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nf1 2025. 1. 16. 20:23

 저번 주에 논문 나온 뒤로 좀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 있어서 계산 좀 돌려봤는데, 그닥 이야기가 특별나지 못한 것 같다. 기대하기로는 여러 swampland 가설들이 좀 더 현상론을 매개로 연결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는데, 좀 별로네... 사람들이 잘 이야기하지 않은 건 그래서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숫자를 가지고 뭔가 물리적인 이야기를 맞춘다는 게 정말 어느 정도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양자장론 특히 재규격화를 통해 알게 된 것은 여러 parameter들이 단순한 측정값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관련된 입자들이 참여하는 상호작용이 다양한 경로로 양자역학적인 보정을 준 결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표준 모형 이후 입자 물리는 parameter 값이 왜 하필 이런 값일까? 혹은 왜 하필 아주 다른 두 scale이 존재해야 하는가? 등을 물어 왔다. 어떻게 보면 필연적으로 생길 수밖에 없는 방향이고 언젠가 이해해야 할 것들이지만, 현재 이해 단계에서 방향을 제대로 잡을 수 있는 문제인지는 또 다른 문제이다. 어쩌면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이질적인 혹은 생뚱맞은 생각을 하지 않으면 돌파구가 열리지 않은 채 문 앞에서 빙빙 돌고 시간만 보내고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것 같다. 어쨌건 지금은 단서 하나라도 아쉬우니 여러 parameter들이 가지는 값들 사이의 관계를 파 보게 되지만, 이 중에서 정말 중요한 의미가 담긴 것은 얼마나 될까? 잘 모르겠다. 어쩌면 전부일 수도 있고 어쩌면 아무것도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면 떄로는 완전히 엉터리에서 시작했는데 정답을 추구하는 사람보다 더 답을 잘 맞추는 경우도 있다는 것. 그건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도 아직 알려지지 않은 것에 대해 완전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때로는 사상의 일관성이(라고 믿고 있는 것이) 눈을 흐리게 만들기도 한다. Descart 등의 기계론자들은 이전 Aristoteles 철학이 추구하던 합목적성, 즉 물질은 저마다 본성이 있고, 그 본성에 의해 있어야 할 자리로 찾아가는 것이 운동이라는 관점을 부정하면서, 이전 물리가 가지고 있던 신비주의적 요소를 제거해 나갔다. 결과물인 Newton 역학의 관점에서 보면 전체적인 방향은 맞았다. 운동에는 개별적인 물체마다 개별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즉 물체 내부에 원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힘이라는 외부 요인에 의해 일어난다. 그런데, 그 와중에 원격작용을 배격하고 직접적인 접촉에 의한 운동에 천착하였다. Coulomb 힘 같은 전자기력이 처음 기술될 당시에는 그 밑에 이성적인 과학 탐구만 있는 것이 아니라, 물체마다 가지는 개별적인 본성끼리의 상성에 의해 끌어당기도 밀어낸다는 관점이 깔려있었으니... 결국 Newton 선생이 기계론적 관점과 원격작용을 합치면서 (그러고 보면 Newton 선생도 꽤나 신비주의적인 것에 끌리셨더랬다...) 현재의 형태로 완성되었지만, 관점이 맞다고 해서 그 맥락에서 나온 주장이 모두 맞지 않다는 것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뭐 Galilei 선생이 지동설 까지는 좋았지만 끝까지 원운동을 고집하다가 제대로 된 진전을 이루지 못해서, 후세 입장에서 보면 지동설 주장을 자제하고 운동 이론 연구할 때 발견한 것들이 더 중요한 업적이었던 것도 비슷한 맥락일 것이다. 그렇게 보면, 지금 관점에서 예전 주장 사이에 일관성 혹은 모순을 느낀다고 해도 그 당시에도 같은 판단을 내린 것이 아닌 경우가 꽤 많다. 현재 입장에서 과거를 볼 때는 맞는 것으로 판별된 결과에 주목하거나 지금의 필요에 의해 과거를 재구성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당시 바보 같은 생각을 했던 것처럼 보여도 실제 보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경우가 꽤 많다. 그리고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금 그렇게 맞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이 나중에 말도 안 되는 바보 같은 소리 취급을 받아도 이상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뒤로 물러나 평가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앞에서 직접 뭔가를 하는 사람은 항상 어느 정도 이상의 용기가 필요하고, 동시에 너무 쉽게 판단을 내리거나 과한 신념을 가지는 것이 위험하다는 것도 알 필요가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보면 세상에 의심스러운 것도 한두가지가 아니지만, 또 그렇게 계속 의심하려다 보면 많이 외로워진다. 좋은 걸 건진다는 보장은 없는데도... 그래서 더 세심하게 사는 것이 힘든 것 같다. 그저 그게 내 팔자려니 하고 사는 게 좋긴 하지만 가끔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 보면 그저 지금처럼 있는 것이 정말 좋은 것인지 의심스러워져서, 뭔가 더 괜찮은 것을 할 기회를 날리고 있지 않은지 하는 생각도 든다. 결국 지금 아무것도 모르니 나중에 가서야 후회하거나 다행이라고 생각하거나 하겠지만.... '선택은 포기와 같은 말이다' 라거나 '많은 것을 제대로 생각하게 될수록 괴로울 거다'는 말을 학부 때 들었는데, 요새 그게 뭔가 지금의 나에 대한 예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어쨌건 좀 시간이 나는 김에 한번 훑어보려고 챙겨 놓은 review나 좀 읽어봐야겠다. 머리도 식히고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정신도 차려볼 겸... 그러고 보니 한 열흘 전에 참고용으로 주문한 책은 언제 오려나... 초끈 이론 보고 하다 보니 T. Hubsch의 Calabi-Yau Manifolds를 주문했는데 오늘에서야 해외출고가 된 모양. 사실 나름 유명한 책이라 예전부터 사려고 하다가 왠지 망설여져서 미루고 있었는데, 저번 12월에 2판이 나왔더라. 망설여서 다행이랄까... 그렇게 보면 세상 일 잘 모르는게 어떨 때는 괜찮은 결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론 그만큼 꽝도 많지만 사람의 마음은 원래 간사해서 한 번의 성공을 겪으면 나머지 열 번의 실패는 잘 잊기 마련이고 나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_-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