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nrnf1 2025. 1. 2. 16:52

 실감은 안 나지만 일단 한 해가 바뀌었다. 쓰고 있는 논문도 거의 마무리되어 가서, 아마 다음 주 중으로 공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아이디어도 단순하고 긴 논문은 아니니 오래 끌 일도 아니긴 한데, 쓰다 보니 좀 더 알아보고 싶은 것이 하나 더 생겼다. 결과가 나쁘지 않으면 다음 논문 거리가 되겠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고... 시간의 많은 부분을 소비하고 있는 것과 논문으로 쓰는 것의 분야 차이가 조금 신경 쓰이기도 하는데, 이게 세월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20대 때에는 지금 당장은 모르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어떻게든 알게 되고 논문도 쓸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실제 지금 그게 어느 정도 현실화되기는 했지만, 지금은 모르는 것에 대해 그렇게 낙관적이지는 못하게 된 것 같다. 이런저런 일로 불안함이 모여서 그게 참을성을 갉아먹는 것 같기도 하다.


 구조적인 면에 관심이 있으면서 하는 일은 현상적인 것이라는게 학생 때 구상했던 것이긴 하지만 그렇게 불안정하게 느껴질 것이라는 생각은 못했다. 이것이 이론과 현상론에 연구가 걸쳐 있는 상황에서 계속 보이는 불완전함 (특히 누군가는 아주 잘 알고 있는데 정작 나는 비슷한 이야기를 하면서 제대로 모르는 상황) 에 대한 목마름 때문일 수도 있고, 연구가 한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진 것에 비해 인정받기 힘들다는 외로움 내지는 인정받고 싶어 하는 욕구 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논문을 썼다고 할 때 그것을 가지고 보다 많은 것을 할 수 있으면 하지만, 새로 알게 되는 속도는 더디고 이미 하던 것만 반복한 채 시간만 흐르는 것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이런 것들이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섞여서 꽤 답답한데 마땅한 돌파구를 아직 찾지 못하고 있는 게 문제일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비슷한 문제는 항상 중요한 시점에 등장했다. 고등학교 때 늦깎이로 물리에 관심을 가질 때, 학부 시절 배우던 것을 좀 더 잘 이해하고 싶을 때, 대학원생 때 연구를 어떻게 들어가야 할지 모를 때, 박사 받은 다음 '나'의 연구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할 때 등등.. 결국 어떤 식으로든 해결되어서 지금 여기 있는 것이겠지만, 그때마다 꽤나 헤매고 구른 것 같다. 지금도 그런 셈인데, 과거에 잘 지나왔다고 해서 지금 문제가 잘 해결되리라는 보장도 없고 나이 탓인지(?) 좀 피곤함이 늘어난 느낌도 들어서 좀 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것 같다.  


 어떻게 보면, 그런 생각들을 되짚어보게 된 계기가 코로나였던 것 같다. 교수가 된지 1년이 지나 좀 익숙해질 만할 때 코로나가 터지면서, 대인관계가 위축되고 연구 이외의 일이 늘어나는 와중에 어떻게든 '물리학자'인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내려고 했는데, 그러다 보니 지금까지 해 온 일, 혹은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코로나가 끝나서 다시 여러 가지 관계들을 재설정하려다 보니 그전까지 익숙해서 생각하지 않았던 것도 뭔가 어색하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애매하게 느껴졌달까... 그러면서 강하게 든 생각이, 시간도 많지 않고 결국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할 일들도 분명히 있는데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것이나 알고 싶은 것에 충분히 정성을 들이지 않았던 게 아닐까 하는 반성 비스무리 한 것이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당연하다는 듯이 혹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은 결국 무엇을 남기게 될까 하는 의심도 강하게 올라왔고. 사실 그런 질문들은 지금도 제대로 만족스러운 답을 얻지는 못했다. 아마 죽을 때까지 답을 얻지 못할 질문일지도 모르겠다. 많은 시간을 들여 공부하고, 논문 거리를 생각해서, 지금 하고 있듯이 논문을 썼는데, 그게 진짜 좋은 논문일까?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뭔가 중요한 것을 발견하기 위한 실마리 역할이라도 할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아주 긍정적이지는 않고, 그런 삽질에 가까운 시간 보내기가 하다못해 내가 나중에 괜찮은 일을 할 수 있는 거름이라도 될 수 있을지.. 하는 의심들이 무럭무럭 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논문 쓰다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이 초 치는 것 같기도 한데, 쓰고 있을 때야 이건 이런 의미가 있다.. 는 식으로 명분을 만들지만 어느 순간 그게 정말? 혹은 나도 나를 속이는 것에 너무 익숙해졌나? 하는 생각들이 밀려온다. 그러다 보면 많이 우울해질 때도 있다. 결과를 알지 못하는 것에서 생기는 불안감과 섞이는 건 다반사고.


 어쨌건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가 쓴 논문은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거의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이게 생각보다 당연한 것은 아닌 게, 예를 들어 여러 사람이 공저자로 참여한 논문에서 누가 어떤 생각을 얼마나 했는지, 혹은 핵심 아이디어를 제대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를 구분할 수 있을까? 논문 자체가 좋아서 칭송받고 인용도 많이 되면 좋겠지만 정작 저자인 내가 그 내용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다면 뭔가 사기치고 있는 기분이 들 것 같다.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내 이야기를 하고 그것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지를 찾아내서 쌓아가는 것이 지금 최대한 할 수 있는 것 같다. 논문 갯수를 늘리는 것 혹은 그 논문이 인기 있을지나 인정을 받을지를 생각하는 것보다 더 급한 게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 혹은 보다 제대로 알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인지라.. 일단 그 급한 것에 충실해야 할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이름만 있고 그것을 받쳐주는 내용이 없는 것에 대해 좀 더 엄격해지는 것 같다. 사회생활로 보면 못된 짓은 잔뜩 해 놓고 법에 저촉되지 않는데 뭐가 문제냐고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인데, 학점과 실제 이해도가 일치하지 않고 수업을 듣는 것이 교수의 마음에 들기 위한 것은 아니지만, 서류상으로 통과했으면 괜찮은 것이 아니냐고 하는 것이, 논문을 썼으니 실제 내가 어느 정도 알고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와 상관없이 내가 전문가가 아니냐고 하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인다. 엄격함이 심해지다 보니 그런 태도에 대해서는 거의 혐오감과 같은 반응을 보이게 되었고.

 
 여하간... 새해도 되었는데, 그저 남이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내 눈으로 보고 나만 할 수 있는데 가치가 있는 이야기를 할 수 있는데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게 가능할지 잘 모르겠고, 가능해 지면 그 지점에서 좀 더  다른 방향으로 욕심을 낼지는 모르겠지만, 그 지점까지 생각할 여유는 없는 것 같다. 쓰고 있자니 더 답답해지네... -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