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미국으로 출국

dnrnf1 2024. 8. 4. 03:26

오늘 Stony brook의 Simons center for geometry and physics에서 열리는 summer workshop에 참석하는 일로 출국한다. 원래 3주짜리 프로그램이라서 지금 진행 중이고, 나는 그중 마지막 두 주 동안 참가하는 것이다.

 

21st Simons Physics Summer Workshop: July 29- August 16, 2024 – SCGP (stonybrook.edu) https://scgp.stonybrook.edu/archives/41264

 이번 학회는 나에게는 조금 모험이라고 할 수 있는데, 아직 충분히 익숙지 않은 초끈이론 쪽으로 깊숙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참가자 중에는 상당히 (가장.. 일지도) 초심자일 텐데, 세상 일이 꼭 준비되어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긴 하다. 완벽히 준비된 상태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가 일단 모호하기도 하고. 일단 신경 쓰고 있는 것은 앞으로의 연구 방향이다. 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보면 입자물리에서 우주론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와중에 초끈 이론 쪽을 점점 건들게 된 모양새라서,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지가 계속 궁금해지는 중이다. 이왕 관심을 가지게 되었으니 그저 겉핥기에 머물기만 하기도 그렇고... 뭔가 중요한 것을 건들지 못한 채 변두리만 빙빙 도는 것이 껄적지근한 참이기도 하다. 보통 주제나 아이디어는 초끈 이론 하는 사람들의 연구에서 얻은 뒤 나에게 익숙한 (특수상대론적) 양자장론의 언어를 적용해서 현상론적인 분석을 하기 마련이고 나도 그렇게 계속 해오긴 했지만, 이게 결국 한계를 만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내용적으로는, 중력에 대해 진지하게 다루다 보면 특수상대론만을 염두에 둔 양자장론에서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뭔가 (UV/IR mixing이라거나...)를 자꾸 만나게 된다. 그래서 단순히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관점을 바꾸지 않는다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지점이 생길 수밖에 없고, 이해의 깊이도 그만큼 얕을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생각하고 논문까지 쓴 주제에 대해서 피상적인 이해만 가지게 되고, 같은 이야기를 하더라도 누군가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을 나만 모르고 있을 수 있는데, 이건 제대로 물리학자 노릇을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만큼 내가 능동적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고 다른 사람이 뭔가를 한 다음 따라가는 패턴으로 연구가 진행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론 뭇사람들의 관점을 그대로 따라가라는 법은 없고 뭔가를 안다고 곧바로 연구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무슨 생각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같다. 그런 것 치고는 이번에 가는 학회가 좀 하드코어가 아닐까 싶긴 하지만... (보통 스쿨에서 시작하지만 스쿨이라고 딱히 친절하게 이것 저것 가르쳐주는 것은 아닌지라..) 속 편하게 이야기하면 프로그램을 미리 알 수 있는 처지도 아니었고, (학회 시작 직전에 공개되어서리...) 내가 임의로 가는 것이 아니라 그쪽에서 OK 해서 가는 것이니까 (원래 3주 모두 참석하는 것으로 신청했는데 그쪽에서 2주로 줄인 것이다) 가는 것 자체가 (적어도 '절차상으로는') 문제 될 것은 없기는 하다. 일단 누군가에게 뭔가를 듣는 것 못지않게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비중도 꽤 있으니까 좀 바보 취급받더라도 충분히 정보를 모으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나는 여러 가지 면에서 (학문적인 면뿐만 아니라 인생도) '경계인'으로 살아온 것 같다. 분명히 한계는 있고, 그것 때문에 곤란한 것들도 있지만 또 한쪽에 완전히 잠기지 않았기 때문에 볼 수 있는 것도 있었다. 그렇게 보면 어떤 상황에 있든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동시에 한계도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정도는 다르더라도 누구나 완벽하지 않은 이상 가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중요한 것은 처지가 아니라 그 처지를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다른 사람의 평판이 인생에 치명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매우 줄어든 상황이라면, 바보 소리를 듣더라도 모험을 해 보는 것이 결국 남는 것이다. 누군가가 나에게 필요한 것을 친절하게 일일이 채워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지 모르는지, 그리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니까..

 그러고 보면 10년 전에 Princeton 고등연구원(IAS) summer school에 참석했던 기억이 난다. 전설들 (알카니하메드, 선드럼, 위튼, 말다세나 등등..)을 한꺼번에 본 것은 거의 처음이기는 한데, (그리고 장소 자체가 예전부터 아인슈타인 같은 전설들이 떼로 계셨던 곳이다 보니 분위기가 좀 다르기는 했다. 딩키라고 그쪽으로 가는 기차가 옛날 분위기가 나서 더 그런 느낌이 났을지도...) 어차피 무슨 소리를 해도 그 전설들은 내가 누군지도 기억 못 할 테니까 바보 같은 소리 해도 문제없겠지.. 싶어서 강의 들을 때마다 질문 하나씩은 꼭 했고, 그게 나쁘지는 않았던 것 같다.