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nf1 2025. 2. 8. 14:39

 익숙하지 않은 뭔가가 잘 와닿는 형태로 들어오려면, 그게 자연스럽게 있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납득해야 한다. 문제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당연한 듯이 혹은 자연스럽게 납득하는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 그래서 모르지만 뭔가 재미있어 보이는 것을 이해해 보려고 하면 이것저것 알아야 할 것들이 많이 필요하게 되고 이들 중 상당수는 상당히 낯선 것들이다. 사실 적은 양의 지식으로도 명확해 보이는 것은 이미 누군가가 좋은 이론으로 아주 잘 만들어 놓았을 확률이 높다. 물론 아주 없지는 않겠지만, 해당 분야 연구의 역사가 길어질수록 초보자가 뭔가 중요한 것을 건질 수 있는 행운은 점점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어느 정도 알았다고 하더라도, 그 주제에 대해 수십 년 동안 연구해 온 사람, 혹은 이들에게 체계적으로 교육받아온 사람만큼 잘 알지는 못할 것이다. 그래서 단순한 지적 욕구를 충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러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를 묻게 되면 또 눈앞에 아주 높은 산이 나타나는 기분이 된다. 아주 단순하게 그러면 그건 내 전문 분야가 아닌 것이니까 안 하면 되는 게 아니냐 혹은 내가 알고 있는 것 안에서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으면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것이 정말 쓸모 있는 것이냐라고 물을 수도 있는데, 좀 더 냉정히 생각해 보면 질문 안에는 어느 정도 모순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내가 알고 싶은 것에서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존재조차 알 기회가 없었을 것이고,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가치가 있는지, 쓸모가 있는지를 그렇게 쉽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애시당초 자연은 분야를 나누지 않은, 그 자체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해 놓은 구분이나 지금까지의 이해와 상관없이 여러 요소들이 모종의 관계로 얽혀 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아무리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근거를 갖추었다고 해도 일이 생각대로만 흘러가지 않는 것도 그것 때문일 것이다. 내가 하는 일에 애착을 가지고 내가 생각한 방향에 확신을 가지며 헌신하더라도 나중에 보면 그게 거대한 삽질이었고,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해결의 실마리가 나오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애시당초 한정된 정보를 가지고 한시적인 단계에서 생각한 것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가 정해준 대로, 혹은 내가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대로 하기만 하면 일이 잘 진행되어 답에 닿게 될 것이라는 생각은 그 자체로 비합리적일 수 있다. 의심 없이 우직하게 방향만 말고 나가면 된다는 생각은 자신 혹은 권위자에 대한 비판적인 생각이 부족해서 내 외부에 책임을 전가하는 행위일 수도 있고. 그러다 보니 관심 없거나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것도 그냥 넘기기 아까울 때가 있다. 혹시 어떤 기회를 그냥 날려버리는 것이 아닐까? 싶은 것이다. 그래서, 가끔은 아무 생각 없이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이 누가 정해주지도 않은 혹은 있어야 한다는 증명도 없는 의무감에 갇혀서 지금 하고 있는 일만 생각하는 것보다 생산적일 때가 있다. 그러다 보면 낯선 것들을 많이 보게 되고, 이걸 파해쳐 보지 않으면 뭔가를 더 이해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지금 알고 있는 것도 이해하기 위한 과정이 쉽지 않고, 그 고생 끝에 나름 자신의 전문 분야까지 가졌는데 실수 연발인 초심자 역할을 해야 하느냐... 고 물으면, 사실 이건 선택사항이다. 그래야 하는 법은 없지만 같은 이유도 그러지 말아야 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목이 마르면 가는 길을 선택하면 되고, 그 과정에서 겪는 고생은 그대로 감당하면 된다. 물론 그게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것도 같이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고. 그런데, 그게 꼭 손해는 아닌 것 같다. 원래 자신에게 익숙한 것만을 하는 것 역시 모든 것을 완벽하게 보장해 주지는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무엇이 심리적으로 편한지? 가 아닐까 싶다. 어떤 사람은 익숙하지 않은 것에 겁 없이 뛰어들었다가 쩔쩔매는 것이 불안하고, 또 다른 사람은 내가 관심이 있는데 아직 모르는 것이 있는 것에 불안해한다. 

 만약 내가 해야 할 일을 한가지로 고정한다면, 뭔가를 찾는 것은 상대적으로 간단해지게 된다. 인터넷에서 내가 관심 있는 키워드를 치거나 arXiv 같은 데이터베이스 안에서 내 분야를 검색해 보면 되니까 요새는 더 편리해진 감이 있다. 그런데 가끔 그게 뭔가를 놓치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어떻게 보면 내가 옛 세대의 정서에 가까워서 그런가 싶기도 한데, 학생 때 별일 없어도 도서관 서고를 그냥 들어가서 돌아다니던 생각이 나서. 그때는 도서관을 나름 잘 활용했던 것 같다. 책이나 논문 보다가 참고할 책이 있으면 바로 찾아볼 수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괜찮았던 것은, 꼭 내가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더라도 그냥 책장을 들여다보면서 무슨 책이 있는지 '구경' 해 보는 것이었다. 어디서 많이 들은 분이 이런 책도 썼네.. 일수도 있고, 수학 쪽 사람들은? 혹은 천문학 하는 사람들은? 같이 내 관심과 비슷한 분야에서 시작해서 다소 거리가 있는 고체 물리 같은 것도 무슨 책이 있는지 보다 보면, 꽤 재미있었다. 교과서나 표준적인 설명으로 잘 와닿지 않은 것도 적어도 나에게는 잘 설명된 책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 특수상대론이 정말 무엇을 말해줄까?라는 것을 좀 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해 주거나 양자역학의 이런 부분을 이렇게 설명하면 괜찮겠네.. 싶은 것을 꽤 잘 찾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하다 보니 좀 더 장기적으로 내가 이런 쪽에 관심이 있다면 이런 책으로 시작하면 괜찮겠다.. 같은 가상적인 계획도 만들 수 있었다. 그런 '일'과 관련된 것이 아니더라도, 예술이나 문학 철학책 같은 것들을 들춰보는 것도 꽤 재미있었다. 각 잡고 읽을 시간이 없더라도 그냥 부담 없이 이런 것도 있네 하는 식으로 볼 수도 있으니까.. 누가 시험 내서 확인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여가를 그렇게 보내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새 책이 들어올 때마다 확인하는 재미도 있었고.. 그렇게 보다 보면 기분 전환이 되기도 하지만 뭔가 생각 거리가 하나씩 생겨서,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없을 때에는 그런 책 구경이 상당히 좋은 대화의 대체제였다. 이해하지 못하지만 책을 훑어보는 것과 내가 모르는 분야의 강연을 듣는 것이 그렇게 다르지는 않더라.. 내가 해야 할 것만 신경 쓰고 관계된 것만 찾는다면 얻지 못할 경험인데, 그런 것이 없는 것보다 좀 더 괜찮은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하나만 보는 것보다 좀 더 시야가 넓어졌다고 해야 할까...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런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사실 그런 호사를 누릴 수 있을 정도로 장서량이 많은 도서관을 가진 대학이나 연구 기관은 그렇게 많지 않다. 필요한 책이 충분히 있지 못하다보니 구경하는 재미도 그렇게 많지 않고.. 예전에 비해 책들은 디자인이 좋아지고, 도서관들은 화려해졌지만, 충분히 정보를 얻을 수 있을 만큼 충실한 내용이 담긴 책이나, 장서량이 충분한 도서관은 또 다른 문제다. 독특함 내지는 저자 고유의 이해나 설명이 담긴 책 보다 상투적인 문장을 세부적인 설명 없이 나열하기만 한 책이 디자인만 그럴듯한 경우도 많고, 그런 책들만 장식적으로 꽂혀있고 사람들도 별도로 뭐가 좋은 설명이 담긴 것을 찾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관심을 가질 기회가 없을 정도로 접할 수 있는 책의 절대적인 수가 부족하기도 하다. 한때는 정말 괜찮은 책이 많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 대략 15년 정도 전부터 제대로 된 책 보충 없이 그 당시 모습 그대로인 것을 보았는데, 왠지 어린 시절 크게 보였던 놀이터나 유원지가 어른이 되어 다시 들러보니 작아 보이고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채 그대로 낡아진 것을 보는 느낌이었다. 역동성이 사라지고 옛 전설만 남아 시간과 함께 사라진다는 것이 그런 느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