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214
살다 보면 많은 선택을 하게 되고 그게 항상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또 항상 인생에서 손해는 아닐 수 있더라... 옛이야기 중에 목이 좁은 병 안에 들어 있는 사탕을 너무 많이 집으려고 하다가 손이 걸려서 바둥바둥하는 것이 있는데 (그냥 병 기울여서 떨어지게 하면 되는 게 아니에요?라고 할 수도 있지만.. -_- 이 경우도 병을 확 엎어버리면 결국 병목 현상이 일어날 수 있으니...) 한꺼번에 많은 것을 잡을 수 있는 것은 인생에서 정말 드문 일이기에 그런 일이 일어나게 만드는 것에 집착하면 결국 하나도 건지지 못하고 시간만 날아가는 일도 많은 것 같다. 한 번에 한두 가지 일로 끝내려고 하는 것보다는 확실히 잡을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하는 것이 좋기는 하다. 문제는 그걸 몰라서가 아니라 하나씩 하기에는 시간 지나가는 것이 무섭고 그 사이에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같이 밀려든다는 점일 것이다. 거의 평생을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오다 보니 시간이 지나는 것을 느끼기 쉽지 않고, 그래서 대학 처음 들어갔을 당시가 아주 최근으로 느껴지는데, 불현듯 보니 그 시점에는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이제 성인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동안 무엇을 했을까 짚어보면 많은 것을 한 것도 맞고 그 당시와 비교하면 상당히 좋은 상황인 것은 맞지만, 뭔가 모자란 느낌이 드는 것 같다. 선학들의 표현을 빌리면 계속 바닷가에서 파도에 밀려온 것들을 주워 왔고, 그래서 주머니도 꽤 찬 것 같지만 어느 순간 주변을 둘러보면 여전히 망망대해이고 여전히 혼자라는 사실에 오싹해지기도 하고 외로운 감정이 어느 순간 확 밀려왔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시간의 변화에 내가 둔감하다는 것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변했지만 내가 그 변화를 느끼지 못하거나 부정하고 있다면 그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물론 변화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 좋은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현실이고 그것을 정확하게 파악할 필요는 있다. 희망사항과 현실을 동일시하는 것은 멍청하면서 위험한 일이다.
과거로 돌아가서 아직 연구를 시작하지 않았을 때에는 주변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고 내가 아직 가지지 못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것이 불안하기도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시점에서 보니 그 당시 그렇게 부러웠던 사람들이 지금은 학문적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오히려 그 당시에 알고 있던 것에서 더 뭔가를 더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끼는 것이 분명해 보여서 상당히 실망스러웠던 기억이 난다. 지금 교수 된 입장에서 보면 정작 내가 처음 생각했지만 주변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꼈던 방식이 보다 나은 면도 있었다. 나이 때문이라고 하기에는 나와 그다지 나이 차이가 나지 않는 사람조차 이미 시간이 멈춰 있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전문가이고 세상의 이치를 깨달았기에 그것을 기준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는 권리를 가졌다는 식의 행동을 보이기도 한다. 그 사이 어디선가는 아직 모르는 것을 캐내고 있는 활동을 하면서 더 멀리 나가고 있는데 말이다. 그래서 종종 듣는 말 중에 '그 사람은 특정 주제에 대해 모르는 사람인데..' 라는 이야기가 상당히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그 당시에 몰랐을 수 있겠지만 그게 지금도 몰라야 하는 이유는 아니기 때문이다. 연구를 계속하다 보면 이해할 필요성을 느끼게 될 수 있고, 그러면 알게 되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 변화의 가능성에 대해 아예 생각하지 않고 단정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에는 어떤 심리가 깔려 있는 것일까.. 그리고 나에 대한 생각도 거의 15년 전에 멈춰있고, 그게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 (예를 들어 그 당시와 지금 나는 관심사부터 하는 일 까지 완전히 다르다)을 알았을 때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들었던 것 같다. 15년 동안 얼굴 한번 안 본 사이가 아닌데도... 그래서 모 원로 교수님이 가끔 만날 때마다 요새 어떤 물리를 하십니까? 라고 물어오시는게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시간이 멈추는 것은 나이 순서가 아니라는 것도 배웠고. 오히려 세대가 지나면서 점점 뭔가 경직되는 사고 방식도 존재하는 것 같다. 특히 직접 겪지 않고 피상적으로 전해듣지만 그것을 내세울 필요가 있는 것에 대해서는 더 그런 것 같고..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변화하지 않고 멈춘 채 자신이 이미 경지에 올라 있어서 더 이상 변할 필요가 없다고 느끼고, 세상도 그 멈춤을 받아줘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제공해 주면서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를 바라는 심리이다. 이미 누려야 할 권리를 가질 만큼 과거의 경험과 성취가 있으니 그것을 영원히 누릴 수 있어야 하지만 내가 뭔가 생각을 바꿀 필요는 없다는 것이겠지.. 자신이 인식하는 혹은 주변과 공유하는 세상에 대한 인식이 실제 세상과 아주 달라졌더라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하거나 필요 없는 것 혹은 옳지 않은 것이라고 여겨 버리면 되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런 태도가 위험하고 결국 자신은 물론이고 주변까지 병들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런 것이야 다른 사람 이야기이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적어도 현재는 나와 별 상관이 없는 일이기는 하다. 장래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도... 그게 신경 쓰이는 것은 나도 그런 사람의 부류에 들어가지 않을까? 혹은 지금 초보자였다가 성장한 사람에게 나는 정말 하찮게 보일 정도로 내가 지금 변변치 않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들이다. 한마디로 나도 이미 시간이 멈춘게 아닐까? 혹은 멈추게 될 때 나는 그것을 의식하지 못한 채 바보 같은 행동만 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그러면서 그걸 인정하거나 고칠 생각을 하지 않고 자기변호에만 신경 쓰는 것이 아닐까? 그런 생각들이 밀려오기도 한다.
지금 논문을 쓰고 있는데 뭔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는 것 같다. 논리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 나온 결과가 뭔가 특별해 보이거나 이전 접근 방법과 막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 문제. 일단 정리 한 다음에 더 이야기할 구석이 있는지 살펴야 할 것 같다. 그렇기 한데 논문 원고를 들여다보니 뭔가 지금까지 써 온 씁쓸한 생각이 한꺼번에 밀려와서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