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ten's lecture on black hole thermodynamics
E. Witten, Introduction to Black Hole Thermodynamics
2412.16795 [hep-t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2862365
분량이 120여 쪽이나 되어서 언제 다 볼까 했는데, 비교적 술술 읽히는 데다가 흡입력 있게 쓰여 있어서 일주일여 만에 다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입문용 review로 쓰기에 상당히 괜찮게 느껴졌... 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까 나도 이쪽에 대해 아주 모르지는 않은지라, 진짜 초심자가 보기에 좋은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적어도 내 이해 수준에서 볼 때 내용상 중요한 개념이나 단어에 대해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하고 있고, 상투적 혹은 관용적으로 쓰이는 표현을 그대로 쓰기보다는 전체적인 틀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해서 최대한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고 있고, 가능한 한 직관적인 예제 혹은 비유를 들어서 눈에 확 들어오면서 기억나기 좋게 하고 있고, 설명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서는 충분히 참고문헌을 달고 있다... 는 점들을 최대한 동시에 만족하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게 모든 면에서 완벽하다는 것은 아니고... 어느 글이나 강의든, 모든 것을 한꺼번에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필요한 사람이 자신에게 맞는 것을 발견하면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고, Witten 선생 강의록 역시 초심자에게 좋은 가이드라는 점에서 좋지만, 기술적인 면을 알기 위해서는 뭔가를 더 찾아봐야 할 것이다. 다만, 많은 입문용 강의들이 자신들이 해야 할 '입문'이라는 목적을 쉽게 망각하는 경우가 꽤 많은데, 예를 들어 설명하고자 하는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개념이나 용어들을 너무 자연스럽게 쓰면서 그것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사실 건질 것이 별로 없다. 세부적인 계산이 없으니 스스로 터득하기 난감하니 더더욱 그런데, 보통은 그런 것이 있구나.. 하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시간이 지나면서 잊어버리게 된다. 이미 알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 기본적인 것을 설명하는 것이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 뭔가 '남는' 것이 생기는 것 둘 다 쉽지 않은 것은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만약 내가 해당 분야를 연구하는 사람들과 접촉할 기회가 많다면, 혹은 반강제로라도 뭔가를 하게 된다면 그런 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지만, 무엇이 중요한지 탐색하며 익숙하지 않은 분야를 스스로 알고 싶어 하는 단계에서는 적어도 자주 쓰는 개념이나 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혹은 왜 필요한지가 명확하지 않다면 그대로 시간 낭비가 되어 버린다. 지금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과 어떻게 연결되고, 그것을 가지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하려고 한다면 그런 것들이 가장 중요한 정보인지라... 그럴 때 전형적인 혹은 상투적인 설명은 언젠가 이해해야 할 것이겠고, 결국 그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수 있겠지만, 처음 접근하는 입장에서 보면 큰 감흥이 없다는 것이 문제이다. 그래서 좀 다른 식으로 설명하거나 상투적인 설명에서 쉽게 눈치채지 못하는 키워드를 가지고 그게 물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납득시킨 다음 이야기를 그 키워드를 중심으로 재구성해 나가는 식의 설명이 꽤 도움이 많이 된다. (Feynman 물리학 강의가 그런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다) 이야기하는 사람 본인만의 방식이 있는 것인데, 일단 키워드가 명확하다 보니 좀 더 잘 이해되는 것도 있고, 자신만의 관점이라는 것에 관심이 많은 입장에서 보면 여기서 이런 것을 발견해서 저렇게 설명할 수 있구나..라는 설명 방식 자체에서도 많은 것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여하간, black hole thermodynamics의 잘 알려진 역사, 그러니까 Bekenstein 선생이 black hole도 entropy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게 유한한 값을 가지려면 radiation이 필요한데 Hawking 선생이 양자역학적 효과로 그걸 설명했다더라.. 라는 것에서 시작해서, 이게 AdS/CFT와 만나면서 Ryu-Takayanagi의 발견으로 이어지는 이야기가 상당히 잘 설명되었다. 특히, thermal entropy (혹은 coarse-grained entropy), 즉 macroscopic 한 관점에서 모든 microscopic 한 상태들이 같은 확률을 가지고, 증가하는 entropy와 같은 열역학적 성질은 만족하는 entropy와 von Neumann entropy (혹은 fine grained entropy), 즉 양자역학적으로 분리된 system에서 density matrix를 통해 정의되는 entropy의 차이를 부각한 것은 상당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entropy의 다양한 양자정보적인 성질들은 von Neumann entropy로부터 나오고, Ryu-Takayanagi의 발견 혹은 이를 토대로 한 black hole 정보역설의 이해 (island를 도입한다거나..) 같은 것들이 결국은 그동안 thermal entropy의 언어로 이야기되어 온 것을 von Neumann entropy의 관점에서 다시 쓰고 확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아직 모르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는 연구 생활을 계속 하는 한 계속 따라다니는 문제이다. 가장 괜찮은 상황은 나도 모르고 너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경우는 아주... 까지는 아니더라도 비교적 마음 편히 들어갈 수 있다. 일단 내가 아는 것에서 시작하면서 다른 사람이 쓴 논문 보아가며 아는 범위를 넓히면 그럭저럭 배워나갈 수 있고, 그러다 보면 괜찮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라고 하더라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닌 이상 그 뒤에 있는 생각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고, 그것을 이루는 이론적인 근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따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데 그런 것들이 궁극적으로는 단순한 원리로 환원되더라도 지금 당장은 그다지 깔끔하지 않은 상태로 존재하거나, 그 힌트가 되는 이론이 이것저것 많이 알아야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진짜 익숙하지 않지만, 이미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수십 년에 걸쳐 만들어 놓은 것을 이해해야 하는데, 이게 좀 골치 아픈 것이다. 많은 review나 lecture들이 있다고 해도 내가 아는 곳에서 시작해 주거나, 내가 이해하고 싶은 것에 맞추어 설명되리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대체로 익숙하지 않은 것들에 신경이 팔리느라 정작 잡고 싶은 것을 잡지 못하기 십상이다. 하나하나 해 가면서 아는 것이 정석이겠지만, 시간이 상당히 많이 걸리는데 그것에 반해 '남들이 이미 쌓아놓은 것을 따라가는데 벅차서 내 생각을 못하고 내 이야기를 못하는' 상황이 많이 답답하다. 물리적으로 맞는 이야기라면 사람들이 이해해 온 방식이나 과정이 유일한 것이 아니고, 궁극적으로는 내가 뭔가를 그려내야 하는 상황이라서 더 그런 면이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제대로 된 introduction이 꽤 도움이 된다. 잘 맞는 열쇠 같이, 이야기의 구조를 들어오게 하는 뭔가가 머리에 심어진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당장은 모르는 것이라도 왜 이걸 해야 하는지, 혹은 더 이해하고 싶으면 무엇을 보아야 할지를 알고, 그 설명 방식이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납득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 낼 여유가 생기면, 잘하면 뭔가 할 수 있는 것을 건질 수 있다. 그럴 때는 오히려 익숙하지 않은 외부인이었던 것이 도움이 되기도 한다. 거창하게 다른 관점을 가지고 접근할 수 있다는 면도 있지만, 무지는 때로는 뭔가를 할 수 있는 동기를 주기도 한다. 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아직 모르니까.. 이게 처음에는 보기 좀 흉한데, 익숙해지면 하니씩 보이는 것도 있고 시간이 지나면 뭔가를 알게 되는 것 같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것이 약이 되는 경우라고 해야 할까.. 처음 하지 말아야 할 갖은 이유를 생각해 내며 손도 대지 않은 것보다 결국은 많은 것을 알게 물론 된다. 나도 처음부터 흉하게 보이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나도 할 수 있다면 우아하게 들어가고 싶다...), 그 과정에서 바보 같은 짓을 한다는 것도 알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알게 된다는 것이다. 도움도 주지 않을 다른 사람 눈치 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관심있는 두 가지 주제, 그러니까 string compactification에 양자 중력의 어떤 성질이 반영되는지를 찾는 swampland program이나, 현재 가속팽창하는 우주의 양자역학적 성질을 지금까지 사람들이 black hole를 통해 이해해 온 열역학적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 둘 다 나에게는 아직 낯선 주제이다. 그래서 계속 주변을 빙빙 돌면서 하나씩 건지는 중인데, 뭔가 제대로 된 것을 건들 수 있는 뭔가를 가지는 것이 일단 가장 필요한 것 같다. 지금 이것저것 해 보는 것도 그것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