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
내가 지금 일하고 있는 학교에서는 양자장론을 제대로 강의할 기회가 없는데, 2년 전에 한번 다른 곳 그러니까 입자물리여름학교..라는 곳에서 양자장론을 정리해서 강의할 일이 있었다. (블로그 첫 페이지 맨 아래 링크 부분에도 있습니다..)
https://docs.google.com/presentation/d/1orViU3ftpSrPtdLRWc7w2Cg9CtvA7EfB/edit#slide=id.p1
https://docs.google.com/presentation/d/1IWTV6fZpxH-y-I8ZbJOg8el2hpTMxNxj/edit#slide=id.p1
https://docs.google.com/presentation/d/1T1ah-HVgEoAF2CtPeExbZFTBTNTob99U/edit#slide=id.p1
https://docs.google.com/presentation/d/152VdhtsqMsA-_3XjvCJX_FIQowRev-Si/edit#slide=id.p1
전체 4부작 6시간에 이르는 나름 대작(?)이기는 하다. 실제로도 강의를 나눠서 한 것이 아니라 1-3차시를 첫날 하루에 하고 마지막 4차시를 그 다음날 오전에 하는 바람에 체력적으로도 쉽지 않은 강의였던 것 같다. 사실 저 넓은 범위를 한 사람이 연강으로 강의한 것을 본 일은 지금까지도 없다. 그래서 나름 애착도 가고 의미 있는 강의였지만... 아마 다시 할 일은 없지 않을까...-_-
여하간 양자장론이나 일반상대론은 강의하는 입장에서 한번 제대로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드는 면이 있다. 아마 학생 시절 경험으로도 가장 근본적인 것에 가까운 교과목이라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은데, 연구하다보면 이건 기본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게 되어 겸허해지고(....), 또 그렇게 많은 것이 연구되고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세상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는 사실에 또 한 번 더 겸허해지게 된다.
굳이 수업이 아니더라도 이론물리학자 입장에서 뭔가 근본적인 것을 건드리고 싶다는 욕구는 항상 가지고 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게 잘못된 방향을 만들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근본적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진짜 근본적이라는 보장도 없고, 반대로 사소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에서 아직 밝혀지지 않은 근본적인 것에 대한 힌트가 있을 수도 있다. 지금 쓰는 논문에서 이론적인 것보다 현상론적인 요소가 꽤 들어가는 편인데, 이게 어느 순간 무의식적으로 논문에 대한 껄끄러운 감정을 준 것이 아닌가? 하는 반성이 조금 들어서.. 그것과 관련해서 얼마 전에 쓴 글에,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와 같은 고슴도치형 물리학자를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분들은 블랙홀을 본질에서 벗어난 사소한 현상이라고 여겼지만, 지금 관점에서 보면 (근본에 매우 가까운) 양자중력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사고실험의 수단인지라... 나도 비슷한 심리를 마음 한구석에 가지고 있었고 비슷한 실수를 범할 수도 있겠다 싶다. 이런 분들은 자신이 생각하는 근본적인 이론을 향해서 말 그대로 불나방처럼 뛰어드는 타입인데, 자신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지만 그것에 자신의 인생을 거는 것이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분들은 그런 기질 때문에 성공했고 또 그런 기질 때문에 실패했겠구나 싶어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없는 법이기 때문에 시간이 지남에 따라 흥하고 또 기울어져 간다. 그리고 누군가가 같은 경로와 같은 심리를 가지고 뭔가를 밀고나가 빈자리를 차지하고 또 뒷세대에게 내준다. 그것이 반복되면서 사람들은 이해의 틀을 하나씩 만들어간다. 물리의 진행 과정은 단순하게 보면 그런 패턴의 반복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 사람의 생각이나 인격을 무조건적으로 신봉할 필요도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물론 존경과 경외의 대상이 될 수 있지만, 그건 분명히 신봉과는 다른 것이다. 물리학자는 누구나 자신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아야 하는데, 신봉은 자신의 수고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의 권위에 기대어 세상을 보려는 행동이기도 하다.
그렇긴 한데,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하는 것은 상당한 강심장을 필요로 한다. 가장 편한 것은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 않고 뒤로 물러서서 모든 것을 평가만 하는 것이다. 틀린 이야기를 하기 힘들기에 똑똑해 보이지만, 결국 그것들은 다른 사람의 관점을 인용하는 이상으로 나갈 수 없기 때문에 실상은 가장 멍청한 것이다. 그렇다고 반대로 자신의 관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너무 의식한 나머지 설익은 관점만을 고집하면 말 그대로 인생 헛수고 하기 딱 좋다. 자신은 심각하고 신념에 차 있지만 결국 틀린 소리에 매달린 것에 불과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전에 학자로서 생존이 힘든 상태가 되기 아주 좋기도 해서 심리적으로도 피폐해지기 쉽기도 하다. 물론 맞는 소리를 해도 주변에서 인정해주지 않거나 심지어 공격을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보면 자신의 관점을 가지는 것이 어렵다는 것은, 단순히 가지는지 못 가지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스스로도 의심하고 계속 상호작용을 통해 깎고 다듬을 생각이 있는가의 문제이기도 하다. 자신의 주관을 가지지 않고 뒤에서 평가만 하는 경우든, 설익은 주관을 고칠 생각도 하지 않고 고집만 하든, 행동은 다르지만 궁극적으로는 작은 우물 안에서 텃세를 부리며 그것이 세상의 전부인 것으로 믿고 싶어하는 심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보면 파인만 선생이 돌아가시는 순간까지 칠판에 남겨놓았던 글들, 특히 '내가 창조해낼 수 없으면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는 것은 저번 글에 장난 삼아 중2병스럽다고 했지만, 사실 실천하기 정말 힘든 것이다. 자신의 방식과 관점에 따라 이해하려고 하는 것도 어렵고, 그렇게 생각한 것이 실제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도 어렵다. 아마도 어리숙한 상태에서 내놓은 답은 틀릴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스스로의 생각을 내세우는 것을 주저하게 만드는 요인일 것이다. 그렇긴 한데, 내 짧은 경험으로도 틀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틀리는 것을 어떻게 고치는가가 더 문제인 것 같다. 틀린 이야기를 하지 않기 위해 아예 문제에 손도 대지 않는 것보다 왜 틀렸을까 혹은 뭐가 틀렸을까 같은 것을 생각해서 새로 배우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단계인데, 적어도 내 주변에서 그런 것에 대한 중요성이 제대로 인식되는 일이 별로 없어왔다는 점이 많이 아쉽다. 나를 평가하려는 사람이 원하는 답을 찍으려고만 하고, 흥미나 관심이 중요하다는 말을 악용하거나 자신이 생각하는 물리가 물리의 절대적인 경계라고 생각해서 여기까지만 하고 앞으로는 나가지 않겠다는 말을 너무 당당하게 하는 것을 학생부터 교수까지 골고루 봐 왔는데.. 그게 어떤 면에서는 당장 드러나지 않는 암과 같은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