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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끈현상론...

dnrnf1 2025. 2. 2. 15:48

 현재 string compactification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내가 초끈으로 박사 딴 사람이 아니다 보니 편향되기도 하고 신뢰성이 보장되지 않기야 하겠지만 적어도 '연구 방향이 담궈져 있지는 않지만 아예 관계없지는 않은' 입장에서 드는 생각 정도는 있다.

 2000년 무렵 이전에는 string compactification을 통하여 현실적인 세상 그러니까 입자물리의 표준모형과 가속팽창하는 우주를 어떻게 구현하는지를 연구하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관련된 이론적인 문제와 더불어 초끈현상론(string phenomenology)도 상당히 규모가 커진 상태였고...  초끈이론 자체는 아직까지 왜 4개의 차원만이 아주 커야 하는지를 이야기해주고 있지는 않지만, 일단 현실 세계에 맞춰서 6개의 차원을 잘 말아본다고 할 때, '어떻게 마는지'가 4차원의 구조를 결정한다는 사실은 꽤 의미심장하다. 그래서 초끈이론을 10차원 이론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아예 처음부터 물리적인 차원인 4차원에서 정의되는 이론으로 간주하고, anomaly가 없도록 혹은 4차원에서 적절한 초대칭이나 gauge group을 가지도록 추가적인 구조를 집어넣는 이론 체계로 볼 수도 있다. 이 '추가적인 구조를 넣는' 과정을 기하학적인 언어로 나타내면 10차원 초끈이론을 compactify 하는 것과 수학적으로 같다는 것인데, 사실 '차원'이라는 것이 정말 시공간을 구성하는 그것이어야 하는지가 애매할 때가 있기는 하다. 예를 들어 Kaluza-Klein mode가 있다면, 그것을 한편으로 보면 여분 차원이 존재하는 증거라고 볼 수 있지만, 4차원 장론에서 등간격으로 질량이 나타나는 tower의 구조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초끈 이론에서 그런 점을 생각하게 해 주는 예제가 아마도 heterotic string일 것이다. Closed string을 구성하는 두 mode들 (left와 right handed mode) 중 한쪽은 10차원 초대칭 끈이고 다른 한쪽은 26차원 bosonic string인데, 그러면 bosonic string이 가지는 16개의 추가적인 차원을 진짜 존재하는 차원으로 인식해야 할까? (그전에 그런 고민을 할 필요가 애시당초 있을까?) 아무튼, 표준모형이 가지는 chiral 한 성질을 고려해 보면, 낮은 energy까지 내려올 수 있는 초대칭은 4차원에서 N=1 뿐이어야 하고, (초대칭이 N=2 이상이어서 한 supermultiplet 안에 둘 이상의 fermion이 있으면 이걸 가지고 vector-like 하게 만들 수 있으니까 chiral 하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orbifold compactification과 Calabi-Yau compactification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사실 이 둘은 완전 다른 과정도 아니다.) 이건 꽤 잘 정의된 수학 문제이다. 대수기하학에서 Calabi-Yau manifold의 성질은 아주 많이 연구되어 왔으니까.. 그래서 물리가 아닌 수학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 물리학자가 잡아내지 못한 뭔가를 찾아낼 수 있는 것은 드문 일도 아니게 되었다. 

 개인적으로 좀 독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 수십년 동안 string compactification에 대해 많은 이야기가 있어온 것과 대조적으로, 물리학자를 염두에 두고 compactification과 관련된 수학을 정리한 '책'은 별로 많지 않다는 점이다. 아무래도 수학자와 물리학자의 관점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는 데다가 특히 나처럼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다가 필요에 의해 관심이 생긴 사람들 입장에서는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상황을 파악할 수 있고 (세부적인 것은 연구하면서 알아간다고 하더라도) 논문을 읽고 쓰는 첫걸음을 떼는데 도움이 될 수 있는 정리가 필요한지라 좀 아쉽기는 하다. 모든 것이 나에게 맞춰서 존재하는 것은 아니고 알고 싶으면 나름 정성을 들여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새로운 뭔가를 하고 싶은데 다른 사람이 수십 년 전에 이미 해 놓은 것 정리하느라 시간이 확 지나는 바람에 현재 연구도 제대로 못 따라잡는다면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아주 유쾌하지는 않아서리... 수학책인 Griffiths-Harris는 많이 두껍기도 하지만 '수학'책이라서 물리 이야기와 연동시키려면 별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냥 내 머리가 나쁜 걸지도...-_-ㅋ :그런데 머리 나쁘다고 하지 말라는 법이 있나... 필요해 보이면 배워서 하는 거지...) 그래도 Green-Schwarz-Witten의 초끈이론책이 양자장론과 topology의 관계 등에 어느 정도 노출된 입장에서 보기 꽤 괜찮은데, D-brane이 나오기도 전에 나온 오래된 책인지라 요새 이야기를 따라가는 데에는 부족한 것이 많다. 최근 책 중에는 Blumenhagen-Lust-Theisen의 책이 상당히 괜찮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들이 초끈현상론 쪽 연구를 많이 하신 것이 반영된 것인지 상당히 정리가 괜찮다. 그렇긴 한데 이 책들은 초끈을 위한 기하학/수학이 아니라 초끈 자체에 대한 책이고... 보통 관련된 수학 쪽은 책보다는 TASI lecture 같은 강의록으로 많이 이야기되어 온 느낌이다. 굳이 수학 뿐만 아니라 물리적으로도 중요한 이야기들이 강의록 등으로 정리되는 걸 보면 90년대 중후반에 빠른 속도로 발전한 것이 영향을 미친 게 아닐까 싶은데... 일단 초끈 이론 볼 때 group theory 잘 알아야 하는 건 당연하고... Compactification과 관련된 책으로는 최근 나온 A. Tomasiello의 Geometry of string theory compactifications과 T. Hubsch 책 Calabi-Yau manifold : a bestinary for physicists가 꽤 좋은 것 같다. 후자는 지금 읽고 있는 중이긴 한데, 이것도 90년대 책이라서 한계가 있긴 하지만 어차피 책 한두 권으로 다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중간 다리로 나쁘지 않은 듯. 물론 친절하게 기본부터 이야기하지는 않고 어느 정도 초끈 이론 관련 이슈와 기본적인 (기초적인 것과는 다르다) 수학을 알고 있다는 전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그걸로 시작하긴 좀 뭣하긴 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Blumenhagen-Lust-Theisen 책 보고 논문이나 강의록 같은 것을 통해 이런 걸 알아야겠구나.. 라거나 대충 이런 거네.. 하는 느낌 정도는 가지고 있어서 오히려 적당한 것 같다. 무엇보다 '물리학자'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책'은 그렇게 많지 않아서... 부족한 것은 강의록 같은 것을 보면서 보충하면 되겠지 싶다. 사실, 강의록들도 어느 정도 사전 지식이 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어차피 그전에 중간 단계로 알아둘 것들이 있기는 하다. 강의가 이루어지는 school이 보통 한두 주 정도 기간인지라 기초부터 차근차근 설명해 주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보통 책은 그런 제약이 덜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것부터 설명해 줘서 낫긴 하다.. 간혹 책 보다 더 좋은 강의록이 있기도 하지만.) 이 책은 작년 12월에 개정판이 나오긴 했지만, 그렇게 내용이 크게 바뀌지는 않았다. 92년에 나온 1판을 약간 보충한 정도? 책 보면 2024년판에 새로 추가된 부분이 주석 붙이듯이 이전판 내용에 덧붙여져 있다. 

 Hubsch 책의 초반부 내용은 어떻게 (책 제목이기도 한) Calabi-Yau manifold를 얻는지에 대한 것이다. 수학자들이 해 왔듯이 complex projective plane 안에서 homogeneous polynomial로 기술되는 hypersurface들의 교집합을 찾는 것인데, homogeneous polynomial들은 그냥 막 고른 것은 아니고 당연히 Calabi-Yau의 정의에 맞게 Ricci flat하도록 '잘' 골라야 한다. 책을 보면서 여러 대수기하학 이야기들이 물리에 적용되는 과정들을 보다 보면 왜 초기 초끈 현상론이 heterotic string의 발견과 궤를 같이 했는지 알 것 같다. 실제 공간과 gauge group의 구조가 분리되지 않는 모호함이 오히려 group theory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해 준달까... 사실 중력과 다른 상호작용들을 분리하지 않고 같이 다룰 수 있다는 점이 다른 양자중력 이론과 비교했을 때 초끈이론이 가지는 중요한 특징인지라 다른 형태의 초끈이론으로도 결국 비슷한 이야기를 하게 되는 면이 있긴 한데, heterotic string이 보다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느낌?  예를 들어, anomaly가 없다는 조건이 curvature와 gauge group의 관계를 제약하게 되는데, 6차원=복소수 3차원 Calabi-Yau (CY3)의 SU(3) holonomy group (vector나 spinor가 평행이동을 통해 공간 상에서 한 바퀴 돌아 같은 점으로 돌아오면 원래 것에서 회전되어 보이는데, 그 회전 변환의 집합을 이른다 :  Calabi-Yau는 SU(3) holonomy를 가진다. 6차원 내부 공간이 보통 가지는 SO(6)=SU(4)의 4차원 spinor representation 중 3개만 회전하고 하나는 singlet이라는 것인데, 이 singlet의 존재가 N=1 초대칭을 구현하도록 하는 invariant spinor 1개를 가능하게 한다)에 맞춰서 E8 X E8 heterotic theory의 gauge group E8 X E8이 깨지더라도 SU(3) 하나는 가지도록 할 수 있다. 두 개의 E8 group 중 한 E8가 이 SU(3)를 가지면, E6도 가질 수 있는데 (E8 -> SU(3) X E6) 이 E6를 더 깨서 표준모형 gauge group을 얻으려는 시도를 할 수 있다. Matter들이 SU(3) holomomy 및 SU(3) X E6의 어떤 representation에 속하는지를 이야기해서 좀 더 현실감을 줄 수 있고. (그런데 표준모형에 나오는 것들을 맞추는 것이 쉽지 않다...) 이들이 만드는 topological invariant들을 가지고 Yukawa coupling을 정의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방식으로 anomaly 없이 gauge group을 깨는 시나리오들은 많이 연구되어 왔다.

 이렇게 보면 꽤 희망적일 것 같고 실제로 80년대 말 이후 이런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안풀리는 문제들도 있었다. 일단, Calabi-Yau의 구조가 수학적으로 잘 정의되기는 했지만, 결국 고전적인 근사일 뿐이다. 양자역학적인 요동에 따라 공간이 다른 형태로 존재할 수도 있기 때문에, 초끈이론으로부터 구현된 Calabi-Yau 공간이 그런 요동으로부터 안정적인지를 따져야 한다. 초끈이론에서 말아진 공간의 크기와 모양을 기술하는 metric의 fluctuation들은 moduli라고 부르는 scalar field들로 볼 수 있어서, 이들 moduli의 potential이 안정된 지점을 가지면 그 지점에 해당하는 Calabi-Yau 공간은 안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안정화시키는 potential을 얻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지... 좀 더 명확하게 이야기하면, 준고전적인 근사, 즉 양자역학적인 요동이 고전적인 운동방정식 solution에 비해 아주 작아서 계산상 control이 가능하려면 non-perturbative effect 같은 양자역학적 효과가 작아야 할 것이고, 고전적인 solution에 해당하는 초중력 이론 안에서 충분히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말아진 6차원의 크기가 초끈 길이에 비해 매우 큰 영역에서 다루어야 할 텐데, 그 영역 안에서 moduli potential은 보통 runaway 그러니까 그저 exponentially 감소할 뿐이지 구덩이를 만들어서 안정화되는 지점을 잘 만들지 않는다. 이걸 해결할 수 있는 방법으로, Type II string에 등장하는 다양한 p-form들이 vacuum expextation value를 가질 때 (그걸 flux라고 부른다) moduli potential을 변형되는 것을 이용하자는 아이디어가 주목을 받았고, 그렇게 2000년대에 flux compactification의 시대가 열렸다. 이게 좀 재미있는 게, heterotic string의 경우 활용할 수 있는 gauge field의 flux의 형태가 제약되어 있어서 moduli stabilization을 이야기하는 것이 쉽지 않은 데 반해서 type II string을 이용하는 compactification은 flux를 p-form 들에서 끌어올 수 있는 등 활용이 좀 더 용이한 덕에 (그렇다고 제약이 없지는 않다. tadpole condition이라거나...) 초끈 현상론 연구에서 후자의 비중이 점점 올라가게 된다. 그리고 flux compactification을 이용해서 moduli가 모두 안정화면된다면 그 (metastable : 굳이 절대적으로 안정될 필요는 없다) vacuum은 현재 우리 우주처럼 가속팽창하는, 즉 de Sitter에 가까울 것인지?라는 문제가 중요하게 부각된다. 사실, compactification 과정에서 scale invariance를 깨는 것이 쉽지 않아서 flux를 가지고도 6차원 여분 공간의 크기를 결정하는 Kahler moduli를 안정화하는 것이 계속 숙제로 남아있었는데, 2003년 KKLT 논문이 나오면서 어떻게 풀리는 것처럼 보였다. 이후로 large volume scenario 같은 방법도 나오고.. 문제는 그 모형들이 그다지 깔끔하지 않다는 것. 그냥 미적으로 못생겼다.. 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아주 작은 것으로 여겨져 왔던 non-perturbative effect나 정말 조심스럽게 (backreaction도 작아야 하고 등등...) 만들어진 uplift 효과까지 섞어서 조합해야 겨우 가능하다는 것이 골칫거리였던 것이다. 이 모형이 정말 모든 parameter들이 control 가능한 상태에서 만들어진, 안심할 수 있는 것일까? 아니면 혹시 놓친 뭔가가 있어서 모형을 심하게 망가뜨리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었던 것.

 여기서 사람들의 입장이 엇갈리게 된다. Flux compactification입장에서 보면, (=일단 KKLT를 생각하지 않고 flux로 안정화시킬 수 있는 것들만 생각하면) 다양한 크기의 flux를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vacuum 갯수는 상당히 많고, vacuum의 geometry에 해당하는 (warped : flux의 backreaction 때문에 좀 변형된다) Calabi-Yau manifold의 갯수 역시 엄청나게 많다. String landscape의 개념이 여기서 나왔다. Moduli potential이 생긴 것이 어떤 지점에서는 움푹 파여서 안정된 지점을 만들고 어느 곳에서는 불안정하게 솟아있고 하는 식으로 아주 넓게 펼쳐져 있는데, 그게 꼭 하늘에서 산맥들이 만드는 풍경(landscape)을 보는 것을 연상시켜서.. 그렇게 안정된 상태가 많고, 어차피 우리 우주는 관측상 de Sitter에 가까우니 존재해야 하는 것이라면, 아무리 부자연스럽고 확률이 낮다고 해도 몇 개 존재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다는 관점이 생겼고, KKLT 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점에 주목한다. 그래서 한동안 인간원리 (anthropic principle) 이야기가 꽤 나오기도 했다. 그게 흔히 알려진 것처럼 인간이 존재하기 위해 자연이 그렇게 생겨야 한다는 것은 아니고, 현재 우주가 존재하려면 유효이론(effective field theory)에 등장하는 parameter들 (이들 값은 안정된 지점에서의 moduli 값들이 결정한다) 이 가지는 값이 어떤 범위 안에 있어야 하는지를 따져서 이론이 가지는 특징을 이해하자는 것이다. 조금 돌려 이야기하면, 현재 우주를 기술하는 여러 parameter 값들이 정말 특수해서 특정한 값만 가져야 하는지, 아니면 상당히 넓은 범위의 값을 가질 수 있는지를 따져보고, 그런 값을 얻을 수 있다면 그게 그 모형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걸 확대해석하면, 내가 4차원 양자장론 모형을 아무거나 만들어도 모두 초끈이론으로부터 유도될 수 있는 게 아니냐, 그러면 초끈 이론은 도대체 무엇을 예측하는가? 하는 의문을 던질 수도 있다. Swampland program은 이에 대한 반발로 나온 것이고. 즉, 낮은 energy 입장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 4차원 양자장론 모형을 만든다고 해도 그중에는 초끈이론에서 구현할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global symmetry는 특수상대론적 양자장론에서 별문제 없이 도입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양자중력의 효과에 의해 깨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초끈이론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landscape은 무한할 수 없고, 경계가 있다. Moduli 값들이 그 경계를 벗어나면, 이들에 의해 결정되는 parameter 값들은 초끈이론으로부터 얻을 수 없는 것인데, 그 영역을 늪지대(swampland)라고 부른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이러한 'swampland program' (즉 swampland에 해당하는 유효이론을 걸러내는 연구)은 단순히 초끈 이론만 따지는 것이 아니라 parameter들이 가질 수 있는 값들에 대해 양자중력이 일반적으로 어떤 제약을 줄지도 생각하고 있다. 그렇게 보면, 낮은 energy에서의 유효이론이라고 해도 중력이 주는 제약에서 완전히 독립적이지 않고, 심지어 중력을 고려하지 않을 때 자연스럽다고 여겨졌던 parameter 값들도 양자중력을 고려하는 순간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 즉, 양자 중력이  naturalness의 기준을 어떻게 바꾸는지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주 다양한 swampland conjecture들, 즉 양자중력까지 고려하면 구현할 수 없는, 그래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유효이론은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하는 가설들이 나왔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 가설들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특정한 유효이론을 구현할 수 있는 상황을 좀 더 명확하게 보려는 움직임으로 전환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내가 이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de Sitter swampland conjecture라고, (meta) stable 한 de Sitter는 양자중력적으로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주장 자체가 다소 강해서 가부감을 가지는 사람들도 많긴 했지만, 생뚱맞게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이론적으로 보면 Dine-Seiberg의 80년대 논문 때부터 이야기되어 온, control이 가능한 parameter space에서 de Sitter 모형을 만들 수 있는지?라는 문제가 2000년대를 거치면서 새로 알게 된 것을 토대로 좀 더 구체화된 것이라고 할 수 있고, 현상론적으로 보더라도 초중력(supergravity)을 가지고 급팽창 모형 등을 만들 때 eta problem과 같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 인지되어 왔는데, 그게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자는 것이다. 초끈 특유의 효과가 무시되어 초중력이 초끈이론의 유효이론으로 그 안에서 거의 모든 것이 설명되려면, moduli들이 아주 큰 값을 가지거나 해서 이들에 의해 결정되는 parameter들이 landscape에서 swampland로 넘어가려는 가장자리에 있어야 한다. (asymptotic regime) de Sitter swampland conjecture가 이야기하는 것은 이 가장자리에서 de Sitter를 만들 수 없다는 것이다. 무조건 불가능하다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 어떻게 보면 당연해서 힘 빠지는 결론일 수도 있지만, 우리 우주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parameter들이 그런 가장자리에 너무 바싹 붙어 있으면 안 되고, 다른 효과들이 고려될 수 있도록 좀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최근 나오는 논문들을 보면 계속 asymptotic regime에서 일어나는 이론의 특징을 이야기한다. 내가 작년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asymptotic regime에서는 moduli potential이 runaway 형태를 가지는 데다가 그로 인해 parameter가 변하는 비율이 관측과 어긋날 정도로 급격한 것 같다. 그리고 tadpole conjecture이 이야기했듯이 asymptotic regime에서는 flux들이 (KKLT 같은 여러 모형들이 가정한 것처럼) 모든 complex structuee moduli를 안정화할 정도로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하지만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그렇다고 너무 안쪽으로 들어가면 아무 예측도 할 수 없겠지만...) 상황은 좀 달라진다. 많은 swampland conjecture들은 초끈의 compactification 과정에서 알게 된 다양한 교훈들을 근거로 하는데, 이게 양자 중력의 일반적인 성질일 수도 있고, 초끈만이 가지는 뭔가로부터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conjecture의 근거가 되는 모형들이 다루는 parameter space의 범위가 제약되어 있어서 나타나는 착시현상일 수도 있다. 이런 것들을 명확하게 하려면 기존의 여러 compactification 시도들을 재검토할 필요도 있고, 그동안 잘 신경 쓰지 않았던 parameter space를 보기 위해서 좀 더 수학적으로 깊이 들어갈 필요도 있다. 내가 대수기하학 쪽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도 그런 배경이 있는 것이다. 이미 있는 모형들을 단순히 받아들이고 현상적인 것에만 집중하기에는 좀 더 근본적으로 생각하거나 이해해야 할 것들이 많아 보이니까.. 

 사실, 초끈의 compactification과 현상론적인 연구가 긴밀하게 연결된 것은 2000년대 중후반이 가장 최근의 전성기였던 것 같다. KKLT 혹은 large volume scenario 같은 모형이 갓 나오면서 brane 혹은 warped geometry를 다루는 연구가 활성화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다양한 급팽창 모형들이 등장하고, 때맞춰서 WMAP 등에서 다양한 관측 data들이 쏟아져 나오고 후속 관측이 계속 이어지면서 non-Gaussianity 혹은 tensor-to-scalar ratio 같은 구체적인 모형을 제약할 수 있는 관측값들에 사람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de Sitter 공간에서의 양자장론도 나름 관심을 끌었는데, 그건 AdS/CFT의 등장과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이후에도 BICEP2의 실수에서 촉발된 large field inflation에 대한 검토라거나 dark radiation의 가능성 같은 몇몇 이슈가 있기도 했지만, 뭔가 분야들 마다 따로 노는 느낌으로 마무리되는 것 같았다. 현상론의 경우, LHC 혹은 우주선 관측, 다양한 암흑물질 실험, 중력파등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모형에 대한 고려보다는 data 분석 쪽의 비중이 올라간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적으로 모형이 가지는 구조나 원리에 대한 관심보다는 당장 실험과 맞는 것을 찾는 쪽에 관심을 가지는 경우가 많아졌다. 사실 급팽창 같은 몇몇 경우를 제외하고는 초끈이론이 암흑물질이나 LHC data에 대해 그렇게 많이 이야기해 주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서 이론적인 면을 더 알아보는 것보다 장론으로 이해할 수 있는 단계 혹은 중력을 다루더라도 중력을 단순히 background로 여기는 semi-classical 근사 단계에서 멈추고 실험 결과와 어떻게 비교할 것인지에 집중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그러면서 새로운 모형을 만들려는 시도가 위축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이론 자체에 대한 이해 역시 소홀해진 것이 내가 학생 때나 연구원 때 좀 불편해한 점이었다. 이론의 경우, landscape의 개념이 등장한 이후, 현재 우리 우주 혹은 입자물리의 표준모형이 초끈이론으로부터 얻어야 할 유일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이 부각되었고, 그 결과 표준모형을 얻는 것만을 목적으로 compactification 쪽에 계속 집중하지는 않는 것 같다.  Swampland들 이야기하는 목적 등을 위해서는 보다 다양한 상황이나 일반적인 이야기가 필요하고, 그러다 보면 실제 현상과 거리가 있으면서 대수기하학의 좀 더 (현상론으로 훈련받은 사람 입장에서) 덜 직관적인 면을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래서 초끈이론을 표준모형을 얻어내야 할 유일한 양자중력 이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양자중력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는, 혹은 계산을 통한 구체적인 검증에 쓸 수 있는 기준점 정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사실 AdS/CFT 이후, 특수상대론적 양자장론의 관점에서 그렇게 강조되지 않았던 여러 가지 양자중력의 특성들이 부각된 면이 있어 보인다. Spacelike 하게 떨어져 있어도 강한 correlation을 가진다는 점이라거나.. 이게 양자 얽힘과 궤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 짐작할 수 있겠지만, 양자정보 등 보다 근본적인 양자역학적인 성질을 이용하는 이야기들을 중력에 적용하는 것이 양자중력을 이해한다는 목표에 있어서 좀 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해 가는 것 같다. 그 방향으로 가다 보면 초끈 이론의 compactification을 익히는 것이 반드시 필수인지도 애매해진다. 사실 이쪽은 나도 익숙한 것이 아니고 한정된 견문에서 얻은 느낌이라서 정확하지 않을 것 같긴 한데... 그렇더라도 현상론적인 면에 익숙한 사람이 볼 때 좀 다른 분야다.. 라거나 관심이 있더라도 벽이 느껴지는 뭔가가 있는 것은 맞는 것 같다.   

 그래서 '초끈' '현상론'은 (특히 현재 시점에서) 다소 모호한 위치에 처하기 쉬운 것 같다. 실제로 이론만큼의 정교성도 없고 현상론만큼의 현실성도 없는 악질 학문이라고 평하는 사람도 있으니까.. (외국의 초끈 현상론 전문가들 앞에서도 같은 이야기를 하는지는 모르겠다...) 그렇긴 한데 크게 보면, 양자중력은 양자역학이라는 이론 체계 입장에서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중요한 토픽 중 하나이고, 당장은 아니더라도 결국 현실적인 현상을 어떤 식으로든 설명해야 할 것이다. 특히 초기 우주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알기 위한 관측이 계속 시도되고 있고, 중력파나 블랙홀 같이 비교적 가까운 장래에 구체적인 관측 data를 얻을 수 있는 것들도 있다. 초끈 이론이 양자중력의 구체적인 모형을 제공하는 이론틀이라는 점에서 보면, 초끈현상론은 결국 양자중력 현상론의 한 부분이고, 결국 후자로 확장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물론 초끈현상론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는 양자중력 현상론에 대한 현재의 시도가 정말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관측 결과에 맞춰 적절한 돌파구를 기존 이해의 틀 안에서 만들어낼 수도 있고, 아니면 19세기 후반 에테르와 같이 완전히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안되는 것에 대해 기존의 관점에 얽매여 틀린 것으로 밝혀질 시도만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런 불확실성은 애시당초 연구가 가지고 있는 필연적인 요소이다. 아무도 제대로 모르는 것을 알기 위해 하는 것이 연구인지라, 이미 잘 갖추어진 틀 안에서 확실한 답을 먼저 찾아가는 게임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어느 경우든 답이라는 것은 그것을 찾기 위한 바탕들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인데, 그 바탕을 갖추는 것에는 아주 다양한 시도들과 실패들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여러 생각을 하고 새로운 도구들을 찾으니까.. 심지어 틀린 답이라도 그 안에서 다른 문제를 맞출 수 있는 뭔가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현재 상황만을 가지고 쉽게 이야기하거나 평가하기 힘든 것 같다. 그리고 뒤에서 평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사자 입장에서 직접 나서서 헤매고 아직 모르는 것을 알려고 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도 존중받을 가치가 있다... 고 믿고 싶다. 사실 이 즈음되면 나도 내가 하는 게 가치 없는 게 아니라고 자기 최면을 걸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이 드는데... 그래도 나름 애착을 가지고 여기까지 왔는데 뭔가 더 제대로 하고 싶고 다른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것을 보고 싶은 것은 인지상정이고, 그런 노력이 보다 안정된 상태에서 이루어지거나 좋은 평가를 받고 싶은 욕심 정도는 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