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논문으로 쓸만한 것을 찾아서 쓰기 시작. 나름 이야기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서 쓰기는 한다만, 지금 단계에서는 뭔가 중요한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을 받기보다는 알고 있는 것 혹은 할 수 있는 것의 외연을 늘리는 것에 좀 더 비중을 두고 있다. 그것들이 익숙해지면 보다 괜찮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솔직히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다. 논문 한편을 마무리지으면 꼭 다음 논문 거리를 생각해 낼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섞인 질문을 하게 된다.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관심 있는 것 다섯 편 정도 보면 논문 거리가 하나 나올까 말까 한다. 그렇게 해서 나오는 논문이 또 괜찮은 이야기라는 보장도 없고.. 그러다 보니 건질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지만 일단 최대한 많이 살펴보아야 하고, 시간과 힘을 계속 들이부어야 한다. 지금까지는 다행히 어떻게 계속 이어가왔지만, 언제까지 이게 가능할지 궁금해지기도 하고 불안해지기도 한 것이다. 머리가 더 이상 안 돌아갈 수도 있고, 또 사는 환경이 그걸 힘들도록 바뀔 수도 있고... 그래서 관심은 있지만 아직 모르는 것이 많다는 것이 차라리 안심하게 만드는 요소이기도 하다. 물론 뭔가를 안다고 꼭 할 이야기가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구를 계속 하게 만드는 것은 뭔가를 알고 싶어 하는 목마름이라고 생각한다. 좀 더 구체적으로, 궁극적으로 알고 싶은 것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서 그것을 위해 일단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알아야 할지를 계속 생각해 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게 가능하도록 하는 요소는 꽤 다양하고, 한 가지만 강조하고 다른 것을 소홀히 할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좀 까다롭다. 지식의 양이 받쳐주지 않으면 생각할 재료가 없지만, 남의 것을 아는 것에만 시간을 쏟고 내 생각을 만들려고 하지 않아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이 보았다. 자신의 주관이 분명해야 갈 방향을 잡고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지만, 적은 경험에서 나오는 편협함을 벗어나지 못해서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는 것도 꽤 보았고... 주장은 하지만 공감을 사지 못하거나 실제로 중요한 일을 하지 않고 예전부터 하던 익숙한 일에 천착할 뿐인데 스스로는 그것을 소신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결국 연구는 주관적이면서 객관적인 일인 것 같다. 논문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연구 방향이나 주장의 정도는 사람에 따라 좋아할 수도 있고 싫어할 수도 있다. 그리고 뭇사람들의 평가가 항상 정당한 것도 아니다. 자신의 생각이 항상 맞지 않은 것은 덤이고. 예전에 심심해서 논어책을 보았을 때 어렸을 때 보았다면 그냥 공감하지 못하고 지나갔겠지만 지금 보면 강하게 동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문구들을 발견했는데, 그중 하나가 위정편에 나오는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라는 말이었다. 수천 년 전에도 비슷한 고민을 한 학자들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데, 분명히 그전에는 지금과 같은 형식의 연구를 하지는 않았지만 뭔가 중요한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을 하고 그게 또 맞는 것인지 다시 고민을 하는 프로세스 자체는 있지 않았을까...
사실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은 불안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호기심이기도 하다. 말하자면 산속에서 조금씩 물이 나오는 옹달샘을 볼 때 언제까지 마르지 않고 물이 계속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해지는 감정 같은 것이다. 이게 약간 다른 형태로 반영된 행동이 뭐냐면... 시험 문제 낼 때 언제까지 안 겹치게 낼 수 있을까?라는 것이다. 족보를 좋아하지 않아서... 물론 기본적인 개념이나 계산과 관련된 문제야 계속 낼 수밖에 없지만,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으려는 문제를 섞다 보면 저런 궁금증이 생기는 것이다. 다행히도(?) 지금까지는 안 겹쳤는데, 실제로 문제 내다보면 문제 갯수나 수준 조절하다가 못 낸 문제가 있어서 고스란히 다음 해로 넘어가는 것이 생긴다. (이번에 양자 중간고사 낼 때도 그랬다) 그리고 가끔 논문 보다 보면 학부 수준 개념을 이용해서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친절한 것들이 있는데, 나도 공부할 겸 문제로 만들어보기도 한다. von Neumann algebra 공부하다가 Witten 선생 강의록에서 본 지구에서 원격으로 달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라거나, 우주론 연구했을 때 신경 써서 본 squeezed state라거나.. 혹은 양자시계에 관한 Salecker-Wigner-Peres clock의 아이디어라거나...
여하간 논문 좀 잘 마무리지었으면 좋겠다. 약간 무리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닌가 싶기는 한데 일단 면피 거리가 있기는 하다.. 사람들이 그냥 완벽하게 계산하지 못해서 free parameter 비스무리 취급하는 것을 좀 더 까보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라는 식인데, 잘 마무리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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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오늘 arXiv에서 본 좀 재미있는 설문조사.
A. Y. Chen, P. Halper, N. Afshordi,
Copenhagen Survey on Black Holes and Fundamental Physics
arXiv:2503.15776
https://arxiv.org/abs/2503.15776
이거하고 비교해 보면 꽤 재미있다.
M. Schlosshauer, J. Kofler, A. Zeilinger,
A Snapshot of Foundational Attitudes Toward Quantum Mechanics
Stud. Hist. Phil. Mod. Phys. 44 (2013) , 222
arXiv:1301.1069
https://doi.org/10.1016/j.shpsb.2013.04.004
https://arxiv.org/abs/1301.10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