로 다가온게 동기였다. 특히나 내가 입학한 2002 학번은 (앞으로도 매년 경신될 대사이긴 하지만...) 단군이래 최저 학력을 가진 세대라고 꽤나 떠들썩했던 나머지, 서울대에서도 갓 합격한 학생들이 못미더워 2월달에 수학과 영어 기초 학력을 시험 보기도 했었다. 내 학번 때에는 시험에서 특정 점수를 넘은 사람에게 고급 과목 수강 자격을 주는 것으로 끝났지만, 나중에는 점수가 낮은 사람들을 위한 기초 수학이나 기초 물리 강좌도 생겼다. 생각해 보면 좀 심한 설레발이기는 했다. 훗날 내 학번에서도 우수한 연구자는 상당히 나왔으니까.. 오히려 학생보다도 대학에서 들은 많은 강의들이 '이렇게 책 그냥 읽어주는 강의를 고생해서 서울대까지 와서 들어야 하는 건가? 나 혼자 공부해도 이거보다 나은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면이 있었다. 물론 내가 똑똑해서 그런 생각을 한 것이 절대 아니다. 혼자 공부하는 것이 한계가 있고 아주 많이 모자란 것은 그 때도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 그 감정을 좀 더 명확히 말하면, 그래도 좋은 대학이라는 곳까지 와서 똑똑한 분들에게 뭔가 배운다면, 그렇게 책 몇 권 들춰봐서 알 수 없는, 경험을 한 사람만 아는 것들 특히 사고 방식이나 문제를 대하는 방식 같은 것들을 접했으면 좋겠는데, 그럴 기회가 그리 많지 않았던 것이 그다지 반갑지 않았던 것이다. 나중에 연구 경험이 쌓이고 교수까지 되어 보니 분명히 그런 것들이 있고 책에 씌여진 지식이나 계산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을 더 확실히 알게 되어서 부정적인 느낌이 더 강해진 면도 있고. 결국 대학에서 누군가에게 배움으로써 긍정적으로 변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그전에 가지고 있는 능력 그대로 굳어진 채 계속 노력해도 한계 안에서만 머무를 것 같은 불안감이 1학년 때 상당히 강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그런 기회를 얻을 수 없더라도 다른 기회 역시 없는 것은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대학생이라면 아직 제대로 무엇인가를 직접 만들어 보고 책임까지 져 본 경험이 부족하기 마련인데, 이 점이 여러 형태도 나타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이건 훗날 연구를 하면서 물리학자들을 볼 때도 비슷하게 느낀 감정이었던 것 같다. 많이 배우고 생각을 해 봤다면 여러 가지를 따지게 되고, 그러면 자신이 강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주저할 성 싶은데, 막상 보니 그렇지 않은 사람이 상당히 많더라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이나 신념이 주는 생각을 상당히 맹목적으로 믿고 다른 가능성을 거부하거나 아예 생각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 배움의 양이나 질과 아주 큰 상관관계없이 존재한다는 것인데... 많이 배워서 생긴 논리가 자신을 돌아보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과 생각을 (그게 주는 결과를 무시하기 위해) 변호하는 것에 소비되는 것도 꽤나 흔했다. 크게 상황을 보고 고민하면서 궤도 수정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당장 눈앞에 있는 이익을 얻고 위기를 모면하거나, 자신의 생각에 반하는 근거를 애써 무시하면서 확실한 기준 없이 여기저기 자신이 형편에 맞게 가져다 붙이는 것은 꽤 흔하게 보았다. 처음에는 이게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다. 결국 나도 '많이 배웠다면 사려 깊을 것'이라는 생각에 맹목적으로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보면 이상할 것이 아닌 게, 이건 인간의 본성에 가까운 면이 있다. 복잡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생각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자신의 능력과는 상관 없이 피하고 싶을 테니까.. 그것까지는 좋지만 문제는 많이 누리고 싶은 욕심과 겹쳐지면서 책임보다는 당장 얻을 수 있는 것, 자신의 비위에 맞는 것을 계속 추구하는 채로 책임이 필요한 자리까지 얻으려고 하는 것일 것이다. 

  그런 태도는 공부나 연구 과정에서도 많이 드러나는 것 같다. 그리고 언뜻 보면 좋은 자세인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이 자신을 갉아먹는 것은 꽤 흔했다. 질문을 많이 해야 한다는 것이 좋은 자세라고 이야기되지만, 그것을 통해서 답을 얻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하는 자신의 자세만을 좋아할 뿐인 경우가 꽤 많다. 분명히 그 자리에서 얻은 몇마디로 모든 것을 알기 힘들기에 더 뭔가 찾아보거나 생각해 보려는 시도를 해야 하건만, 그냥 그 자리에서 질문하는 이벤트로 끝나고, 몇 년 뒤에 같은 질문을 같은 사람이 한다. 그것을 알기 위해 뭔가 고민하는 것이 물리학자가 해야 할 일인데, 은연중에 자신을 그런 일에 참여하는 사람이 아니라 날카로운 질문을 한 다음 그 사람이 어떻게 대답하는지를 평가하는 위치에 두고, 그것을 통해서 스스로를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좋아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언뜻 보면 좋게 보이지만, 조금만 복잡해지거나 당장 이해되지 않는 것을 접하면 그 안으로 들어가 보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 갈 이유로 활용한다. 그리고 그렇게 피해서 자신이 다루지 않은 분야는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평가절하하고 아예 보려고 하거나 관심을 기울이려고 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배우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속에서 자신이 생각하거나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논문에 끼기만 하는 경우도 많이 본 것 같다. 정작 자신은 그 논문이 암시하는 것이나 가치를 모르는 것인데... 자신은 그 주제를 선택한 안목에 만족하겠지만 정작 그 주제에 대해서 더 고민하거나 그것으로부터 배운 것은 거의 없어 그것을 가지고 더 이상 의미 있는 일을 하지 못하(않)는 경우가 꽤 많다. 결국 위험하거나 어려운 것도 스스로 고민하면서 결정하고 그것을 제대로 수행해 나가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부담을 어떻게든 피해가면서도 전문가라는 권위를 가지고 그것을 가지고 누릴 수 있는 것을 계속 영위할 수 있는지에 관심이 있는 것일 게다. 교수들이 가지는 인간성의 문제는 종종 지적되지만, 인간적으로 좋게 대하는 것이 겉으로 자신의 합리적인 대인 기술을 과시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는 많다. 그런 사람에게서 실제 배우는 것이 없는 경우도 많으니까.. 해야 할 쓴소리 마저도 피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사실 자신이 연구하는 분야가 아니라 그 이외의 것에서 '좋은 일' 혹은 '옳은 일'을 하고 그것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찾으려는 사람은 많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과시하고 인격을 존중하며 봉사하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일을 하더라도, 정작 자신의 직분인 연구에 소홀히 하고 그 분야에서 제대로 하는 일이 없다면 그 분야의 교수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런 모순들이 크게 터진 것이 황우석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이 일어난 것이 딱 내가 졸업할 때라서, 비교적 생생하게 보았던 기억이 난다. 이게 편견을 벗어나는데 상당히 많은 도움을 주기도 했지만, 또 시간이 지나면서 그 정도로 일을 크게 벌이지 않았다 뿐이지 비슷한 문제를 안고 있는 곳은 지금도 상당히 많다는 느낌도 들었다. 연구를 한다는 것이 어떤 형태를 가지든, 그것이 추구해야 할, 스스로 이해하고 그것을 가지고 방향을 결정하며, 다른 사람이 하지 않은 자신의 소리를 해야 한다는 면이 훼손된다면 자신이 불행하거나 아니면 자신만 행복하고 주변 사람이 불행해지곤 하더라...

 나도 이리 저리 구르는 와중에 그런 문제들에서 자유롭지는 못하고 돋보일만큼 아주 똑똑하거나 하지는 않지만,  그 과정에서 중요하지만 돋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홀해지는 것을 진지하게 보려는 생각을 계속 가지고 있기는 하다. 언뜻 보면 이게 순진한 사람의 미련한 행동처럼 보이는데, 살다보니 그런 원칙을 가지고 있을 때 좀 더 괜찮은 결정을 하게 되고 이 바닥에서 물리학자로 살아남는데 도움이 된 면이 확실히 있다. 사실 정말 해야 할 것보다 겉으로 드러나는 것에 신경 쓰는 과정이 언뜻 보면 부담을 피하면서 쉽게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의외로 그 과정에서 많은 '기회'들은 스쳐지나가진다. 기회의 정도는 꽤 여러 가지일 것이다. 대박 논문을 터뜨릴 기회도 있겠지만 아주 드물 것이고, 작게는 논문을 쓸 기회,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아주 유명한 학자까지는 아니더라도 생존해서 꾸준히 뭔가 할 수 있는 기회 같은 것들이다. 사실 그런 기회들이 꼭 내가 생각하는 것에 충실하다고 찾아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충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가치가 정말 무슨 일이 있어도 지켜야 할 것인지도 생각할 필요가 있기도 하다. 가치에 대한 맹목성이 주는 틈도 생각보다 클 것이라서.. 그래서 계속 생각하게 되고, 스스로 의심하게 되는 것 같다. 그런 '자신에 대한 의심'의 부재가 가끔 뭔가를 위태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자꾸 들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