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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익숙하지 않은 것들 (3)

dnrnf1 2024. 10. 10. 05:24

A. Kundu, Wormholes and holography: an introduction
Eur.Phys.J.C 82 (2022) 5, 447 2110.14958 [hep-th]
https://inspirehep.net/literature/1954999

 European physical journal C의 review series 중 세 번째로 본 것. 다른 review에서 말로 하고 넘어갔던, averaged null energy condition을 깨는 energy momentum tensor에 대응되면서 서로 단절된 두 boundary를 연결하는 non-local interaction이 있을 때 wormhole이 traversable해지는 과정이 좀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기도 했고..  옛날에 한번 Giddings-Strominger wormhole을 공부해 보기도 했지만, non-locality라는 성질이 꽤나 묘하게 느껴진다. 정확히 EPR 역설을 보았을 때 느낀 것이었는데, holography principle에서 암시하는 것 중 boundary의 EPR state와 bulk의 wormhole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가설이 있다는 점에서 보면 우연은 아닌 것 같다. EPR state를 이야기하려다 보니 완전히 단절된 두 개의 boundary들을 다루게 되고, 그걸 아주 잘 구현하는 asymptotically AdS인 black hole을 많이 이야기하기는 하지만, 계속 마음 한구석에는 현재 우리 우주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어떤 것일지에 대한 궁금함이 남아있다. 애시당초 de Sitter에서 boundary를 이야기하는 것이 문제가 있기도 하고 (물론 dS/CFT correspindence에 대한 이야기가 없지는 않지만 정확히 이 점 때문에 AdS/CFT보다는 뭔가 근거가 모자란 느낌...) 보통 inflation 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에는 de Sitter 공간의 반쪽만 잘라서 이야기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 있는 상태들의 entanglement를 이야기하면 될지도 불분명하다. 일단 다른 review들도 꽤 남아있으니 계속 읽어보고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생각해 봐야겠지 싶다.

 특정한 주제에 끌리는 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와는 뭔가 다른 관점을 요구하는 것에 관심이 생기는 것 같다. 지금 양자중력의 열역학에 관심을 두는 것도 물론 이론물리의 중요한 문제라는 면도 있지만 (감수성을 자극하는 면도 있기는 한데, 직접 연구하는 입장에서는 낭만을 따지기에는 머리가 많이 버겁다) 지금까지 수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생각을 해 왔음에도 딱히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 문제는 뭔가 다른 접근방식을 택할 필요가 있다는 점에서 생각해 볼 가치가 있어보였기 때문이다. 그동안 입자물리를 위한 양자장론을 하면서 locality에 대해 크게 고민해 보지 않았던 것이 시야를 너무 좁힌 게 아닌가 싶기고 하고, 시공간을 하나의 거대한 양자회로로 보는 관점이 신선하게 다가온 면도 있다. 물론 이 이야기들도 벌써 최소 10여 년 이상 지난 것들이기도 하지만, 예를 들어 초끈현상론 같은 경우는 훨씬 더 오래된 주제인지라.. Flux compactification 이야기도 어느덧 25년이 다 되어 간다. 현실적으로 보면, 오래된 주제를 다루는 것은 경험이 얕은 입장에서는 꽤 불리한 게임이다. 논문을 보다가 당연하다는 듯이 넘어가는 이야기가 왜 그런지 의심하기 시작하면 수십 년 전 논문을 뒤질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이게 계속되다 보면 내가 어떤 것을 생각하건 이미 아주 오래전부터 익숙하게 다루어온 전문가들이 있어서 관련된 의논을 해 왔다는 사실이 묵직하게 다가온다. 내가 뭔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이 애시당초 가능할까?라는 의구심이 커지는 것이다. 정석적으로 하면 일단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부터 차근차근 해 보면서 경험을 쌓는 것이 옳긴 하고, 실질적인 선택지가 그것이기는 하지만, 한편으로 보면 그게 쉬운 것을 찾는 것에 익숙해지는 경향으로 변해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지만 버거워서 혹은 당장 논문이 안 나와서 손을 계속 안대는 통에 여러 해가 지나도 모르는 것'들이 계속 누적되는 것에 대한 걱정도 있다. 사실 요새 나온 논문 중 볼만한 것으로 뽑아놓은 것 중에는 string inflation에 관한 논문도 있고, 이미 알고 있는 배경 지식으로도 잘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예전 같으면 우선적으로 읽었을 것 같지만, 그래도 아직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쪽으로 연구 방향을 잡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생각에 일단 보류하고 있다. 물론 배경지식을 이미 알고 있다고 해서 내용의 모든 것이 새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머리를 굴리다 보면 새롭게 깨닫는 것도 있으니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하면 다소 건방진 태도이긴 한데, 뭐랄까.. 뭔가 좋은 연구를 하기에는 아주 중요한 뭔가를 모르고 있고 그걸 계속 방치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이 든다고 해야 하나.. Swampland 문제를 다루면서 지금까지는 현상론적인, 혹은 우주론적인 응용에 집중했지만 점점 그 자체의 이론적인 문제를 보고 싶은 느낌이 드는 것도 그것 때문이다. '신선함'이라는 면에서 보면 이것도 나름 고인물이기는 하지만 고인물이라고 아예 몰라도 되는 것은 아니고, 그래도 새로운 관점이 생간 셈이니 나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같은 것을 배워도 다른 접근으로 배울 수 있는 것 자체 역시 괜찮은 자산이기 때문이다. 잘 안되면 다시 할 수 있는 것으로 돌아가면 되고. 그러기에는 아직 새로운 것이나 신선한 것을 보고 싶은 느낌이 더 강하기는 하지만.

 예전에 Green-Schwarz-Witten의 초끈이론책 1장을 보면서 인상깊었던 것이, 하나의 이론이라도 접근하는 방법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는 문구였다. 한번 이 점을 강하게 인식하고 나니까 계속 그런 눈으로 물리를 보게 되었는데, 그런 경우 주제 자체가 신선하지 않더라도 접근 방법이 신선할 수 있고, 여기서 예전에 생각하지 못했던 것을 발견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전통적인 설명 방법이 항상 효율적이거나 논리적이라는 법은 없고, 설령 예전에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 입장에서 보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상대성 이론은 아인슈타인 선생의 역작이지만, 자연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한 일면이지 '아인슈타인이 소유한' 이론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아인슈타인의 접근 방법이 유일한 것도 아니고, 아인슈타인의 의견을 무조건 따를 필요도 없다. 실제로 일반상대론은 다른 이론에 비해 아인슈타인 개인의 지분이 매우 큰 편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이해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계속 연구 진행에 따라 재해석되는 것은 다른 연구 분야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점이 같은 이론을 연구하더라도 계속 가치 있는 뭔가가 나오게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양자역학도 마찬가지이고. 어떻게 보면, 물리는 생각보다 많이 '망각'을 먹고 산다. 100년 전 고전역학을 공부했을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 풀었을 문제 중 많은 것은 지금 더 이상 학생들이 심각하게 다루지는 않을 것이다. 양자역학도 100년 전 사람들을 힘들게 만들고 많은 발견의 단서가 되었던 다전자원자 문제들이 있었지만, 지금 그것을 모두가 심각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발견이야 다전자원자를 이해하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하더라도 뒷 세대 입장에서 보면 보다 간명하고 본질적인 설명 방법이나 접근 방법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것대로 이해하게 되고 그것을 가지고 뒷 세대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문제를 풀게 된다. 그러다 보면 과거의 생각들 중 많은 것은 잊혀진다. 간혹 그 잊혀진 것이 현재의 문제를 푸는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는 사실이 재발굴되기도 하지만, 이미 다른 동기와 관점에서 보는 것인지라 옛날 논문을 모두 섭렵했다고 현재 문제와의 연결 고리를 떠올린다는 보장도 없다. 중요한 것은 현재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라는 것이다. 점점 그 점을 인식하게 되면서, 논문을 볼 때도 관점의 새로움을 따지게 되는 것 같다. 물론 그게 항상 좋은 것은 아니고 익숙하지 않은 것을 이해해야 하는 수고도 동반하지만 (그렇다고 그 새로운 관점이 반드시 맞는다거나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내가 그 속에서 뭔가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보장도 없는데 말이다 : 그런데 그건 새로운 것이건 옛날 것이건 다 마찬가지이긴 하다), 쉽게 들어갈 수 있다고 무조건 환영할 것이 아닌 것은 중요한 교훈인지라..
 

 올해 Nobel 상은 물리와 화학 모두 인공지능 쪽에 주어졌다. 언젠가 AI가 그런 식으로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것은 아마 많은 사람들이 예측했겠지만, 화학상과 대조되는 점이라면 물리학상은 여전히 수상자 연령대가 상당히 높다. 그 점이 이미 자리잡힌 사람에 대한 공로상 내지는 모험을 피하고 안정적인 쪽에 수상하려는 경향이라는 비판을 불러일으킨다. 새로운 연구를 독려하는 데 일조했던 초기 물리학상의 분위기가 과하게 쇠퇴한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게 같은 정신이 다른 방향으로 구현된 것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처음 어떤 분야를 개척했던 사람들 중 꽤 많은 경우가 온갖 불확실성과 사람들의 평가절하를 견뎌야 했기 때문에, 여기에 대한 존경을 표하는 것은 새로운 연구를 독려하는 한 가지 방법이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 보면, 처음 개척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예전의 시각에서 완전히 벗어나기 힘들다는 한계 역시 가질 수밖에 없다. 이론의 발전이 만든 사람의 손과 관점에서 벗어나는 것은 사실 그 때문이기도 하다. 그 분야가 어느 정도 유망하다는 평가가 내려진 뒤 본격적으로 발전시킨 사람들은 계속 새로운 것을 파생시켜 가면서 새로운 관점을 만들어내게 되고, 그게 초창기 연구했던 사함 입장에서는 거부감이 들거나 따라가기 버거운 것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을 인정하고 뒤로 물러나거나 배우는 사람의 입장으로 돌아가 같이 공부한다면 좋겠지만, 혹은 고전적인 관점이 새로운 관점이 가질 수 있는 폭주에 대해 적절한 제동 역할을 하면 좋겠지만, 반대로 새로운 관점을 가진 사람을 억제하는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했지만 뭔가 시도하려고 하는 사람에 대한 독려도 필요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아무것도 안 한 채로 뒤에서 평가만 하는 것에 비해서 계속 시도하고 생각하는 것은 피곤하고 때로는 멍청해 보이기까지 한 작업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혔다 싶으면 뭔가를 새로 생각하거나 배우는 것을 더 이상 시도하지 않고 스스로 그런 것들이 불필요하다는 근거를 만들어서 자신의 초연한 태도를 정당화하려고 한다. 그게 어떨 때는 나는 이미 중요한 것을 다 깨달았다는 오만함을 주고 아직 여물지 않은 식견으로 다른 사람을 평가하면서 자신을 합리적이고 오류가 없는 사람으로 높이려고 하는 경향으로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지위를 가지고 명성을 높이는 한 가지 형태라는 생각이 든다. 이게 때로는 기대하지 않은 순기능을 하기도 하는데, 반대로 뭔가를 한다는 것에 집착해서 제대로 생각하지 않는 부실한 연구를 억제하기도 한다. 어쩄건 나타날 수밖에 없는 심리나 행동이라서 없앨 수 있는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꽤 자주 그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학자는 연구에서 가치를 찾아야지 지위나 명성에서 찾는 것은 아니고, 연구라는 일을 하는 사람이지 특권을 가진 귀족 같은 것은 더더욱 아니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